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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반대 단식중인 민생정치모임의 천정배 의원은 16일로 22일째를 맞았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컴퓨터를 들여다보다가 어느 포털사이트에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단식중인 그의 얼굴 사진을 보았다.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평소보다 한층 맑아진 눈에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이 덥힌 그의 얼굴을 보고 나는 흠칫 놀랐다. 저 얼굴이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꼭 닮았다는 생각이 그날 내내, 그리고 잠자리까지 따라와서 나를 괴롭혔다. 그를 닮은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희미한 과거부터 다시 더듬어 보았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하여 향후 3년 동안 다닐 학교를 익히기 위하기보다는 혹시 몰래 담배 피울 만한 적당한 구석이 없나 하며 교내 곳곳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계단 아래 어두컴컴한 미술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미술반 몇몇이서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선배가 신입생인 나를 보고 반갑다는 듯이 일어서서 맞아주며 미술반에 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이곳에 들린 이유는 미술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서 이미 마음은 콩밭에 있었다. 어둑한 미술실에 눈이 적응하여 밝아지니 벽에 가지런하게 붙여 있는 그림들과 하얀 석고상들과 그리고 이젤과 화구들이 눈에 들어 왔다.

미술선생들은 대부분 골초들이니 쉬는 시간이나 수업이 없는 시간엔 미술실에 들러 그림을 손보면서 담배를 피운다는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직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한 향긋한 담배 냄새가 남아 있었고 조그마한 창문아래 담배꽁초가 수북한 재떨이가 눈에 들어 왔다. 그곳엔 급히 불을 끈 듯한 꽤 기다란 장초도 보였다.

미술반 선배가 목탄 데생 그림들이 가지런하게 붙여져 있는 벽 앞으로 나를 데려가서 설명했다. '저건 노만수 그림, 저쪽 두 번째가 천정배 그림….' 석고상이 놓여 있는 선반 위쪽 벽 한 가운데 걸어져 있는 마스크상을 그린 목탄 데생들이었다. 그 선배의 설명 끝에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파안대소를 터뜨리자 선배가 왜 웃느냐고 물었다.

"요 그림들이 모두 저 마스크상을 그린 것인데 짐짓 저 마스크상은 하나도 닮지 않고 모두들 그림 그린 자기들 얼굴을 똑 닮았네요!"

그 중 천정배 그이의 그림이 가장 빼어났다. 물론 자신의 얼굴을 복사한 듯 그려 놓았지만 마스크 석고상의 특징을 하나도 빼뜨리지 않고 아주 깔끔하게 잘 그려진 그림이었다. 화지위에 칠해진 목탄의 빛깔도 잘 안정되어 있고 전체 분위기와 세부묘사가 적당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이 날 우연히 미술실에 발을 들여 놓은 인연으로 미술반 행세를 하게 되었다. 물론 그림 그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술선생님의 재떨이 속 꽁초들이 미술실로 나의 발길을 열심히 돌리게 했다. 이것이 천정배 그이와 나의 첫 조우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천정배의 그림과 나의 첫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도 미술실은 자유롭고 편안했다. 가끔 미술대회를 핑계대어 그 끔찍한 보충수업시간을 빼먹고 미술실에 모여 잡담하면서 그림 그리는 일은 정말 꿀맛이었다.

한번은 우리들이 우스개 소리로 실컷 웃고 떠들고 있는데 누군가 입구 쪽에 서서 우두커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정배 그이였다. 3학년인 그는 모진 입시 공부에 지쳐 있는 핼쑥한 얼굴이었다. 우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모두 자기들 자리로 후다닥 되돌아가 그림 그리는 시늉을 했다.

"아니야! 아니야! 하던 이야기들을 마저 하지 그래. 그냥 심심해서 잠깐 들렀다…. 니들은 좋겠다!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으니…."

그리고 그는 다시 어깨가 축 늘어진 뒷모습을 보이며 쓸쓸하게 미술실을 나갔다. 그는 가끔 그런 식으로 미술실에 조용히 들어와서 그림 그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한참동안 넋을 잃은 듯 바라보았다.

이것이 그와 나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1989년 나는 안기부의 조사를 받고 서울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안기부는 온갖 고문조작으로 나를 국가기밀누설 혐의로 구속했고 나는 꼼짝 없이 '간첩화가'라는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나의 사건을 직접 맡지는 않았지만 당시 임수경 방북사건 변호사였던 그는 가끔 나를 면회했다.

"괜찮아! 괜찮아! 걱정할 필요 없어. 너의 공소장을 꼼꼼하게 읽어 보았는데 고문 조작된 부분에 대해서 재판과정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당시 공안정국 상황이라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의 재판에 대해서 절망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오직 천정배 그이 혼자서 낙관하고 있었다. 그 후 나는 국내외 주변사람들의 석방운동과 내 변호사의 빛나는 노력에 의해 재판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간첩이라는 멍에를 벗겨 낼 수 있었다.

이것이 그와 나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 한미FTA반대 단식 19일째였던 지난 13일 오전 민생정치모임의 천정배 의원은 도올 김용옥씨와 만났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미술반 선배였던 천정배 의원... 그의 그림과 조우하다

지난 3월 30일, 화창한 봄 날. 곡기를 끊은 지 6일째 되던 날에 이곳 안산의 지인들과 함께 그의 단식현장을 방문했다. 자신의 주변 인물 중 가장 무심한 후배인 나의 모습을 보고 그이가 깜짝 놀랐다. 사실 나는 3년 전에 거주지와 화실을 그의 지역구인 안산으로 옮기고 나서도 단 한 번도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나의 손을 꽉 쥐어 주며 그가 말했다.

"네가 뒤늦게나마 가정 꾸려 안산에 정착했다는 이야기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물었다. "형! 이제 단식 끝내야 할 텐데……."

"아니다! 이번 단식하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내가 그 동안 정치인으로서 잘못한 점들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정말 내가 반성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단식전엔 미국의 일정에 맞추어 조급한 협상을 벌이는 정부입장에 대해 막연한 비판만 했는데 단식 중에 이런저런 자료들을 본격적으로 읽고 공부를 해 보니 이번 한미FTA 는 나라를 팔아먹는 것에 버금가는 일이다. 이 협잡을 막지 못하면 안된다."

그의 표정은 단호했다.

학창시절부터 평소 그의 성격을 잘 아는 나는 이것이 단순한 정치성 단식이 아니라는 것을 즉감하였다. 이미 그의 맑은 눈 속에서 나는 양날의 칼을 보았다. 하나는 자신의 깊은 내면을 겨누는 성찰의 칼날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FTA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정치적 협잡에 겨누는 칼날이었다. 그를 의사당 앞 천막 안에 남겨 두고 돌아오는 길은 허전하기만 했다.

이것이 네 번째 만남이었다.

오늘 일요일, 봄날도 화사하다. 그의 단식이 벌써 20일을 넘어서고 있다. 여의도 지천에 피어있는 벚꽃도 이제 하나 둘 스러져 하얀 꽃잎이 눈처럼 내리고 있을 것이다. 꽃잎도 지고 또한 애잔한 세월도 흘러가고 있다. 단식 20일을 넘기는 그는 퀭한 눈으로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들, 학창시절 빡빡머리에 오른 기계독을 털어내면서 항상 쪼르륵 배고팠던 보릿고개 시절을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면, 지난 독재시절 고문으로 분신으로 온갖 정치적 폭력으로 죽어갔던 젊은 청춘열사들과 더불어 20여 년 전 한반도를 뒤덮었던 민주화의 함성소리를 생각하고 있을까. 곧 낼 모래가 5월인데 그의 단식현장 앞 화단에 붉게 피어오르고 있을 철쭉꽃을 보면서 광주 오월의 피를 생각하고 있을까.

그이가 10여 년 전 정치권으로 발걸음을 옮겨 디딜 때 우리 동문들이 삼삼오오 모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이의 여정을 두고 논의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 나는 가장 반대를 많이 했던 축에 속한다. 예술가인 내가 뭐 특별한 반대의 논리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순전히 감성적인 판단이었다.

"범죄계급 중 에서도 특히 저급한 족속들이 즐기는 생계수단이 바로 정치다. 봐라!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숨쉬는 소리 빼놓고는 모두 거짓말뿐이다. 정배형이나 근태형이 그런 인종들 속에 들어가 스스로 인격을 망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물론 나의 이런 살벌한 반대말은 민주화 이후 변화되어가는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지형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책임 없는 말이었다. 그는 나의 이런 대책 없는 반대말과는 상관없이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맑은 물에서는 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이다. 약간 물이 흐린 듯해야 먹이도 많아서 고기들도 모여들고 이래저래 풍성해지는 것인데 천정배는 너무 맑다. 너무 맑다보니 덕이 없어 뵈는 것이 큰 흠이다."

나는 오히려 그래서 그이의 정치여정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물이 흐린 듯' 이라는 말은 '정치꾼의 협잡 짓'을 잘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고, '먹이'라는 뜻은 '돈', 좀더 고급스러운 표현으로 '정치 자금줄'을 많이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말일 테고, '고기가 모인다'라는 것은 위에 말한 '협잡'과 '돈'으로 자신을 따르는 계보를 열심히 챙겨서 이익집단을 만든다는 뜻이겠다.

전혀 그렇지 못한 '맑은' 천정배는 그래서 그이의 정치여정을 성공적으로 가꾸었다고 생각한다. 독재시절 지난한 시대를 살아서 목숨을 지탱해 온 전형적인 정치꾼들도 이제 하나 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제 그 끝물들 몇이 남아서 자신들의 서식지를 보존하고자 그들과 비슷한 정치모리배들을 몇몇 재생산 해내고 있으나 그것도 절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낙관한다. 시대는 점점 맑은 정치인을 찾게 될 것이다.

▲ 한미FTA타결 직후인 2일 오후 국회에서 단식중이던 천정배 민생정치모임 의원의 단식천막에 정성호, 이계안, 유선호 의원이 찾아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맑은' 천정배... 지금까지 그의 정치여정은 성공적이었다

그렇다! 그이는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닮았다. 나의 생각은 여기에서 다시 고교시절에 조우했던 천정배 그이가 그렸던 목탄 데생 그림으로 되돌아간다.미술실 벽면에 맨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에 붙여진 그의 그림을 다시 기억했다. 다른 석고상들이 모두 고유한 이름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데 반해서 그 그림의 소재가 되었던 석고 마스크상은 대체 어떤 인물인지 아무도 잘 모른다.

대부분의 석고상들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주인공들이나 혹은 그 시대의 실제 인물들의 초상조각이었는데 이를테면 아리아스, 비너스, 카라카라, 쥬리앙, 아폴로, 헤르메스 등등이다. 그래서 그들 석고상들은 모두 하나같이 극적이며 과장된 동작이나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미술실이든 벽면 중앙에 높이 걸려 있는 그 마스크상은 표표한 얼굴로 정면을 고요히 응시하고 있다.

마치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상황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림에 입문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그리게 되는 대상이 바로 이 마스크 석고상인 이유는 그것이 그림 그리는 첫 기본 기법이나 기능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림 그리는 일에 관한 철학의 기본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점을 훨씬 나이든 후에 알게 되었다.

인터뷰기사에서 보았던 단식 20일째를 맞고 있는 초췌하고 덥수룩한 그이의 얼굴이 누군가를 똑 닮았다는 생각에 그의 배고픔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를 닮은 사람을 기억 속에서 찾는 일이 나에겐 더 중요해 졌다. 바로 40여 년 전 그의 학창시절에 그이가 그렸던 그 마스크 상을 닮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그렇다. 바로 그 마스크 석고상이었다. 극적인 과장된 동작이나 표정이 없는 지극히 단순한 마스크상, 자신 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눈을 소유한 그 마스크 상! 나는 비로소 그가 닮아 있는 사람을 우리들의 오래된 기억 속에서 찾고야 말았다.

나는 천정배 그이가 국가의 최고 권부에 올라야 꼭 성공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급사기꾼들의 집합처인 한국 현대 정치판에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정치인'으로서 족적만 뚜렷하게 남겨준다면 그의 정치인생은 성공하리라고 믿는다.

그이가 우울하고 남루한 우리시대의 여러 난제들과 부대껴야 할 정치인의 기본 덕목과 철학이 무엇인지 몸으로 실천해 보여주는 그런 모습을 계속 유지해 준다면, 천박한 쓰레기통 같은 우리 한국의 정치도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더불어 우리들이 모두 함께 서로 부축하며 걸어왔던 저 민주화 운동의 험난한 시기에 마음속 깊이 새겨 넣었던 그 진실이 가르쳐 준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면 어느 것 하나 실패 할 일이 없다고 본다.

이제부터 그이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가깝게는 한미FTA 협상타결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청소하는 일, 그리고 올바른 정치적 행보 보다는 대권 재창출에 눈이 어두워 어떤 협잡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여권의 이러저러한 행각들을 정리하는 일, 유신의 철권정치가 남긴 피 울음이 아직까지도 귓속을 맴돌고 있는데도 뻔뻔하게 대권을 구걸하고 있는 독재자의 딸, 한반도의 목줄기에서 똥구멍까지 생살을 도려내고 파헤쳐 운하를 만들어 온 국민을 백만장자로 등극시켜주겠다고 장담하는 개발동맹의 아들까지….

아! 결국 그이가 나서서 뒤처리하고 청소해야 할 일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이제 자신의 생명과 금쪽같은 시간을 베어 먹는 단식을 거두고 정치적 현실일 수밖에 없는 저 더러운 협잡과 부패가 횡횡하는 정치의 저잣거리로 그의 발길을 옮겨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홍성담 기자는 민중미술가입니다. 지난 89년 이른바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사건'으로 구속(국가보안법 위반)됐으나 이후 대법원은 간첩죄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1990년 국제앰네스티는 그를 '올해의 양심수 3인'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태그:#한미FTA, #천정배, #단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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