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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의 관련 보도
ⓒ 중앙일보
"신문 봤어? 형이 응모했던 충남도지사 정책특보 기사 나왔던데!"


그렇지 않아도 답답하던 가슴에 불을 지르는 후배의 전화였다. 7명 모집에 8명 응모했는데 선발된 7명은 모두 사전에 내정된 사람들이고, 한명만 멋모르고 낸 사람인데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이다. 멍청하게도 어떤 판인지 모르고 끼어들어 망신을 자초했다는 말이다.

정말 얼굴이 화끈거리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생을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자괴감에 낭패감, 굴욕감 등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지역신문에 조그맣게 난 충남도지사 정책특보 모집에 관한 기사를 본 것이 사단의 시작이었다. 간단하게나마 접한 내용으로는 명퇴 후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는 나에게 흥미가 확 당기는 기사였다.

부랴부랴 충남도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확인결과 '지방 비전임계약직 공무원 채용시험시행계획 공고' 라는 공고가 떠 있었다. 주요 직무내용은 "도지사와 실국장의 주요정책수립, 결정 및 집행에 관한 사항 보좌" 이며 모집분야는 농업, 교육, 안전, 정무, 국제교류, 여성, 대외협력 등 7개 분야였다.

채용된 특보는 이 지사의 고교동창 또는 선거공신

자유로운 시간활용을 원하는 나로서는 비전임이기 때문에 상시로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연봉은 많지 않지만 직급이 높아 명함 들고 왔다 갔다 하기에 제법 폼 날 것 같았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충남에 나 말고 또 있겠나하는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에 빠져 버렸다. 사실 과대망상증은 나의 불치병이다.

담당공무원에게 전화하여 자격기준을 확인하고 혹시나 해서 충남도청에 발이 넓다는 후배에게 이미 내정된 사항인가 알아보도록 했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억울한 것이 왜 뻔해 보이는 내정사실을 아닐 것이라 속단했을까 하는 것이다.

서류를 내고 면접까지 진행되는 동안에 여러 번 의아한 점이 있었으나 담당공무원은 전혀 내색도 없이 모든 절차를 정석대로 이끌어나갔다. 심지어 제출서류에 경력증명서가 미비하다며 제출하라고 하여 부랴부랴 추가하기도 했다. 나는 의심을 거두고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여 시험에 응했다.

그리고 결과 발표를 보고도 크게 상심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경쟁자가 있으면 누군가는 떨어지게 되는데 그게 바로 나라는 것이 뭐 대수냐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와 <중앙일보>(4월 11일 '충남지사 유급 특보 7명 채용')등의 보도내용을 보니 이완구 지사의 고교동창인 교육특보를 비롯하여 7명 모두가 선거공신이거나 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미리 내정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냥 임명하지 왜 공개채용 공고를 내었는가 하는 억하심정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절차가 필요했다면 멋모르고 응시한 나에게 넌지시 귀띔이라도 해 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원망이 앞섰다.

수없이 많은 도전과 실패를 경험했지만 억울하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노력했고, 따라서 나는 실패에 대하여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건 달랐다. 경력이 부족하고 실력이 없어서 떨어졌다면 억울할 것도 없는데 그게 아니라 우롱 당했다는 기분, 정말 분하고 또한 창피했다. 우울한 하루를 보내며 수없이 자문자답했다.

이 억울함을 어떻게 풀지?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이 일에 쏟은 정성과 시간 그리고, 경제적 손실 그리고 더욱 큰 것은 나의 상처받은 자존심, 억울함, 수치심을 어떻게 해야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항의를 할까, 아니면 소송을 걸어?

그러나 결국 나는 이렇게 스스로를 자학하는 길을 택한다. 남들은 다 알고 아무도 응모하지 않는 자리에 홀로 끼어든 나, 나는 틀림없는 바보다.

태그:#도청, #내정, #정책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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