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서울대 본고사 부활 기도는 매번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았다. 2005년 참교육학부모회, 함께하는시민모임, 전교조 회원들이 2005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학생회관앞에서 2008년 입시에서 고교등급제와 본고사를 부활하려고 한다며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가 정부의 '3불정책'을 암적 존재로 비유하며 강도 높게 비판한데 이어 사립대 총장들도 3불정책 폐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9월 출간을 목표로 교육정책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어 가능하면 침묵하려 했지만 본말이 전도된 주장에 국민들이 속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어 논쟁에 끼어드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교육지옥이라는 사실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교육을 출세의 수단으로 삼는 학벌사회의 사회구조적, 문화적 뿌리에 있다. 이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므로 전 국민이 스스로 의식개혁을 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입시정책이 갈팡질팡하는 가장 큰 책임은 교육부가 아니라 교육부의 정책을 우회하기 위해 입시제도를 수시로 변경한 서울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문제의 악으로 지목돼온 3불정책 중 기여입학제 부분은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한 부분이니 논의에서 생략하고 비교내신제와 본고사의 금지에 대해서만 따져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대학경쟁력이 부실한 가장 큰 이유는 입시로 진을 뺀 학생들이 대학에만 들어가면 공부를 하지 않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으니, 혹은 해도 취업공부만 하고 있으니, 교수들이 연구를 하지 않아도 불평할 사람이 없다. 과거에는 대학에서 연구를 잘 하는 교수를 선발하기보다는 인간적으로 편하고 부리기 쉬운 교수들을 선발했던 관행이 대학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주범이었다고 본다. 물론 요즘은 분위기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기에 한국 대학의 경쟁력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공부를 안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치열한 대학입시 때문이다. "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이 암시하듯 우리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입시지옥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학이 좋은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을 몰라 시험성적으로만 학생을 선발해서 벌어진 진풍경이다.

참여정부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본고사를 금지하고 내신을 강화했으며, 특목고 입시과열을 막기 위해 비교내신제를 인정치 않는다. 방향은 잘 잡았다고 본다. 문제는 내신과 수능만으로는 변별력이 없다며 수시로 본고사를 부활하려는 서울대가 교육부에 맞서면서 발생하고 있다. 다른 명문대도 서울대를 따라가다가 죽음의 트라이앵글이 만들어졌다. 내년에는 몇몇 사립대가 수능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하는데 이 또한 공교육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로 결코 칭찬받을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시정책 파행의 책임을 교육부에만 떠넘기는 것은 모든 문제의 책임을 참여정부에 뒤집어 씌우려는 수구언론의 정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성과 양심의 상징인 대학교수들마저 수구언론의 준동에 가세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입시제도 공공선 추구, 성적으로만 학생 뽑지 않아

부정부패가 심하고 교사를 불신했던 과거에는 어려운 본고사를 한 번 치러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형평성과 공정성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입시를 위한 사교육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게다가 입시를 위한 주입식 교육으로는 21세기 지식경제사회를 대비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교육부는 미국식 입시제도를 도입했고 그 방향은 대체로 맞는다고 본다. 문제는 미국제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입시의 철학을 빼놓고 수입한 데에서 비롯된다.

미국입시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성적으로만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교육부와 충돌하는 이유도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부와 최우수학생을 독점하려는 서울대의 욕심이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실력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의 욕구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학의 책임은 공부 잘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전인격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미국 대학이 대학입시에서 추구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생의 성적에는 부모의 재산과 학력이 반영돼 있다. 그 증거는 이미 많은 언론에 보도되었으므로 생략하겠다. 따라서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서울대의 임무에도 어긋나지만, 교육이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하는 기제로 악용되는 위험성마저 있다.

미국대학은 사립대와 주립대가 학생을 선발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다양성의 확보에 가장 큰 목표를 둔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과는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학생들로부터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는 신념 하에 가능하면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학교에서 다양한 성별과 인종의 학생을 선발한다.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명문사립고 출신은 같은 성적이라면 공립학교 출신 학생에 비해 명문대 입학이 더 어렵다.

과학고 출신 학생이라고, 시험 성적이 좋다고, 명문대에 무더기로 합격하는 일은 결코 없다. 대부분의 사립대가 묵시적으로 지역할당, 학교할당, 인종할당, 성별할당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헌 소지 때문에 내놓고 하지는 못하지만 공립, 사립을 가리지 않고 대체적인 할당을 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제도가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61년 케네디대통령이 행정명령 10925를 발동하여 대학입학과 고용에서 할당제나 가산점 부여를 통해 소수민족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우대하는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했기 때문이다.

주립대는 그 지역의 주민들에게 50% 할당을 하는데 그것도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과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 각각 명시적인 할당을 하기도 한다. 부모의 학력이 낮거나, 이민자이거나,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가산점을 주기 때문에 커트라인 성적 자체가 매우 낮아진다. 성적에 의한 장학금은 극소수에게만 제공하고 대부분 필요에 따라 장학금을 준다.

미국에서는 다양성을 강화하는 입시제도와 필요에 따른 장학제도 덕분에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활짝 열려있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입시제도가 여전히 부유층 자제에게 유리하다며 언론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미국 대학들은 당장의 성적보다는 학생의 잠재력을 보고 선발하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이것이 부모의 능력과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보다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재의 우리 입시제도가 문제가 많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해결책으로 3불정책을 해제하자는 주장은 쥐를 잡기 위해 환경을 정화하고 쥐덫을 놓아야 하는데, 쥐가 있는 곳에 고양이가 나타나니 고양이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 지난해 2월 24일 열린'서울대학교 제60회 학위수여식'. 학사 3,139명, 석사 1,725명, 박사 583명 등 총 5,583명에게 학위를 수여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대학 들어가기 위한 공부 대신 대학에서 공부하는 제도 필요

비정상적인 입시제도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성적제일주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성적이 아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어떤 봉사를 했는지, 공부를 해서 사회에 어떤 봉사를 할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학생의 인성을 다각도로 검증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그래야 학생들이 실컷 놀고, 읽고, 봉사하고, 운동하면서 행복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수 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인 개혁안은 앞으로 출간될 책에서 밝히도록 하겠다.

한국 대학에서는 이미 학문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다. 수구언론이 마녀사냥을 통해 대학교수의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적은 있어도 민주정권 이후 학문의 자율성이 침해된 적은 없다. 하지만 대학의 이기주의에 기초한 학생선발의 자율권이 보장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몇몇 국가에서 입시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이유는 그들 대학이 이미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기에 정부가 개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대인 서울대는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는 것보다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대학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전 국민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지역균형선발을 겨우 30% 하면서, 그것도 수능 커트라인을 만들어 수혜자가 수도권에 집중되는 허울 좋은 제도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가장 우수한 학생을 독점해서 최고의 대학이 되겠다는 욕심은 서울대의 집단이기주의일 뿐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가르쳐서 최고로 만들기보다는, 이미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학생을 데려가겠다는 것은 땅 집고 헤엄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학은 하나의 고등교육기관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사회나 대학은 그 사회 지성의 수준을 대표하며 소수자를 보호하고 국가의 미래를 앞서 선도하는 진보적인 집단이다. 사회적 책임에 무감각하고 집단이기주의와 사익추구에 병들어 있는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 될 자격이 없다. 이런 대학에게 어떻게 학생선발권을 주겠는가. 자율권을 부여받으면 어떻게 입시제도를 개혁할 것인지 대학이 먼저 청사진을 밝혀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afe.naver.com/chomagi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서울대, #3불정책, #입시제도, #사립대 총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