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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가희
오늘도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길을 떠나는 김병수(가명, 40)씨. 갯바람에 붉어진 얼굴에는 땀방울이 소금기처럼 하얗게 일었다. 김씨가 강화도 대명포구 일대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지도 7년째. 주름진 이마와 손잔등은 김씨의 바다 인생을 그대로 말해준다.

김씨는 한때 서울에서 잘 나가던 인쇄업자였다. 그러나 IMF가 터지면서 부도 한파를 맞았다. 이후 천안, 마산 등 전국을 전전하며 무허가 상업 등을 해봤지만 여의치 않았다.

"연달아 실패의 쓴잔을 마시다보니 자신감도 없어지고 앞길이 깜깜하더군요. 식구들을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하나, 이제 뭘 해야 하나. 무엇 하나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요. 왜 내게만 이런 시련이 닥치는 것인지, 속으로 많이 울고 한탄했습니다."

@BRI@자괴감에 빠진 김씨는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당시 김씨에겐 이렇다 할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IMF 한파 때문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긴 하늘의 별 따기였죠. 여기저기 회사를 기웃거리는 일도, 이리저리 떠도는 일도 통 자신이 없었어요. 더구나 인쇄업이 디지털 바람에 밀리면서, 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쥐구멍마저 없었어요. 그러니 매일 술로 지낼 수밖에요. 다른 뭐가 있겠어요?

지금 생각하면 많이 후회해요. 막노동이라도 해서 식구들이 끼니 걱정은 하지 않게 해야 했는데…. 내가 힘든 만큼 식구들은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땐 알지 못했어요."

그렇게 술로 세월을 보낸 지 6개월. 김씨를 바짝 정신 차리게 만든 계기가 찾아왔다. "TV를 보는데 고기잡이배가 나오는 겁니다. 갑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아주 생동감 있게 보였어요. 힘든 그물질을 한 후에 갓 잡은 생선의 회를 떠서 초고추장에 듬뿍 찍어 소주 한 잔이랑 같이 먹는 모습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바로 저거야' 하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무작정 그 바다, 그 포구로 찾아갔지요. 그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 안가희
'절망의 술독' 벗어나 바다에서 다시 태어나다

김씨는 그렇게 서울에서 1시간 반 거리인 강화도 대명포구와 인연을 맺었다. 대명포구는, 규모는 작지만 어시장과 어판장에 갓 잡아온 꽃게·대하·주꾸미·숭어를 비롯해 새우젓·멸치젓 등이 넘쳐나는 활기찬 곳이다. 김씨에게 이곳은 제2의 고향인 셈이다.

바다에 도착할 무렵 어선에서는 주꾸미와 '삼식이'('쏨뱅이'를 경기도 지역에서 부르는 말)가 마구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항구에서 들리는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절망 가득한 제 가슴에 희망의 나팔소리처럼 들려왔어요. 참 힘들 텐데도 어부들이 웃으면서 서로 생선을 내리고 닻줄을 동여매며 한마음으로 일하는 모습이 눈물 나게 감동적이었어요."

김씨는 그런 일하는 행복에 취해 곧장 다음날 선주의 면접을 통과하고 배를 탔다. 오랜만에 하는 일인데다 육체적 활동량이 많아, 허리에 통증이 올 정도로 고됐다. 그러나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속옷까지 젖어드는 걸 느끼며 김씨는 살아있다는 행복감에 젖어들 수 있었다. 머릿속에 가득한 패배주의의 망령이 사라졌다. 밤이면 허리와 허벅지에 파스를 붙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인생이 거듭나는 훈장처럼 자랑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역시 사람은 땀 흘려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단한데도 마음은 부자가 된 듯 행복했어요. 동료들과 담배를 피우면서 오랜만에 웃어도 봤어요. 식구들과 통화하면서 큰 보물을 찾은 듯이 껄껄대며 웃었어요.

숱하게 마주친 양식 어업이 아니라 드넓은 바다에서 직접 잡은 활어를 파는 일이었기에 참으로 당당했어요. 양식 어류보다 값도 더 나가고 더 싱싱한 고기를 잡아 판다는 생각에 포구에 당도할 때마다 자랑스러웠죠. 상인들이 몰려들어 서로 팔라고 아우성칠 때마다 정말 행복했어요. TV에서 본 그 풍경의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생각에 며칠 동안 잠을 설치기도 했어요. TV에서 본 것처럼 갑판에서 직접 잡은 고기 안주에 한 잔 하는데, 고요한 바다와 달리 마음은 왜 그리 요동치던지. 바다에서 저는 다시 태어나고 있었어요."


ⓒ 안가희
소금기보다 진한 땀방울에 젖어, 바다에서 파도치며...

김씨는 그렇게 매일 새벽 6시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 7년을 하루 같이 바다와 함께했다. 요즘 같은 풍어기엔 며칠 동안 배 위에서 생활하기 일쑤다. 정해놓고 쉬는 날이 없는 김씨는 포구 근처에서 숙식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지만 가족들도 모두 기쁨에 차 있다. 근해 어업이다 보니, 김씨는 비가 오거나 웬만한 바람에도 바다에 나간다. 가족을 볼 시간이 그만큼 사라지고 있다.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배에서 일하는 사람이 4명인데 제가 빠지면 조업 팀을 이루지 못해요. 한 사람이 빠진 만큼 다른 사람이 더 고생하게 되니, 심하게 아프지 않으면 쉴 수가 없어요. 그래도 서울이 멀지 않아, 기상 조건이 매우 안 좋을 경우엔 직행버스 타고 가서 가끔 가족들과 만나기도 해요. 바다에 나가면 바다 때문에 행복하고, 서울로 가면 가족 봐서 행복하고. 그래서 비가 오나 바람이 불어도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김씨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그 행복이 이따금 밀려오는 가족의 그리움을 파도처럼 삼키곤 한단다. 1월 1일에도 바다에 나가 일한 김씨는 바다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일이 무엇인지 실감했다. 일출에 푸른 파도가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궈지는 순간, 그 햇살을 머금고 살아 파닥이는 고기들이 그물에 걸려 올라올 때 바로 그 느낌. 그건 직접 체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한다.

이제 이 바다에서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았다. 일도 익숙해지고 무엇보다 즐겁다고 한다. 솔직히 해질 무렵 절망의 그림자가 가슴으로 다가서기도 하지만, 중국에서 코리안 드림을 위해 이 낯선 바다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뭐 나는 복 받은 거지. 푸른 바다를 보며 일할 수 있는 행복을 넘치게 받았지. 이제 나도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이런 배 한 척 마련해 이 바다를 마음껏 항해하는 것, 그게 소원이라면 소원이야."

지쳐있던 그 시절, "바로 저 바다야…, 어부가 되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파도에 절망을 묻고 다시 파도처럼 일어나 희망의 바다를 항해하는 김병수씨. 이제 김씨는 절망을 안겼던 서울이 아니라, 사람을 반기는 희망의 바다에서 온 가족과 함께 푸르게 살고 싶단다. 소금기보다 더 진한 희망의 땀방울로 자신을 적시고 이 바다에서 파도치며 살고 싶단다.

ⓒ 안가희

태그:#대명포구, #바다, #어부, #IMF,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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