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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귀에 걸렸네."

'섹시 레스토랑', '원조 섹시바'로 알려진 패미리 레스토랑 '후터스(Hooters)' 취재를 앞두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나보다. 남자 선배들은 무척 부러운 눈빛이다. 여자 선배들? 글쎄, 눈 풀린 후배 녀석이 취재를 잘 할 수 있을까 염려하는 눈치다.

@BRI@후터스. 원래 올빼미를 뜻하지만 속어로는 '여성의 가슴'이란 속뜻을 지녔다고 한다. '패밀리 레스토랑'을 내세웠지만 홈페이지(www.hooterskorea.co.kr)를 열어보면 먼저 눈에 띄는 건 민소매 티셔츠에 핫팬츠를 입은 여성이다.

그 후터스가 선정성 논란 끝에 지난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역 인근에 '한국 1호점'을 열었다. 후터스는 198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처음 문을 연 뒤, 현재 전세계 500여개의 지점을 둔 글로벌 레스토랑이다. '후터스 치킨 윙' 같은 대표적인 요리가 있지만, '야시시'한 여종업원이 서빙을 했던 게 유명세를 탄 큰 이유였다.

남자 선배와 여자친구를 끌고 후터스를 찾았다. 언론에선 '선정적이다', 여성 단체에선 '성의 상품화'다 논란이 많은데 현장에서 직접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동행 취재를 할 선배는 그렇다치고 여자친구와 함께 간 이유는? 과연 이곳이 애인과 함께 드나들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인지 몸소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밖에서 훤히 볼 수 있는 구조 vs 도발적인 후터스 걸

▲ 18일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레스토랑 후터스 한국1호점 앞에 몰려있는 사람들.
ⓒ 오마이뉴스 안홍기

▲ 18일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레스토랑 후터스 한국1호점에서 종업원 '후터스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어둡고 으슥한 곳일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매장은 큰 도로변에 버젓이 들어섰다. 계단은 건물 모퉁이에 위치했는데 매장 외부는 온통 유리창으로 돼 있었다. 덕분(?)에 밖에서도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매장엔 밝은 조명 아래 130여 좌석이 들어찼다. 바닥은 노락색 원목재질, 천장은 환기구와 배관 등을 노출시켜 탁 트인 느낌이었다. 벽걸이TV에는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가 중계되고 있었다. 후터스 걸들의 박수, 외침과 손님들의 대화 소리로 매장은 시끌벅적했다.

"하이! 웰컴 투 후터스~"(Hi, welcome to Hooters!)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유니폼을 차려입은 후터스 걸(여종업원) 10여명이 달려들었다. 목소리를 높여 손님 한 명 한 명을 맞이하는 일종의 고객 서비스였다.

후터스 걸들은 홈페이지에 본 대로 '도발적'이었다. 가슴 파인 하얀 민소매 티셔츠(탱크톱)에 주황색 초미니 팬츠를 입었다. 티셔츠 가슴 한쪽엔 올빼미의 양 눈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이들은 복부 하반부 양다리 사이의 주머니에서 메뉴와 주문서를 꺼냈다. 보통 식당에선 보기 힘든 장면이다. 음식을 서빙하다 흥겨운 음악이 나오면 20여명이 일제히 춤을 추기도 했다. 후터스는 'Delightfully Tacky Yet Unrefined(매혹적으로 도발적인, 하지만 때묻지 않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손님은 대부분이 20~30대 남성. 외국인도 많았다. 간혹가다 40대 이상의 중년 남성과 여성들도 보였다. 여성들은 주로 남성들과 함께였다. '애'들은 보기 힘들었다. 나이제한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가족단위로 방문한 팀을 찾긴 어려웠다.

"음험한 곳보단 낫다" vs "패밀리 레스토랑은 아닌 듯"

▲ 18일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레스토랑 후터스 한국1호점에서 종업원 '후터스걸'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선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직접 와서 보라해라. 수영장도 가는데 뭘." - 김 아무개씨(남·40대후반)

"나 같은 애들이 가기엔 부적절해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것 같다." - 김승호(남·15)


후터스의 국내 진출 소식이 전해지면서 선정성 문제가 가장 크게 일었다. 후터스를 직접 찾은 시민들도 '선정적이다, 아니다'를 놓고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야] 자신을 '김 이사님'으로 소개한 김 아무개(남·40대후반)씨는 "전혀 선정적이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렇게 노출이 개방적이고 양성화된 술집이 한국에선 드물지 않나, 음험한 곳보단 낫지 않나"고 반문했다.

옆에 있던 '이 부장님'(남·40대중반)도 "선정성 논란 때문에 대단한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건강한 젊은이들이 많아 덩달아 젊어지는 기분"이라며 김씨를 거들었다. '한 부장님'(남·50대초반)도 "도심 곳곳의 음침한 '섹시바'보단 훨씬 건전하다"며 동조했다. '가족들과 함께 올 수 있겠냐'는 질문엔 이구동성으로 "당연히"라고 외쳤다.

열 대여섯의 후터스 걸들에 둘러쌓여 '황홀한' 생일축하 잔치를 받은 송아무개(남·30)씨도 선정성 논란에 대해 "인식을 조금 바꾸면 문제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함께 자리한 송아무개(남·31)씨도 "애인과 함께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한미군으로 복무하고 있는 웨인(남·29)씨는 "한국 문화에서 선정성 논란이 이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맛있는 음식과 흥겨운 분위기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나 같은 미국 젊은이는 '선정적'이란 말을 잘 체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김아무개(남·25)씨도 이들처럼 후터스가 '선정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이런 분위기의 여타 음식점에서 커플들 다투는 장면 많이 목격했다, 여기서도 그런 불상사가 종종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 성상품화 논란 속에 18일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레스토랑 후터스 한국1호점에서 <오마이뉴스> 기자가 음식을 주문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이건 좀] 이아무개(여·34)씨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는 "노출이 심하진 않다"면서도 "아직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술 한잔 하러 오기엔 다소 불편한 감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학생 김승호씨는 "낯 뜨겁고, 폐쇄적인 곳은 어떨까 궁금증이 인다"인다고 털어놨다.

선정적이라는데 손을 들어 주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박주명(남·24)씨는 "우리나라 기준에선 '성의 상품화' 논란이 나올 만하다"고 밝혔다. 또 "애인과 오기도 힘들 것 같다, 자칫 '변태' 취급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면서 "같은 여자 입장에선 노출이 심한 여자를 보기가 껄끄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어머니와 함께 올수 있을까"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밝고 탁 트인 곳에 위치해 노출에 거부감이 들기보단 당당함이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한 테이블의 박아무개(남·25)씨도 "함께 온 여자친구가 후터스 걸과 본인의 외모를 비교한다면 기분이 상할 수도 있겠다"고 꼬집었다. 결국 후터스 걸 중엔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는 없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박씨는 "한국에서 20~30대 남자들이 술 외에 즐길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지적한 뒤 "이들에게 새로운 문화공간을 마련해 준 듯하다"고 평가했다. 또 "여성 고객들이 주로 가는 기존 패밀리 레스토랑과는 달리 남자들의 취향에 방점을 뒀다"면서 "남자들끼리도 자연스레 올 수 있는 곳"이라고 장점을 말했다.

후터스가 '패밀리 레스토랑'...?

▲ 18일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레스토랑 후터스 한국1호점에서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 종업원 '후터스걸'들이 몰려와 노래를 부르는 등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사실 '야한' 옷차림을 한 여종업원이 있는 곳은 후터스만이 아니다.

여종업원들이 탱크톱과 미니스커트 옷차림을 한 BTB(Better Than Beer), 모델 출신의 종업원을 채용하는 Zane Girls, 독특한 의상(교복, 군복)이 눈에 띄는 Victoria's Secrets Bar 등 '섹시바'는 이미 여러 곳에서 운영중이다.

후터스가 유독 선정성 논란을 일으킨 건 '패밀리 레스토랑'임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후터스 측에 따르면, 패밀리 레스토랑에 '스포츠 바'를 접목시켰다. 홍장미 마케팅 과장은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 후터스가 상륙하기 전에 먼저 퇴폐적이고 음성적인 문화가 먼저 생겼고, 그걸 사람들이 먼저 접했기 때문에 오해가 생겼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후터스를 '패밀리 레스토랑'이라고 부르는데 망설인다. 상표권 침해와 관련, 10년 동안 모두 15차례의 법정소송을 벌인 끝에 한국시장에 진출했다는 후터스. 한국에 상륙하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 이상으로 '선정성' 논란에서도 자유롭지만은 않을 듯하다.

"사방으로 시선 굴리는 남자친구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
동행 취재한 기자의 여자친구의 에필로그

▲ 18일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레스토랑 후터스 한국1호점에서 생일을 맞은 손님에게 종업원 '후터스걸'들이 몰려와 노래를 부르는 등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분명 그곳은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편하게 수다 떨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면 남자들에게는 안락한 곳이냐고? 대답은 '오~ 예스!'다.

끌밋한 그녀들이 테이블 사이사이로 춤추 듯 걸어다니는 풍경은 자못 볼 만했다. 정말 여자인 내가 봐도 부러웠다.

'빈익빈 부익부'의 자괴감에 나 자신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옆에 앉아 눈에 오로라를 내뿜으며 사방으로 시선을 굴리는 남자 친구를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

눈부시게 다가오는 한 여종업원, 무엇을 시키겠냐고 물었다. 메뉴판을 뒤적이며 제일 먼저 꺼내고 싶었던 말은 "여기 근육질의 남자 종업원은 없나요"였다. 어쩌면 남자친구의 시선을 빼앗기고 말아 철없이 몽니 부리는 여인의 속 타는 절규라고나 할까.

시나브로 나도 그녀들의 옷차림과 미소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이제는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것도 '미국식'으로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 어느 곳보다도 미국 문화가 에스프레소만큼이나 진하게 배어 나왔다.

팝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한국인에게 영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들. 우리에게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소위 '양키' 문화의 침투가 분명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후터스 걸들이 구성진 전통 가락에 맞춰 부채춤을 추길 바라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이곳에서도 무자비한 상업 논리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미국 모습이 달갑지 않았을 뿐이다.

압구정 한복판에서 남자친구의 사랑스러운 눈길도 도둑맞고, 죽는 날까지 비빌 고국의 모습도 잃어버렸다. 그날 저녁, 그야말로 나는 "빗방울처럼 혼자였다".

태그:#후터스, #후터스걸, #섹시 레스토랑, #선정적, #성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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