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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 5일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7월 금창태 사장은 삼성그룹 관련 기사를 삭제하고, 이에 항의하는 이윤삼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했고, 그 뒤 6개월 동안 사측과 기자들은 공방을 벌여왔다. 최근에는 기자들이 배제된 채 만들어진 '짝퉁' <시사저널>이 만들어지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각계 인사들의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정현백 기자는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이자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로, <시사저널> 900호에 인터뷰가 실린 뒤 해명글을 보냈다. <편집자주>
▲ '시사저널 불법 제작 중단 촉구 기자회견'이 12일 오전 서울 용산 서울문화사앞에서 시사저널 노조원과 언론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BRI@15일 오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무척 당황했다. 기자 파업이 진행되고 있고, '짝퉁언론'이 제작되는 <시사저널> 사태를 알고 있는지, 그리고 왜 <시사저널> 인터뷰에 응했는지 묻는 전화였다.

지난 4일 나는 한 지인으로부터 <시사저널>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사실 요즘 한국사회에서의 지식인 역할에 낭패감을 느끼고 있었고, 또 이 난국에 별다른 의미있는 역할도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있던 터라,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내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로이 <시사저널>에 일하게 된 지인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또한 <시사저널>이 공정한 언론이라는 인상도 한 몫 했다. 물론 나는 <시사저널>의 최근 사태에 대한 사전설명은 듣지 못했다.

그리고, 한 원로 언론인이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로 방문하여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을 때, 나는 상당히 당황했다.

보통은 사전 질의내용이 전달되어 미리 인터뷰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사전에 통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이번 질문들은 상당한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의도가 있는 유도성 질문이었다. 현 집권 세력에 대한 비판, 한국사회의 개혁세력에 대한 비판을 파헤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루었다.

정치적 의도 깔린 유도질문, 그 때 중단했어야 했는데

당시 인터뷰를 중단하고 싶었지만, 굳이 연구실까지 방문한 원로 언론인에 대한 예의 때문에 인터뷰를 계속하였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가 돌아간 뒤, 나는 곧바로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작성될 기사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지인은 원고가 완성되면 인쇄 전에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나는 미리 사전에 확인하지 못한 채 내 인터뷰 내용이 나간 <시사저널> 제900호를 받았다.

▲ 9일 오전 서울 중구 충정로 시사저널 편집국에서 노조 집행부가 회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우선 '대통령이 현대사 문제를 입에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기사 제목부터 당혹스러웠다. 결국 대담자는 나의 인터뷰를 대통령 비판으로 즉시 가져간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최근 행보에 대해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정치권에 대한 신랄한 냉소와 체통을 잃은 선정적인 비난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이런 제목에 낭패감을 느꼈다.

내 의도는 "한 민족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전쟁을 겪었고 그로 인해 온갖 학살과 테러가 난무했던 한국현대사를 역사교육 현장에서 공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역사해석이 어느 한쪽에 의해서도 쉽게 정치화되어서는 안 되고 차라리 전문역사가의 연구와 토론을 거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여론주도층이 현대사 해석문제로 이렇게 대립하고 있는 시기에는 더욱 신중한 해결방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또한 문맥상으로 판단한다면, 인터뷰 기사에서 내 발언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의 민주화나 경제의 민주화가 혼란스레 많이 실현된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나의 정확한 의도는 이와 다르다. 정치의 민주화가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이나 '절차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이어지지 못한데 대한 애석함을 표현하는 의미로 발언하였음을 밝히고 싶다.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게 실현되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말 알리지 않은 인터뷰 요청, 진의 왜곡한 기사 작성

방학 동안 연구에 전념할 계획이었는데 이런 일로 격앙된 하루를 보내면서, 이 땅에 사는 한 시민이자 지식인으로서 나는 깊은 피로를 느낀다.

언론이 최소한의 절차와 양심을 지키지 않는 사회, 언론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개인의 주장이 왜곡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명숙씨의 명칭을 빌리자면, '짝퉁 <시사저널>'은 최소한 나에게 전말을 알리고 인터뷰에 응했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마지막 원고를 내게 보였어야 하지 않는가?

여성단체의 대표로서 그리고 우리 사회를 염려하는 한 교수로서, 편집권 독립을 지키다가 고난을 겪고 있는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에게 누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들이 다시 본연의 사명에 복귀하고, 그리고 이 땅에 정론의 상식이 정착하는 그 날을 꿈꾸며, 이 글을 마친다.

태그:#시사저널, #짝퉁 시사저널, #인터뷰, #편집권, #금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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