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강남 모 학원의 국제중학교 입시 설명회 팸플릿
ⓒ 박정훈

국제중학교, 미국식 사립학교이자 영어 귀족 학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18일 대원국제중학교와 영훈국제중학교 설립인가를 행정 예고했다. 명분은 국제화 시대를 대비할 인재의 조기 발굴 및 육성, 평준화 제도 보완, 교육수요자의 학교선택권 확대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대원국제중학교와 영훈국제중학교의 모델이 될 경기도 가평의 청심국제중고교(통일교 문선명 교주 이념으로 올해 개교)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국어와 국사, 한국문화 관련 교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과에서 미국 명문사립고에서 사용 중인 교과서를 가지고 영어로 수업을 진행…, 그 결과 한국이라는 나라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유학 가서 공부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와 효과를 지님."

한마디로 한국에 있는 미국 사립학교란 말이다.

"국제중 생기면 초등학생 보습학원만 부활할 것"

나는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설립 목적이 국제고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외국어고 학생들은 다른 어느 학교 학생보다 영어 학원을 열심히 다닌다.

외국어고 입학은 수단일 뿐, 진짜 목적은 명문대 입학이기 때문이다. 외고에서 불어반, 독어반, 중국어반, 일어반 학생들은 3학년 때 자기 전공 수업을 거의 듣지 않는다. 입시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느 외고에서나 공통된 현실이다.

과학고 학생들은 어떤가? 입시학원마다 과학고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탐구반'이 개설되어 있다. 과학 영재를 육성한다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학원에서 별도로 과학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또한 이런 학교를 가기 위해 모든 중학생 대상 보습학원마다 과학고 및 외국어고 특별반이 운영되면서 학원만 신나게 돈 벌고 있다.

280명을 뽑는 서울 지역의 과학고 2곳 때문에 모든 중학생 대상 학원마다 과학고반이 있듯이, 128명을 모집하는 국제중학교 2개가 설립되면 초등학교 보습학원마다 국제중학교반이 생겨날 것이다.

참고로 10월에 신입생을 모집하는 청심국제중 입시설명회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작년 입학경쟁률은 21:1에 이르렀으며, 입학생의 30%는 서울 강남 출신이었다. 또한, 수업료는 1년에 1천만원이나 된다.

국제중학교는 홈페이지에서 학교 스스로 고백하고 있듯이 극소수 부유층을 위한 미국식 사립 특권학교일 뿐이다. 이런 학교를 세워 초등학생들까지 국제중학교 입시경쟁 교육으로 몰고 가려 하는가?

"관료주의적 사교육 부흥책 중단하라"

▲ 16일간 단식하다 쓰러진 정진화 전교조 서울지부장.
ⓒ 박정훈
2004년 여름, 공정택 교육감이 취임한 후 서울의 교육은 엉망진창이다. 교육 관료들의 승진을 위해 교사들의 동의 없이 실효성 없고 사교육만 부흥시킬 정책이 마구 집행되고 있다.

초등학생들에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강요되고, 수준별 이동수업(사실상 우열반 수업)도 학교에 강제됐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일제고사를 없애도록 각 학교에 권고했던 전임 교육감 때의 정책이 공정택 교육감 취임 후 뒤집힌 결과다.

또한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육청은 문제지까지 만들어주면서 진단평가를 보라고 난리다. 본래 중학교 1학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단평가는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실시하던 것이었으나 공정택 교육감 취임 후 서울시교육청은 각 학교에 사실상 강권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은 중학교 반 편성고사 대비반에 들어가 겨울방학을 학원에서 보낸다. 덕분에 공정택 교육감 취임 이후 학습지 업체들의 주식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이에 서울지역 61개 노동 시민사회 단체들이 국제중학교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진화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지난 8일부터 단식농성을 보름 넘게 하다가 23일(단식 16일째) 결국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공정택 교육감은 대화는커녕 공청회 한 번 없이 군사작전을 펼치듯 국제중학교 설립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 교육 관료들마다 한 건씩 터뜨리는 사교육 부흥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공정택 교육감, 위험천만한 교육철학 바꿔야"

"학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무한 경쟁시켜야 한다. 고등학생들은 대학입시 때문에 하고 초등학교에서는 없었던 평가를 만드니까 열심히 한다. 중학교도 1학년 진단평가 결과를 활용해 늦게까지 남아서 공부를 가르쳐야 한다."(4월 25일 서울시 국·공립중학교 교장회 정기총회에서)

"똑똑한 1명이 100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다. 평균인을 길러내는 것은 의미 없다."(4월 26일 서울교육연수원 학교운영위원장 연수 특강에서)


둘 모두 공정택 교육감이 한 말이다. 이 두 부분에는 공정택 교육감의 위험천만한 교육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교육은 장사가 아니다. 학교는 기업이 아니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소질과 능력을 개발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 교육이다. 똑똑한 한 명을 위해 100만 명이 들러리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모두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공정택 교육감의 방안이 아이들의 학력을 높이기는커녕 사교육을 부흥하는 정책으로 끝날 것임은 과학고, 외국어고의 역사가 뚜렷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