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편지 12
- 나의 노래를 함께 나누어 준 벗들께 -

작사, 작곡, 노래 : 윤민석

            열 몇해 전 우린 꿈을 꿨지
            자주 민주 통일의 큰 꿈을
            죽어간 벗 가슴에 묻으며
            우리들은 꿈 따라 나섰지

            그 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우리들도 불혹이 되었네
            저마다의 길 헤쳐 오면서
            이런저런 사연들도 많아

            어떤 때는 실패도 하였고
            어떤 때는 실수도 했지만
            꿈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는
            모두가 소중한 삶인걸

            지난 날의 그 높던 꿈들이
            병이되어 아파하는 이여
            이리와서 술 한잔 받으소
            아직 우린 갈 길이 멀다네

            지난 날의 그 높던 꿈들이
            병이되어 아파하는 이여
            이리와서 나도 한잔 주소
            오늘만은 취해보고 싶네
혹시 화냥년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정조 없이 여러 남자들을 상대하는 여자’라는 뜻의 이 말은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적군에게 포로로 끌려갔다가 절개를 잃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 즉, '환향녀(還鄕女)'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 단어에는, 외세의 침략 앞에 힘이 없어 당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처지에 대한 이해는 없이 그저 당시 여성의 최고 도덕률이던 정조를 빼앗긴 사실만 남아 지금도 여성에게는 아주 험한 욕으로 쓰이곤 하는 말이 되었지요.

적에게 끌려가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기 위하여 했던 행위들이 어렵게 돌아온 고향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 되고 심지어 즐기지 않았느냐,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야 하지 않느냐라는 추궁을 받으며 고향에서조차 쫓겨나야 했던 그 여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요 며칠 사이, 개인적으로는 아주 싫어하는 말이지만 소위 386이라 통칭되는 우리 세대와 관련한 몇 가지의 소식을 접하면서 저는 문득 잠깐씩 환향녀의 심정이 되곤 합니다.

우리 세대가 겪어내어야 했던 그 폭압의 시대에 대해 요즘의 일이십대 친구들은 잘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고 또 이해를 강요해서도 안 되겠지만 굳이 조금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 봅니다.

우리 민족은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에게 칼을 든 다른 자가 미국과의 관계상 이제부터 빵만 먹으라고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이들은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언론에는 온통 빵 예찬뿐인 상황에서 몇 줄 기사라도 알릴 수 있는 길은 자신의 몸에 불을 놓거나 목숨을 내던지는 방법밖에는 없는.

심지어 북한에서 밥 먹기를 권장한다는 이유로 북한의 생각에 동조한다고 간첩으로 몰아 고문하고, 죽이던 그런 기막힌 세상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바로잡아보려고 발버둥 치던 이들의 처절한 모습이 지금의 시선으로만 본다면 오버의 극치이자 천박한 코미디로 보일지라도.

그렇게라도 싸울 수밖에 없었던 우리 세대의 모습이 386의 간판을 단 몇 몇 정치인들의 실수와 잘못으로 한꺼번에 매도당하고 그 날의 헌신과 사랑과 용기가 훗날의 부귀와 영화를 기약하기 위한 수단쯤으로 폄하되고 심지어 어떤 정치 드라마의 방영을 계기로 희대의 살인마 전두환의 팬클럽까지 생겨나는 일단의 세태를 지켜보는 일은 제가 겪었던 그 어떤 고문의 아픔보다도 견뎌내기가 힘이 듭니다.

아마도 저와 같은 시대를 함께 넘어온 많은 벗들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요.

1989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전두환, 노태우 일당조차도 두려워 할 정도로 이 땅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의 최선봉에서 싸우던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 대한 저의 자부심으로 ‘전대협진군가’를 만든 지도 벌써 16년의 세월이 흐르고 어느새 제 주위의 많은 벗들이 불혹(不惑)의 나이, 마흔 줄에 들어선 지금,

우리 세대의 투쟁의 기억을 간판삼지 않고 그 정신을 오롯이 지금의 시대정신에 맞게 자기의 자리에서 구현할 방도를 모색하면서 그 날처럼 우리 민족의 운명과 국민의 뜻을 하늘처럼 믿고 받들며 정의에 대한 헌신과 용기를 맨 앞자리에 놓는 일은 좋든 싫든 우리가 해야 할 덕목이고 숙제이며 업이 아닐는지요.

어쩌면 우리도 우리의 윗세대들처럼 역사의 흐름 속에 작은 소용돌이에 불과했다고 기록되고 욕을 먹더라도 저는 벗들과 함께 그 오욕의 시대를 넘어내었음이 너무도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하여, 비록 지금 서 있는 자리와 처지는 모두 다를지라도 그 날의 꿈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은 고통과 번민의 삶의 현장에서 부족하기 그지없던 시절에 제가 만든 노래들을 사랑해주고, 불러주고, 심지어 지금도 기억해주면서 남 몰래 외로움과 그리움을 소주 한 잔으로 견뎌내어야 했을 그리운 벗들께 존경과 자랑과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이 노래에 담아 헌정하고 싶습니다.

부디 부족한 노래이지만 기꺼이 받아주실 것을 감히 청해보면서 제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남주 시인의 시 한 편을 함께 옮겨봅니다.

그리운 벗들,
건강하십시오.
사랑합니다.

돌멩이 하나

- 김남주-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 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송앤라이프 새노래 '편지 12' 바로가기]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