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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오백년의 오랜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평화로운 정경이 되나봅니다
ⓒ 장권호
모든 것이 본질로 돌아가 안식을 취하는 11월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만물을 거둬들이는 달'이라고 했다. 대지는 뭇 생명을 본연의 자리로 돌려보내 겸허하게 비어있고, 나무는 잎을 떨궈 땅을 덮는다.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되풀이 해온 자연의 아름다운 순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11월을 밖에서 나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퍼 올린 것으로 나를 채우는 계절이라고 했다. '밖'이 아닌 '내 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오늘은 천오백 년의 오랜 세월을 통해 그 자신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 백제의 왕릉, 부여 땅 '능산리 고분군'을 찾아 길을 떠난다.

마음의 눈(心眼)으로 찾아야 할 백제 땅 부여

▲ 왕릉으로 오르는 잔디밭 길에서 만난 환상적인 초겨울 풍경입니다
ⓒ 장권호
26대 성왕에서 31대 의자왕까지 백제 왕조의 마지막 123년을 의탁했던 왕도 부여. 위례성에서 임시 도읍지 웅진을 거쳐 사비에 정착한 백제가 자신의 최후를 예감이라도 하듯 혼신의 힘을 다해 찬란한 꽃을 피우고 꿈결처럼 스러져 버린 비운의 땅 부여.

오늘 찾아가는 백제의 왕도 부여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외에는 지상에 이렇다 할 유물이나 유적을 남기지 못할 만큼 침략자들의 발길 아래 철저히 파괴되어 버렸다.

그래서 유홍준 교수는 답사의 초심자는 공주와 부여에 가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백제 땅 부여를 찾는 답사 길은 허망한 여로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유 교수 표현을 빌리자면 네다바이 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여 답사의 허망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육(肉)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心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수능 끝난 토요일 오전, 카메라와 자료집, 가벼운 옷가지를 챙겨 집을 나선다. 호남고속도로 상행선 전주 나들목을 빠져 나와 전주-군산간 국도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겨울 들판의 고즈넉함이 눈에 들어온다.

낙엽이 융단처럼 덮인 초겨울 부소산 산책길

▲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가 부소산 산책의 절정을 맛볼 수 있답니다
ⓒ 장권호
봄부터 가을까지 주어진 소임을 성심으로 다하고 이제 긴 휴식에 들어가 다시 올 봄을 기다리는 겨울 들판의 저 편안한 여유가 부럽다. 끝없이 펼쳐진 국도 변 겨울 들판의 침묵에서 '비움의 미덕'을 본다. 금강 하구언 둑을 지나 서천을 거쳐 부여에 도착하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지났다.

오늘 둘러 볼 유적지가 모두 반경 2km 내외에 자리하고 있어 서두를 것은 없지만 시간대 배정을 잘 해야 답사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구드레 나루터 부근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으로 요기를 하고 근처 유스호스텔에 들러 숙소를 예약한 후 곧바로 부소산으로 향한다.

낙엽이 융단처럼 덮인 부소산 산책길엔 젊은 연인들보다는 어깨 나란히 하고 걷는 중년 부부가 유독 많이 눈에 띈다. 토요일 오후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소산 산책길은 호젓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갈색으로 물든 졸참, 갈참, 상수리 잎들이 벚꽃처럼 날려 아내의 머리와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영일루와 백화정, 고란사로 이어지는 꿈결같이 행복한 부소산 산책은 여유롭게 잡아도 두 시간 정도면 족하다.

안온하고 부드러우며 인간적인 백제의 미학

▲ 조선 사람의 심성만이 저렇게 부드럽고 원만한 무덤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봅니다
ⓒ 장권호
부소산을 내려와 천 오백 년의 빛 바랜 꿈이 금빛 잔디로 익어 가는 능산리 고분군으로 향한다. 논산에서 부여로 들어오는 초입 남향받이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한 능산리 고분군은 초겨울 저녁 햇살을 받을 때가 아름답다. 규모와 거대함에서 흔히 비교되는 신라의 왕릉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면, 백제의 왕릉은 언제 보아도 아늑하고 부드러우며 온화하고 인간적이다.

능산리 고분군은 사비 시대 여섯 명의 왕 중 30대 무왕과 31대 의자왕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과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두 7기의 능들이 오랜 세월 동안 이무로운 이웃처럼 오순도순 자리를 잡고 있는 왕릉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여지없이 동산에 떠오르는 반달 모양이다. 무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천 오백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자연의 작품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싶다.

▲ 동 1호 고분 사신도를 그대로 재현한 천정 연꽃무늬에는 백제 미술의 특징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고 합니다
ⓒ 장권호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백제고분모형관을 향한다. 그 까다로운 백제분묘 구조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시대별로 9개의 무덤 내부를 해부하듯 재현해 놓았던 예전의 모형분묘는 모두 철수하고 없다. 모두 백제문화재현단지로 옮겨갈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부여군 측이 실수한 것 같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막대한 돈을 들여가면서 첨단 시설로 꾸며 과시하는 전시행정이 결코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백제고분모형관에서의 아쉬움을 달래며 고분 모형관 바로 앞에 조성해 놓은 신암리 고분으로 향한다. 발굴 당시의 실물을 그대로 옮겨 재현해 놓은 이 신암리 고분은 입구를 개방해 놓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무덤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했다. 백제 후기 지배층의 전형적 무덤양식인 신암리 고분은 장방형의 6각 돌방무덤이다.

▲ 백제 후기 지배층의 전형적 무덤 양식을 보여주는 신암리 고분 내부
ⓒ 장권호
성인 남자 둘이 나란히 누울 수 있을 정도의 폭에 높이 1.2m 가량의 무덤 속 돌방. 무덤 속이라는 선입감과는 달리 돌방 안은 음습하지도 답답하지도 않다. 지상의 시간과는 단절된 채 아주 느린 호흡의 시간이 지배하는 이 나른한 느낌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죽은 자를 위한 집이나 산 자를 위한 집이나 결국 집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으리라.

이승의 업 다하고 평화로운 안식 취하는 왕릉

신암리 고분에 이어 동1호 모형고분에 그려진 사신도까지 둘러보고 금빛 잔디밭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동편 왕릉으로 향한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인데 겨울 하늘엔 반달이 떠 있다. 능의 부드러운 자태와 곡선이 여지없이 하늘의 반달과 꼭 닮은꼴이다.

▲ 초겨울 하늘에 뜬 반달과 능의 모습이 여실히 닮은 모습이랍니다
ⓒ 장권호
능산리 고분군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7호 고분 솔밭 위까지 올라 왕릉 전체를 조망한다. 일곱 기의 무덤들이 만들어 낸 유려한 곡선과 물결치듯 펼쳐지는 부드러운 산자락 아래 고즈넉이 잠들어 있는 겨울 들판이 현실의 공간이 아닌 천 오백 년 전 백제의 신화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초겨울 잔광이 깔리기 시작하는 왕의 유택은 절대 평화 구역이다. 묻힌 자의 욕망과 회한 그리고 음습한 주검의 냄새까지도 모두 세월의 무게 앞에 맑게 씻겨져, 이젠 자연의 일부가 되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언젠가 이승에서의 업이 다하면 우리도 천오백 년 전 무덤 속 영혼처럼 저렇게 평화로운 안식을 취할 수 있을까?

▲ 능산리 고분 건너편 솔밭에 잠들어 있는 민족시인 신동엽의 묘비입니다
ⓒ 장권호
다섯 시면 문을 닫는다는 왕릉에 어둠이 밀려온다. 이제 일어서야 한다. 능산리 고분군 건너 편 산자락에 따뜻한 흙 가슴으로 잠들어 있는 민족시인 신동엽의 묘지까지 다녀오려면 서둘러야겠다.

백제
예부터 이곳은 모여
썩는 곳,
망하고 대신
거름을 남기는 곳,

금강,
예부터 이곳은 모여
망하고, 대신
정신을 남기는 곳

신동엽의 <금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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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사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째 광주교사신문 12면에 주제가 있는 여행 꼭지를 맡아 집필하고 있다. 또한 광주과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도서관 운동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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