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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도 억울한데 익사광고 웬 말이냐"
"채무자 비하하고 익사시키는 광고 즉각 중단하라"
"신용불량문제 해결 없이 서민들 죽음 막을 수 없다. 신용회복법 제정하라"

▲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의 '신용불량자 광고' 규탄 집회 장면
ⓒ 김윤정
30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국민은행 광장.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 겸 민생보호단장 이선근 위원장을 비롯한 당원들은 이러한 구호를 외치며 규탄집회를 열었다. 지난 7월 2일부터 라디오와 TV를 통해 방송되고 있는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신용불량자 편 공익광고가 신용불량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이선근 위원장은 규탄 발언에서 "한국방송광고공사는 광고 수수료로 운영되는 곳이다. 광고회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신용불량자의 마음을 참담하게 찢어 놓은 후안무치하고 인권유린적인 광고를 낸단 말인가"라며 한국방송광고공사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 퍼포먼스, '익사광고'에 의해 두 번 죽임당하는 신용불량자들을 의미한다.
ⓒ 김윤정
이 위원장의 규탄 발언 후 민노당은 '공익광고의 실체'라는 주제의 짤막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해당 광고를 연상하도록 신용불량자를 상징하는 인물의 형상이 담긴 투명한 수조 속에 물을 붓는 내용. 푸른 물감이 풀어진 물통 겉면에는 '익사 광고'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 이 수조 옆에는 '신용이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집니다'라는 문구를 붙인 텔레비전을 놓았다.

이 퍼포먼스에 대해 임동현 민노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부장은 "신용불량자들이 이미 금융제재와 채권추심에 시달리고 있는데 여기에 '사라진다'는 표현을 사용해 정신적 충격을 가하는 것은 신용불량자를 두 번 죽이는 짓이다"라고 말했다.

민노당은 규탄집회 후 국가인권위로 이동, 국가인권위원회에 광고중단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 광고

▲ 이선근 위원장은 "공익광고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계도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 광고는 사회구성원인 신용불량자들을 일방적으로 비하함으로써 방송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저해한다"고 규탄했다.
ⓒ 김윤정
민노당은 국가인권위에 제출한 진정서에서 해당 광고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신용이 사라지면 당신도 사라진다'라는 문구를 사용함으로써 신용불량자들에게 죽거나 아니면 없어지라는 일방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제10조). 그리고 광고를 통해 마치 '신용불량 = 무분별한 과소비자'인 것처럼 취급, 조장하여 고용상의 불리한 대우는 물론이며 실제 경제활동에 불리한 대우를 더욱 가중시키는 등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것(제11조)이 주요 골자다.

"물론 무분별한 카드 사용은 분명 잘못됐다. 그러나 신용불량 문제들을 살펴보면 신용카드사들의 과다 출혈 경쟁으로 비롯된 측면이 없지 않다. 또한 신용불량문제를 뒷받침할 대책 없이 카드 사용을 장려한 정부도 문제가 있다. 이러한 면은 배제한 채 현재의 신용카드 문제가 전적으로 신용불량자들에만 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임동현 부장은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민생보호단은 그동안 '신용회복법제정을 위한 300만 서명운동'을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서명을 받고 신용카드 문제에 대해 상담을 받던 중, 이 광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것. 건의자들은 "언제는 정부가 나서서 카드 사용을 장려하더니, 문제가 발생하자 그건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카드 안 쓰는 사람이 봐도 무서운 광고

이 광고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그러나 광고에 대한 호오를 떠나 대체적으로 주인공이 늪에 빠져 사라지는 것이 '공포스럽다'는 데에는 동의하는 듯하다.

초등학교 교사 이아무개(31)씨는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결국 늪 속에 빠져 죽는다는 내용은 카드를 안쓰는 사람이 봐도 무서운 내용"이라며 "공익광고가 이제 협박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학과 내 광고학회 활동을 한 이경민(25)씨 역시 광고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며 "익사라는 설정 자체만으로도 정신적 충격을 받기에 충분하다"라고 밝혔다.

▲ 문제의 광고 - 무분별한 소비를 일삼던 주인공이 결국 늪 속으로 빠져 사라지고 있다
ⓒ 김윤정
이와 관련 민생보호단 홈페이지(minsaeng.kdlp.org)에서는 오늘부터 해당 광고의 인권침해 여부를 묻는 설문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총 50여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압도적 숫자인 95%가 '본 광고는 신용불량자들의 인권을 침해한다'에 '예'라고 답변했다. 의견란에서 '꼬뮨'이라는 아이디의 참가자는 "무엇을 위한 공익인가"라며 "재벌개혁광고를 그렇게 해 보라"고 적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방송광고공사 홈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온라인 우수광고 투표'에서는 해당 광고가 71% 이상의 투표자들로부터 '좋았다'는 반응을 받고 있다. 이밖에 '그저 그렇다' 15.0%(197표), '잘못되었다' 13.4%(176표)로 집계됐다.

텔레비전 광고 전문 사이트 티비시에프에서는(www.tvcf.co.kr)에 올라온 약 80여건의 200자 평에서는 이 광고에 대한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아이디가 'inflamer'인 네티즌은 "카드 사용으로 인한 신용불량은 더 무서운 광고를 더 무서운 광고를 때려야 된다"라고 평했다. 반면 'captko33'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의도한 바에는 충실한 것 같지만 표현이 너무 끔찍한 게 아닐까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광고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빚어진 해프닝"

민노당의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공익광고협의회 위원장 리대룡(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광고란 사실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상징하는 것이다. 광고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일종의 해프닝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리 교수는 "이번 광고는 신용불량자를 겨냥한 게 아니고 신용카드를 함부로 쓰고 과소비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고 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해석을 할라치면 인권침해라 말할 수 있는 게 어디 한둘이겠냐"고 반문했다.

한국방송광고공사 공익광고부 안순열 차장 역시 '광고에서 주인공이 늪에 빠져 사라지는 것이 공포스럽다'는 의견에 대해 "그것은 단지 무분별한 소비 형태가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설정일 뿐 신용불량자의 인권을 훼손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안 차장은 "공익광고가 사회의 문제를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문제로 제약을 받기 시작하면 문제 해결을 위한 크리에이티브를 정하기 어렵다. 이것은 일종의 언론사 취재권 방해와 같은 개념이다"라고 항변했다.

한편, 이번 '신용불량자 편' 공익광고는 신용불량이라는 경제적 문제가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자살, 납치 등 각종 사회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제작됐다. 공모를 통해 총 28개의 광고 작품이 접수됐고 이를 공익광고협의회의 위원들이 선정한 것.

한국방송광고공사 홈페이지의 광고 설명에는 '무분별한 소비 행위는 자신을 신용불량의 늪에 빠지게 하여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로까지 몰아갈 수 있다는 강한 경고 메시지를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하고자 했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에서는 경제 이해도를 묻는 광고 해"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김민기 교수는 "미국 AC에서는 '당신의 경제 지수는 얼마입니까'라며 경제에 대한 이해를 촉구하는 공익광고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AC(Advertising Council)는 미국의 비영리 광고협의회로 교육·보건·청소년·환경보호·마약·폭력·성범죄를 비롯해 아동학대금지·약물남용·음주운전·미성년자약물소비금지 등 미국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김 교수는 "물론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극심한 현금 신용카드 문제는 없어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이번과 같이 극단적으로 네거티브한 광고는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공익광고는 주로 네거티브한 접근 방법을 쓴다. 부정적 접근을 해서 공포 조장하고 강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 그러나 김 교수는 이번 광고에 대해 "이번엔 지나치지 않았나 싶다"며 "신용불량이 된 과정 등 여러 문제를 도외시한 채 신용불량자의 과소비 문제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라진다'는 등의 표현은 "국민에게 경각심을 심는 차원이 아니고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어떤 광고로 나가야 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김 교수는 "전면적으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며 모범 사례의 하나로 작년 6월 방송된 엘지카드 광고를 들었다. 이 광고는 남녀 주인공이 "갚을 수 있는지", "꼭 필요한지"라고 말하며 신용카드를 신중히 사용하라는 내용을 호소한 뒤 '과소비를 자제하고 신용카드를 바르게 씁시다'라는 광고 문구를 명시했다.

민노당에서도 광고 개선안에 대해 신용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하거나 신용카드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 제반의 문제들을 알리고 경제적 씀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 등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동현 부장은 "개인워크아웃제에 대해 설명하거나 최근 잇따른 자살 사건을 설명하며 정부 정책 마련과 이웃의 관심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광고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불량자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전면 수정되는 것이 기본"

▲ 이선근 위원장이 국가인권위를 찾아 광고 중단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
ⓒ 김윤정
이번 진정서를 제출한 이선근 위원장은 "신용불량자를 파렴치범, 불량자로 보는 정부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며 "이들이 정당한 경제적 지위, 헌법이 보장한 인권을 가진 사람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라"고 촉구했다.

민노당은 오늘 국가인권위에 진정서 제출한 것에 이어,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신용불량자 편 광고에 대한 사이버 민원신청운동을 전개할 예정. 더불어 '개인채무자 신용회복법' 제정 운동의 일환으로 벌인 사이버 서명 운동(http://www.kdlp.org)에는 현재 2000여명 가량이 서명한 상태다.

민노당은 '개인채무자의 신용회복법' 제정으로 개인회생제도의 조속한 시행을 촉진함과 동시에 금융기관의 카드 남발 행위 등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섯 달째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정부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안'은 개인회생제도 도입의 시급성과 실효성을 간과했다는 것.

민노당은 이와 함께 다수 신용불량자들이 '빚 연체 → 카드 돌려막기 → 신용불량자 → 사채시장 유입'의 빚 수렁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금리제한법 제정 운동도 함께 추진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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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호의 기자만들기> 18기 김윤정입니다. 강의를 듣고 시민기자로 활동하지 않는다면 제 자신에게 부끄러울 것 같아 등록합니다. 기사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르포나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소외되고 버려진 곳, 주변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특별한 이야기 등을 찾아 기사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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