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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만으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지만 정작 말한 대로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특히 그것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더 어렵다. 지금까지 누려오던 혜택(?)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은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를 자신의 말대로 과감히 거부하는 웬델 베리의 행동은 주목된다.

<녹색평론> 통해 국내 소개된 행동하는 자연론자

웬델 베리는 미국의 켄터키대학을 졸업하고 한때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농사짓는 농부이자 시인, 소설가이다.

혹자는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와 비슷한 사람으로 여길지 모르나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라는 점에서는 닮은꼴이지만, 평화로움이나 낭만주의적 요소가 없이 농촌을 미화시키지 않는 점이 이들과 다르다.

그런 웬델 베리가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녹색평론>을 통해서였는데, 9?11 테러 이후 평화를 명분으로 이루어지는 전쟁의 속성에 대해 꼬집는 글을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녹색평론> 1, 2월호에 소개)

웬델 베리는 땅과 자연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문제를 근본주의적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이 책에서 그는 이 시대 문명의 이기를 대표하는 컴퓨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자연과 인간과 본성을 파괴하는 산업사회의 부작용을 고발한다.

그는 1956년산 로열 스탠더드 타자기를 가지고 글을 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컴퓨터를 사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그는 결코 컴퓨터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전력은 자연의 질서를 위배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더군다나 이러한 사소한 편리함을 얻기 위해 자연과 인간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은 진정한 기술혁신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글 쓸 때도 자연 파괴하지 마라

물론 '나는 컴퓨터가 필요없다'는 표제글을 잡지에 발표하자 '지나친 이상주의자' 또는 '아내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한 불한당'(그가 펜으로 글을 쓰면 아내가 타자를 쳐주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는 그와 같은 비판에 댓거리를 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개진한다.

산업화가 몰고온 기계화, 대형화, 도시화의 경쟁 속에서 인간은 인간의 가치마저 저울질당하면서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삶을 영위하게 됐다.

한데 문제의 심각성은 거대한 자본과 경쟁 위주의 산업사회에서 이러한 희생과 파괴는 정의나 평화, 이로움의 명분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해서 그는 근본주의적 입장으로 취한다. 유나버머가 거대 자본과 산업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사회 자체를 완전히 거부한 과격한 행동으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했다면, 헨델 베리는 컴퓨터와 전력 사용을 거부하고 글을 통해 저항한 사람이다.

그는 불빛이 필요 없는 낮에만 글을 쓴다며 글을 쓰는 행위 속에 자연을 약탈하는 행위가 포함돼 있다면 자신이 어떻게 양심적으로 자연 파괴에 반대하는 글을 쓸 수 있겠는가고 묻는다.

덧붙이는 글 | 웬델 베리 / 양문 / 240쪽 / 8,000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

웬델 베리 지음, 정승진 옮김, 양문(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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