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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이는 조금 더 성장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른 사람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배웠다는 뜻이다. 물론 4살도 채 안된 아이에게는 너무도 거창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웃에 사는 아이들과 함께 놀고 온 후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이자 보물인 아들 아이는 이제 막 41개월이 되었다. 일하는 엄마를 둔 죄로, 집보다는 외가에 있는 날이 더 많다. 그러다보니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말이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은 줄고 여유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 여유 시간마저도 공부한다는 이유로 얼마 되진 않는다. 하지만 한창 일할 때와 비교한다면, 분명 많은 시간이 나와 아이에게 주어진 셈이다. 아이가 외가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는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외가 동네에 있는 아이들과는 자신의 목소리를 한껏 낼 수 있을 만큼, 친숙한 상태이지만 정작 우리 동네에서는 힘 없는 주변인이다.

아이와 한참 놀고 있노라니 창문 밖에서 이웃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 매일 이때쯤이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갔던 아이들이 돌아와 함께 어울려 논다. 아이는 소리가 나자 "엄마 무슨 소리지?"하면서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함께 놀았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많은 말을 건넸다.

비슷한 또래의 이웃 아이들에게는 낯선 목소리로 말이다. 하지만 이웃 아이들에게는 우리 아이의 갑작스런 출현이 별 반응을 주지 못했다. 가끔 얼굴을 보긴 하지만, 함께 놀아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독자(獨子)로, 부족함 없이 자란, 조금은 자기 중심적인 우리 아이의 서툰 사교성은 아이들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아이는 또래건, 형이건, 누나건 사람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아무래도 혼자서 자란 영향이 큰 것 같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미안함을 가지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자 아이는 울먹였다. 아이가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되어 위로를 해주었다. 적어도 외가 동네에서는 네가 대장이 아니냐는 유치한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끝내 아이는 이웃 아이들과 놀고 싶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혼자서는 못 갈 것 같으니 엄마가 데려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3층 계단을 내려와 아이와 자전거를, 아이들이 있는 아파트 마당에 내려다주었다.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나는 그 모습을 창문을 통해 지켜보았다. 아이가 부디 작은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에 무사히 통과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아이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나만 옳다고 고집을 부리지 말 것. 둘째, 형이나 누나에게 깍듯이 형과 누나라고 부를 것. 전에는 "야"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노라니 처음에는 주뼛거리던 아이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달라졌다. 같이 안 놀아주겠다던 아이들도 이내 자신들의 놀이 속에 우리 아이를 끼워주었다. 그제서야 마음이 놓여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저녁 때가 되자 아이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아이도 기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몇 번씩이나 말하는 것이다. "형아와 누나들과 재밌게 놀았다"고. 유난히 길게 느껴진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아이나 나를 조금 더 성장시켜 놓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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