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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떠 안고 살아온 노촌. 그러나 그의 눈빛은 맑고 순하기만 하다. ⓒ 김문호
<오마이뉴스 전남동부> 편집위원인 박치음 순천대 교수가 지난달 베트남에서 탄타오 시인과 '평화대담'을 가진 데 이어 지난 2일 노촌(老村) 이구영(83) 선생과 '통일대담'을 가졌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음식점 '동루골'에서 가진 이날 대담에서 노촌 선생은 백범을 끌어들이려는 미군정의 계획이 언론조작에 의해 무산된 비화 등을 증언했다.

충북 제천의 6백석지기 지주이자, 대제학을 배출해 낸 명문집안의 종손으로 태어난 노촌은 의병운동을 편 집안 분위기와 시대적 상황에 의해 사회주의자가 된 '선비 혁명가'이다. 6.25 전쟁 당시 월북한 후 남파돼 검거된 후 22년간 장기수로 복역한 노촌은 감옥에서 신영복(성공회대), 심지연(경남대) 교수 등에게 한학을 가르친 한학자이기도 하다.

노촌의 일생은 민족의 비극과 모순을 관통한 비운의 역정이었다. 남한에 두 딸과 아내를 남겨두고 월북한 그는 북한에서 다시 가정을 꾸려 아들과 딸을 두었지만 당의 명령에 의해 남파되면서 이별과 만남을 동시에 겪어야했다. 항일운동과 사회주의운동, 월북과 남파 그리고, 장기수로 파란 많은 생애를 살아온 노촌은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옳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을 뿐이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박 교수는 이날 '통일대담'에서 국민의 세금 가운데 군사장비 도입 등에 쓰이는 분단비용을 미국 자본이 독식하고 있다며 납세자들의 조세투쟁을 제기했다. 그는 또 분단비용이 통일과 평화비용을 능가하고 있다며 비용적 측면에서도 통일이 민족의 이익이라는 입장을 폈다. 노촌은 네티즌들이 '피어나야 할 통일세대'라며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통일의 시기는 앞당겨 질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다.

▲항일운동에서 장기수까지 노촌의 인생역정은 현대사의 비극, 그 자체였다. ⓒ 김문호


다음은 박치음 교수와 이구영 선생이 나눈 '통일대담' 전문이다.

취재·정리 = 조호진 기자
사진 = 김문호(이문학회 회원)


- 지난해 뵐 때보다 건강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병원에서 퇴원한 뒤 건강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습니다. 제자와 함께 '집으로...'라는 영화를 볼 정도로 많이 좋아졌습니다."

- 오늘 찾아뵌 것은 전쟁을 겪은 선생님과 전후세대인 저, 그리고 통일시대를 살아가야 할 네티즌이 함께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입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6.15 정상회담으로 남북한에서 통일에 큰 관심 갖게됐습니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반격으로 통일의 기운은 또 다시 찬바람을 맞으며 잠복된 상태입니다. 민족의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는 통일논의를 다시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삶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는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도서출판 소나무)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네티즌들에게 일독(一讀)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 책을 펴낼 당시의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젊어서는 약간 장난 삼아 습작을 해보려고 했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오래 살다보니 겪은 것도 조금 있고 다른 사람보다 경험도 조금 다르고 해서 이야기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대화한 것이 책이 됐습니다."

노촌은 엄격한 한학자의 집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 상경해 상투를 자르고 영창학교에 입학한 뒤 가난한 사람들의 참상을 보고 사적 유물론을 공부하며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구나' 싶어 사회주의자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내가 꼭 무엇을 하리라'고 한 것이 아니라 옳은 방향으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노촌의 맑은 웃음. ⓒ 김문호
그의 말대로 '사상이 익어가면서' 유치장과 감옥을 드나들었던 노촌은 해방을 맞이한 뒤 여운형 선생과 토지문제를 논의한 일화와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정치운동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중 미군정에 의해 인민위원회가 치안유지권한을 빼앗긴 이야기와 함께 여운형, 박헌영, 이승만 등에 대한 일화를 등장시켰다.

벽초 홍명희 선생은 우리말을 지킨 진정한 애국자

-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해방공간에서 지식인의 행적은 현재 분단시대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가늠하게 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지식인 가운데 분단으로 몰고 간 인물도 있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애국자도 있었는데 그 중 주목할만한 인물 가운데 벽초 홍명희 선생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식민지 시절 감옥에서 집필한 소설 '임꺽정'은 우리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지난 80년대 군부독재에 저항한 세대들에게도 꿈과 희망을 주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저도 임꺽정을 일곱 번 읽으면서 큰 영향을 받았는데 선생께서 직접 만난 벽초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홍명희 선생은 나에게 칠촌 친척이 되는 사람입니다. 그 분은 일년에 몇 번씩 아버지를 찾아와 뵙곤 했는데 내가 한학만 공부하는 것을 딱하게 여겨 신지식을 배울 것을 권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자주 만났는데 그 어른은 내게 해박하게 많은 것을 가리켜주고 의심나는 것도 풀어주었습니다.

홍명희 선생은 거죽으로(겉으로는) 아닌 체 했지만 속으로는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임꺽정에는 고유한 우리 나라 말이 숱하게 담겨져 있는데 이것은 일제가 빼앗은 우리말을 후손과 역사에 전달하기 위한 선생의 노고가 담겨 있는 역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임꺽정의 행적을 정확히 파악한 뒤 글을 쓸 정도로 과학적으로 썼습니다. 직접 찾아갈 형편이 못되면 아들 홍기문이나 딸을 시켜 조사한 뒤 작품을 쓸 정도로 치밀했습니다. 반면 당대 인기 소설가였던 이광수는 대중들에게 인기는 모았지만, 병원도 가보지 않은 채 폐병환자를 묘사한 소설을 발표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임꺽정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이 인기를 끌자 조선일보 사장 방응모가 자꾸 쓰라고 권했던 것도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 이처럼 큰 인물인 벽초가 문단사와 역사에서 배제됨으로 해서 시류에 영합한 문인과 지식인들이 크게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인물들 가운데 직접 만난 문인으로는 누구를 꼽을 수 있습니까.

"식민지 시절에는 미당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 변절해 일본을 위해 글을 썼는데 일본이 망하자 다시 우리에게 찾아와 같이 지내다 또 안되니까 또 다시 변절했습니다. 변절로 민족을 배반한 미당은 또 다시 전두환을 위해 시를 써서 바쳤다고 하더군요.

박목월은 비교적 깨끗했지만 나중에 변했고 가까이 지냈던 조지훈의 아버지는 한의학을 한 사람으로(노촌은 경희대한의대 전신인 동양의학전문학교 출신) 북으로 넘어갔습니다. 조지훈의 삼촌은 충남도지사를 지낼 정도도 집안 배경이 좋았는데 아버지가 북으로 넘어간 사실 때문에 연좌제로 고생해서인지 북쪽을 보고는 소변을 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2시간에 걸친 '통일대담'에서 노촌은 또렷한 기억으로 현대사를 증언했다. ⓒ 김문호


노촌은 최근 건강이 악화되면서 주변 사람들을(특히 '이문학회'회원들) 안타깝게 하고 있다. 특히 현대사에 해악을 끼친 각 인물들의 비화가 그대로 묻힐 것이 우려돼 이를 남기려고 하고 있지만 선생은 그들 후손들의 피해를 우려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노촌은 이날 '건망증이 심해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했지만 비교적 또렷하게 각 인물들에 대해 생생히 증언했다. 그는 박헌영과 김삼룡을 중심으로 한 재건파 공산당이 노동자들을 장악하기 위해 당시 공장지대인 영등포에서 활동하던 활동가들을 지방조직책으로 쫓아보내는 등 권력다툼으로 운동의 해악을 끼쳤다며 진보세력의 분열이 역사를 후퇴시켰다고 지적했다. 노촌은 해방공간의 상황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하지가 김구와 한민당을 통합시키려다 실패한 것은 '언론조작'

"해방 이후에는 좌익인 체 하지 않으면 행세를 못했습니다. 우익들은 선전을 하려해도 현수막에 쓰이는 광목을 사기도 힘들고, 프린트 해주는 곳도 거의 없었습니다. 모스크바 3상회의가 열린 뒤 송진우가 정치를 훈련받을 수 있는 기간을 두어 정부수립을 해야 한다는 논설을 동아일보에 썼는데 이것은 사실상 미군정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일로 송진우가 암살 당한 뒤 임정요인으로 유명한 엄항섭, 조소앙 같은 사람들이 굉장한 반탁운동을 했습니다. 반탁운동을 하면서 우익이 머리를 들고 나오기 시작했고 보수세력과 토착 부르조아들이 뒤에서 도왔습니다. 그 가운데 동아일보 창업주인 김성수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 토착 부르조아들이 성장하면서 분단이 고착화되고 우익에 정권이 넘어가기 시작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처음에 그들은 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미군정 사령관)조차 이승만에게 권력을 맡기면 큰일 나겠다 싶어할 정도로 이승만의 지지세력은 10%도 안됐습니다. 하지가 김구를 붙들려고 하자 이승만이 갈려져 나간 것이고, 이승만은 이북에서 탈출한 세력과, 일본세력(친일파) 미국세력을 등에 업고 한민당에 들어가 권력을 쥔 것입니다.

하지가 백범과 한민당을 통합시키려고 할 때 공산당원으로 한민당 선전부에 침투한 김승원이 백범을 음해하는 사건을 조작했습니다. 그것은 김구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에 있을 때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정근(安定根) 선생이 항일활동을 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그 미망인이 백범을 존경해 가끔 문안을 드리러 찾아 뵙곤 했습니다.

▲분단비용을 독식하는 미국에 납세자의 조세투쟁을 제기한 박치음 교수. ⓒ 김문호
김승원이 그런 사실을 이용해 백범이 미망인에게 '장차 내가 조선의 왕이 될 터이니 그대는 왕비가 되지 않겠는가'라는 편지를 보냈다며, 내연관계로 몬 기사를 조작해 동아일보에 보도하도록 했습니다. 황당무계한 기사가 나가면서 한민당과 백범의 통합은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 해방공간에서 분단상황이 벌어진 데는 지금까지 거론된 정치인, 지식인, 문인 등의 내적 요인과 국제정세에 의한 외적 요인이 복잡하게 얽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과 해석이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분단의 궁극적인 요인을 무엇으로 보십니까.

"미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 말씀대로 우리 나라는 미국이 직접 관리하는 나라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의 우리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금강산에서 남북이산가족이 상봉하고 있습니다. 남쪽과 북쪽에 가족을 두신 선생님께서는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는 세 가지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7.4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 '아이쿠 이제 살았구나'(당시 남파공작원으로 감옥에 수감됨)할 정도로 기뻤습니다. 북한 인민과 남한 국민들이 모두 살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생각에 기대가 컸었습니다. 그후 감옥에서 나와 두 번째 맞은 기쁨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6.15 공동성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기쁨도 좌절됐습니다. 세 번째 갖는 희망은 세계 모든 나라 국민들의 세상을 보는 눈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정신을 바로 세우면 골고루 잘사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6.15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남북통일 열기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저 또한 큰 희망을 가졌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 이어지고 서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질 때 통일의 물꼬가 터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의 거센 역풍과 진보적 지식인의 침묵으로 인해 냉전구도가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문이 통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나는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습니다. 남북간의 교류가 활발해지면 김 위원장이 답방을 하든, 하지 않든 그 동안 얽힌 남북한의 문제가 하나하나 풀어진다고 봅니다."

- 최근 끝난 민주당 경선에서 '색깔론'이 나왔을 때 내심 기뻤습니다. '색깔론' 공방이 시대착오이긴 하지만 이것으로 말미암아 문제의 본질인 통일논의가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과거 선거 때마다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색깔론'이 이번 경선에서 먹혀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바로 쌍방향 매체인 인터넷 매체의 영향이 나타난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네티즌들의 수준이 '색깔론' 정도는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터넷신문의 영향도 커졌고 이와 함께 선거제도도 상당히 달라진 게 '색깔론'을 시들하게 한 것 같습니다. 특히 전라도, 경상도 할 것 없이 지역감정이 해소되고 있는 것도 색깔론이 무력하게 된 데 크게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상당히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분단비용 독식하는 미국 자본에 조세투쟁 전개해야 할 때

-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이 간단하게 극복될 세력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오는 12월 대선에서는 '색깔론'을 넘어서 본격적인 통일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것은 보수가 주류를 이룬 분단세대와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통일세대의 갈등이 표출되면서 후보간의 통일에 대한 입장이 극명하게 차이를 드러낼 것으로 봅니다. 통일에 대해 비교적 진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노무현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한학자 노촌. ⓒ 김문호
"그 사람은 과도기적 인물이라고 봅니다. 그는 보수를 표방해도 진보적 입장을 가질 사람이고 또 진보를 표방해도 보수적 색채를 완전히 버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기성집단에서 지지를 받는 사람도 아니고 시류에 영합해 왔다갔다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습니다. 386세대라 하는 젊은 정치인들이 국회에 들어갔지만 되레 물이 들어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보수로 떨어져 나간 것과는 비교가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된 무렵인 90년 초에 독일에서 객원교수로 몇 년간 머문 적이 있습니다. 이때 독일 젊은이들과 통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분단비용과 통일비용에 대해 시시콜콜할 정도로 따졌습니다.

당위성과 정서적 접근으로 통일문제를 바라보던 입장에서 야박할 정도로 통일을 경제적으로 계산하는 이들의 태도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나름대로 분단비용, 평화비용, 통일비용을 따져 보았는데 어림잡아봐도 분단비용이 엄청나다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그들이 이해가 됐습니다. 예를 들어 분단비용에 해당되는 F15기 구입비용이 천문학적인 액수이고, 주한미군 주둔비용 분담 등 군사비용까지 합친다면 평화비용은 물론 통일비용을 능가할 정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보수세력과 수구언론이 공격하는 소위 '북한 퍼주기' 가운데 금강산 개발은 소모성 분단비용이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사용될 우리의 관광자원 개발로 이는 통일비용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계산에서도 통일이 국익과 국민복지를 위해 절대 이익이라고 봅니다.


"분단비용의 많은 부분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분단된 우리 나라는 미국이 직접 관리하는 나라입니다. 세계 경제의 2/3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쉽게 한국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통일을 저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과한 것은 반격을 동반하기 마련... 오늘 할 일은 오늘, 내일 할 일은 내일

- 통일논의에서 조세투쟁이 한 축을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년 전의 프랑스 혁명은 시민계급이 봉건계급에 대해 저항해 일으킨 조세혁명이었습니다. 미국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조세투쟁을 동반한 시민혁명이었습니다. 100년 전 일어난 갑오농민전쟁 또한 조세투쟁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통일문제에서 분단비용을 독식하는 미국의 독점자본에 대해 납세자들이 저항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탈세 또는 탈루하는 대기업, 권력층, 수구언론, 부유층 그리고 돈이 없어 세금을 못 내는 극빈자를 뺀 중산층과 서민들이 분단비용에 쓰여지는 비용을 세금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들의 조세투쟁이 일어날 때가 됐다고 봅니다. 내가 낸 세금이 소모적인 분단비용이 아니라 평화와 복지를 위해 사용되도록 당연히 권리를 주장해야한다고 봅니다. 이번 대선에서 쟁점으로 떠오를 통일논의에서 유권자이자 납세자들인 국민들이 이러한 조세적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획기적인 통일논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세대, 분단세대 그리고 통일세대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김문호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과한 것은 항상 반격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프랑스 혁명도 성공 후에는 나폴레옹의 반동이 있었고 러시아 10월 혁명도 소련의 붕괴로 끝난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기가 문제인데 오늘 해야 마땅한 일은 오늘 해야 하고, 내일 해야 마땅할 일은 내일 해야 합니다."

-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4.19혁명이 5.16쿠데타로 실패하고 6월 항쟁이 6.29선언으로 좌절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선생님 세대와 독재정권으로부터 분단의식을 강요받은 전후세대와는 달리 현재 10∼20대는 통일세대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이들 통일세대들이 민족의 과업인 통일에 기여하도록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우리는 고생한 세대이고 그들은 피어나야 할 세대입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국제정세를 바라보면 내일이 보입니다. 통일의 시기는 노력한 만큼 앞당겨 질 것입니다. "

오늘은(6일)은 노촌의 여든 세 번째 생일이다. 선생의 제자들인 '이문학회' 회원들은 이날 인사동 '동루골'에 축하의 자리를 마련키로 했다. 일생을 선비의 꼿꼿함으로 민족과 통일에 바친 선생의 노고를 달래주려는 게 이들의 소박한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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