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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봉숭아에 백반을 넣어 정성스레 빻은 후 남편의 열손가락에 가지런히 놓고 비닐로 감싸줬다.
 아내는 봉숭아에 백반을 넣어 정성스레 빻은 후 남편의 열손가락에 가지런히 놓고 비닐로 감싸줬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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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 다닐 수 있어요?"
"그럼, 이까짓게 뭐라고."


지난 1일 저녁이었다. 아내는 56살 먹은 중년 남자가 열손가락에 봉숭아 꽃물을 들인다니 기가막혀했다. 요즘 젊은이들도 하지 않는, 게다가 아내도 하지 않는 봉숭아 물들이기에 도전하는 철없는 남편에게 지청구다.

그러면서도, 봉숭아에 백반을 넣어 정성스레 빻은 후 남편의 손가락에 가지런히 얹어 비닐로 감싸준다.

사실, 지난 2년여 코로나19로 운영하던 꽃집이 어려워지면서, 나는 일당 노동일을 다녔다. 한순간에 어려움이 닥쳤지만 그럭저럭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허전했다.

그래서일까. 한 노동 현장에서 봉숭아꽃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나마 소소한 행복을 기대하며 봉숭아꽃을 따서 집에 들고 왔다. 

다음 날 아침 비닐을 벗긴 손가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봉숭아 물들이기에 도전했지만 다음 날 아침 비닐을 벗긴 손가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이쁘게 봉숭아 물이 잘 들었지만, 손가락 주변에 분홍빛이 다 물들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봉숭아 물들이기에 도전했지만 다음 날 아침 비닐을 벗긴 손가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이쁘게 봉숭아 물이 잘 들었지만, 손가락 주변에 분홍빛이 다 물들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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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게 봉숭아 물이 잘 들었지만, 손가락 주변까지 붉으스름해졌다. "아이코, 이래서 다닐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주변을 닦아봤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아내는 며칠 지나면 없어진다고 했다. 그 며칠이 문제다.

어쨌든 과감하게(?) 봉숭아 꽃물들인 손가락을 보이며 생활한 지 오늘(3일)로 사흘째다.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 등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올 초 그나마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다소 운영은 나아졌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결혼해 벌써 대학생 아들, 딸이 있으니 첫사랑 소원은 지나갔다. 대신 '부자 되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 봉숭아 물들인 손가락을 바라보며 꼭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새벽에도 노동 현장으로 출근하는 나에게 아내가 한마디 건넨다. 아내도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다.

"봉숭아 물 창피하지 않아요? 꼭 소원 이뤄지기를 바랄게요."

태그:#홍성군 , #봉숭아물들이기, #첫눈소망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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