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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시장애인체육회 황선철 수석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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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예비장애인입니다. 우리 사회가 바뀌려면 내일 당장이라도 '내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멈출 수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조금 다를 뿐입니다. 그래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말은 24일 장애인들과 같이 울고 웃고 운동하며 지낸 지 어언 14년 차에 접어든 서산시장애인체육회 황선철 수석부회장(63)의 말이다.

그가 임기 내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2025년 서산시에서 열리는 충남도장애인체육대회에 대비하여 서산시장애인전용체육관을 짓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한 그는 "저는 늘 운동이 최고의 복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들도 차별 없이 운동을 통하여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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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월 장애인배드민턴협회 회장 임기를 마치고 새로 ?취임하는 이기수 회장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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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시절 얘기를 해달라.

"청양군 비봉면 용천리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아래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서당 훈장님으로 계시다 내가 태어나던 무렵 한약방을 운영하시던 조부님 영향으로 형제들끼리는 특별히 싸우거나 다툼은 별로 없었다.

어린시절 기억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큰절이다. 근처에 사시는 조부모님께 아침저녁으로 들러 큰절을 하며 살았다. 아주 엄격한 분이라 하루라도 거르는 날이면 아주 혼쭐이 나곤 했다. 때로는 '시험 기간이라 공부했다'고 에둘러대기도 했는데 통할 리 만무였다.

이런 일은 초중학교 시절까지 계속됐다. 그러다 광천에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큰절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꼭두새벽에 무거운 가방을 들고 청양에서 홍성 광천으로 통학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까지 여전히 틈만 나면 큰절을 하기 위해 조부님댁에 다니는 일은 꾸준히 이어졌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외면하지 말고 앞장서서 거둬줘라'는 조부님의 가르침은 두고두고 나를 성장시켰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어쩌면 조부님의 가르침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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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연 선수가 동메달를 2개 따고 복귀한 후 서산시장애인체육회 직원들과 함께 기념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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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절을 강조하셨던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그럼 부모님의 교육관은 어땠나?

"조부님의 가르침과 별반 다르지 않다. '힘든 사람이 있으면 잘 챙기고 늘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는 교훈을 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셔서 곱게 자란 분이시다. 그러다 어른들이 점 찍은 한량 기절의 우리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하셨다. 첫째 형님을 낳았을 무렵이었다. 6.25 전쟁이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아이를 낳은 어머니와 손자를 두고 아버지만 데리고 피난길에 오르셨다.

나름 사회지도층인 할아버지 때문에 공산당이 제일 먼저 용천리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다. 당시 갓 태어난 형님에게 젖을 먹이던 어머니는 총부리를 들이대는 통에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의연하게 대처했다고 했다.

하긴 그들도 사람인데 홀로 남겨진 어린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는 모습이 왜 애처롭지 않았겠나. 그들의 누이일 수도 있을 우리 어머니 모습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다.

살아가면서도 아버지는 여전히 한량이셨다. 집안을 끌고 가는 것은 어머니 몫이 더 컸다. 변변한 땅 한 평도 가지지 못하고 빈 몸으로 분가했던 어머니는 남의 집 일을 하면서 채소를 받아 시장에 내다 파는 일 등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갖은 일을 하며 자식들을 책임지셨다. 그러니 당신 처지에서는 자식들에게 책임감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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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장애인체육지도자 임명장 수여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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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생활을 하면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토목 관련 일을 하다 레미콘회사에 취직하여 품질관리실장과 공장장 직을 두루 거쳤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보람이라면 우리가 생산한 레미콘으로 아파트와 공장 건물이 올라가는 일이었다. 건물이 완성되어 번듯하게 세워진 것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러던 회사가 서서히 기울어지면서 문을 닫게 됐다. 거래처나 지역 사람들에게 받은 신뢰를 무너뜨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우리 회사 기사님들은 모두 도급차였다. 특히 그들을 챙겨나가야겠다는 책임감이 스멀스멀 일었다.

모두 떠난 회사에 두 달간 남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사람들은 '이미 문 닫은 회사에 월급도 안 받으면서 뭐하러 가냐. 그 시간에 어디에 취직할 것인지 뛰어다녀라'라고 손가락질했다. 나 또한 살길이 막막했지만 그래도 모든 마무리는 깔끔하게 해주고자 했던 것이 최소한의 피해를 줄이는 일이라 판단했다. 어쨌든 2개월간 노력으로 기사분들과 거래처가 피해를 면했다.

여기에는 '모든 일에 있어 책임감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교육관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 말은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나의 모토가 됐다. 감사하게도 당시 앞이 캄캄했는데 그 일 덕분에 동종업계 사장님들로부터 신뢰를 얻어 '콘크리트용 혼화제'를 레모콘회사에 납품하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 또 여러분들 덕분에 여력이 생겨 조금씩 봉사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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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회 찍스클럽 사진전문봉사단의 표창장을 받으며(왼쪽 첫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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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서산시자원봉사센터 사진전문봉사단 찍스클럽에서 사진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어떤 연유에서 였나?

"지역의 모 신문사에서 지역기자로 활동하면서 사진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부족함을 알고 서산시평생학습센터에서 사진초급과정을 무려 3~4회 연속으로 배우게 됐다. 그래도 뭔가 더 배움의 욕구가 생겨 인터넷 강의로 중급반과 고급반을 4년 동안 배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진 촬영지도사를 땄고 심지어 사진작가 대열에도 들어가면서 사진 강의와 함께 작품활동도 하고 있다.

22일부터 24일 일요일에는 서산시자원봉사센터 사진전문봉사단이 벌써 '제5회 찍스클럽 사진전시회'를 개최한다. 사진을 배우다 보니 내가 가진 재능으로 봉사도 하고 작품활동도 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가장 잘한 것이 사진을 배운 일이다. 삶이 풍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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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장애인체육대회 배드민턴 경기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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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서산시장애인체육회 수석부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특별히 장애인에 관심을 가진 계기라도 있었나?

"물론이다. 배드민턴 동호회활동을 하면서 장애인배드민턴협회 관련 일을 하게 됐다. 어린 학생들부터 초중고학생과 일반 장애인들까지 모두 같이 운동을 하고 대회에도 나갔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생활 형편까지 속속들이 알게 됐다.

기억난다. 그중에서 유난히 어린 학생이 있었다. 부모님 두 분과 지적 장애가 있는 누나, 그리고 학생까지 4명 모두 다 장애인이었다. 정말 가정 형편도 묻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당시는 장학사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때라 아이에게 연계시켜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서서 다른 단체와 연계하여 매달 장학금과 함께 생활비를 마련해주었다. 물론 많은 돈은 아니라 넉넉한 생활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서 늘 관심과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대목에서 요즘 지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안방에 스며들고 있다. 장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겁지도 않다. 각 에피소드를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과 사회적 시선을 꼬집어주며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나와 동등한 사회 구성원'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들이 혼자서 헤쳐나갈 세상이 아니라 함께 헤쳐나갈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비장애인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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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2월 서산시장애인체육회 정기총회 및 21차 이사회 기념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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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시장애인체육회가 생긴 지 13년째인데도 "서산시에 장애인체육회가 있냐?"고 하는 분들이 많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장애인체육회가 생기기 전부터 장애인체육에 관한 일을 했다. 여기 체육회의 역사를 다 알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됐고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체육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말이 나왔으니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충청남도장애인체육회 그리고 도 협회 관련 직원들과 임원진들은 휠체어 타신 분들이 꽤 많으시다. 그런데도 예전에 지어진 공공건물이라 모두 계단으로 되어있어 시상식이 있어도 단상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원들과 선수들이 당당하게 올라가야 상을 주고받지, 그게 안 되니 임시로 나무 지지대를 만들고 대든 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곳에서 빌려다가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누누이 강조한다.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당진에서 금년에 충청남도장애인체육대회를 개최한다. 당진시청에서 식당 예약했냐는 전화가 왔더라. 지자체에서 음식점에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경사로 턱 만드는 걸 추진하고 있다고 하면서 혹시 안 돼 있는 데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했다. 늦었지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사유하는 사회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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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도 충청남도장애인체육대회 선수단 결단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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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산시장애인체육회가 충남에서는 1호로 생겨났고, 더구나 도민체전에서도 서산시가 무려 3연승을 해서 우승기도 가져왔다. 이제 2025년에 우리 시에서 다시 충청남도장애인체육대회를 한다. 각오가 있다면?

"맞다. 충남에서 천안과 아산을 다 제치고 우리가 1호로 생긴 것도 뿌듯하지만 충남도민체전에서도 서산시가 3연승으로 우승기를 가져왔다. 아직 그 뒤로 깃발을 가져간 곳이 없다. 이제 2025년이면 우리 서산시에서 충남장애인체육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체육은 즐기면서 하는 것이다. 즐기는 자 앞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재간이 없다. 우리 장애체육인 모든 분이 함께 어울려 즐기고 뛰고 웃으며 최선을 다한다면 4연승도 무난하리라 본다.

덧붙이자면 안타깝게도 인근 천안, 아산, 홍성에도 있는 장애인전용체육관이 우리 시에서는 아직 없다. 대회를 하더라도 한두 종목은 규격에 맞는 시설이 없어 인근 홍성으로 가야 할 처지다. 지금 시작해도 빠듯한 실정이다. 다행히 당선인 공약에는 들어가 있어 희망적이다.

우리 시에서 가장 먼저 장애인체육회가 생겨 다른 시군보다 앞서갔는데…. 이제는 다른 곳에서 먼저 장애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

참고로, 장애인체육관이 특수종목 중 잔디경기장에서 규정된 수의 볼을 작은 볼에 가까이 굴리는 경기의 론볼, 땅 위에서 펼쳐지는 컬링 '보치아', 소리가 나는 공을 상대 팀 골대에 넣는 시각장애인 스포츠 골볼 등이다. 우리 시에서 어떠한 종목이든 다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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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도민체전 서산시 3연승 우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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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간에는 "일반체육관에도 장애인이 쓸 수 있도록 장소를 비워뒀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을 하고 있지 않다, 장애인들 몇 명이 시설을 이용하겠냐" 한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서산의 인구 중 10%인 약 1만 명이 장애인이다. 1인 1운동을 통해 생활체육으로 즐기며 건강한 삶을 살아갈수록 하는 것이 우리 체육회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생각할 때는 '여기 체육관, 같이 쓰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배드민턴만 보더라도 비장애인과 코트가 다르다. 아홉 개 코트는 비장애인, 두 개 코트는 장애인이 쓴다고 가정해보자. 그들(비장애인)은 파워풀하게 치고, 이쪽(장애인)은 휠체어 타면서 또는 좌식배드민턴을 하면서 코트를 내리고 운동을 한다. 아마도 그들은 운동 같지도 않은 운동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주 웃음거리가 된다고 (장애인들)생각한다. 그런 의미다.

우리 장애인들은 주로 좌식운동을 한다. 일반 운동장 코트를 비워준다고 하더라도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보여질 것이고, 불쌍하다고, 짠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장애인들은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쳐다보지?'라며 한번 간 사람도 더는 안 갈 거다.
체육관이 지어진다면 장애인분들이 자기네들 편안한 시간에 마음 맞는 사람과 경사로 있는 체육관에서 자유롭게 운동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장애인만 쓰는 게 아니다. 노인분들도 쓸 수가 있다.

우리는 모두 예비 장애인이다. 특별히 사고로 인해 돌아가시지 않는다면 인생에서 한번은 반드시 찾아오는 게 장애다. 그렇다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아닌 바로 우리 부모님, 자식, 그리고 바로 자신을 위한 시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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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청남도장애인체육대회 배드민턴 선수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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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들이 마음 편히 운동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리며, 서산시에서도 장애인체육관이 속히 건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주십사 부탁드린다. 또한 언론이나 시민들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 드린다.

늘 '운동이 최고의 복지'라고 말하고 다닌다. 장애인들도 일반인과 똑같이 차별 없는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즐거운 삶을 영위하길 기원한다. 그 여건을 만들어 주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서산시장애인체육회, #황선철수석부회장, #장애인들과걷는길, #장애인체육지도자, #서산시장애인체육관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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