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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아네 마을 가는 길

아비아네 전통마을
 아비아네 전통마을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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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비제국의 수도 이스파한에서 이틀 밤을 자고 이제 떠나야 한다. 다음 목적지는 카샨이다. 중간에 조로아스터교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 아비아네(Abianeh)를 들러야 한다. 아비아네는 카르카스 산(3,899m)자락에 있는 마을이어서 해발이 2,235m나 되는 산촌이다. 이스파한에서 아비아네를 거쳐 카샨으로 가는 길은 사막의 연속이어서 별로 볼 것은 없다.

그러나 아비아네는 전통마을이고, 카샨은 역사도시여서 꼭 들러야할 관광지다. 중간에 나탄즈(Natanz)라는 중소도시를 지나게 되는데, 그곳은 이란의 핵기지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스파한에서 아비아네까지 거리는 160㎞ 정도다. 마지막에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2시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고갯마루의 카라반사라이
 고갯마루의 카라반사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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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우리는 9번 도로를 타고 이스파한 시내를 벗어난다. 그리고 샤힌 샤흐르(Shahin Shahr)를 지나 7번 도로를 만나 나탄즈 방향으로 들어선다. 샤힌 샤흐르는 1960년대 후반 이스파한의 위성도시로 건설되었고, 현재는 정유, 전자, 항공 등 첨단산업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더 나가 이스파한 공대와 산학협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7번 도로에 들어서면서 고도가 차츰 높아진다. 그것은 자그로스 산맥의 끝자락을 넘어가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먼 산위로 하얀 눈이 보인다. 우리는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어간다. 길 건너편으로 폐허가 된 카라반사라이가 보인다. 나탄즈를 지나 한잔(Hanjan)에 이른 다음, 우리는 서쪽 산 속으로 들어간다. 점차 길이 나빠지고 고도가 높아진다. 그렇지만 길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을 볼 수 있다.

은행, 박물관, 식당, 호텔, 마스지드까지 있어

아비아네 마을 지도
 아비아네 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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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마을 이름이 야란드, 바르즈, 타레, 아비아네다. 그러므로 아비아네는 산골 마을 중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마을 입구에 도착을 하니 입장료를 받는다. 언덕을 넘어 마을로 들어가니 길가에 붉은 황토 벽돌로 지은 집들이 즐비하다. 아비아네에는 160가구 3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러므로 160채 정도의 집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길가에서 눈에 띄는 건물은 은행, 박물관, 식당, 호텔, 마스지드다. 아비아네 민속박물관이 있는데 문을 닫았다. 우리가 내린 곳은 마을의 서쪽 주차장이다. 이곳에 있는 서문을 지나 동문까지 마을의 중심도로를 따라가며 아비아네의 역사와 전통을 살펴볼 것이다. 대표적인 광광자원이 조로아스터교 불의 사원 하르팍(Harpak), 자메 마스지드, 순교자 마스지드, 전통 가옥, 공중목욕탕이다. 가볼 수는 없지만 마을 외곽의 사산시대 성채도 중요한 볼거리다.

화덕에 빵굽기
 화덕에 빵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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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깐 식당에 들러 화덕에 구운 라바쉬(Lavash) 빵을 구입해 간식으로 먹으며 걷는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과 함께 동쪽으로 걸어간다. 그런데 여인네들이 머리와 몸에 걸친 꽃무늬 스카프가 눈에 띈다. 흰 바탕에 붉은 장미꽃을 염색한 천인데, 이것을 머리에 쓰고 목을 여민 다음 상체까지 덮었다. 이곳에 사는 여인들 외에 관광객도 스카프를 쓴 채 구경을 다닌다.

불의 사원과 자메 마스지드가 가까이 있어

불의 사원 하르팍
 불의 사원 하르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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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팍 불의 사원은 길 위에 있다. 그러므로 건물의 아치를 통해 사람들이 통행하게 된다. 아치 위에 불의 사원 하르팍이라고 적혀 있다. 사산시대 불의 사원으로 근래까지 명맥을 유지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승리의 불이 타오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죽은 사원이 되어 관광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외관만 볼 수 있을 뿐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다음으로 만나는 건물이 푸르잘라(Purzala) 마스지드다. 이 마스지드는 사파비시대 만들어졌으며, 기도실 밖으로 개방된 베란다가 있는 게 특징이다. 다음으로 만나는 두드러진 건물이 자메 마스지드다. 자메 마스지드는 말 그대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중심사원이다. 그래선지 입구의 문 장식이 독특하다. 우리의 꽃살문과 유사하다.

자메 마스지드
 자메 마스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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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살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안에 상감장식 문이 또 있고 그 안에 기도실이 있다. 상감장식 문은 당초문양과 나스탈릭 글씨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원래 있던 문이 고장 나 1933년 교체되었다고 한다. 문 안쪽의 기도실은 관광객에게 개방되지 않는다. 기도실에는 셀주크시대인 1084년 만들어진 목재 민바르가 있다고 한다.

자료 사진을 보니 호두나무로 만들었고, 조각이 화려하다. 또 쿠파체의 글씨가 있다고 하는데 확인이 어렵다. 목재조각은 기도실 천정에도 새겨져 있다고 한다. 기도실의 크기는 가로 12m 세로 6m의 직사각형으로 기도시간에만 개방된다. 마스지드의 한켠에는 공예품점이 들어서 있다. 목공예, 금속공예, 유리공예품이 있는데, 아무래도 목공예 제품이 가장 우수해 보인다.

아비아네 전통가옥
 아비아네 전통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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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아네의 전통가옥은 대개 2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여름과 겨울을 쾌적하게 지내기 위해서다. 추운 겨울에는 1층에서 살고, 더운 여름에는 2층에 살도록 만들어졌다. 1층에는 이완 형태의 문을 만들고, 2층에는 베란다를 만들어 공기소통을 자유롭게 했다. 문은 나무로 만들고, 조각을 통해 예술성을 높였다. 가장 오래된 집인 코네(Kohneh) 하우스의 문은 셀주크시대인 1142년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안쪽으로 더 가 만난 것은 공중목욕탕이다. 공중목욕탕은 사파비시대부터 카자르시대까지 많이 만들어졌다. 지금은 사람들이 떠나 운영되지는 않는다. 그 때문에 열탕의 상층부 유리 덮개 부분이 다 떨어져 나갔다. 우리는 열탕의 내부를 돔형 지붕에서 열린 덮개를 통해 들여다본다. 내부 타일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돔형 지붕은 열기를 한곳으로 모아 배출할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공중 목욕탕
 공중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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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 가운데로는 인위적으로 수로를 만들어 사람들이 그 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식수는 별개의 도자기 항아리에 넣은 다음, 수도꼭지를 달아 조금씩 사용하고 있다. 수로 옆에서 설거지를 하는 소녀를 볼 수 있었다. 이 물은 상류에서 물레방아를 돌리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곳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동서로 길게 발달한 마을 아비아네, 볼수록 생활의 지혜가 느껴진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맘 후세인 순교 마스지드로 간다. 3대 이맘 후세인의 순교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만든 사원이다. 그래선지 이곳에는 이라크 전쟁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이 순교 마스지드에서는 전방 조망이 아주 좋다. 앞산에 눈이 하얗게 덮였고, 산자락으로 오래된 성채도 보인다. 자료를 보니 사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나와 있다. 

앞산의 성채
 앞산의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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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의 성채는 팔라하무네(Palahamuneh)성이다. 마을 뒤쪽 산중턱에도 두 개의 성채가 있다. 서쪽의 것은 팔라(Pala)성이고, 동쪽의 것은 헤르다(Herdah)성이다. 이들 성에서 성벽과 망루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아비아네 지역은 카비르사막을 통해 호라산(Khorasan)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으로 전략적 중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곳곳에 이렇게 성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비아네 토박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아비아네 토박이 할머니들
 아비아네 토박이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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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으로 아비아네 사람들은 중세 페르시아어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사산시대 언어로 현재는 아미아네 방언으로 불린다. 그들이 이처럼 전통적인 언어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외부와 고립된 상태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차로 1-2시간이면 카샨과 이스파한에 닿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군사적인 일이 아니면 외부로 나갈 일이 없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아비아네 사람들은 땅을 매매하는 일을 금기시했다. 그래서 땅을 판 자는 배신자로 여겨졌다. 그리고 여자들이 외지인들과 결혼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또 여자들을 늦게 결혼시켜 산아제한 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그것은 어려운 환경에서 지나치게 인구가 느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삶과 언어 등에서 아비아네 사람들의 동질성이 생겨났고, 그것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아비아네 마을 뒷산의 성채
 아비아네 마을 뒷산의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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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을을 나오며, 들어갈 때 보지 못한 것을 하나라도 더 보려고 노력한다. 마을 아래로 시내가 흐르는데, 그 주위로 버드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또 이곳 사람들이 이슬람 축일인 아슈라를 성대하게 기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슈라에 동원되는 원통형 관 나흘을 보관하는 장소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비아네에서 조로아스터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슬람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아비아네를 떠난다. 다음 목적지는 카샨이다. 길은 7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어진다. 카샨은 카비르 사막 변두리에 발달한 오아시스 도시다. 카샨에서는 역사성을 가진 저택과 핀 정원(Fin Garden)을 살펴볼 예정이다. 이들 건축 중 브루제르디(Brujerdi) 저택은 19세기 후반 카자르시대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핀 정원은 사파비시대부터 카자르시대까지 문화유산이다.


태그:#아비아네, #전통마을, #전통가옥, #사원, #중세 페르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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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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