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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마을 성당 앞에서
▲ 스페인 시골마을 성당 앞에서
ⓒ 이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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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뇨의 <연금술사>라는 책을 좋아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지라고 생각만 하던 나에게 정말로 나의 이상을 실행 할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는 먹을 것과 물만을 얻기 위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산티아고는 더 큰 세상을 그리고 그가 아직 보지 못한 다른 세상을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아버지가 주신 금화들로 양들을 모아 양치기가 되어 오롯이 자기 자신만의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거침없이 실행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 세상 밖으로 뛰쳐 나갔다.

고통스러운 일이었겠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후련하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향한 설렘도 있지만, 결단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산티아고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자신은 절대로 떠나지 못했다. 그는 안정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산티아고를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2016. 2.11. 목

굉장히 오랫동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제 마음을 정하려고 한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내리는 이 결정을 믿고 나아가기로 말이다. 내가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는 것은 나는 그런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삶의 "표지"임에 틀림없다.

내 인생에서는 반드시 안정을 버리고 Comfort zone을 떠날 용기가 있는지에 대한 시험이 있을 것이고 나는 그 시험에 통과 할 때까지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에 머무를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에 책임을 다하기로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임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 잃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이 한 몸 힘껏 비틀어 짜낸 마지막 결단의 발악으로 내 두 발로 이 Comfort zone에서 나가보리라. 두렵다. 굉장히 두렵다. 다시 돌아왔을 때 지금보다 못한 상황에 있을까봐 두렵다.

그렇게 사는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증명하는 시간이 되어버릴까봐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다른 삶의 지혜를 보물을 내가 찾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양치기가 되어 보물을 찾아 미친 듯이 사막을 헤맸던 것처럼, 나도 미친 듯이 걸어 볼 작정이었다. 걷기를 시작하자마자 난관에 빠졌다. 내 몸에 달린 이 두 다리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걷고 나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긴 길을 걷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잘못이였다. 한국에서 온 이 불쌍한 달팽이는 걸은지 삼일만에 포기를 선언하고야 말았다.

2016.3.20. 일요일, 까미노 삼일째

왼쪽 발 어딘가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 산에서 탈이 나지 않아 다행이지. 알베르게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혼자 힘으로는 걸을 수가 없었고 같이 온 순례자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밖에서 쓰러지듯 들어오는 나를 알베르게 주인 아주머니의 친구 아주머니가 보시고 약을 가져와 내 발을 아주 부드럽게 만져 주셨다. 술 냄새 풍풍 풍기며 내 발을 문질러 주는 아주머니의 손길에 나는 알 수 없는 감정들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겨우 걸은지 3일 밖에 안되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내 옆의 다른 순례자가 더 이상 걷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했지만 알베르게 아주머니들은 여기서 며칠만 더 쉬면 나을 테니 다시 걸어가라고 하신다. 

화가 난다. 나는 항상 내 일은 내가 결정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고 아주 용감하게 이 길을 걸으러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이 길에서 나는 나 자신을 믿지를 못했다. 두려워 하지 않았어야 했다.

눈 덮인 산, 보이지 않는 표시, 무용지물이 된 핸드폰, 지도도 없고, 방향감각도 없이 7시간째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눈밭, 신고 갔던 5년 된 내 러닝화가 수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져 눈에 젖어 퉁퉁 불어버린 발이 금방이라도 동상에 걸릴 것만 같던 추위에서 나는 극도로 불안해 하며 살기 위해서는 혼자가 되면 안된다고, 누군가를 꼭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몸을 망가뜨려 가면서 다른 사람의 페이스에 나를 맞추었고 3일째에는 무릎까지 나가버리고 발까지 망가져 버린 것이다. 화가 났다. 너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나에게 물으며 소리 없는 통곡을 했다.

나는 더 이상 이곳을 걷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과감하게 떠나야겠다고 결정했다. 이제 이 여정을 끝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멀리 와버린 이 외딴 곳에서 나는 길을 잃어버린  혼란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스스로를 바로잡을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내일도 같이 걷자고 격려하는데 그들의 말들이 다 부질없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노에 휩싸인 나는 그날의 치욕을 견디지 못해 입고 있던 모든 옷과 속옷 양말까지 쓰레기통에 모조리 집어넣었다. 다시는 이 길을 걷지 않으리라.

그렇게 나는 까미노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아침이 오질 않길 기도하며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분노와 뭔지 모를 이상한 치욕스러움에 치를 떨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알고 있었을. 내가 그 길을 결국엔 완주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른 사람보다 두 배나 더 긴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엔 해낼 거라는 사실을... 내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며 산티아고에 도착한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순례자 사무실로 달려가는 내 자신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앞으로 내가 만날 더 큰 역경과 아픔을 딛고 엄청난 응원과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그 길을 걸어낸다는 것을 나는 알았을까.. 결국 나는 다시 걸었다. 다음날 아침 모두가 떠난 알베르게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나를 다시 일으켜준 첫 번째 천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첫 번째 천사는 바로 나의 가족들이었다. 나의 이 여정을 지구 반대편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그들이 바로 나의 천사였다. 내가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준 천사들이 바로 나의 가족들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모두가 떠나고 없었다. 아니, 사실 애써 모른 척을 했다. 모두가 새벽같이 일어나 씻고 먹고 짐을 싸 나갈동안 나는 그들을 외면했다. 듣고 싶지도 보고싶지도 않아 침낭속에서 고요가 찾아올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고요함이 찾아오자 한쪽 팔을 뻗어 습관처럼 핸드폰을 체크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내 몸을 일으켜 밤새 시끄럽게 떠들던 나의 가족들이 남긴 글들을 보았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을까?

발이 조금 아프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여기저기서 응원을 하고 난리가 났다. 내가 자랑스럽다면서, 할 수 있다면서, 통장으로 응원비를 보냈다는 웅성거림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내가 있는 그 방은 너무나도 춥고 우울했지만, 가족들이 이야기 하는 그 카톡방에서 무한 긍정 에너지가 나에게 쏟아지는 것이었다. 나를 얼마나 믿어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고, 나의 도전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화면속 그곳은 내가 있는 곳과는 너무 나도 다른 밝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다시 걷겠다고.. 이제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은 포기와 절망으로 힘든 나를 믿어준 천사들에 대한 보답이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절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믿어준 그 천사들을 위해 나는 그 믿음에 대한 보답을 꼭 하리라 다짐하였다. 그날 하루는 알베르게에서 쉬고 다음날 아침 천천히 발을 딛어 절뚝거리며 신발과 스틱 그리고 우비를 사서 바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혹시라도 통증이 더해져 또 못걷게 될까봐... 그래서 그 날은 5킬로도 채 걷지 않고 다음 마을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나에게 진짜 까미노는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걷는 길,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이제 정말 나 자신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긴 길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모두 감내하며 가야 하는 무거운 길, 나는 사실 그 길이 걷는 내내 무서웠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는 막연한 불안을 그대로 안은 채 스틱과 함께 걸어 나아갔다. 나는 그때 몸은 어른이었지만 정신은 걸음마 수준의 어린아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무서웠다. 혼자였기에 무서웠고, 언제 어떤 일이 나를 덮칠지 모르기 때문에 무서웠다.

내가 앞으로 내딛는 걸음 한발 한발은, 그것 자체로 아주 부담스러웠고 고통스러웠으며 그곳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었을 뿐이였다. 그리고 그건 바로 내가 세상을 살아온 방식이기도 했다.

쉽게 두려워 하고, 못할거라고 생각하고, 도망부터 가버렸던 지난 날들을 떠올리면서도 그래 죽어도 여기서 죽으리라. 발이 부서져도 이곳을 걸어내겠다고 다짐하며 천천히 또박또박 네 발로 걸어나아갔다.

한발 한발 신중하게, 아픈 왼발이 못하겠다고 주저앉지 않도록 달래가듯이.. 이 길은 이제 나를 위한 길이 아니라, 나를 믿어준 천사들을 위한 길이니까... 한국에서 온 바보 달팽이는 이미 도망가고 없어진지 오래였다.

까미노가 나에게 준 것들

나는 결국 800km를 멋지게 걸어냈다. 물론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힘든 마음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작스러운 폭설을 만나 모든 교통이 통제가 되었고 버스로는 10분도 채 못가보고 혼자 내려 눈보라를 뚫고 다기 걸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또 너무 힘들어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까지 갔다가 이건 아니지, 라는 마음에 다시 버스를 탔던 지점으로 돌아가 그 전 마을부터 다시 걷기도 했다.

순례자들이 가장 많이 납치를 당한다는 아스토르가 가는 길에서 체코 여자아이와 단둘이 서로를 지켜주면서 걸었었고, 체력이 바닥나던 어느 날 친절한 알베르게 아저씨의 유기농 야채요리 덕분에 나는 그 다음날 정말로 건강하게 산티아고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길을 잃었을 때마다 나보다 걸음이 빨랐던 다른 순례자에게 전화를 걸어 위기에서 잘 탈출 할 수 있었고, 혼자서 언덕을 넘다 뭔가에 홀린 듯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홀로 빠져 이상한 마을에서 밤새워 벌벌 떨며 울면서 잔 적도 있었다.

내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상황들, 여기서 모두 나열 할 순 없지만 분명 까미노는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두려움을 이기고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길 바란다. 


태그:##산티아고, #순례자, #까미노, #800KM, #염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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