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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오픈하우스 펴냄)는 월드음악평론가 황우창이 들려주는 음악 에세이다. 저자는 올해 4회로 방송 15주년이 되는 KBS라디오 <세상의 모든 음악> 작가를 시작으로 그동안 여러 방송사의 음악 진행자와 작가를 하는 틈틈 음악 관련 글을 써왔다고 한다.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 책표지.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 책표지.
ⓒ 오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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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회사에서 여러 월드음악 음반들을 기획하며 관련 지역을 여행하기도 하고, 음악인들을 만나거나 음악 관련 여러 국제행사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에는 이런 저자가 들려주는 특별한 음반과 특별한 곡, 그 사연이 담겼다.

저자는 중남미를 대표하는 유적이기도 한 마추픽추나 주변 여러 나라들이 돌아가며 식민 지배를 한 나폴레옹의 고향 코르시카, 수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렀다간 덕분에 130년 전통을 잇고 있다는 첼시호텔처럼 어떤 음악(인) 때문에 특별해진 특정 장소나, 그 지역을 바탕으로 탄생한 음악, 특정 음악(인)의 영향이 유독 컸던 지역 등을 음악과 연결 지어 들려준다.

'유럽 사람이었던 콜럼버스가 처음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래 라틴 아메리카, 특히 안데스 지역 사람들은 현재까지도 유럽에 착취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동안 불합리 속에서 유럽인들에게 자원과 노동력,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자유'를 빼앗기며 살았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부터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21세기 들어서도 '자유'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스페인어라는 공용어로 한데 묶였고, 안데스 문화권 등 지역에 따라 커다란 문화권으로 한데 묶였다. 이 언어와 정서는 국경을 초월하는데, 이런 이유로 아르헨티나 사람이 쿠바와 볼리비아에서, 베네수엘라 사람이 콜롬비아에서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때로 그 무기는 총칼과 농기구였다. 그리고 때로는 시와 노래였다. 칠레 가수 빅토르 하라는 노래로 불의에 대항해 싸운 사람이었다. 그의 노래에는 항상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하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이루기 힘든 이상이 담겨 있다.' - 30쪽.

시골 태생이라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라디오였다. 이런 내게 청소년기에 우연히 접한 안데스 음악 연주곡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는 안데스 또는 중남미지역을 꿈꾸게 했다. 이후 중남미 곡들이 속한 장르인 '월드음악'에 관심 두게 하는 계기도 됐다.

El Condor Pasa 이후 그동안 정말 많은 중남미 곡들을 만나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관심이 머물러 있는 것은 그쪽 음악들이고, 내 생애 반드시 가고 싶은 지역도 중남미, 특히 마추픽추가 있는 안데스 지역이다. 이런지라 이 책처럼 여러 곳을 소개하는 책에 중남미 지역이 소개되거나 하면 어떤 주제를 떠나 가장 먼저 찾아 읽곤 한다.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에서 중남미와 관련 음악들을 만날 수 있는 부분은 네 번째와 열세 번 째 글. 중남미 사람들의 정서와 정신, 식민지 역사와 군사독재로 얼룩진 현대사를 각각 들려준다.

메르세데스 소사와 함께 중남미 문화나 안데스 지역 음악을 이야기 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네 번째 글 주인공 빅토르 하라. 하지만 난 그의 곡들보다 El Condor Pasa와 비슷한 선율의 마토 그로소나 이뿌 등의 곡들이 더 좋다.

그런데도 빅토르 하라와 관련된 글들을 책이나 웹에서 어김없이 먼저 찾아 읽곤 하는 이유는 현대 중남미와 그쪽 음악들을 아는데 중요한 열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El Condor Pasa 때문에 막연하게 낭만스러운 풍경과 함께 꿈꿨던 중남미를 빅토르 하라 덕분에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연결 지어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초등학생 때부터 라디오를 끼고 산, '라디오키드'였다고 한다. 소년티도 벗지 못한 어린 나이에 우연히 접한 빅토르 하라를 접한 저자는 그의 노래를 듣고자 수많은 레코드 가게들을 헤맸던 사연을 들려준다. 또 빅토르 하라의 앨범 재킷 때문에 꿈꾸게 되었다는 마추픽추, 그로 상징되는 중남미 여러 나라에 굵게 새겨진 빅토르 하라의 음악 인생을 들려준다.

'아르헨티나는 군사독재 정부가 주동해서 포클랜드전쟁을 일으킨 나라라는 이미지뿐이었다.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 왜 영국을 지지하는지, 아르헨티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도 않다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대부분이 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십 대의 머리와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국제정세의 역학 관계가 엉켜있는 사건이 바로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졌고 군사독재 정부는 물러났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이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군사정부를 피해 떠났던 망명생활을 끝내고 귀국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공연 실황 중에 <삶에 감사합니다>를 남겼다.

일본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마르코가 헤매던 나라 역시 아르헨티나였다. 19세기에는 세계 최대의 강대국이었고, 탱고의 고향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있는 도시라는 사실까지 더하면, 아르헨티나는 상상 그 이상으로 복잡한 나라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아르헨티나가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사람이었다.' -99~100쪽.

빅토르 하라의 조국인 칠레 민주화 운동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여러 나라들을 민주화로 이끈다. 아르헨티나 민주화 또는 현대사 그리고 음악사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들이 있는 메르세데스 소사다. 이 책 열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런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 <Gracias a Ia vida(Philips)>(삶에 감사합니다)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모든 것이 변해도 변치 않는 당신'이란 제목으로 메르세데스 소사를 소개하며 '수양 어머니'라고 소개한다. 그만큼 좋아하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악 인생을 포클랜드 전쟁, 군사독재로 얼룩진 아르헨티나 현대사 그리고 안데스 또는 마추픽추로 함께 묶이는 중남미 사람들의 정신과 함께 녹여 들려준다. 그래서 빅토르 하라편과 이어 읽으면 훨씬 와 닿는다.

평소 즐겨듣는 곡들은 월드음악들이다. 아마도 청소년기 우연히 선물 받은 그 테이프에 El Condor Pasa가 없었다면 내 음악적 취향은 달려졌을지도 모르겠다. 월드음악을 즐겨 듣는 이유가 있다. 빅토르 하라와 메르세데스 소사를 통해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많은 것들을 알게 된 것처럼 세계 여러 나라들의 문화와 역사, 정서 등을 알게 되거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랫말 자체만으로 어떤 노래인가 쉽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 곡들과 달리 외국 곡들은 듣는 것만으로 어떤 곡인지 이해가 쉽지 않다. 그 곡이 그 곡 같은 혼동도 일쑤다. 그냥 듣는 것과 알고 듣는 것, 그 차이는 상당하다. 그래서 노래 한 곡에 얽힌 것들을 좀 더 알고자 많은 자료들을 뒤지곤 한다.

덕분에 "책 한 권 써 보는 것이 어떤가?" 권고까지 받을 정도로 정말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그런데 외국 곡들, 특히 월드음악에 관심을 둬본 사람들은 종종 느낄 것이다. 유명한 팝송이나 음악인들에 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렇지 못한 음악인들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는 것을. 특히 월드음악 관련 정보는 거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지라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처럼 어떤 음악과 음악인들을 그 지역과 연결 지어 들려주는 책들은 언제나 반갑다. 아마도 월드음악 정보에 목마름을 느낀 사람들에게는 고맙고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황우창) | 오픈하우스 | 2016-12-14 정가 15,000원.



나는 걸었고, 음악이 남았네 - 세상의 끝에서 만난 내 인생의 노래들

황우창 지음, 오픈하우스(2016)


태그:#월드음악, #빅토르 하라, #메르세데스 소사, #군사독재, #황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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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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