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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해 권력을 얻은 환관 조고(趙高)는 자신에 대한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이세(二世) 황제 호해(胡亥)에게 사슴을 바치며 "이것은 말(馬)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임금이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그대는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자 조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어떤 신하들은 조고가 두려워 사슴을 말(馬)이라고 답하였다. 사실대로 사슴이라 답한 신하들은 조고에 의해 이러저러한 이유로 처형을 당하였다.

이것이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유래다. 권력을 쥔 자가 제멋대로 국정을 농락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이다. 2014년 우리나라의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을 정도로 지금의 시국을 잘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왕권시대가 아닌 민주공화국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불행하게도 지록위마의 조고를 다시 만나게 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40여 년간 유신독재를 거쳐 지금껏 한시도 권력에서 비껴선 적이 없는 독보적인 권력 지향의 인물이다.

그는 유신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는 등 독재정권을 위한 일에 발 벗고 나섰으며 1991년 법무장관 시절엔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또 그는 수구보수 정권의 재창출을 위해 초원복집 사건 등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법사위원장을 역임하며 탄핵에 앞장섰다. 그가 조작한 사건들은 최근 진행된 재심에서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들은 있지만 정작 가해자인 김기춘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으며 사과나 반성의 뜻도 밝히지 않았다.    

이처럼 김기춘은 거짓을 참으로 둔갑시키고 진실을 은폐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무려 1만여 명에 이르는 문화예술인들을 블랙리스트로 분류하였고 관료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눴으며 세월호의 진실을 감췄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의 뒷전으로 밀려난 허울뿐인 민주공화국이 되어 버렸다. 어둠이 빛을 이기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온 국민은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한목소리로 적폐청산과 함께 새로운 대한민국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김기춘과 같은 부역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기춘은 청산되지 못한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이자 부끄러운 현재적 현실인 것이다.

김기춘은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최순실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제시한 한나라당 후보 검증 청문회 당시의 동영상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까 제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라는 답을 토해내고 만 것이다. 그가 드디어 법망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동안 그는 '반공'이라는 왜곡된 이념과 공포의 '법치'를 내세우며 권력에 부역했고 스스로 권력이 되었다. 모두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안녕을 위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추구한 것은 자신의 권력과 사익뿐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박근혜와 공생관계가 되었고 충실한 부역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국가는 국민과 멀어지고 공권력은 공포가 되어 갔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진나라가 15년 만에 무기력하게 멸망한 것과 같이 박근혜 정부도 몰락했다. 김기춘 자신도 구속됐다. 하지만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의혹들이 남아 있다. 그 의혹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어두운 역사의 반복을 막는 일이며 우리가 살고 싶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일이다.

대한민국호는 현재 선장이 사라진 위기상황이다. 그런데 선장 대신 키를 쥐게 된 임시선장의 모습이 영 마뜩잖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려는 모습보다는 위기를 과장하고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는 독이 묻어 있고 그의 행동에는 칼이 숨어 있다. 심지어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나눠 대결도 부추긴다. 본인도 현재의 위기를 초래하는 데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은 듯하다. 대단한 착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국민으로부터 탄핵됐다. 여기에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수많은 정책들이 포함된다. 그러므로 위안부 합의나 사드 배치 문제 그리고 국정교과서 등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정책들은 전면 재검토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 판단은 국민이 선택한 차기 정부에 맡기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도 황교안 권한대행의 역주행은 멈추질 않는다. 그는 국민에게 위안부 합의와 관련된 비판 발언을 자제하라고 한다.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에서 되돌릴 수 없는 상태까지 추진하겠단다. 그리고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은 온 힘을 다해 저지한다.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아니 박근혜 정부의 연장일 뿐이다. 우리 국민은 황교안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 이것이 더 이상의 박근혜 코스프레를 중단하고 자중해야 할 이유이다.


태그:#지록위마, #황교안, #박근혜 탄핵, #코스프레, #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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