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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들은 울면서 공부하지만 핀란드 학생들은 웃으면서 공부한다"는 말에 홀려 이곳, 핀란드로 왔다. 무엇이 '핀란드식 교육(Finnish method)'을 '핀란드식 교육'으로 만드는지 확인해보고자 말이다. 핀란드 교육 현장에 직접 들어가 보고 들은 내용들을 기록했다.

핀란드 투르쿠에 위치한 파티넨 초등학교. 전교생은 179명이다.
▲ 파티넨초등학교 핀란드 투르쿠에 위치한 파티넨 초등학교. 전교생은 17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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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인 투르쿠(Turku)의 최북단에 있는 파티넨(Paattinen) 마을로 향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들어가자 낮고 너른 건물이 눈에 띈다. 오늘의 목적지인 파티넨 초등학교다. 마을에서 유일한 엘리베이터를 가진 2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전교생은 179명. 1,3학년을 제외하곤 모두 단일학급이다. 한 반당 최대 인원은 30명이고 2학급이 있는 학년은 18명 내외의 학생이 함께 공부한다.

시험의 목적

6학년 영어 수업에 들어갔다. 영어 수업에서는 제2국어인 스웨덴어 선택 여부에 따라 한 학급을 두 반으로 분반했다. 성적으로 반을 나누는 일은 없다. 영어 교사 리타(Rittaa)의 인사말이 끝나기 무섭게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든다. 어리둥절한 내게 리타는 서로 유인물을 서로 나눠주려는 것이라며 웃어 보인다.

수업 내내 학생들의 손은 바삐 움직인다.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은 학생은 16명 중 2명뿐이다. 핀란드는 '수업의 주체'로서 학생의 역할을 강조한다. 교사가 혼자 이야기하는 시간은 3분을 넘기지 않는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계속해 질문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답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아이패드로 영어 단어 시험을 치른다. 학생들이 입력한 답안은 웹서버를 통해 교실 터치스크린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다.
▲ 영어시험 아이패드로 영어 단어 시험을 치른다. 학생들이 입력한 답안은 웹서버를 통해 교실 터치스크린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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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도 시험은 있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업 시작과 동시에 치러진 단어시험. 그러나 터치스크린에 뜬 시험 결과에는 정답률이 없다.(아이패드로 시험을 치러 교실 모니터에서 즉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문항별 득점 여부만 표시할 뿐 총 몇 개를 맞혔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 이름을 가릴 수도 있다.

리타는 많이 틀린 문항을 클릭해 오답을 함께 확인한다. 학생들의 답안이 모두 뜬다. 누가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리타는 'very(매우)'를 추가해 오답이 된 답안을 보며 "의미를 더 강조했다"며 칭찬한다. 기계가 가려내지 못한 정답을 찾아내기도 한다. 시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은 누가 얼마나 맞혔는지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왜 틀렸는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다.

단 한 명을 위한 특별수업

영어 교실 맞은편에 조용한 교실이 있다. 파티넨 학교는 한국의 여느 초등학교와 비슷하게 반별 교실이 있어 수업이 시작될 때쯤엔 아이들 말소리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곳은 예비종이 쳤는데도 조용하다. 특별 필요 교사 엘리사(elisa)만이 교실로 들어선다.

핀란드는 기본 교육 법령에 모든 학교가 특별 필요 교사(Special Needs Education Teacher, 이하 특별교사)를 배치하도록 명시했다. 특별교사의 역할은 특별 필요 학생(special needs students)을 가르치는 것이다.

한국에선 특별교사를 자칫 장애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다수의 학생을 동시에 가르치는 담임교사의 한계를 보충해주는 역할이다. 담임교사가 일일이 도와줄 수 없는 부분을 특수교사가 맡는다.

특수교사의 시간표에는 매시간 학년이 표시되어 있다. 시간마다 특수교사가 해당 학년 담임 교사를 찾아가 특별 도움이 필요한 아이가 있는지 물어본다. 담임교사가 학생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을 알려주면 그 학생들을 데려와 1 대 1 혹은 1대 소수로 가르친다.

학생 수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 때론 아무도 없을 때도 있다. 한국의 '나머지 반'과 비슷하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못하는 학생을 낙인 찍는 '나머지 반'과는 다르다. 엘리사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오는 곳이 아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반적인 학업 성취도가 높은 아이가 찾아오기도 한다. 이전 수업에서 명확히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을 되짚어주며 학생들이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1학년을 위한 시간. 1학년 교실을 다녀온 엘리사가 학생 3명을 데려왔다. 동물 잠옷과 비슷한 옷을 입은 요나스는 나를 보자마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인사를 건넨다. 어디서 배운 건지 영어로 자기소개까지 한다.

엘리사는 책상을 붙이고 아이들을 불렀다. 오각형 모양의 책상은 배치에 따라 교실 구조를 다양하게 바꿀 수 있게 해준다. 이 교실에는 각 과목을 위한 다양한 교구가 마련되어 있다. 엘리사는 여러 가지 철자 쌍이 적힌 시계 모양 판을 집어 들었다. 시곗바늘을 돌려 바늘이 가리키는 곳에 있는 철자가 들어있는 단어를 찾아내는 게임이다.

찾아낸 단어의 음절만큼 동그란 말을 나눠준다. 'ST'가 걸린 카렌이 고민하는 사이 재미난 단어를 찾아낸 요나스와 린다가 키득거린다. 요나스는 교사 엘리사에게 귓속말로 '벌거벗은'이란 뜻의 단어를 말한다. 각자 순서대로 단어를 찾아야 하는 활동이기에 카렌이 듣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새로운 단어를 찾아낸 카렌은 음절만큼의 말을 가져간다.

이 활동의 목표는 단어의 음절을 구분하는 것. 음절을 정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핀란드어를 쓰고 말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긴 단어가 많아 음절을 정확히 끊어내지 못하면 탈락하는 철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제 막 핀란드어 수업을 듣기 시작한 1학년 학생들 중 음절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이 이 교실을 찾아 온 것이다. 이처럼 특별교사는 학생들이 취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알려준다.

특별 필요 교사가 학생이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 특별교사는 1:1 혹은 1:소수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 특별지도 특별 필요 교사가 학생이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 특별교사는 1:1 혹은 1:소수로 학생들을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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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교사에게 중요한 업무가 하나 더 있다. 매년 전교생을 대상으로 읽기, 쓰기, 수학 시험을 실시한다. 학생들의 기본 언어 수준과 수리 능력을 알아보고 발음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다.

읽기 시험의 경우, 학생들이 주어진 문단을 읽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하고 1분 동안 얼마나 많은 분량을 읽어 내는가를 평가한다. 특히 갓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을 위해선 학기 초 2주 정도 1학년 교실을 직접 방문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아는지 파악한다.

엘리사는 핀란드어에 필요한 연속하는 R이나 강한 S를 발음하지 못하는 아이들 명단을 보여줬다. 이제 11명 중 3명이 정확히 발음할 수 있게 됐다. "발음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의사소통에 불편이 따르고 때때로 아이들이 그걸 가지고 놀리기" 때문에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임용 후 줄곧 특수학교에서 일했었다. 정년을 8년 앞둔 어느 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자 이 곳, 파티넨 학교로 옮겨온 것이다. 이전 학교에서 오로지 하나의 단어만 아는 학생을 만났다고 한다. 그 학생에겐 책상, 선생님, 나 모든 게 '거시기'로 통했다. 머리 속에서 단어와 철자가 마구잡이로 섞여 단어를 인지하고 조립하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엘리사는 꾸준히 그 학생과 함께 공부했다. 단어 쓰기가 가능해지더니 차츰 단어를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일반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한 엘리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사 뒤엔 그 학생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도록 뒷받침해주는 체계적인 학교 시스템이 있었다. 이 시스템은 '모든 학생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핀란드의 교육 정신 덕에 세워질 수 있었다. 설령 그게 단 한 명을 위한 수업일지라도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4월에 3회 핀란드를 방문한 뒤 썼다.



태그:#진짜교육, #평등교육, #평등을위한차별, #교육제도, #핀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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