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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체력을 고려해 관광은 반나절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베네치아 관광에서 돌아와 바닷가에 가기 전 낮잠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있다.
 아이들의 체력을 고려해 관광은 반나절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베네치아 관광에서 돌아와 바닷가에 가기 전 낮잠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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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에서 모래성 쌓기

아이들은 베네치아 시내 관광을 다녀 온 후 캠핑장에 돌아와 아빠와 함께 바다로 나갔다. 바다가 짠 건 당연한 이치이나 짠물에서의 물놀이를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은근히 풀장에서 놀 것을 권해봤지만 그래도 되도록 자연에서 놀도록 해야 한다는 지당한 말을 하며 현이 아버진 풀장이 아닌 바다로 갔다.

빨래와 요리를 하며 간간이 영양가 없는 뭔가를 하고 있는데 온몸에 모래를 묻힌 현이 오더니 아빠가 엄마를 데리고 오라고 했단다. 이유인즉 멋진 모래성을 만들었는데 엄마가 꼭 보셨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바닷가로 나가보니 저쪽에 정말 낮고 넓은 모래성이 있었다. 모래 놀이도구가 없는 고로 주로 터널을 이용해 궁전을 만들어 놓았다. "조개의 흰색 때문에 성이 훨씬 아름답네"라며 대충 성의없이 칭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에서 곰곰이 생각하니 성의없이 칭찬할 거라면 아예 안 하는 것도 좋았겠단 생각이 든다. 그럼 어떻게 말을 하느냐.

"현이 만드느라 힘들었니? 뭘 만들 때 가장 재미있었니? 만들고 보니까 뿌듯하지? 내일 또 만들거니?" 등 아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끌어내는 질문을 하는 게 나았겠단 생각을 한다.  왜 난, 어른은, 교사는 아이들의 어떤 행위에 대해 늘 총평을 해야 한다는 촌스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들과 함께 지는 해를 배경으로 바람, 모래의 촉감을 느끼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자격이 있어 평가를 했던지 후회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무 데크를 따라 가면 해변이 펼쳐진다.
 나무 데크를 따라 가면 해변이 펼쳐진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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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해변에 나가 모래 놀이를 했다. 점점 작품이 그럴 듯 해진다.
 연이어 해변에 나가 모래 놀이를 했다. 점점 작품이 그럴 듯 해진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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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먼지 덕에 천식이 재발했다

베네치아의 공기는 나의 천식을 재발시키는 데 매우 적합했다. 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바닥은 고운 모래였고 커다란 소나무들이 구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그간 바닥에 떨어진 솔잎이 바스러져 바람이 불 때마다 그것들의 합작품인, 미세먼지가 발생했다. 기도가 좁아지는 느낌이 나고 기침 횟수가 늘어나자 감정이 예민해졌다.

특히 베네치아 관광을 다녀오며 날씨가 더워 컨디션이 좋지 않자 숨 쉬기가 여간 거북한 게 아니었다. 다행히 비상약을 가져왔기에 기도확장제를 썼더니 통증도 가라앉고 호흡하기도 수월한 느낌이 들었다. 베네치아에 와서 지속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엄살을 부린 덕에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와 풀장을 오가는 것부터 낮잠 재우는 것까지 모두 남편이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집에 돌아오는 얼굴에서 기쁨으로 들뜬 그런 느낌을 자주 보았지만 함께 하지 않았기에 그냥 그들만의 아름다운 추억이겠구나 생각했더니 오늘은 다채로운 일들이 많아 일일이 나에게 고주알 미주알 말한다.

미세먼지가 많았던 캠핑장. 가끔 토끼가 돌아다녔다.
 미세먼지가 많았던 캠핑장. 가끔 토끼가 돌아다녔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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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숯불 위를 걷다 폭발한 부성애

남편의 말론 어제 같이 바닷가로 가기 전 백사장 초입에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걸어들어 가고 있었단다. 한낮의 태양은 모래를 뜨겁게 달구어 놓아 정말 한 걸음, 한 걸음 가시밭을 걷는 기분이었다나 어쨌다나. 여하튼 현은 종종 걸음으로 고통을 참으며 먼저 앞서 가더란다. 중간 부분까지 가면서 남편이 생각했더란다. "이렇게 뜨거운데 현이는 어떻게 갔지?", "쭈가 좀 힘들겠군" 하며 끝까지 걸어가 그제야 쭈를 돌아보니 역시 쭈는 저만치서 울고 있더란다.

숯불만 아닐 뿐이지 온도는 숯불의 그것이 분명한 백사장을 다시 되돌아갔던 이유는 어여쁜 딸을 끔찍이 사랑하는 아빠의 부성애가 순간 폭발하였기 때문이란다. 그게 아니었으면 숯불을 다시 가 쭈를 안아 올 수 없었을 것이란다. 발바닥이 아프다며 쭈는 길게 울고 현은 잠시 울고 난 후에야 물놀이를 시작했단다. 그날 세 부녀는 물놀이를 시작하기 전 바다를 향해 긴 울음을 울었고 유난히 바닷물은 뜨끈했단다. 그리고 바닷물 속에서 쭈가 달짝지근한 스킨십을 하며 "나갈 땐 아빠가 신발 갖다 주세요, 맨발로 못 걸어가요, 알았지요?"라고 부탁하여 아빠로부터 "오케이"를 얻어냈단다.

#. 해파리로부터 공격받은 세 부녀

그런데 한순간이었단다. 동시에 세 부녀가 통증을 느꼈고 주관적인 놀람보다는 객관적으로 아파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단다. 해수욕을 하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이쪽을 쳐다보았고 울어대는 아이들을 물가에 두고 아빤 백사장 입구로 숯불을 밟으며 뛰어가 신발을 가져왔단다. 긴 울음으로 바다와 작별한 후 현은 신발을 신고 앞서서 걷기 시작하는데 남편이 뒤에서 보니 현이 아픈 부위에 뜨거운 모래를 주워 바르며 가더란다. 심각한 상황에 웃기더란다.  바로 저것은 경주 이씨 가문에서 내려오는 그 '자가치료'란 치료법일 것이다.

나도 언젠가 천식과 치질을 자가치료 하시는 아버님을 적이 뵌 적이 있다. 그 도술은 시집살이 20년은 되어야 초급부터 훈련받을 수 있다기에 아직 전수받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그 피를 이어받은 현은 이 고통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그 도술이 발현되고 있는 것이었다. 쭈는 신발을 신었음에도 그간 꾸준히 늘어난 몸무게와 나이는 생각하지 않고 애기처럼 징징대며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했단다. 그러나 아빠는 쭈를 안아주지 않고 매정하게 혼자 걸어 오랬단다. 그래서 난생 처음 해파리 같은 것에 쏘인 다섯 살 쭈는 징징 울며 숯불 위를 걸어 집으로 왔다.

귀여운 쭈의 자태는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데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보니 곧이어 나타난 쭈의 앙증맞게 작은 눈에 눈물, 바닷물, 눈곱 등이 들러붙어 있었다. 서둘러 쏘인 부위를 탄산수(현이 아부지가 식수로 샀던 12병 중 마지막 1병)로 씻어내고 만병통치약 '호랑이 기름'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5분 뒤 해파리 독이 빠진다고 말해주었더니 곧이곧대로 듣고는 울다 카운트다운하다 울다 카운트다운 하다가를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니 딴 짓을 하며 웃고 있다. 여기서 현이를 집고 넘어가야 하는데 역시 자가치료의 효과는 컸던지 "현이도 사실은 아픈데 울지 않고 참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아빠의 말에 눈을 잠시 찡그렸을 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자가치료. 역시. 꼭 전수받아야겠다.

#. 다섯 살 쭈가 물에 뜬 역사적인 날

바닷물에서만 오줌 싸면 공평치 않기에 해파리 독이 빠지자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풀장으로 갔다. 그리고 비가 왔다. 나는 빨래를 걷고 의자를 접어 비에 맞지 않게 치우고 난 후 물놀이 가신 현이아부지가 사온다는 피자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설거지하러 갔다가 살짝 풀장을 엿보니 저쪽 구석에서 세 부녀가 끌어안고 놀고 있다. 그 후로 비가 그쳤고 세 부녀가 돌아왔다.

현이가 먼저 흥분해서 말한다. "엄마, 엄마, 쭈가 오늘 팔에 튜브 빼고 수영했어요, 내가 가르쳐줬어요"라고 말했고 남편은 "현이가 정말 열심히 가르쳐줬어요"라고 말했다. 종합해 보니 튜브를 벗고 물놀이를 한 쭈가 대단한 게 아니라 그렇게 가르친 현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세상은 이기적 인간을 중심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역사에 남을 일을 베네치아에서, 5살짜리가, 그것도 과체중의 쭈가 해냈다는 사실이 기특하여 쭈를 보니 눈에 자긍심이 가득하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린다. 쭈의 눈이 향한 곳은 튜브를 뺀 허전한 팔뚝이다. 우린 같이 씨익 웃었다. 현이가 자신의 지도력을 인정받고자 내일부터 쭈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수영을 가르칠까 살짝 겁이 난다. 농담. 

이 장소에서 쭈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팔튜브 없이 물에 뜨게 되었다.
 이 장소에서 쭈에게 많은 일이 있었다. 무엇보다 팔튜브 없이 물에 뜨게 되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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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태그:#리씨네 여행, #맞벌이 가족여행, #유럽캠핑, #이탈리아, #베네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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