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댄스타임 중 잠시 쉬는 시간이다. 스텝들이 앞에 서 있다.
 댄스타임 중 잠시 쉬는 시간이다. 스텝들이 앞에 서 있다.
ⓒ 이성애

관련사진보기


#. 해피 디스코 타임

베네치아 캠핑장의 규모와 상상초월 수준에 쪼그라든 폐가 부풀어 오르기도 전에 생각지도 못했던 '해피 디스코 타임'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둑한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이 대부분 부모의 손을 잡고 행사에 참여하러 떠나는 것을 바라보며 유료인 줄 알고 리씨네 엄마, 아빠에겐 말도 안했던, 의젓한 딸의 마음에 구김이 갈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상황에서 나에게 요구되는 만큼의 용기를 내어 행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늦게 상황을 알게 된 아빠는 카메라를 가져오겠다며 다시 텐트로 돌아갔다. 내가 먼저 분위기를 파악할 요량으로 레스토랑을 돌아 풀장 뒤쪽 행사장으로 갔다. 다국적 부모들은 이미 아이들이 앉은 뒤쪽에 의자를 놓고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대 위엔 2명의 사회자가 번갈아 3개어(이탈리아어,  영어,  독어)를 사용하여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무대 아래엔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지금은 '해피 디스코 타임'이라 보조 진행자들의 율동을 따라하며 신나게 춤을 추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행사 막바지에, 다른 아이들이 이미 땀을 뻘뻘 흘리며 흥분이 고조되어 있을 때 합세했기에 발동을 걸기가 좀 애매했다. 그래도 최대한 그들의 흥분한 상태에 보조를 맞추려면 엄마인 나의 역할이 있다.

현과 쭈를 계속 앞으로 밀어 넣으며 춤을 추라고 독려를 하는 사이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먼저 나서서 율동을 따라 했다. 조금 머뭇거리며 수줍어하던 현이는 간간이 뒤에 선 엄마를 돌아보았다. 그때마다 더 신나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엄마를 보더니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겅중겅중 뛴다. 내 엉덩이 뒤에 앉아 있는 '여인'들이 "저 아줌마는 아시아 어디에서 날아 온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난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하며 의식적으로 음악과 춤에 집중하려 했다. 원래 낯선 세계를 탐색하고 적응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현이는 어제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라 그런지 이상하게도 탐색 단계를 생략하고 땀을 흘리며 춤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 지난겨울, 우리의 댄스 타임

지난겨울 우린 춤을 자주 췄다. 나의 육아 원칙 중 중요한 하나는 '깊고 충분한  잠'이다. 둘째가 혼자 걷게 될 즈음 퇴근하면 서둘러 밥을 먹인 후 짬이 나는 대로 활발한 신체활동을 시키는 것이 일상이었다.

날이 따듯해지면 퇴근하며 곧장 김밥을 사서 실개천 잔디밭에 가곤 했다. 자동차에 늘 싣고 다니는 돗자리를 꺼내 잔디밭에 펴고 나는 책을 읽고 아이들은 뛰어다니며 놀았다. 지나가는 개를 쫒아가거나, 쫒다가 심심해져 나에게로 오면 책 읽기를 멈추고 발라당 누워 '비행기'를 태워주곤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지쳤던 마음과 유난히 파랗던 하늘이 생각난다.

또 여름엔 여벌의 옷을 가지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며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픽업해 곧장 시청 분수에서 물놀이를 하기도 하고. 따뜻하고 서늘한 계절엔 퇴근하며 텃밭에 갔다. 나는 텃밭을 돌보고 아이들은 텃밭 옆 시골학교 운동장에서 심심하게 뛰어놀다가 도시락을 함께 먹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유난히 지난해 겨울은 해가 빨리 지고 날씨가 추워 야외 신체활동을 충분히 시킬 수가 없었다. 자구책으로 생각한 것이 잠자기 전 '댄스타임'을 갖는 것이었다. 라디오에서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막춤을 추고,  발라드가 나오면 발레를 흉내 내고, 이도저도 아닌 음악이 나오면 셋이 기차를  만들어 지칠 때까지 돌고 돌았다. 그 시간은 대부분 8시 즈음이었고 조명은 은은하게 켜놓았다. 아래층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 앞부분만을 이용해 춤을 춰야한다고 말은 했지만 얼마나 조용했을까 싶다.

춤추는 내내 나는 "리듬을 타, 리듬을 타라고"를 반복하여 외쳤다. 지난해 겨울 아이들은 '리듬'이란 낱말을 가장 많이 들었고, 리듬을 타도록 강요당했다. 그 덕분인지 어쩐지 오늘 이역만리 해피디스코타임에서 현은 춤을 즐겁게 추었다. 리듬에 맞춰서. 

#. 멋진 어린이 선발대회

멋진 어린이 선발대회가 시작된다. 중앙 빈자리로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멋진 어린이 선발대회가 시작된다. 중앙 빈자리로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 이성애

관련사진보기


몸을 푼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해피디스코 타임이 끝났고 뒤이어 10분 후 '멋진 어린이 선발대회'같은 것을 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현과 쭈는 계속해서 다음 행사도 보고 싶다고 한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하필 가장자리이다. 그것을 그대로 둘 리 없는 열혈 한국 엄마는 "현아, 중간으로 가, 어서"라고 하여 중간 자리에 앉도록 시켰다. 하나 둘 멋진 어린이 선발대회에 참여할 아이들이 모였고 뒤에서 보니 검은 머릿결은 우리 아이 둘 뿐이다.

낯설어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때론 따가운 눈총을 받을 만한 장소에 내 발로 찾아왔기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몇곱절 받아 마땅하다. 이럴 때 아무렇지 않은 듯 그들처럼 휴가를 즐기기 위해선 표정과 몸짓에서 자연스러움이 배어나도록 설정이 필요하다. 유난히 설정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던 곳으로 기억된다. 그냥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쳐다보는 눈빛이겠지만 웃지 않는 모습이어서 그런지 호의적인 느낌은 없었다.

계속 쳐다보지나 말 것이지. 내가 할 수 있는 표정이란 그냥 미소를 짓고 가끔 360도 둘러봐 주는 정도. 많은 미소 중 비주류, 소수에 속하는 자가 짓는 미소는 가장 위대하다는 자뻑과 함께. 어색하게 시종일관 스마일~

멋진 어린이 선발대회에 출전한 아동은 9명이었다. 독일 3명, 네덜란드 4명, 이탈리아 1명,  스코틀랜드 1명이었다. 4살부터 8살까지 모두 여자 아이였다. 분명 옆집 덴마크 아저씨 말론 덴마크 사람이 이 캠핑장의 50%를 차지한다고 했음에도 덴마크 출전 아동은 없었다. 아이들은 대회에 참가 신청을 한 후 낮 동안 엄마와 함께 연습했는가 보다. 제법 그럴듯하고 자연스럽게 무대 좌우로 워킹을 한 후 자리로 돌아가 포즈를 잡는 폼이 미스월드 선발대회다.

사회자 2인은 출전 아동 나라 말로 간단한 인터뷰를 했고 2차로 장기자랑이 시작됐다. 그런데 8세 짜리 독일 아이가 발레학원에서 발표회를 하며 수없이 연습했을 작품을 음악에 맞춰 정말 멋지게 해 버린 통에 뒤로 8명의 장기는 상대적으로 '장기'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 아이가 1등을 했고 2등은 4살짜리 최연소 참가자가, 3등은 노래를 부른 스코틀랜드 아이가 했다. 내 마음이야 신체 비율 완벽하고 동양적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우리 딸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싶었지만 현이의 장기는 세계 만민 7세 여아 중 30%의 어린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 그냥 구경만 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모든 어린이가 결과 발표를 앞두고 무대에 올랐다.
 모든 어린이가 결과 발표를 앞두고 무대에 올랐다.
ⓒ 이성애

관련사진보기


등위를 발표했다. 참가한 것만으로도 박수쳐주고 싶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왕관을 썼다.
 등위를 발표했다. 참가한 것만으로도 박수쳐주고 싶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왕관을 썼다.
ⓒ 이성애

관련사진보기


이곳엔 상대적으로 네덜란드 사람이 적음에도 꼭 '내 자식에게 다양한 무대를 경험하게 하겠다'고 무대에 여럿을 올려놓는 풍차나라 부모의 열정도 참 대단하다. 한국 부모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또 한 번 했다. 내 앞에 있던 커트머리 시크한 스타일의 여인은 대회와 대회를 관람하는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시끄럽고 요란하게 호응하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여하튼 현은 춤바람이 단단히 났다. 정확히 말하면 디스코 바람이 났다. 내일 또 춤을 추겠다고 했다. 난 솔직히 오고 싶지 않다.

덧붙이는 글 |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태그:#리씨네 여행, #맞벌이 가족여행, #유럽캠핑, #이탈리아, #베네치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