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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신한 낙엽 융단 위를 걷는 맛이 특별한 도봉산 둘레길.
 푹신한 낙엽 융단 위를 걷는 맛이 특별한 도봉산 둘레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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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개통한 북한산 둘레길은 1구간 소나무 숲길부터 21구간 우이령길까지 다양하고 많은 코스가 있다. 북한산 둘레길은 서울과 경기도를 걸쳐 뻗어있는 북한산뿐만 아니라 도봉산 자락의 샛길을 연결하여 조성했다. 이 가운데 도봉산 둘레길은 왕실묘역길, 방학동길, 도봉옛길 등 총 8개 구간이다. 이 둘레길 가운데 18코스인 도봉옛길은 그 이름 때문인지 이맘때쯤 늦가을에 꼭 걷고 싶은 길이다.

이름도 정다운 서울 속 시골 마을 무수골, 선조들이 친필을 남기며 칭송한 도봉동 계곡, 도봉산의 멋진 화강암 암봉들도 감상하고, 개성 있는 사찰들을 지나며 다락원까지 약 3.5km의 부담 없는 길이다. 지나온 길이지만 희한하게도 새롭게 보이는 길을 되걸으며 다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로도 좋다. 도봉옛길은 도로가 없던 옛 시절 주민들이 오가는 중요한 왕래길이었다고 한다. 명칭에 걸맞게 오래된 길의 정취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무수골'에 담긴 두 가지 사연

도봉산을 병풍처럼 두른 양지바른 시골 마을 무수골.
 도봉산을 병풍처럼 두른 양지바른 시골 마을 무수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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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에 속한 덕에 서울 속 시골 마을로 남은 무수골을 통해 도봉산 둘레길이 이어진다.
 국립공원에 속한 덕에 서울 속 시골 마을로 남은 무수골을 통해 도봉산 둘레길이 이어진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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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1호선 도봉역(2번 출구)에서 내려 도봉 1동 주민센터로 가면 무수골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무수천길이 보인다. 화강암 돌산인 도봉산을 닮아 암반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무수천 산책로를 따라 20여 분을 걸으면 도봉초등학교를 지나 무수골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 배추, 무, 채소 등을 기르는 텃밭이 넓게 펼쳐져 있어 시골 동네에 온 듯 마음이 푸근해졌다. 뒤로 도봉산의 암봉과 능선이 멋지게 펼쳐져 있는 텃밭엔 체험학습을 하는지 아이들이 흙과 채소들을 열심히 주무르고 만지며 뭐가 그리 좋은지 꺄르르 웃었다. 

보기만 해도 귀엽고 흐뭇한 장면을 보다보니 도시의 어린 아이들에게 흔해진 질병 아토피는 흙을 멀리하면서 생겼다는 어느 책 내용이 떠올랐다. 나도 그랬지만 어릴 적 동네 개천가나 뚝방에 나가 놀면서 흙을 만지고 흙 위에서 뒹굴면서 자연스레 면역력이 생기게 된다는 것. 흙이 더럽다며 심지어 놀이터의 모래도 치워버리는 아파트의 아이들은 너무 깨끗한 나머지 오히려 면역력이 약해졌고, 아토피 같은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잃고 말았다는 주장이 그럴 듯했다.  
   
무수골 동네는 어떻게 도시화되지 않았을까 궁금했던 차에 집 앞 평상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에게 다가가 물어 보았다. 국립공원 안에 속해 있었던 덕분에 기적적으로 개발 바람을 피해 이렇게 텃밭이 많은 자연마을이 되었단다. 도심 속 보기 드문 마을 무수골은 도봉산 자락의 조용한 옛 마을로 서울 도봉구 도봉2동 104번지 일대의 마을이다. 무수(無愁)골 혹은 '무수울'이라고도 한다.

도봉산의 수려한 산자락 아래 풋풋하고 수수한 마을 풍경이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도심 속 농촌 마을이라 할 만했다. 햇볕이 따사롭게 비추고 아늑한 기분이 드는 동네다 싶었더니, 세종의 아홉째 아들인 영해군의 묘를 비롯해 여러 기의 왕족묘와 일반 묘가 가까운 언덕배기 위에 단아하게 자리했다.

세종 임금이 재위 당시 찾았다가 물 좋고 풍광이 좋아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 한 것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네 아주머니는 옆집 할아버지에게 들었다며 현대사의 비극이 담긴 무수골의 다른 뜻도 알려 주었다.

6.25 전쟁 당시 아군과 적군이 싸우다 죽은 시체가 동네 주변 개천과 계곡, 윗무수골이 있는 산자락에 '무수히' 많이 널려 있었다 해서 동네 이름이 무수골이라고 아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옛 정취를 간직한 숲길에서 마주친 무례한 등산객들

듣기만 해도 걸어보고 싶은 도봉옛길, 옛날 주민들이 이웃 마을로 갈 때 이용하던 길이란다.
 듣기만 해도 걸어보고 싶은 도봉옛길, 옛날 주민들이 이웃 마을로 갈 때 이용하던 길이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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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남의 무덤안에 들어가 유원지에 온 것 처럼 노는 무례한 등산객들.
 멀쩡한 남의 무덤안에 들어가 유원지에 온 것 처럼 노는 무례한 등산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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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골 마을을 지나면 길은 '도봉옛길'이라 쓰여있는 나무 관문과 함께 도봉산 둘레길이 시작된다. 둘레길답게 급하지 않고 완만해서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산행길이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에 떨어져 내린 낙엽들에서 들려오는 사각 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고,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낙엽 융단의 푹신함이 걷는 즐거움을 돋운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 산속의 새소리, 낙엽소리를 뒤덮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가에 앉아 쉬거나 걷는 사람들 몇몇의 등산 가방에 달린 작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과 라디오 소리가 그것. 조용히 평화롭게 늦가을의 자연 속을 걷고 싶어 왔는데 왕왕 거리는 스피커 음악 소리는 날카롭게만 들려왔다. 한 중장년 아저씨는 고속도로 휴게실 앞에서 테이프를 파는 상인처럼 신바람 트로트를 너무 크게 틀어 놓고 앉아 쉬고 있었다.

화도 나고 타인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태도에 놀랍기도 했다. 산행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런 비상식적인 현상에 만성이 됐는지, 뭐라 지적하는 사람이 없는 것에 또 놀랐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아저씨에게 소리 좀 낮춰 달라고 했다. 스피커를 켠 채로 걷는 사람들을 피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소리가 안 들리게 빠르게 걸어 멀찌감치 추월하거나, 길가에 앉아 스피커 소리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시끄러운 소음을 겨우 벗어난 기쁨은 얼마 후 길가의 오래된 무덤가에서 무참히 깨졌다. 주변 풍광이 좋은 양지바른 언덕배기 위에 자리한 무덤을 지키는 낡은 석물과 석등을 잠시 감상하려고 들어섰다. 후손들이 관리하는 게 분명한 멀쩡한 무덤 옆에 여러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예의 스피커 음악을 틀어놓고 화투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아저씨는 술 냄새를 지우려는지 무덤가로 가서 칵~ 소리를 내며 이를 닦았다. 경치 좋은 무덤가에서 잠시 쉬어가는 건 그러려니 하겠지만, 마치 유원지에 온 것처럼 놀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한 두 사람이 아니다보니 차마 말을 못하고 이어 산행길에 나오는 도봉산 탐방 지원센터의 직원에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신고를 했다. 도봉 옛길을 다 걷고 다시 출발지였던 무수골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주머니에게 이런 일을 물어보니, 당신도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단다.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든 기성세대인데 '나이를 헛먹은 사람들이 참 많구나'하는 탄식만 새어 나왔다.   
  
선조들이 칭송한 아름다운 계곡가, 도봉동

절에 사는 견공은 스님을 닮아가는 것 같다.
 절에 사는 견공은 스님을 닮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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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계곡가 큰 바윗돌에 새겨진 오래된 선조의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다.
 수려한 계곡가 큰 바윗돌에 새겨진 오래된 선조의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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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옛길엔 도봉사, 능원사, 광륜사 라는 절이 있어 옛길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짖거나 까불기는커녕 스님처럼 점잖은 백구와 황구가 맞아주는, 고려 4대 임금 광종 때 창건되었다는 고찰 도봉사. 8대 임금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이 함락된 뒤 국사(國事)를 돌봤던 곳이라는 안내 게시판을 보며 경내에 들어가면 보기 드문 커다란 대형 목탁이 눈길을 끈다.

이름 하여 '소원성취 목탁'이라고 쓰여있어 피식 웃음이 났다. 심신건강, 자손번창, 시험합격, 사업번창 등등의 소원을 이뤄 준다는 거대 목탁 앞에 서니,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려 힘들게 도를 쌓고 불교를 일으켰던 부처님이 보셨으면 뭐라 했을까 궁금했다.    

고찰 도봉사와 달리 근래에 생겨났다는 능원사는 한술 더 떠 입구의 기둥과 처마까지 온통 황금색 단청으로 화려한 이색적인 사찰이었다. 본전이라는 용화전은 말할 것도 없고, 종각을 포함한 모든 건물과 산문까지도 화려한 황금색이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덴 성공했지만, 처음 보는 화려한 절의 외양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예전 중국에 여행을 갔을 때 '오체투지'(五體投地,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뻗으며 배를 땅에 깔고 다리를 쭉 편 후 머리를 땅에 닿도록 하는 절)를 하며 홀로 길을 가는 아저씨와 그의 가족들을 만난 적이 있다. 대체 무엇을 기원하기에 그리 힘들게 길을 가는지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물어 보았다. 그의 딸을 통해 들은 대답은, 부처님을 향한 공경과 불도(佛道)의 추구, 그리고 마음의 평화였다.

추색이 완연한 도봉계곡가의 옛 도봉동 자리.
 추색이 완연한 도봉계곡가의 옛 도봉동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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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은 도봉계곡가의 도봉동(道峰洞)으로 이어진다. 동(洞)이란 예전엔 동네 이름이 아닌 '아름다운 골짜기'를 가리켰다. 도봉동은 도봉산 탐방로의 주요 지역인 동시에 계곡이 수려한데다 도봉서원(道峯書院)이 있었던 유서 깊은 공간이다.

조선시대 도봉서원은 학문을 정진하는 장소뿐 아니라 풍류를 즐기던 장소이기도 했다고 한다. 도봉계곡 일대는 소금강이라 부를 정도로 경관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지금도 은행나무, 단풍나무 등 가을색이 완연한 나무들 아래로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쉬어가고 있는 곳이다.

이를 먼저 알아본 사람이 정암 조광조다. 조광조는 그곳의 경치를 몹시도 좋아해 자주 찾았고, 조정에 나가서도 공무를 마치고 나면 수레를 몰아 찾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이곳을 좋아한 이가 바로 우암 송시열이다. 그래서 도봉서원은 조광조와 송시열을 함께 모시고 있다. 그렇게 선현의 배향과 교육에 힘쓰다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리게 되었고, 위패는 땅에 묻었다가 후일 1972년 도봉서원 재건위원회에 의해 복원되었다.

이곳에는 주자학(朱子學)의 대가이며 서인 성리학의 종주였던 우암 송시열 (1607~1689)이 도봉서원을 참배하고 서원 앞 계곡가에 남긴 유려하고 선명한 글씨가 유명하다. 도봉계곡 옆 큰 바위에 써있는 '도봉동문(道峰洞門)'이란 글자가 그것으로 도봉의 동구문이 열리는 곳, 즉 도봉산의 입구라는 의미다. 도봉 옛길엔 이렇게 오랜 세월 이어진 명산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클래스'가 느껴지던 할아버지의 시조창

은석암 능선에 오르면 나타나는 도봉산의 멋들어진 암봉들.
 은석암 능선에 오르면 나타나는 도봉산의 멋들어진 암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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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전망대에 앉아 시창을 하는 할아버지 덕분에 늦가을 도봉산이 더욱 운치깊어 졌다.
 능선 전망대에 앉아 시창을 하는 할아버지 덕분에 늦가을 도봉산이 더욱 운치깊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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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탄하고 완만했던 도봉산 둘레길은 다락원으로 가는 끝 지점에서 비로소 산길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급경사는 아니지만 제법 호흡이 가빠지는 은석암 능선길이 이어졌다. 힘들게 오른 오르막길은 늘 보상이 기다리고 있다. 솎아베기(간벌), 가지치기 등 사람의 손길로 더욱 근사해진 소나무들이 지키고 서 있는 능선 길 위로 올라서면 도봉산 주능선 일대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전체가 큰 바위로 이루어진 것 같은 도봉산의 암봉들, 선인봉·만장봉·자운봉 등이 멋들어진 자태로 줄 지어 서서 여행자를 맞이했다. 둘레길을 걷는 동안 위치와 방향에 따라 봉우리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자꾸만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고라니나 멧돼지가 뛰어나올 것 같은 우거진 숲 사이로 좁지만 정답기만 한 오솔길이 이어지는 은석암 능선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중저음의 낮은 목소리로 시조를 읊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산행 중 등산객들의 휴대용 스피커에서 들리던 시끄럽기만 한 음악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운치있는 곡조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봉산의 풍광이 잘 보이는 능선길에 나무 벤치가 놓여 있는 전망대가 나왔다. 한 할아버지가 멀리 암봉들을 보며 시창을 하고 있었다. 취미로 시조와 시창을 배우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노랫소리는 구수하면서도 진중하게 느껴지는 게 마치 대금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둘레길을 지나오며 봤던 어느 팻말의 시와 참 잘 어울렸다.

구름도 가끔
자운봉 꼭대기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는 때가 있다
바라볼수록
현기증 나는 저 봉우리
올라갈 길도 내려설 길도 없다
이 바위 저 바위
길을 찾다 그만
만길 벼랑에 갇혀
목숨 걸어야 길이 보이는
장엄한 도봉(道峰)
백금의 불꽃이 튀는
화엄의 바위산 있다.

ㅇ 도봉산 둘레길 18코스 (도봉 옛길) ; 1호선 전철 도봉역 – 무수천, 무수골 – 윗무수골 – 도봉사 – 능원사 – 도봉탐방지원센터 – 은석암 능선, 전망대 – 다락원 - 원점 회귀 (왕복 약 7km)

덧붙이는 글 | 지난 11월 8일에 다녀 왔습니다.



태그:#도봉 옛길, #도봉산 둘레길, #무수골, #도봉사, #도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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