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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면서 필연적으로 그들의 의지와 욕망을 담는다. 돈이 사람들의 손을 타면 탈수록 때가 묻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다 보니 말은 의미와 가치가 고정되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변모한다. 예컨대 이런 거다. 재봉틀이라는 말은 50년 전쯤에는 집안의 가보이자 대물림할 큰 재산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갑자기 구하려면 도대체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검색을 해봐야 할 지경이다. 때문에 과거에 재봉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좋다. 비싸다. 갖고 싶다라는 말을 연상했겠지만 지금은 골동품 내지 그게 뭐지 정도가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말은 그대로 있는데 세상이 변해서 말의 내면이 변모하는가하면 그 말을 쓰는 사람이 억지로 제 의도를 구겨넣어 말의 내면을 바꾸기도 한다. 요즘 그런 걸 프레이밍 혹은 틀짓기라고 한다던가.

언어 프레이밍은 난해한 작업이다. 왜냐? 말은 그야말로 카피레프트라 누가 어떤 표현을 어떤 식으로 쓰든 막을 길이 없다. 글 역시 세종대왕이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는 이상 누구라도 마음껏 사용하는 데 걸림돌은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쓰는 방식(문법)에서 한참 벗어나면 '틀렸다'는 판정을 받거나 '엉뚱하다'는 낙인이 찍힌다. 국어공부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도 기존의 말을 비틀어 제 의도대로 듣는 이의 마음을 끌고 오는 것. 그것이 성공한 언어 프레이밍일 터이다.

교묘하게 머리를 써서 술수를 부리는 경우도 있겠으나 요즘 대세는 막무가내 밀어붙이기다. 이 수법을 가장 많이 쓰는 집단이 '일베'로 통칭되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일부 구성원들이다. 그들은 '민주화', '홍어' 등의 말을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뜻으로 사용하면서도 전혀 주저함이 없다. 다행인 것은 그들이 말은 누가 부러 알려주지 않으면 '일베'의 구성원이 아닌 이상에는 접하기 어렵다는 거다. 한 동안 방송사마다 일베 이야기를 하지 않은 곳이 없더니 요즘 그들 이야기가 쑥 빠져버리고 나서는 존재감이 사라진 것만 봐도 큰 문제거리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상 어떻게 바로잡을까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이른바 말에 힘이 실리는 자들(언론인 혹은 정치인)의 입니다. 목청껏 떠드는 왜곡된 말은 걸러내기 쉽다. 오히려 강조하지 않고 평범하게 말하면서 악의적인 의도를 실어 나르는 게 찾아내기도 어렵고 원래 뜻으로 바로잡기도 힘들다. 게다가 때를 놓치면 악의적인 의도가 진실이 되어 말을 통해 세상을 떠 돌아다닌다.

'색깔논쟁'이란 말이 그렇다. 주로 보수세력들이 진보인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려고 무작정 북한과 연결시키려는 수작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옳은가? 색깔이라는 단어는 그렇다치고 '논쟁'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논쟁이라는 말은 입장이 다른 양쪽이 다투어야 할 논란의 여지가 있음을 상정한다. 응당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할 문제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세력의 북한연결설은 대부분 밑도 끝도 없는 생트집이다. 생트집이 아니라면 북한 연결설은 법적 혹은 사회적으로 일정한 결과를 내야 하는데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그들이 사랑해마지않는 국가보안법은 명절에 국끓여 먹으려고 놔두었던가? 그들 스스로도 근거없음을 알기에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거다. 그런 걸 논쟁이라고 불러서는 곤란하다. 떼쓰기 혹은 억지라고 불러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는 그런 수작을 매카시즘이라고 불러왔다.

요즘 듣게 되는 왜곡된 말 중에는 '애국'이 있다. 주로 수구세력이 누군가에게 호소를 하면서 자기편이 되는 기준이라고 들먹이는 말이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동조해야 애국자고 애국자는 자신들에게 동조해야 한단다. '애국'이라는 말에 '들먹이다'라는 말과 붙이는 게 껄끄러울 만큼 애국은 소중한 말이다. 그 말에는 한 나라를 살리기도 혹은 없애버릴 수도 있는 힘이 있다. 그 나라 구성원이 얼마나 애국을 하느냐에 따라 국가가 유지되느냐 허물어지느냐가 결정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엄중한 가치가 실린 만큼 가려써야 하고 엄격히 적용해야 그 가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귀한 말을 사적 집단의 편가르기에 동원하는 것도 잘못인데 편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일조차 자기 변명 일색이다. 그들이 쓰는 애국에서 공익은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애국의 의미가 바뀐 게 아니라면 이건 억지이고 변질이다.

말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말은 많지만 입에서 나왔다고 다 말이 아니고 손으로 썼다고 다 글이 아님을 매일 깨닫는다. 가려듣고 골라 읽음이 절실한 시절이다. 또한 우리 스스로도 말의 뜻과 가치를 살리지 못하는 떠벌이 노릇을 하지는 않는지 늘 살펴야 한다. 떠벌이는 예나 지금이나 참 없어 보인다.


태그:#메카시즘, #프레이밍, #틀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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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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