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KBS 내에서는 길환영 사장의 퇴진과 KBS 공정성·독립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보도본부 북한부 금철영 기자는 22일 오전 사내 게시판에 쓴 글에서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금철영 기자의 동의를 얻어, 그가 쓴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말]
KBS 기자협회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열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 개입 등을 규탄하며 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KBS 기자협회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취재를 위한 최소한의 인력은 제외하고 무기한 뉴스 제작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 KBS 기자협회 "청와대만 바라보는 길환영 집에 가라" KBS 기자협회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열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 개입 등을 규탄하며 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KBS 기자협회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취재를 위한 최소한의 인력은 제외하고 무기한 뉴스 제작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KBS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 수 없는 것은 작금 진행되고 있는 초유의 보도기능 마비사태가 어떤 결말로 귀결될 것인지, 세월호 참사 이후 KBS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얼마나 무너졌는지, KBS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차디찬 냉소의 시선과 생각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언급한 '사사건건 개입'의 실체와 진실은 무엇인지,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KBS 앞에 찾아와 길 위에 내팽개친 채 풀어내지 못했던 한이 얼마 만큼인지, KBS호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도무지 다 열거할 수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앞날을 예견할 수 있기는커녕, 현재에 대한 냉정한 평가조차 힘든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절뚝거리며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KBS의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기자들이 취재원 앞에서 다시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어뜨리지도, 돌팔매질이 두려워 카메라의 KBS 로고를 감추는 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을. 그리고 믿고 있습니다. 기자협회가 벌이고 있는 제작거부가 출발점이라는 것을... 그리고 외치고 있습니다. 길환영 사장의 퇴진이 그 밑거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일상화 돼 있었던 KBS 기자들에 대한 모욕과 폭언

사장께서는 왜 내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하냐고, 전임 보도국장의 부적절 발언논란과 자의적 판단에 기초한 기자회견이 이번 사태의 원인 아니냐고 생각하고 계신 듯합니다. 이미 사장께서는 기자협회와의 만남에서, 연이은 기자회견에서, 사원을 대상으로 한 특별담화에서도,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사장의 인식과 시각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다른 누구라도 그런 생각 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보도국장에 이어 보도본부장이 사퇴하고 부장, 팀장을 포함해 전 간부가 보직사퇴의사를 밝혔는데도, 현장의 기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반성한다며 선배들의 멍에를 짊어졌는데도 KBS에 대한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이 바뀌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녕 국민들에 각인돼 있는 KBS의 얼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길환영 KBS 사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에게 사과방문을 하고 있다.
▲ 두 눈 감은 길환영 KBS 사장 길환영 KBS 사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들에게 사과방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싫든 좋든, 지금 KBS를 상징하는 인물은 바로 길환영 사장님입니다.

길환영 사장님,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어느 특정인이나 단체의 폭로와 기자회견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매개체가 돼 그동안에 걸쳐 누적된 곪아왔던 KBS의 상처가 터진 것뿐입니다. KBS 기자들은 그동안 취재과정에서 멱살을 잡히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보도본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몇 번 문의'하셨다는 사장께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KBS 기자들에 대한 모욕과 폭언은 일상화 돼 있었고, 폭행당하고 카메라가 땅에 떨어지는 일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상흔은 사장 재임 시 제작된 '뉴스 신뢰도 영향력 시청률 1위 KBS뉴스' 포스터를 비롯한 숱한 허상에 가려져 왔을 뿐입니다.   

공영방송이자 국내 최대 언론사의 수장으로서, KBS 내부승진의 기록을 갖고 있는 사장께서는 과거 PD로서 프로그램 제작 시 멱살을 잡혀본 적 있으신가요? 뺨을 맞고 발길질 당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철탑위에 농성중인 우리 아빠 살려달라고, 그 얘기 좀 들어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마도 있었을 것입니다. 없다면 사장께선 시위현장에서 경찰 뒤에만 있었거나, 애써 울부짖는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면서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중의 하나라고 자신을 위안하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던 적은 있었을 겁니다.

사장께서도 느끼셨을 그 말할 수 없었던 자괴감,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기자협회의 이번 제작거부로 표출된 것입니다.

후배들이 제작 현장 떠난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보도본부의 일은 잘 모른다'면서도 '대통령 뉴스 20분 룰'을 보도국장에게 직접 언급했다면, 그것이 보도 관련 가이드라인이 아니고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실행에 옮겨야할 문제에 대해, 그 시점의 전후가 어떻든 청와대 핵심 당국자는 물론이거니와 국정원으로 판단되는 정보당국 관계자와도 통화했다면, 또 그 적지 않았을 유사한 통화들이, 얘기들이, 그 상황이, 그 모습들이 직간접적으로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전파되거나 각인됐다면, 그래서 결국 깊이 신뢰했었다는 전임 보도국장마저 '길 사장은 대통령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면, 공영방송 사장으로서의 처신에 정녕 흠결이 없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사건건 보도 개입' 문제가 불거진 것은 단순히 전임 보도국장 발언 때문에 일파만파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장께서도 잘 알고 계시듯 뉴스는 기자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현장에 누구보다도 신속히 도착해 차질 없이 방송할 수 있도록, 뉴스가 무사히 전파를 탈 수 있도록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거의 모든 직종 동료 선후배들의 피와 땀이, 그리고 자부심이 뉴스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 뉴스가 멈췄습니다.

총성이 빗발쳤던 이라크를 비롯한 숱한 전장에서, 피폭자까지 나왔던 원전사고 현장에서, 시신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전염병이 창궐하던 재난재해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취재하고 방송했던 모든 이들이, 그동안의 수많은 오욕을 참고 견디면서도 좋은 뉴스 만들어 보겠다던 KBS인들이, 바로 사장님의 후배들이 취재 제작의 현장을 떠난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방송, 거짓말하고 아부하는 방송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길환영 사장의 사퇴 조건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KBS 기자협회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열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 개입 등을 규탄하며 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KBS 기자협회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취재를 위한 최소한의 인력은 제외하고 무기한 뉴스 제작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 '반성합니다 KBS 뉴스' KBS 기자협회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열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청와대의 KBS 보도와 인사 개입 등을 규탄하며 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KBS 기자협회는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취재를 위한 최소한의 인력은 제외하고 무기한 뉴스 제작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제 사장께 묻겠습니다.

사장께서도 언급한 '20분 룰'이 상징하듯 대통령은 물론 강한 자, 가진 자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고 관대했으며 지나칠 정도로 많이 다뤘던 우리 뉴스가 약자들의 얘기는 외면하거나 '로컬시간대'에 미담사례로나 소개했다면, '우리 아이들 살려내라'는 가족들의 절규는 삭제되고 정작 그들과 대면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발언과 행사만 집중 부각돼 보도됐다면, 정부가 하는 일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또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비판적 보도는 삼간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했고 그래서 결국 우리 뉴스에서 사과보도까지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 책임은 과연 보도국장이나 본부장만의 몫이란 말입니까?

보도본부장과 국장이 사퇴하고 부장과 팀장들까지 보직을 내놓으면서 사장이 최종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이번 사태가 과연 보도본부에만 국한된 문제입니까? 아니면 KBS 전체의 문제입니까?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길환영 사장의 사퇴의 조건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답변해 주십시오. 결례가 되는 표현이 있었다면 용서를 청합니다.


태그:#길환영 사장 퇴진
댓글3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