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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슬기 간호사가 건강체크를 하고 있다.
 최슬기 간호사가 건강체크를 하고 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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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계세요?"

이상돈 광명시 철산2동장이 문을 두드리자 조금 뒤에 문이 열리면서 김 할머니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 할머니는 이 동장을 보자 반색을 하면서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어서 들어오라는 것이다. 

"할머니, 오늘은 손님을 모시고 왔어요."

이상돈 동장은 신발을 벗고 김 할머니의 단칸방으로 들어서며 붙임성 있게 말을 걸었다. 김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서는 이 동장의 손을 덥석 잡으며 반겼다. 28일 오전 10시 20분경이었다.

이날 이 동장과 함께 김 할머니를 방문한 이들은 전복희 철산2동 일일명예동장과 이미지 사회복지사, 최슬기 간호사였다. 최 간호사는 방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혈압기계를 꺼내 김할머니의 혈압을 쟀고, 혈당 검사를 했다.

"할머니, 당은 괜찮은데 혈압이 높으세요. 갑상선 약은 드시고 계시는 거죠? 잠은 잘 주무세요? 수면제는요?"

최 간호사는 계속해서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고, 할머니는 잠이 안 와서 수면제를 먹는다는 대답을 하면서도 잡은 이 동장의 손을 놓지 않았다.

"불편한 건 없으세요? 별 일 없으셨죠?"

이 동장이 김 할머니께 묻자 김 할머니는 보일러를 고쳤던 이야기, 냉장고 코드를 빼놓은 것을 모르고 서비스센터 직원을 불렀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동장은 할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가끔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94세인 김 할머니는 혼자 산다. 자식이 있지만 같이 살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동장과 사회복지사, 간호사가 가끔 들러서 안부를 묻고, 간단하게 건강 체크를 하고, 식사는 제때 하시는지, 생활하는 데 불편한 것은 없는지 확인한다. 이날 이미지 사회복지사는 김 할머니에게 딸기와 떡국떡, 발아현미를 선물로 드렸다. 떡국떡은 철산2동의 봉사단체 철2사랑회에서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마련했다.

아내와 자식들 가출... 거동이 불편한 이씨만 홀로 남아

복지동 현장방문에서 만난 이씨.
 복지동 현장방문에서 만난 이씨.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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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장이 다음에 방문한 곳은 이아무개씨의 단칸방. 역시 반지하다. 이 동장이 문을 두드리면서 "아무도 안 계시느냐"고 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두어 번 이상 묻자 안에서 그제야 인기척이 난다.

이씨의 단칸방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더러운 이불과 전기담요가 펼쳐진 방 한쪽에는 두레반상이 놓여 있었다. 상 위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지저분하게 놓여 있었고, 방바닥에는 빈 막걸리병이 있었다.

이 동장이 이씨에게 "집안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계셔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나무란다. 이 동장이 이씨를 나무라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이씨는 올해 갓 예순이 되었다. 몇 년 전에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이씨를 아내와 자식들은 홀로 남겨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홀로 남은 이씨는 단칸방을 제대로 치우지 않아 집안이 엉망이 되었다. 이씨가 식사를 제대로 못하게 되자 광명시 푸드뱅크에서 음식을 배달해주었지만, 삶의 의욕을 잃은 이씨는 집안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방치, 엉망이 되었다.

"냄새가 너무 역해서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동장의 말이다. 이 동장은 철산2동 바르게살기협의회에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봉사활동을 하라고 권유했고, 회원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지저분한 집안을 청소하고, 도배를 새로 했다. 그리고 연막소독까지 했다. 청소를 하러 나선 이들은 집안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오는 벌레들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바퀴벌레, 사슴벌레, 돈벌레 등등 집안에서 볼 수 있는 벌레들이 거짓말 안 보태고 '한 말'이 나왔단다. 그만큼 더럽고 엉망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해서 깨끗해졌는데 이씨는 다시 집안 청소에서 손을 놓고 있으니, 이 동장이 답답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이 동장은 3월에 연막소독을 한 번 더 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가스요금을 체납, 가스가 끊긴 상태로 난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30만 원의 가스요금은 바르게살기협의회와 철산2동의 봉사단체 '철2사랑회'에서 나누어 부담했다. 체납한 가스요금은 냈지만 이번 겨울을 나려면 가스요금이 더 필요했다. 가스요금은 30만 원이 선납됐다. 선납가스요금은 '광명희망나기운동본부'에서 부담했다.

이미지 복지사는 "가스요금 30만 원을 선납했으니, 추울 때는 전기담요와 함께 난방도 하라"고 이씨에게 알려주었다.

이상돈 철산2동장 "공황장애 김씨, 건강검진과 틀니 지원 예정"

철2사랑회에서 소외계층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마련했다.
 철2사랑회에서 소외계층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마련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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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장이 세 번째로 방문한 곳은 김아무개씨의 단칸방. 역시 반지하다. 김씨는 갓 쉰이 되었다. 10여 년 전에 택시기사로 일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쓰러졌고, 공황장애가 왔다. 2층 이상의 건물에는 올라가지 못하는 상태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아내와 딸은 2년 전에 가출했고, 김씨와 함께 살던 아들은 지난해 1월에 입대했다. 김씨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2만 원짜리 단칸방에 홀로 남겨졌다. 월세를 제대로 내지 못해 보증금에서 월세를 공제하고 있는 형편인데 그나마 1월이면 그것도 끝난다. 전기요금이 체납됐고, 핸드폰은 요금체납으로 끊겨 버렸다.

좋지 않은 건강의 후유증으로 이가 모조리 빠져버린 김씨는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손으로 입을 가렸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어줘야 하는데 부인과 딸이 연락이 되지 않아서 하지 못하고 있어요. 건강이 좋지 않은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의료기록이 없는 거죠."

이 동장의 설명이다. 이 동장은 김씨가 성애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해놓은 상태. 이 동장은 "건강검진을 받아서 근로능력을 확인한 뒤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게 하고, 군대에 간 아들이 의가사제대를 해서 아버지를 부양할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동장은 이가 전혀 없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김씨를 위해 틀니를 할 수 있게 철산2동 내에 있는 치과와 지원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동장은 2월에 아들이 휴가를 나온다는 김씨에게 "동사무소로 나를 만나러 오게 하라"고 신신당부하면서 김씨의 단칸방을 나섰다.

광명시가 종합 복지서비스인 '복지동(洞)'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복지동'은 동장과 사회복지사, 간호사 이렇게 3인이 1조가 되어 관내의 주민들을 방문하면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로, 광명시가 독자적으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광명시는 지난해 3월, 광명2동을 시범지역으로 지정, 복지동 제도를 시작했다. 이후 9월부터는 철산2동과 광명5동, 하안3동으로 확대했으며, 2014년 1월부터는 광명시 전체 18개동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광명시 브랜드인  '복지동' 제도는 전국적인 모델로 떠올라 보건복지부와 경기도 등을 포함한 전국의 자치단체에서 벤치마킹을 하려고 광명시를 줄지어 찾아오고 있다. 광명시는 복지동 제도와 함께 다양한 복지정책을 개발한 공로로 2013년에 보건복지부로부터 여러 차례 상을 받았다. 또한 복지동 제도를 제안한 이병인 광명시 복지정책과장은 우수공무원으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받았다.

전국적인 모델로 떠오른 광명시 '복지동' 제도

이상돈 광명시철산2동장이 전복희씨에게 일일명예동장 위촉장을 주고 있다. 복지동 현장방문에는 전복희씨가 동행했다. 전씨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돈 광명시철산2동장이 전복희씨에게 일일명예동장 위촉장을 주고 있다. 복지동 현장방문에는 전복희씨가 동행했다. 전씨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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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에서 '복지동' 제도를 추진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광명시나 동주민센터의 지원이 아닌 '주민의 참여'라는 게 이상돈 철산2동장의 주장이다. 이 동장은 "모든 것을 관에서 다 해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주민들이 불우한 이웃에 관심을 갖고 함께 문제를 해결토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따뜻한 복지를 주민과 함께 하겠다는 것이 복지동의 기본정신이다. 철산2동에서는 철2사랑회를 자발적으로 구성해서 순수하게 봉사를 하고 있다. 봉사는 자발적으로 해야 보람도 더 많이 느끼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다."

이상돈 동장의 말이다. 이 동장은 지난 2013년 9월, 철산2동에서 복지동 제도를 시작한 이후 거의 날마다 사회복지사, 간호사와 함께 3~5개 가구를 방문하고 있다. 철산2동은 7525세대에 1만7790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 동장은 이들 가운데 15%가 방문대상자라고 밝혔다.

대부분 차상위계층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대상이다. 도움이 필요하지만 방치되거나, 복지지원 정책이나 정보를 알지 못해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광명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연계시켜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

28일 만난 양기대 광명시장은 "형식적이거나 서민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복지정책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이나 제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 복지동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양 시장은 "이병인 복지정책과장이 동장과 사회복지사, 간호사가 팀플레이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했다"며 "건강 체크, 복지 상담, 민원 해결을 한꺼번에 할 수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직접 만나서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파악해 지원하는 좋은 제도"라고 설명했다.

양 시장은 복지동 제도를 "올해 광명시 전체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며 "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문제점도 생길 수 있겠지만 4개 동에서 시범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병인 복지정책과장은 "복지동 제도를 시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복지 마인드"라며 "아무리 좋은 정책을 제안해도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시장님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또한 이 과장은 "현장에서 직접 뛰는 동장의 의지도 중요하다"며 "동장이 열의와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겉돌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과장은 "이상돈 철산2동장은 열의가 높아 적극적으로 복지동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우리 광명시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
[인터뷰] 이병인 광명시 복지정책과장
이병인 광명시 복지정책과장
 이병인 광명시 복지정책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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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에서 전국 최초로 시행하기 시작한 '복지동(洞)' 제도는 이병인 광명시 복지정책과장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복지동' 제도를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한 이 과장은 지난 2013년, 우수공무원으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받았다. 또한 광명시가 우수기관으로 여러 차례 상을 받게 만들었다.

복지동 제도와 관련 이 과장은 "복지정책은 시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며 "공무원이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안을 해도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양기대 광명시장에게 공을 돌렸다. 양 시장은 복지동 제도 시행에 대해 "담당공무원인 복지정책과장이 적극적으로 제안을 했기 때문에 논의를 거쳐 좋은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복지사업을 (정부나 경기도의) 지시만 따를 것이 아니라 우리 광명시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을 했다"고 복지동 제도를 착안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현장'이었다. 책상 앞에 붙어 앉아서 전화나 상담으로 복지를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 그의 설명에 따르면 수혜자의 피부에 와 닿는 '생활복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 과장의 생각은 '광명스타일'의 복지제도를 새롭게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장은 복지동과 관련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를 강조했다. 주민들이 시청에 찾아가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동주민센터가 주민들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복지동 제도에 대해서 "흩어져 있는 복지를 하나로 모아서 제공하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는 따로 제공되던 복지서비스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수혜자들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 과장은 "지금까지는 복지사들의 업무로만 인식되었던 복지가 동장이 관심을 가지면서 동주민센터 전체 직원들이 같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며 "주민센터 직원들의 관심은 지역사회 주민들에게로 파급이 되어, 주민들이 복지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해 동네를 활성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산2동의 바르게살기협의회 회원들이 나서서 어려운 이웃의 집을 청소하고, 도배를 하는 등 봉사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자발적인 봉사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그 한 예라는 것이다.

이 과장은 "돈을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가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며 "복지동 제도가 그것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는 아주 좋은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과장은 "올해는 복지동 제도가 정착하고 안정화하는 것이 목표"라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열심히 잘 만들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태그:#양기대, #광명시장, #복지동, #이병인, #사회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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