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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표지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표지
ⓒ 남해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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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도 없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다. 보편적인 음식이면 무엇이든 잘 먹는 편이다. 이런지라 어떤 식당들이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나왔다거나, 유명한 사람이나 연예인 아무개가 즐겨 찾았다는 등과 같은 설명이나, 소문 등만으로 음식점을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니 맛집 추천 블로그도 클릭하지 않는 편이다.

지난 2012년 1월, 두 번쯤 한 포털의 추천 맛집 블로그를 클릭해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사진과 위치, 가는 방법 등 모든 정보는 줄테니 정말 갔다 온 것처럼 '맛있다, 좋다'고 블로그에 리뷰를 써준 뒤 포털 메인에 추천되면 건당 10만 원씩 주겠다, 해볼 의향이 없는가"라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즉에 '아마도 그런다더라'의 소문은 들었지만 직접 경험한 게 아니라 반신반의했었다. 그러나 직접 제의까지 받고 보니 그런 블로그들은 물론, "방송에서 맛있는 집으로 추천하는 집 상당수는 돈을 받고 그리 해주는 거란다" 등과 같은 소문까지 '설마 그럴까?'의 소문에 지나지 않는 '정말 그렇기 때문에'로 들렸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이제까지 거의 의심해본 적 없는 음식기행 관련 책이나 기사까지 의심하게 됐다. 내 상황이 이런지라 책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남해의 봄날 펴냄)을 처음 봤을 때, '읽을 필요가 없는 책'으로 단정지었고 돌아볼 여지조차 없이 제쳐놓았다.

책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제목만으로 '아마도 출판사 제의로 남해 일대를 돌며 유명한 음식들에 대해 쓴' 혹은 '여유 있는 서울의 어느 부부가, 먹고 살 걱정 없는 어떤 부부가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먹은 음식들을 소개하는 책' 정도로 생각했다. 다시 말해 돈 받고 방송으로 혹은 블로그 등으로 홍보해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책 정도로 지레짐작해버렸다.

큰 굴은 맛이 없다고? 그게 아니었구나

"굴 맛있는 기야 찬바람 불기 시작할 때가 제일 맛있지. 4월 지나면 슬슬 맛이 간다. 맛있는 굴? 큰 기 맛있다. 대구처럼. 근데 웃기는 게 뭔지 아나? 서울에서는 너무 큰 굴은 싫다꼬 안 산다. 생긴 게 징그랍다꼬. 근게 그건 제대로 된 굴을 못봐서 그런 기다. 일키로씩 묶아논 포장굴 있다 안 하나. 그 포장굴 맹글 때 알이 굵은 건 기계를 빠져나가질 몬해서 포장 공장에서 짜잘한 것만 달라하니 제대로 된 굴을 언제나 볼 수 있나. 그러니 서울 사람들이 제대로 된 굴을 우에 알겠노. 말로만 설명을 하믄 모리지. 무 봐야 맛을 알 거 아이가."

조금 전 설명을 들었던 것처럼 큰 굴과 작은 굴의 맛 차이가 작지 않음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알이 굵은 놈은 입에 넣고 씹었을 때 바다 향과 함께 단맛이 터져 나온다. 아무리 초장을 묻혔다 해도 숨길 수 없을 만큼 힘이 센 이 단맛은 이내 감칠 맛으로 변해 날숨을 내쉴 때마다 후각까지 자극하지만, 작은 굴은 그런 강렬하면서도 복잡한 맛을 미처 품지 못한 채 바다 밖으로 끌려나온 것이다. 통영 사람들이 서해에서 나는, 이른바 '자연산 굴'에 대해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본문 중에서)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솔직히 말하면 순전히 "좀 읽어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넘겨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쓴 저자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나의 경솔한 지레짐작과 달리 서울 홍대 거리 등을 누비며 살던 한 부부가 어느 날 불현듯 통영으로 아예 이사해 통영 붙박이(?)로 살면서 만난 그쪽 사람들이 생산해내고 믿고 즐겨 먹는 건강한 맛과 먹거리들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처럼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과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었다.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은 통영의 굴 이야기다. 이제까지 '작은 것은 무조건 자연산, 큰 것은 무조건 양식'이었고 '작은 것이 맛있다, 큰 것은 맛없다'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략 2000~3000원씩 더 주고 작은 굴을 사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통념과 다르게 큰 것이 진짜 맛있는 굴이라고 추천하고 있다. 여러 정황상 믿음이 간다.

"굴, 노르스름한 게 맛있어요"

충청도가 고향인, 그래서 통영 사람들이 아래에 놓고 본다는 '자연산 굴'을 누구보다 많이 먹고 자랐다는 사장님은 마침 말동무가 생겨 잘됐다면서 내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천천히, 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해주었다.

"뭐, 나도 자연산 굴 많이 먹었지만 확실히 통영 굴이 나아요. 특히 요즘은 더 그렇지. 오염된 뻘이 많으니까. 그래도 통영 바다는 아직 깨끗하잖아요. 수확할 때 말고 계속 바닷속에 있으니까 충분히 자라는 거지. (중략) 보통은 흰색이 나는 걸 맛있고 싱싱하다고 하는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노르스름한 게 맛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검은 테 보이죠?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검은색이 짙은 건 종패를 내리고 사람이 인공 수정시킨 거고 이렇게 갈색이 나는 건 자연 수정이 된 거예요. 어떤 게 맛있을 것 같아요. 당연히 자연 수정된 게 맛있지."(본문 중에서)

책을 통해 통영의 굴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서산 간월도의 굴을 가장 좋아했었다. 사실 난 여행지에서 만난 이런저런 먹거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전화로 주문까지는 하지 않는 편이다. 그렇건만 간월도의 굴을 맛본 이후 그 맛을 보려고 다시 한 번 1박 2일 가족 여행을 갔었고, 집에서 주문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런지라 그동안 통영 굴이 맛있다고 하든 말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말았던 것. 그런데 이처럼 충청도에서 자연산 굴을 누구보다 많이 먹고 자랐다는 사람이 추천하는 통영 굴이니 어서 가을이 깊어 통영 굴을 입에 넣어보고, 이제까지 좋아했던 간월도의 굴과 비교해보고 싶음이 간절하다.

굴 손질법과 보관법
굴 가게 사장님이 알려주는 굴 손질법은 시중에 널리 알려진 '소금을 넣고 살살 버무려 가며 껍질을 빼내며…'와는 좀 다르다. 책에 담긴 사장님 말씀, 그대로 옮겨본다.

"민물이 닿는 순간부터 상하기 시작하니 먹기 직전에 수돗물을 만나야, 많이 씻어선 안 된다. 체에 받쳐서 그냥 흐르는 물에 한번 쓱 헹구고 먹어야. 씻은 걸 오래 두면 비린내가 심하게 나니 씻은 즉시 바로 먹어야 한다."

또 책에 실린 '시장에서 배운 해산물 보관법'에 의하면, "굴의 경우, 포장 비닐에 담긴 해수와 함께 그대로 냉동실에 얼리는 게 좋다, 먹을 때는 실온에서 자연 해동을 시켜야 한다, 굴 외에도 해수와 함께 포장된 것들은 해수와 함께 냉동 보관"해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굴의 70%는 통영에서 나온단다. 그러니 내가 이제까지 서해안 자연산 굴이려니 지레짐작해 근당 2000~3000원씩 더 주고 사먹었던 굴들 중에는 '알이 작아 기계를 거뜬히 통과한, 서울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통영의 알이 작은 굴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충분히 자라지 못해 정말 맛있는 굴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없는 그런 작은 굴 말이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애써 찾아 먹는 편은 아니지만 굴을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겨울이 오고 있다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다. 그만큼 굴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고, 가족을 위해 더러는 궁한 지갑을 아쉬워하면서도 사곤 하는 건강한 먹거리 중 하나다. 이런지라 통영의 굴 생산이나 맛있는 굴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굴 요리·굴 보관법이나 손질법 등까지 굴에 관한 참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통영 굴 이야기는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읽다보니 생각난다... 친정 어머니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중 한 대목. 겨울 먹거리를 소개하고 있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중 한 대목. 겨울 먹거리를 소개하고 있다.
ⓒ 남해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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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서울 탈출기'를 시작으로 겨울부터 다음해 겨울까지의 제철 먹거리들(음식 재료와 음식)을 소개한다. 책에서 지칭하는 '남해'는 남해라는 특정 지역명이 아닌 통영·벌교·여수·거제·진도·완도·고흥·순천 등과 같은 남해안 여러 지역들이다. 때문에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먹거리들과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무척 풍성하다.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먹거리들은 20여 가지. 통영 굴 이야기 외에 그 맛을 궁금해 하거나, 친정 어머니께서 해주신 음식들을 떠올리고 그리워하거나, 어린 시절 한때를 떠올리거나, '나오는 때를 맞춰 한번 가볼까'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던 이야기들은 ▲ 충동구매와는 거리가 먼 이 부부가 순전히 충동 구매해 만들어 터득한 우발적 간장게장(만들어 보고 싶은) ▲ 무를 넣고 끓이다가 쑥과 도다리를 넣고 소금으로 간해 한소끔 끓이는 것만으로 먹는 이의 마음을 쏙 사로잡는 명품 음식이 되는 통영 도다리 쑥국(친정어머니의 담백한 음식들을 떠올리며) ▲ 어떤 음식 재료들과도 잘 어울린다는 통영의 죽순(어린 시절 봄날 죽순 뜯어 찍어 먹는 바람에 고추장 단지 다 비웠던) ▲ 남해 사람들이 아니면 잘 모르는 횟감 중 하나인 갯장어(남편이 참 좋아하는 회인지라) ▲ 아무나 쉽게 맛볼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욕지도 고구마(생산되는 시기에 찾아가 사오고 싶은) 등이다.

몇 시간 혹은 하루이틀 머물다 가는 여행자의 눈에 보이는 것과 그곳에 사는 사람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느끼는 것의 폭과 깊이도 다를 수밖에 없다. 책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은 그 차이를 확연하게 느끼게 해준다.

책을 읽으면서 여건상 쉽게 남해 어느 지역으로 달려갈 수 없음이 한편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굴'에 관한 여러가지를 알려줘서 참 고마웠다. 또한 지금까지 여타 음식 관련 블로그·신문 기사에서 볼 수 없었던 건강한 먹거리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인상 깊었다.

"생선 조릴 때 같이 넣어 먹어도 좋고, 고기를 찔 때 넣어도 좋고, 튀김에 곁들이는 것도 좋고… 죽순이야 어떻게 먹든 맛있으니까"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설명하는 아주머니로부터 죽순 1킬로그램을 9000원에 샀다. 우선은 닭볶음탕 - 난 이 근본 없는 '볶음탕'이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볶음이면 볶음이고 탕이면 탕이지 볶음탕은 어느 나라의 요리접이란 말인가. '닭도리탕'의 '도리'라는 말이 일본어 도리(とり)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닭볶음탕이 맞다는 국립국어원의 준엄한 가르침이 있었지만, 그렇다면 윗도리와 아랫도리는 윗새, 아랫새란 말인가. 나는 그동안 '새'를 입고 생활했다는 말인가?! 왜 도리가 '조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 에 넣어 먹어볼 요량이었다.(본문 중에서)

게다가 위의 인용처럼 '개념' 있는 부분도 은근히 많다(아마도 2012년, 인터넷 공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외수씨의 닭도리탕 논쟁'을 떠올릴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이외수씨가 닭도리탕이 닭볶음탕으로 적절치 못함의 근거를 트위터에 올렸는데, 당시 이외수씨를 가뜩이나 못마땅해하던 보수신문들은 '왜색이 진하다'느니 '좌빨'이라느니 설레발을 쳤던 그 논쟁 말이다). 또, 계절마다 가볼 만한 남해 여행지 소개까지 덧붙이고 있어서 내용이 무척 알차다.

책을 읽는 중 친정 부모님이 농사 지은 건강한 먹거리들이 자꾸 떠오르곤 했다. 부모님들이 농사를 짓는 덕에 마음껏 먹고 자란, 진짜 건강하고 맛있는 그런 먹거리들 말이다. 남해 여러 지역들의 진짜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들과 그 먹거리들을 생산해내거나 파는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들을 이 책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이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 (정환정 씀 | 남해의 봄날 | 2013.05.31. | 1만4500원)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정환정 글.사진, 남해의봄날(2013)


태그:#남해안, #통영굴, #로컬 푸드, #거제 죽순, #욕지도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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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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