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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교육계에서 '자유학기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교육부는 지난 3월 28일 국정과제 실천계획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핵심 공약인 자유학기제를 2016년부터 전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상반기 중 37개 연구학교를 지정해 2학기부터 운영하고, 2014년과 2015년에는 희망학교 대상으로 자유학기제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자유학기제 도입 로드맵을 보면, 3월 중에 기본방향 및 목표를 설정하고 4월에 연구학교를 선정하며 6월까지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교육부 업무보고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2013년 교육부 최우선 정책과제인 자유학기제는 실시 목적과 정책 내용이 모두 불분명하다. 장관이 업무보고에서 밝힌 "2016년까지 도입하여 중학생들이 과도한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찾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 말만 맴돌고 있다. 오죽하면 시중에 '창조경제'와 '자유학기제'는 정책과제가 아닌 수사(레토릭)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앵무새처럼 경쟁만을 되뇌던 시장만능주의자 전임 장관에 비한다면, 학생들의 '시험 부담'에 관심을 갖고 '적성과 소질', '자유', '꿈과 끼' 등의 언어를 구사하는 교육부 장관을 만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우리나라 교육현실이 너무도 엄혹하다. OECD 국가들 중 학생들의 '학습노동' 시간이 가장 길고, 학습에 대한 흥미는 가장 낮은 수준이며, 이틀에 한명 꼴로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부의 자유학기제 계획은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기 위해 시험 부담을 줄이고 미래 설계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공감할 수 있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무시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 네 가지이다. ▲ 필수적인 입시경쟁 중심의 현행 공교육 체제를 개편한다는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없다. ▲ 교육과정 개편 등 연관 정책 개혁 방안이 없다. ▲ 개인별, 학교별, 지역별 편차 등을 극복하는 방안 제시가 없다 ▲ 적용 시기, 대상, 프로그램 등 정책 내용의 실재적 구체성 및 효율성이 없다.

필수적인 입시경쟁 체제 개편... 분명한 목적과 방향 없다

교육부는 자유학기제 도입 취지를 "학생들의 꿈과 끼를 살리고 시험부담을 줄이는 데 있다"고 밝혔다. 우리 학생들이 꿈과 끼를 살리지 못하고 흥미 없는 학습 노동에 매달리는 이유가 입시경쟁 중심의 교육 체제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대학 서열이 분명한 학벌 중심 사회를 그대로 투영한 입시제도와 교육 체제로 인해 공부가 아닌 친구들과 싸우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입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입시경쟁 체제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과 개혁의지가 없다면 꿈과 끼를 살리는 어떤 정책도 장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유학기제도 마찬가지다. 교육부의 공교육 개편 의지에 진정성이 담기려면 최소한 중고등학교 일제고사부터 폐지해야 한다. 자유학기제가 시험을 한 학기 유예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교육과정 개편 등 연관 정책 개혁 방안이 없다

자유학기제에 대한 교육부의 계획이 아직 안갯속이라 짐작이 쉽지 않지만, 교육부 장관의 여러 차례 인터뷰를 종합해 보면 몇 가지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현행 교육과정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며 지필고사는 보지 않지만, 수행평가를 포함한 다양한 과정평가는 이루어지고, 그 결과는 학생부에 기록된다. 각종 인터뷰에서 교육부 장관은 "현행 교육과정 내"를 여러 번 강조했다.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일부 보수 세력의 '학력 저하' 프레임 공세에 발목이 잡힌 모양새다.

자유학기제는 경쟁 중심의 교육 체제에 쉼표를 찍는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실험일 수 있다. 하지만 기존 교육과정 체제를 유지하고, 여러 연관된 교육 제도를 손대지 않는다면, 학교 현장에 또 하나의 짐만 얹어놓을 가능성이 높다. 수많은 성공한 학교혁신 사례들은 학교를 교육적 공간으로 바꾸는 출발이 학교 현장에서 필요 없는 것들을 빼는 것이 먼저임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실패한 수많은 연구학교는 빼기 대신 더하기를 먼저 했다. 자유학기제 실험도 교육과정을 포함해 관련된 정책들을 자세히 검토하고 필요 없는 것들을 걷어내는 일이 우선이다.

개인별, 학교별, 지역별 편차 등을 극복하는 방안 제시가 없다

교육부가 내세운 자유학기제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찾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자유학기제가 모델로 삼고 있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Transition Year)'를 포함해 각국의 진로교육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에는 잘 갖추어진 사회적 지원체제가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지역에 교육청이 운영하는 제대로 된 진로교육 지원 센터 하나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진로교육 인프라 구축은 자유학기제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교육부 계획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없다. 굳이 찾자면, 진로교사 배치 확대 정도인데, 교사 총정원제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진로교사가 증가한 만큼 기간제 교사가 늘어나 또 다른 파행을 불러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교육문제 중 하나는 지역별, 학교별, 개인별 교육 불평등이다. 부모나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문화 자본의 차이가 학생들의 성적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교육 격차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자유학기제를 실시한다면, 자유학기제 기간 동안 부모의 문화 자본에 따라 교육 불평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

적용 시기, 대상, 프로그램 등 정책 내용의 실재적 구체성 및 효율성 없다

자유학기제는 2016년 전면 실시를 제외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적용 시기나 대상 및 방식에 있어 그다지 선택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근본적으로 자유학기제를 현행 제도라는 틀 속에 끼워 넣으려는 시도 때문이다.

적용 시기 및 대상은 교육부 대통령 업무 보고 때 예로 든 것처럼 중학교 1학년 2학기와 2학년 1학기 중에서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교육당국이 고교입시와 대학입시를 손대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진로에 대한 탐색 시기는 중학교 3학년이나 고등학교 1학년이 적절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아일랜드 전환학년제 적용시기도 고1에 해당한다. 주객이 바뀌어서 논의가 진행 중인데, 철학의 빈곤이 원인이다. 현재 언급 중인 프로그램 내용도 이미 혁신학교에서 진행 중인 주제통합 학습의 성과를 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책 내용의 실재적 구체성은 물론이고 효율성도 없다.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회귤 고사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외국의 새로운 정책과 제도를 들여올 때는 항상 역사, 연관된 제도들, 문화 등 여러 가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자유학기제의 모델인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는 중학교 과정이 끝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는 기간이다. 1974년 시작해 30여 년의 시간이 흐른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제도가 정착되었다. 충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도 병행했음은 물론이다. 왜 하필 핀란드나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이 아닌 아일랜드인가는 접어두고라도, 제발 어떤 제도나 정책을 도입할 때는 철학과 주변 인프라까지 함께 들여오기를 바란다.

교육부의 자유학기제 도입 취지가 보수 세력의 성적 줄 세우기 이데올로기에 갇혀 퇴색한 것인지, 아니면 교육부의 당초 계획 자체에 한계가 있는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부가 발표한 자유학기제 계획에는 교육을 바꿀 철학도 실천전략도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경쟁교육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없다면 자유학기제 시행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한 학기 자유학기제 시행으로 학생들이 시험부담에서 벗어나고 꿈과 끼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마치 집이 무너지고 있는데 창문만 열심히 고치려고 애쓰는 꼴이다.

시험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안쓰럽고 이들의 무거운 어깨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주고, 우리 학생들이 꿈과 끼를 살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면, 중학교 고등학교 일제고사부터 폐지해야 한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서 경쟁을 줄이고 협력 교육을 실천하는 수많은 혁신학교들의 '착한 사례'를 먼저 살펴보기를 바란다. 학생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학생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알게 될 것이다.


태그:#자유학기제, #일제고사, #꿈과 끼, #공교육 개편, #전환학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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