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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마지막 왕이 살던 몬타자 궁전의 슬픔

몬타자 궁전과 해안
 몬타자 궁전과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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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너무 좋다. 호텔 레스토랑 밖으로 펼쳐지는 지중해 풍광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오늘은 알렉산드리아 해안을 따라 한참을 걸을 예정이다. 왜냐하면 오전 일정이 몬타자(Montaza) 궁으로 잡혀있기 때문이다. 몬타자 궁은 알렉산드리아 시내 동쪽 끝 해안에 있다. 우리 버스는 한참 동안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공원 앞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는 몬타자 궁전 입장표를 끊더니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가이드가 알리바바 운운하면서 화를 낸다. 입장료를 냈는데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알리바바가 아랍어로 도둑놈이라는 뜻이다. 궁전 안에는 정원이 잘 가꿔져 있다. 그리고 더 안으로 들어가자 멋진 궁전 건물이 나타난다. 모습이 아라베스크와 모던을 겸하고 있다. 우리말로 하면 현대 아랍풍이 된다. 차에서 내려 숲 속에서 궁전을 잠시 보고 갔으면 좋겠는데, 버스는 궁전의 앞쪽 해안까지 그대로 직행한다.

몬타자 궁전 앞 방갈로와 바다
 몬타자 궁전 앞 방갈로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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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앞 북쪽으로는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남쪽 궁전은 철문으로 차단되어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한 마디로 그림의 떡이다. 궁전 안 정원에서는 인부들이 작업하고 있다. 우리는 궁전과 바닷가 사이에 잘 조성된 정원을 보면서 바다 쪽으로 간다. 그런데 이 정원에는 키가 작은 나무들만 있어 멋이 덜한 편이다. 궁전에서의 조망을 위해 키 작은 나무를 심은 것 같다.

바다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야자수로 만든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그런데 다리를 건너가 보니 바닷가로 방갈로들이 바닷가를 향해 있다. 그리고 방갈로와 궁전 사이에는 벽이 처져 있다. 주황색 지붕에 파란 바다, 대비가 정말 멋지지만,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일 것 같다. 부유한 사람들이 이곳에 별장을 짓고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가난한 사람들도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사는 세상은 영원히 불가능한 걸까?  
   
우리는 발길을 돌려 궁전 쪽으로 향한다. 겨울이지만 정원에는 상록수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나는 궁전 북쪽 문까지 가서 잠시 궁전을 응시한다. 궁전 안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지만 자료를 통해 궁전의 역사를 공부하고 내부를 살펴볼 수 밖에 없다.

하람릭 궁전과 알렉산드리아 등대
 하람릭 궁전과 알렉산드리아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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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궁전의 공식 명칭은 몬타자 궁전 내에 있는 하람릭(Al-Haramlik) 궁전이다. 하람릭 궁전은 1932년 무하마드 알리 왕조의 파드(Fuad) 1세에 의해 여름 별궁으로 지어졌다. 터키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특이한 건물로, 탑도 비대칭으로 두 개가 보인다. 기본은 르네상스 양식이면서, 전면에 아케이드를 만들어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게 했다. 하람릭 궁전은 현재 무하마드 알리 왕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에스파냐에 수용된 아라비아식 건축 무데야르 양식과 비슷해 보인다. 다른 자료에 보니 이탈리아 제노바의 마켄지에(Mackenzie) 성을 모방했다고도 한다. 그렇지만 현대에 만들어져 예술성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한 건물이다. 그런데 사실 이 건물은 지어 놓고 거의 사용된 적이 없다. 몰락해 가는 왕조의 마지막 왕 때 지어졌기 때문이다. 태생이 슬픈 몬타자 궁전은 여전히 시민들과는 거리가 있는지 쓸쓸하고 적막해 보인다.  

해상공원에서 수영과 워터 스포츠도 마음대로 못해...

남쪽에서 바라 본 하람릭 궁전
 남쪽에서 바라 본 하람릭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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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자 궁전을 나오면서 나는 차창을 통해 궁전의 남쪽 면을 살펴본다. 북쪽 면에 비해 벽돌이나 창문의 양식이 더 현대적이다. 그리고 장식이 거의 없다. 그것은 하람릭 궁전의 정면이 북쪽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궁전 앞으로 펼쳐지는 키 큰 야자수 정원과 건물이 잘 어울린다. 이 정원을 나와 우리는 몬타자 궁전 다리로 간다. 몬타자 해상공원을 보기 위해서다. 이 다리는 몬타자 궁전과 몬타자 해상공원을 연결한다.

우리는 다리를 건너 몬타자 해상공원을 지나 알렉산드리아 등대까지 걸어갈 예정이다. 이 코스에서 알렉산드리아 바닷가 풍경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리가 공사중이다. 다리에 비계가 설치되어 있고, 불도저와 트럭이 왔다갔다 한다. 모래가 쌓여 그것을 준설하는 것 같다. 다리에서 보니 하람릭 궁전과 등대, 등대와 요트가 상당히 귀족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이 몬타자 워터 스포츠 센터다.

워터 스포츠 센터
 워터 스포츠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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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스포츠 센터에서는 요트도 타고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는 할 수 있다. 공사 때문인지 이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방파제 쪽으로 나가 보니 의외로 파도가 심하다. 방파제에서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몇 마리씩은 잡았다. 지중해, 육지로 둘러싸인 내륙의 바다지만 여전히 수질도 좋고 고기의 종류도 많다.

나는 등대 다리를 건너 등대로 간다. 이 등대는 몬타자 궁전과 함께 세워졌으니 역사가 100년도 안 되었다. 원통형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기로 불을 비추게 되어 있다. 이곳에서 하람릭 궁전과 몬타자 전체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 해안선 위로 방갈로 형태의 집이 있고, 그 뒤로 정원과 궁전이 보인다. 여기서 보니 하람릭 궁전의 탑이 네 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중 바다를 향한 동쪽 탑이 가장 높다. 하람릭 궁전, 그것은 몬타자의 아이콘이다.

스탠리 비치와 그 위에 놓인 다리

스탠리 다리
 스탠리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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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자 지역을 보고 난 우리는 이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향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엘 아자리타(El Azarita) 지역에 있다. 중간에 우리는 스탠리(Stanley) 비치를 지나게 되어 잠시 차를 세운다. 스탠리 비치와 스탠리 다리를 보기 위해서다. 스탠리 비치는 알렉산드리아의 대표적인 모래사장으로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그러나 모래사장이 넓거나 길어서 유명한 것이 아니고, 오마 샤리프 등 유명 영화배우들이 자주 찾아서 유명해졌다.

스탠리 다리는 길이가 400m며, 다리 양쪽에 멋진 탑을 세웠다. 3층탑인데, 몬타자 궁전의 탑과 유사한 것으로 보아 그것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우리는 잠시 육지와 바다 쪽을 살펴본다. 바다 쪽으로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까이 가보니 의외로 고기를 많이 잡았다. 어종도 놀래기나 볼락 같은 게 아니고 돔과 농어 종류다. 그들은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와 물고기를 거기에 넣어 두었다. 이를 통해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의 중요한 취미 중 하나가 낚시임을 알 수 있었다.

클레오파트라 석상
 클레오파트라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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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원래 주정차 금지 구역이어서 조금 있다 바로 차에 오른다. 차는 다시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달린다. 이 해안도로에는 신호등이 없어 얼마 후 바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Bibliotheca Alexandrina) 앞에 도착한다. 이 지역은 대학교, 도서관, 문화센터, 회의장, 야외공연장 등이 있는 복합 문화센터다. 우리는 도서관과 회의장 사이에 세워진 클레오파트라 석상을 잠시 살펴본다. 알렉산드리아 해안에서 발굴된 것이라는데, 바닷물에 침식되어서 그런지 표면이 반들반들해졌다. 왼쪽 팔과 가슴 그리고 어깨가 좀 훼손되었다. 특히 눈과 코에서는 그로테스크함이 느껴진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역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입구 돌벽(Stone wall)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를 조각해 놓았다. 우리 글자 '월'이 보인다. 도서관을 짓는데, 돈이나 기술을 제공한 나라의 글자가 들어갔다고 하는데, 우리 글자는 '름'과 '세' 그리고 '강'이 더 있었다. 이들을 보고 도서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로비가 나온다. 이곳 로비의 데메트리우스(Demetrius Phalerum) 석상 앞에서 우리는 잠시 이집트인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그녀가 아랍어로 설명하면, 우리 가이드가 통역하는 식이다.

데메트리우스 석상과 현지인 가이드
 데메트리우스 석상과 현지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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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기원 전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던 데메트리우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당시 이 도서관의 목표는 전 세계 지식의 보고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모든 책은 필사되거나 번역되어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이때 책은 파피루스로 만들었다. 필사와 번역을 위한 파피루스가 항상 부족했기 때문에, 파피루스를 이집트 외로 반출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유럽에서 글씨를 쓰기 위한 재료로 양피지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서관의 장서가 50만 권쯤 되었고, 이곳을 찾아오는 학자들이 늘게 되었다. 그러면서 도서관에 학술원 또는 연구소로서의 성격이 더해지게 되었다. 당시 이곳을 이용한 유명한 학자로는 유클리드, 아르키메데스, 에라토스테네스, 아리스토파네스 등이 있다. 이 도서관에 결정적인 변화가 온 것은 기원전 48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서였다.

기원전 51년 프톨레마이오스 8세가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7세로부터 이집트의 왕위를 물려받았고, 누나인 클레오파트라 7세와 나라를 공동 통치하게 되었다. 그런데 누나인 여왕의 권력이 더 세지자 프톨레마이오스 8세는 기원전 48년 여왕의 권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시리아로 떠나도록 명령했지만, 그녀는 이에 불복해 자매간의 내전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1866년 재롬이 그린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1866년 재롬이 그린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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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라이벌 율리우스 카이사르와의 정쟁에서 패해 이집트로 망명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그의 망명을 받아들였으나, 그해 9월 카이사르의 호감을 사려고 그를 살해해 그의 머리를 카이사르에게 보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이를 반기지 않고 로마식으로 폼페이우스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리고 오히려 클레오파트라와 가까워져 둘 사이는 연인이 되었고, 클레오파트라의 왕권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가 이것을 인정하지 않아, 그 해 12월 중순 알렉산드리아 해안에서 두 세력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로 알렉산드리아 시내에 있던 건물과 도서관 등이 불타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의 상황을 플루타크(Plutarch)는 '카이사르의 삶'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로마군이 바다로 상륙하는 것을 적들이 차단하려고 할 때, 그(카이사르)는 그 위험을 돌파하기 위해 자신의 배에 불을 지르도록 했다. 그로 인해 독크에 불이 붙었고, 그 불은 더 퍼져나가 도서관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391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
 391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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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페르감몬으로부터 로마 지원군이 도착함으로써 전쟁은 클레오파트라-카이사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다음해인 47년 1월 프톨레마이오스 8세는 도시를 빠져나가 나일강 쪽으로 도망가게 되었고,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누이간의 왕권 다툼, 로마라는 외세의 개입 등으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클레오파트라 7세(통치기간: 기원전 51-30년)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 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세 번이나 더 훼손과 파괴 과정을 거친다. 기원 후 275년에서 270년까지 로마황제를 지낸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 Augustus)가 팔미라에 수도를 둔 제노비아 왕국을 공격한다. 이 때 이집트는 제노비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그 때문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391년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명령으로 도서관 안에 있던 신전이 파괴되었다. 당시 도서관의 파괴를 주도했던 사람은 알렉산드리아 주교였던 테오필루스(Theophilus)였다고 한다.

현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현재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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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42년 알렉산드리아가 이슬람 세력에 점령되면서 도서관은 또 다시 파괴되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우마르(Umar)의 명령으로 아미르(Amir)가 도서관을 파괴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처럼 네 번에 걸쳐 크게 파괴되었고, 그 뒤로는 역사 속에서 서서히 잊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일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세상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 때가 바로 2002년이다.


태그:#몬타자 궁전, #클레오파트라, #하람릭 궁전, #스탠리 다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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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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