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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밭에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에 나무 이파리는 더 짙푸름을 더하고 빨갛게 익어가던 열매는 잠시 쉬어간다.
 복숭아 밭에 비가 내리고 있다. 이 비에 나무 이파리는 더 짙푸름을 더하고 빨갛게 익어가던 열매는 잠시 쉬어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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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을까. 갑자기 장대비를 쏟아 붓는다.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이내 또 뿌려댄다. 오전 내내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이 장맛비를 반기는 건 산야의 초목들이다. 짙푸름을 더욱 뽐내며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빨갛고 검붉은 색으로 익어가던 과일은 숨을 고른다.

라디오에선 '지금 창밖엔 비가 내리죠. 그대와 난 또 이렇게 둘이고요…' 발라드 풍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음률을 타고 흐른다. 바쁠 게 없다. 자동차 바퀴도 빗길을 조심스럽게 굴러간다. 차창에 떨어지는 빗물을 닦아내는 와이퍼만 부산할 뿐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에서다.

농사꾼 김용재 씨가 우산을 받쳐든 채 복숭아밭을 돌아보고 있다.
 농사꾼 김용재 씨가 우산을 받쳐든 채 복숭아밭을 돌아보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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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원을 돌아보던 김용재 씨가 비에 흠뻑 젖은 가지를 들어 열매를 살피고 있다.
 과원을 돌아보던 김용재 씨가 비에 흠뻑 젖은 가지를 들어 열매를 살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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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양쪽으로 과수원이 줄지어 있다. 언뜻 보기에 복숭아밭이다. 이맘때 화순 일대는 복숭아 세상이다. 그 과원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보인다. 차를 가까이 대고 보니 중년의 부부다.

"비가 많이 와서 나와 봤어요. 중생종 복숭아와 자두가 한창 익어갈 땐 데, 비가 이렇게 쏟아져서요. 일할 때는 햇볕 짱짱한 것보다 오히려 좋긴 한데, 비바람이 강하게 불면 과일이 떨어지잖아요. 지난 봄에 비가 이렇게 한두 번만 내렸으면 더 좋았으련만…."

화순군 한천면 평리에서 복숭아와 자두를 가꾸고 있는 김용재(60)씨의 얘기다. 김씨는 이곳에서 자두 1만3200㎡와 복숭아 6600㎡를 재배하고 있다. 밭에 주렁주렁 열린 과일은 중·만생종으로 복숭아는 8월 말까지, 자두는 9월 초까지 수확한다.

수확량은 복숭아의 경우 4.5㎏, 자두는 5㎏짜리로 각각 1000상자 이상을 보고 있다. 판로 걱정은 없다. 학교급식용으로 대부분 나가고, 인터넷쇼핑몰(화순팜 등)을 통해 나머지를 소화한다.

비에 젖은 복숭아. 이 비 그치면 본격적으로 출하될 것이다.
 비에 젖은 복숭아. 이 비 그치면 본격적으로 출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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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부인 조영순 씨가 복숭아밭 옆에 있는 자두밭에서 출하를 앞둔 자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김씨의 부인 조영순 씨가 복숭아밭 옆에 있는 자두밭에서 출하를 앞둔 자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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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농사 배우고자 전국 다녀, 전문교육도 틈 나는 대로

"공판장에 가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초기에 시장가격을 알아보려고 몇 번 나가본 것 빼고는 안 가본 것 같네요. 친환경 품질인증을 받은 데다 당도가 높고 향도 깊어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거든요."

김씨의 부인 조영순(52)씨의 얘기다. 지금은 과수농사의 베테랑이 된 그들이지만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지난 1984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으로 들어와 정미소를 운영하며 농촌생활을 시작했다.

"정미소를 하면서 농사를 시작했어요. 시설하우스에 참외를 심고, 벼농사도 지었죠. 완숙토마토도 했고요. 자두는 8년, 복숭아는 5년 됐네요. 근데 사실 재작년까지는 재미를 못 봤어요. 작년부터 소득이 되고 있습니다. 선진 농가를 찾아다니고 재배기술을 배운 게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아요."

김씨의 얘기다. 이들 부부는 과수농사를 지으면서 부단히 노력했다. 재배기술을 보고 배우기 위해 전국을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고. 전문교육도 틈나는 대로 같이 찾아다녔다.

게다가 화순 한천지역은 토질이 과수재배에 적합했다. 뿐만 아니라 경사진 곳이 많아 배수가 잘 됐다. 일조량이 많고 밤낮의 기온차도 커 복숭아와 자두 재배의 적지였다. 과일 고유의 향이 살아있고 당도가 높은 것도 이런 연유다. 저장성도 빼어나다.

김용재 씨가 자두밭에 쪼그려앉은 채 주렁주렁 열린 자두를 살펴보고 있다.
 김용재 씨가 자두밭에 쪼그려앉은 채 주렁주렁 열린 자두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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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재·조영순씨 부부가 시식용 자두를 따고 있다.
 김용재·조영순씨 부부가 시식용 자두를 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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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운 대로 농사를 짓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나만의 기술로 응용하는 게 어려웠다. 시간이 몇 년 더 걸렸다. 그 사이 이들 부부는 땅을 알아갔고 나만의 농사기술도 터득해 갔다.

"저보다는 집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죠. 오랫동안 영농법인의 대표를 맡아 다른 사람 농사에 신경 쓰고 다녔는데, 집사람이 다 일궜거든요. 농사기술도 저보다 훨씬 나아요."

"농사짓는 사람의 얼굴이 너무 하얗다"는 농 섞인 말에 대한 김씨의 대답이었다.

"무슨 말씀이요? 저는 비교적 쉬운 일만 해요. 그래도 재밌는데요. 어렸을 때 꿈이 깊은 산에서 과수원을 가꾸고 목장을 운영하는 것이었거든요. 목장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렇게 과수원 꿈은 이뤘잖아요."

환하게 웃던 조씨가 자두 하나를 따서 "먹을 만하다"며 권한다. 겉보기에 아직 제대로 익지 않은 것 같은데 맛이 좋다. 입안에 군침이 돌면서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복숭아 맛도 좋았다. 단단하면서도 달콤한 과육에 혀가 호사를 누렸다.

"노하우요? 정성이죠. 토양과 기후도 물론 좋지만 정성이 가득 들어가 열매가 튼실하고 맛도 좋은 것 같습니다. 땀을 쏟은 만큼 보람도 있고요. 앞으로도 정직하게 열심히 할 겁니다."

김씨의 말에서 큰 체구만큼이나 듬직함이 묻어난다.

복숭아와 자두밭을 돌아본 김용재·조영순씨 부부가 과원을 걸어나오고 있다. 그 사이 비가 잠시 그쳤다.
 복숭아와 자두밭을 돌아본 김용재·조영순씨 부부가 과원을 걸어나오고 있다. 그 사이 비가 잠시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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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용재, #조영순, #복숭아, #자두,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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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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