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궁녀들 <자료사진>
▲ 조선시대 궁녀들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궁녀들 <자료사진>
ⓒ 민원기

관련사진보기


반세기 전 까지만 해도 혼인을 앞둔 딸에게 친정엄마는 '시집가면 최소 3년은 귀머거리가 되고, 당달봉사가 되고, 벙어리가 되어서 살라'는 것을 아녀자의 덕목으로 강조했습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보고도 못 본 척, 할 말이 있어도 입 꾹 다물고 살면서 시집의 가풍을 익히고 문화에 적응해 가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시집 간 아녀자는 그래도 3년만 지나면 엄부시하일지라도 눈 뜨고, 귀 열고, 말하며 사는 세상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평생 동안 귀 막고, 눈 감고, 입 다물고 살아야하는 인생이 있었습니다. 궁녀가 그랬습니다. 종신 전문직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 궁녀가 된 여인은 궁내에서 사는 동안은 물론 궁궐을 나와 살게 되는 여생에도 보고 들은 것이 있어도 입 다물어야 했습니다.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서나 드라마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요소가 바로 궁녀입니다. 그럼에도 궁녀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이유는 궁녀가 왕에게 역린(逆鱗)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박힌 비늘처럼'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기 때문에 당대의 역사를 촘촘하게 기록하고 있는 '실록'에조차도 궁녀에 대한 기록은 미미하거나 소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조선시대 왕실문화를 연구해 온 신명호 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궁녀>에서 비밀에 가려진 듯 토막토막, 어렴풋하게만 드러나 있던 궁녀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록'과 '계축일기', '인현왕후전', '한중록'과 같은 궁중 문학작품에 실마리처럼 드러나 있는 궁녀와 관련한 기록들과 법정기록인 '추안급국안'에 남아있는 사실들을 퍼즐을 맞추듯이 시대별, 사건별로 확인하며 엮은 내용입니다.

실록과 궁중 문학작품에는 이름도 없고, 자세한 사건 내용이 누락된 채 실마리만 어렴풋하게 노정돼 있는 궁녀에 관한 내용일지라도 '추안급국안'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돼 있었으니 이를 바탕으로 시대와 사건 개요 등을 씨줄날줄로 체크해가며 고증해 기록한 내용입니다.

궁녀에 관한 모든 것...<궁녀> 안에 있다 

<궁녀> 표지
 <궁녀> 표지
ⓒ 임윤수

관련사진보기

궁녀와 관련한 궁금증에 대한 답이 <궁녀> 에 들어 있습니다. 궁녀와 관련한 기록을 찾기가 어려운 이유도 읽을 수 있고, 어떤 이들이 궁녀가 되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궁녀는 누가 어떻게 뽑고, 궁녀의 자격은 어떻게 되는지도 알 수 있고, 궁녀들이 하는 일과 궁녀들의 조직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녀에게도 하인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몇몇 궁녀들에 관한 이야기는 개인의 일대사처럼 세세하게 기록돼 있어 궁녀로 살아가야 했던 한 여자의 일생을 가늠하기에 충분합니다. 조선의 신데렐라였던 신빈 신씨, 나쁜 궁녀의 대명사가 된 장녹수와 김개시, 조선출신 궁녀로 중국에서 생을 마친 청주 한씨, 중국 출신으로 조선에서 생을 마친 중국인 굴씨 등의 이야기는 궁녀들의 일생을 어림하기에 충분합니다.

무릇 명색이 궁녀인 자들이 기생을 끼고 풍악을 벌이는 짓을 한다. 게다가 액정서의 노예들과 각 궁의 종들을 여럿 거느리고 꽃놀이나 뱃놀이를 하는 행렬이 길에서 끊이지 않을 지경인데도 전혀 근심하거나 꺼리지도 않는다. -<궁녀>214쪽-

남자들, 조선시대 양반들이나 한량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했던 기생들을 궁녀들이 불러 놓고 여흥을 즐겼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비록 평생을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살아야 하는 게 궁녀들의 삶이었지만 그들에게도 인생이 있었습니다.

출세를 하고자 하는 욕망도 있고, 부자가 되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남자를 그리워하는 사랑도 있었고 몸을 뜨겁게 하려는 욕정도 있었습니다. 그들도 인간이고 여자였습니다. 읽는 마음을 아리게 하는 아픈 개인사도 있고, 읽는 가슴을 분노하게 하는 배신도 벌어집니다.  

궁녀, 부동산 매입으로 부 축적까지...신랑없이 혼례를 치르기도

13년이 흐른 후 상궁 박씨는 또다시 부동산을 매입한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매입하지 않고 자신의 남자 종 대복大福을 시켜 매입하도록 했다. 그 사이 노비도 샀다. -<궁녀> 223쪽-

요즘으로 말하면 부동산 실명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부를 축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궁중 암투에 휘말리고, 때로는 권모술수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던 것 역시 궁녀이니 형태와 방법은 바꿀지 모르지만 인간 본연의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계례 이후의 혼례식에서는 궁녀의 서글픔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신랑 없이 혼례를 치러야 하니 당연히 서글펐을 것이다.

궁중에서 계례를 마친 궁녀는 혼인식을 위해 친정으로 나갔다. 부모와 친지들에게 인사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입궁한 지 10∼15년이 지나 이제 성인 궁녀가 되었다는 인사이고, 또 신랑 없는 혼인식을 올리고 영원히 궁중 여인으로 살겠다는 인사인 셈이었다. -<궁녀> 240쪽-

신랑 없이 올려야 하는 혼례의 주인공, 궁녀의 삶, 궁녀라는 명칭을 가장 애잔하게 하는 설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포기하거나 금지된 성, '대식'으로 불리던 동성연애로 대신해야만 했던 궁녀들의 애욕과 그러함에도 터져 나왔던 스캔들…. 

신명호  교수의 <궁녀>는 궁녀들의 복색, 옷매무시와 장신구, 머리모양과 옷차림, 궁녀들의 근무형태와 하는 일, 월급과 처녀감별법과 같은 내용 등도 세세히 담고 있습니다. 궁녀에 관한 것이라면 하나에서 열까지를 상세하게 알게 해줄 것이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 <궁녀> 신명호 씀, (주)시공사 펴냄, 2012년 5월 30일, 308쪽, 1만3000원



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시공사(2012)


태그:#궁녀, #신명호, #시공사, #장녹수, #궁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