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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는 지금부터 열심히 주장하고 노력하면 30년쯤 후에는 한국도 스웨덴같은 보편적 복지국가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이 목표에 토달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저도 120%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30년 후의 그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5년 후, 10년 후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입니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 '재벌 저격수'로 유명한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를 개혁하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이 다섯 가지를 꼽았다.

 

김 교수는 지난 27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50여 명의 독자들과 함께 2시간 동안 <종횡무진 한국경제> '저자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오마이뉴스>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김 교수는 한국사회가 반복해서 경제 위기를 맞는 이유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점, 경제적 영역에서 진보진영이 맡아야 할 역할 등에 대해 강의했다.

 

김 교수는 "사람들이 재벌의 성장이 더 이상 우리를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재벌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뭘 먹고 사나'라는 자문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이라며 사회 곳곳에 산적해 있는 경제 문제 중 중소기업 하도급 문제와 자영업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취약한 민주주의, 법치주의가 반복적 경제 위기 만들어 

 

<종횡무진 한국경제>는 김 교수가 지난 15년 동안 경제개혁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분석한 한국 경제와 그 개혁 방향에 대해 저술한 책이다. 한국 경제의 발전사와 순환 및 산업구조, 기업들의 현주소를 한 축으로, 재벌과 중소기업, 금융과 노동 및 복지의 영역을 다른 축으로 삼아 입체적으로 한국 경제를 해부했다.

 

이 책의 특이점은 한국 경제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경제사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전근대 이후에 근대가 오는 서구와 달리 한국 같은 후발 국가에서는 전근대의 문제와 근대의 문제가 동시에 존재한다"며 "중상주의 모델인 박정희 정권에서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로 건너뛴 것이 한국의 경제"라고 설명했다.

 

중세 이후 서구의 경제사의 흐름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중상주의와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로 대표되는 근대 시민사회의 '구자유주의', 케인스적 복지국가체제를 만들었던 '포디즘', 그리고 신자유주의다. 각각의 흐름은 이전 시대의 경제적 흐름을 극복하는 대안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경제에는 구자유주의와 포디즘의 경험이 없고, 이 '경험 없음'이 한국 경제의 많은 문제들을 야기한다는 얘기다.

 

"구자유주의에서는 권력교체와 규제, 법이 발달했습니다. 포디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노동자와 자본가 계급의 계급 타협이 이뤄졌다는 사실이지요. 이 두 가지를 경험하지 못한 한국사회는 민주주의의 원리도, 법치주의의 원리도, 연대와 타협의 원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사회 전반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가 만연되어 있지요. 시장이 인류가 만든 제도 중 가장 효율적인 제도이기는 하지만 모든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국사회가 반복해서 경제적 위기를 맞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요."

 

김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는 구자유주의적 질서는 진보가 아니라 보수의 영역이지만 한국의 진보에게는 보수가 챙기지 않는 구자유주의적 질서를 확립하는 일까지 짐 지워져 있는 셈"이라며 "구자유주의는 진보가 아니지만 구자유주의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진보는 비극"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법 지키게 하고 중소기업 지원해야"

 

<종횡무진 한국경제>의 많은 부분은 21세기 한국경제에서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가 결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구체적 통계자료를 통해 증명하는데 맞춰져 있다. 낙수효과란 대기업이나 부유층의 소득이 증대되면 투자가 늘어나 경기가 부양되고 그 결과가 저소득층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다.

 

김 교수는 "재벌의 성장이 우리를 먹여 살리지 않는다는 공감대는 상당해 보이지만 '우리는 뭘 먹고 사나'에 대한 답이 없기 때문에 재벌 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 사회의 경제력은 재벌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고 그런 현상이 중소기업 하도급 문제와 자영업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재벌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김 교수는 "일각에서 제시하는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재벌 기업의 고용을 늘리는 방법이나 대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면서 세금을 걷어 복지국가로 가는 방법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공업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500인 이상 대기업의 고용은 전체의 8%에 불과하며 재벌이나 대기업에게 규제를 완화해준다고 해도 충분한 고용확충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지금처럼 낮은 조세부담률로는 대기업에게 세금을 걷는 방법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제 우리 사회의 목표를 중소기업 지원과 육성으로 전환하고 대기업과 재벌이 지금 있는 법만 잘 지키도록 해도 상당히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한국 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재벌개혁은 무엇보다 다양한 측면에 대한 총체적 접근과 일관적인 집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기업집단에 대한 제재를 할 때 가장 강력하게 사용되는 수단이 행정규율입니다. 어떤 회사든 범죄행위를 저지른 이사의 경우에는 자격이 최대 15년까지 박탈됩니다. 한국에서 재벌세 도입이나 출총제 도입보다 더 효과적인 재벌 개혁 방법은 불법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일관적인 제재를 가하는 것입니다. 정말 재벌 개혁을 실천하고자하는 대통령 후보라면 자신의 임기 동안에는 불법 행위를 한 기업총수는 절대 사면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걸어야 합니다."

 

김 교수는 끝으로 국회의원 선거와 대선을 앞둔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짧게 전망했다. "한국 경제에는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한국 사회의 저변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역동성이 있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며 "다만 문제를 해결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보수주의자들은 조금 더 원칙적인 모습을, 진보주의자들은 좀 더 유연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태그:#김상조, #종횡무진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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