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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길은 시속 20킬로미터로 엉금엉금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평소 20분 걸리던 거리가 1시간 10분이 걸렸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무척 미끄러웠다. 그러나 누군가는 멋있다고 한 소나무들은 잘 보였다. 소나무마다 삼각의 아치모양으로 눈솜뭉치를 두르고 서 있었다. 나는 엉금엉금으로 기어서 따스한 집 아랫목으로 가지만 영하 10도 이상으로 내려가는 밤에 그 소나무들은 얼마나 무겁고 추울 것인지 인간으로서 미안하고 마음이 몹시 아렸다.

몇달 전부터 지역의 녹지과에 부임한 고위직은 녹색도시를 실현하기 위해 수령이 100년 이상된 소나무들 수 백그루를 도시의 사거리, 로타리, 가로등이 있는 곳곳에 심었다. 한 그루에 천만 원이상하는 강원도 적송인 특별히 운치가 있는 키 큰 아람찬 소나무는 따로 한 그루씩 심기도 했지만, 도심상가 간판을 가린다는 상인들 항의에 가치를 치다 보니 헐벗은 소나무, 가로등과 전봇대같은 소나무가 돼버렸다. 사거리나 모퉁이에는 세 그루나 다섯 그루씩 심었다. 보기좋다고 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나무들의 푸르고 좋은 자태는 회색시멘트와 오염수로 더 이상 깊지 않은 도로 밑에서 뿌리들이 제대로 뻗지 못하고 기운이 쇠하면서 서서히 병들어 갈 것이다. 밤에는 휘황찬란한 간판들에게서 나오는 전자파도 소나무를 괴롭힐 것이다. 그 소나무를 심는 정책을 실현한 그 분이 계시는 동안에 참 보기좋게 창창한 모습을 유지하겠지만, 철새처럼 일정기간 지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 그 분이 없을때면 그 소나무들을 살리기 위해 다른 분들이 고생할 것이라는 것을...

항상 그랬다.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도 6개월이 지나야 사라진다는 옛 성현의 글귀처럼 항상 누군가 벌여놓은 일들의 흔적은 오래오래 남았다. 물론 좋은 일의 흔적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좋은 일을 했음에도 각각의 다른 생각들 때문에 수십억 원의 좋은 복지시설이 방치되기도 한다. 몇년 전 청주 외곽지대에 4만 평의 수림이 훼손됐을 때 지역주민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지역에서 제일 훌륭할 수도 있는 노인요양원, 노인전문병원, 노인실버타운, 장례식장 등을 건립하고, 그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조건으로 관계 당국은 허가를 주고 주민들은 동의를 했다. 아마도 그 곳에 조상의 산소가 있는 어떤 분은 말씀하셨다. "참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유!  산소를 이장하면서 조상님에게 한없이 죄송하면서도 후손의 복지를 위해서라고 했는데..." 

주민들은 동네에 실버타운이 들어서는데 동의를 하는대신 완공되면 효행 장학기금 조성과  양·한방 협진을 통한 65세 이상 노인 연간 1회 무료 진료, 실버타운 공사 월오동 주민 우선권 부여, 직원 채용 시 월오동 주민과 자녀 우선권 부여 등등에 대한 협의를 계속하고 기대했지만, 지금은 그냥 뭐든지 이대로 두지만 말아 달라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나 며칠 전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느라 그 근처를 지나온 나는 현재 그곳이 실버타운이 아닌 '흉물타운' 그 이상이 아님을 확인했고 지역 주민들은 "애물단지"라고도 말씀하셨다. 외벽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고 삭막한 글자가 담을 도배하고 있다. 이권 다툼의 시공사는 부도를 내고, 인허가를 내준 높은 분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새로온 분들은 그 곳이 왜 생겼고 앞으로 어찌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시민단체는 인허가가 났고 수십억 원의 시민혈세가 지출됐음에도 왜 시민들을 위한 복지타운이 되지 않고 있는지 법원이 조사해야 한다고도 하고 있다.

출근 길 보니 지난 밤에 안쓰러워 보였던 소나무들 중에 대설 주의보가 내렸던 밤새 내린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진 게 눈에 띄었다. 사람들 보다는 오래 살았고 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도 바람과 빛에 실어 후손들에게 전해줄 고마운 나무들에게 우리들은 그 고마움을 모르고 너무 쉽게 뿌리를 들어내어 옮기는 게 안타깝다.

이제라도 소나무들은 원래의 제자리대로, 또는 제 자리가 어렵다면 도시안에 좋은 터를 잡아 모두 한 자리에 모아서 잘 관리하여 사람들이 그 소나무 아래 앉아 소나무와 이야기도 주고받고, 함께 바람과 빛을 쬐면 좋겠다. 또, 애물단지로 전락한 실버타운은 지금이라도 규모를 대폭 축소해 지역에 기여하는, 실효성을 발휘하는 복지 시설이 됐으면 한다.


태그:#소나무, #실버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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