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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마을 중덕해안 가는 길에 있는 고길천 작가의 또다른 그래피티 작품.
 강정마을 중덕해안 가는 길에 있는 고길천 작가의 또다른 그래피티 작품.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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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다큐를 보다가 알게 되었어요. 몽골 사람들은 말을 소중하게 여긴다는데 이름이 없다는군요. 이름이 없는 대신 말의 털 색깔로 부른답니다. 몽골에서 말의 털 색깔 이름은 300개가 넘는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고유한 이름 대신 말의 특징을 잘 살려낸 털색깔이 바로 이름인 게지요.

사람처럼 이름이 권력이 되는 꼴을 보기 싫었을까요? 지금 제 귀에 이름 하나가 달랑달랑 거립니다. 강정이라는 마을이요. 4년 전 그곳은 평화로웠데요. 주민들이 말하는 평화는 이런 것이겠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

강정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잠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간다고 했을까?' 그것은 불편함이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편하다는 말, 외면하려 하기 때문에 편하다는 말보단 차라리 불편함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가는 길은 황홀했습니다. 바다를 건넌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짜릿하잖아요.

공항에 내려 몇몇 사람을 더 만나 4.3평화공원에 들렀어요. 가까운 과거에 이런 학살이 자행됐음에도 공개되기까지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었지요. 아홉 명 중 한 명이 학살됐다면 도민 중 무작위로 추출된 '나'의 누군가는 학살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학살을 견뎌내고 연좌제를 견뎌낸 슬픔 뒤에는 완벽한 침묵만이 살아가는 방법이었는지도 몰라요. 강정마을에 가기 전 4.3을 기억한다는 건 침묵을 지키지 않겠다는 약속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강정 마을에 학살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육체적 학살만이 학살은 아니라는 것,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외면당하는 마음의 학살입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소식 이전엔 평화로웠겠지요. 그냥 농사짓고, 민박 치고, 배 타고, 장사 하고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었겠지요. 평화는 그렇게 재미없는 것이니까요.

바다를 막고 시멘트 들이붓는 게 미항입니까

강정마을은 훌쩍 그렇게 다녀올 수 있는 마을이 아니에요. 시간과 돈을 조금 많이 들여야 했어요. 그래서 더 외로웠을 거예요. 중덕 바닷가는 제가 본 바다 중 가장 시원하고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조용했습니다. 때론 따분할 수 있겠네요. 뿅뿅 뚫린 바위들 속에서 어린 게들이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았어요. 그곳에서 '붉은발말똥게'를 처음 만났어요. 바위들 중간 중간 바닷물이 아닌 샘물이 솟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 물을 마시면 '캬'하는 소리가 절로 나와요.

열댓 명 둘러앉을 수 있는 바위아고라와 그 곁 바위가 쳐놓은 그늘에 누워 파도소리 듣고 맑은 하늘 바라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신나는데 전 직접 했다니까요. 이런 평화로운 강정을 군사기지로 만들겠다니요. 이 바다를 해군 혼자 차지하겠다니요. 제가 누차 얘기하잖아요. 평화는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조용하고 재미없는 것이라고.

해군기지 앞에 이런 선전문이 붙은 걸 봤어요. '세계적인 미항'이 될 거라고. 웃기고 있습니다. 바다를 가로막고 돌들을 깨 부수고 시멘트를 들이붓는 것이 미항이던가요? 어느 나라의 미항이 그렇던가요? 저는 공부를 많이 한 학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어서 유식한 말에는 대꾸를 못해요. 다만, 이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가에 주목합니다. 유명한 '올레길'에 있는 강정에 군인들이 진을 치고 경찰들이 시도 때도 없이 위협을 하고 주민들을 반으로 갈라놓고 서로 헐뜯게 하는 것이 상식은 아니에요.

별이 쏟아지는 밤에 우리는 김남주를 읽었습니다. 어느 시인은 즉석에서 시를 써서 낭송을 했어요. 조용한 밤하늘에 시가 촘촘히 박혔어요. 어눌한 말솜씨였지만 바람결에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우리는 가끔 말문이 막혔어요. 그냥 멍하니 바닷소리만 듣고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곳이 바로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없어진다는 강정이거든요. 듣는 사람이 없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서로가 서로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이곳 강정마을이 바로 평화랍니다. 평화는 그렇게 가까이 있는 거거든요.

시멘트보다 흙을, 폭력보다 비폭력을 사랑하는 사람들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의 모습. 설령 세계적인 미항을 건설한다고 한들 이 모습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서귀포시 강정마을 해안의 모습. 설령 세계적인 미항을 건설한다고 한들 이 모습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 조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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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그래요. 왜 남의 일에 참견 하냐고. 왜 너희가 손해 볼 것도 없는데 이러쿵저러쿵 하냐고. 외부세력인 주제에 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냐고. 그래요. 저는 외부세력이고 남이고 손해 볼 것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이 땅이 내 땅이었고 언제부터 이 세력이 외부세력이었나요? 이 땅은 누구든 소중하게 지켜져야 하는 땅이고 누구든 그 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세력입니다. 누구든 평화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평화는 그렇게 소중하니까요.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짓밟고 이루어낸 평화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평화를 가장한 폭력이고 살인입니다.

평화를 폭력으로 강요하려는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해요. 강정마을 주민들의 선한 눈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폭도인가요?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싸우는 것인가요? 왜 많은 사람들이 강정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언제 해군기지가 건설되나, 를 고대하면서 지켜보는 것은 절대 아닐 겁니다. 우리들이 원하는 건 다만 조용하게 그대로 놔두라는 것입니다. 강정마을은 그럴 가치가 충분합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강정마을을 돌아보세요. 왜 그렇게 선한 사람들이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지를, 왜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지금 강정은 위험합니다. 활동가들은 구속되었습니다. 육지에서 경찰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쇠사슬을 동여매고 앉았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눈물로 매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제2의 4.3이라고 합니다. 시멘트보다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 폭력보다 비폭력을 사랑하는 사람들, 벽보다 광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평화를 지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짧은 1박 2일 일정으로 다녀온 강정마을. 이 마을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그곳을 지키는 선한 사람들의 눈매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보는 사람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어르신들, 소중한 밥 한 끼를 위해 땀을 흘리는 종환이 삼촌, 트위터를 통해 강정을 열심히 나르고 있는 세리님, 개척자들의 젊은 청년들, 각자의 방법으로 강정을 바라보고 있는 선한 눈들. 1인 시위를 서로 하겠다는 사람들. 그분들 눈을 보면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렇게 평화는 눈물과 함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이름을 불러보아요. 특징을 잘 잡아낸 말들의 색깔이 이름이 된 것처럼, 강정마을도 구럼비 바위도 중덕 해안가도 몰아치던 파도도 소리쳐 불러보아요. 마음을 한군데로 모아요. 그래야 평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이름을 불러요. 우리 그래요.


태그:#강정마을, #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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