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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지 나흘만인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하기 위해 방문한 가운데, 천여 명의 시민들이 오전부터 대통령을 보기 위해 그라운드 제로 입구로 몰려들었다. 제프 게리트(50)씨는 "정의를 위해서 빈 라덴의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지 나흘만인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하기 위해 방문한 가운데, 천여 명의 시민들이 오전부터 대통령을 보기 위해 그라운드 제로 입구로 몰려들었다. 제프 게리트(50)씨는 "정의를 위해서 빈 라덴의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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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us see the photos!"(우리에게 그 사진을 보여 달라!)

5일 오전(미국 현지시간) '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 앞 리버티&트리니티 사거리. 이른 시간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몰려든 천여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 제프 게리트(50)씨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색연필로 알록달록하게 정성들여 쓴 그의 피켓 때문이었다. '무슨 사진을 보여 달라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민주주의와 정의의 증거"라고 잘라 말했다.

전날(4일) 오바마 대통령은 나흘 전 미군의 기습 작전으로 사망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머리에 총격을 당한 빈 라덴의 생생한 사진이 (테러 집단 등의) 추가적인 폭력을 선동하거나 선전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에 대해 게리트씨는 "오바마 대통령은 전 세계에 더 이상 테러리스트들이 활개치지 않도록 슈퍼파워를 가진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더욱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공화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도 "미국의 적들에게 확실한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다"며 시신 공개를 주장한 바 있다.

"We love you OBAMA"... 그러나 오바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지 나흘만인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하기 위해 방문한 가운데, 천여 명의 시민들이 오전부터 대통령을 보기 위해 그라운드 제로 입구로 몰려들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지 나흘만인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하기 위해 방문한 가운데, 천여 명의 시민들이 오전부터 대통령을 보기 위해 그라운드 제로 입구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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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자들을 제외한 다른 시민들은 게리트씨나 그의 피켓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카메라를 손에 움켜쥔 채 간간히 "U.S.A"을 연호하며 흥분된 표정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행렬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거리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에브리엄링컨 고등학교에 다니는 헤이다 큐레시(19) 군도 오바마 대통령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2년 전 파키스탄에서 유학을 온 그의 손에는 "We love you OBAMA(우리는 오바마를 사랑한다)"라는 글이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다음 줄에 있었다.

"But 'ISI' is not a cheat!! (파키스탄 정보부는 속이지 않았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지 나흘만인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하기 위해 방문한 가운데, 천여 명의 시민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2년 전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온 헤이다 큐레쉬군은 "진짜 파키스탄 사람들과 무슬림들은 빈 라덴의 죽음을 기뻐하고 있고, 미국에 고마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지 나흘만인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하기 위해 방문한 가운데, 천여 명의 시민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2년 전 파키스탄에서 미국으로 온 헤이다 큐레쉬군은 "진짜 파키스탄 사람들과 무슬림들은 빈 라덴의 죽음을 기뻐하고 있고, 미국에 고마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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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는 미국이 파키스탄 정부의 협력을 얻어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동안 은밀히 빈 라덴을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빈 라덴의 은신처가 파키스탄에 있었고, 파키스탄 정보부가 이를 비호하며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큐레시군 같은 파키스탄인들의 입장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

큐레시군은 기자의 손을 잡고 "진짜 파키스탄 사람들과 무슬림들은 빈 라덴의 죽음을 기뻐하고 있고, 미국에 고마워하고 있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빈 라덴 사살 소식에 환호하는 미국인들이 지난 10년간 이슬람권에서 죄 없이 숨져간 수많은 민간인들에 대해선 왜 한 마디 말이 없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끝내 답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네덜란드에서 부인과 함께 관광을 온 얌 드그루트씨는 "오일 머니 때문에 미국이 이슬람권에서 계속 패권을 잡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넌 미국의 친구냐, 아니냐'를 명확히 가르고 있다"며 "이미 최강대국인 미국은 주변을 보지 않고 자기의 길로만 가려고 한다, 그게 미국 스타일이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헌화가 예정된 시간이 가까워지자 인도를 빼곡히 채운 사람들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미 도로는 1시간 전부터 일반차량 출입이 통제 됐다. 아무리 기다려도 대통령의 행렬이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경찰차나 소방차, 심지어 정부 관리들이 탄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승용차만 지나가도 환호성을 내지르고 박수를 쳤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9.11 테러로 붕괴한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9.11 테러로 붕괴한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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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끝내 오바마 대통령을 태운 차량 행렬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시민들은 결국 경찰이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밀어내고 도로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은 다시 시민들을 인도로 올려 세웠고, 잠시 후 경찰차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신사숙녀 여러분, 대통령은 현재 이 지역에 있지 않습니다."

한 경찰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전혀 모르겠다며 웃어보였다. 아마도 다른 통로를 통해 행사장에 들어간 것 같다는 것이다. 그제야 시민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만을 토로하거나 화를 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모자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페티마 로랜드와 티나 무노그씨도 오바마 대통령 행렬이 등장하면 펼쳐 보이려고 했던 환영 피켓을 뒤늦게 꺼내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무노그씨는 "오바마 대통령의 캐릭터나 직무 수행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며 "미국의 정신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민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보안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 빈 라덴이 사살된 뒤 첫 공식 외부 일정이어서 보복 테러의 위협으로 인해 이날 뉴욕시와 경찰은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그라운드 제로 현장 주변은 수백 명의 무장 경찰과 경찰견이 둘러쌌고, 건물 위에도 저격수를 배치하는 등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빈 말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한 가운데, 마린나 알바로씨가 9.11 테러 당시 목숨을 잃은 아들을 추모하는 글을 적어 그라운드 제로 공사 현장 철조망에 달아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한 가운데, 마린나 알바로씨가 9.11 테러 당시 목숨을 잃은 아들을 추모하는 글을 적어 그라운드 제로 공사 현장 철조망에 달아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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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이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한 것은 2008년 후보 시절 이후 처음이다. 백악관은 당초 이번 행사에 재임시 9·11 테러를 겪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을 초청했다. 그러나 부시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불참했다.

백악관 풀기자단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한 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여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행사 내내 주요 참석자들과의 사담을 제외하고는 연설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위기의 순간에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생명을 구해냈던 경찰관과 소방대원 등 인명구조대원들을 추모하고, 끔찍한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하나가 됐던 미국의 단합심을 기억하는 자리에서 어떤 말도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희생자 가족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새를 피하기 위한 백악관의 결정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렇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뉴욕 방문에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라운드 제로를 향하기 전 맨해튼의 미드타운 '엔진 54' 소방서를 찾은 자리에서 "지난 일요일에 진행된 일은(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것은) '우리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은 빈 말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곳은 10년 전 그 끔찍했던 날에 비범한 희생을 보여준 상징적 장소"라면서 이 같이 말했다. 9·11 테러 당시 이곳 소속의 소방대원 15명이 사망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이어 "파키스탄에 있는 빈 라덴의 은신처를 습격한 미군 특공대가 (작전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발생한 희생 때문이었다"며 "그들은 (9·11 테러 현장에서) 숨진 여러분의 형제들의 이름으로 그 작전을 수행했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에는 찰스 슈머 상원의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줄리아니 전 시장,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 등 이 지역의 거물급 정치인들도 대거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9월 10주기 추모식 때도 참석할 예정이다.

"악마는 발견되었고, 잡혔고, 죽었다. 그러나..."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지 나흘만인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하기 위해 방문한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온 마린나 알바로씨가 9.11 테러로 잃은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에 의해 사살된지 나흘만인 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헌화하기 위해 방문한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을 면담하고 나온 마린나 알바로씨가 9.11 테러로 잃은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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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은 헌화 행사 이후 9·11테러 기념관(9·11 Memorial Preview Site)으로 장소를 옮겨 60여명의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과 비공개 면담을 했다. 이 행사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특별한 연설 없이 희생자 가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면담을 마치고 나온 마우린 산토라씨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이 너무나 고맙다"며 "지난 일요일 그(빈 라덴)를 찾아내서 사살한 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말했다. 9·11 테러로 남편을 잃은 메기아 밀러씨도 "대통령이 테이블을 돌면서 친절하게 모든 가족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거나 사진을 찍는 등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고 면담 분위기를 전했다. 밀러씨는 '9월 달력'에 오바마 대통령의 사인을 받아와서 기자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9·11 테러로 아들 웰스를 보내야 했던 엘리슨 크로터씨는 "우리는 빈 라덴의 죽음에 대해 전혀 두려움이 없다"며 "우리는 또 다른 곳에서 악마를 격퇴시킬 순수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빠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가슴에 안고서 면담장을 나온 앤스올라 캐시매티즈씨는 "가족을 대신해서 오마바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표한다"며 "그동안 고통 받았던 가족들이 그의 방문으로 인해 큰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마린나 알바로씨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다시 그라운드 제로 현장 한 켠을 찾았다. 그는 딸과 함께 준비한 작은 현수막을 공사장 철조망에 달아맸다. 현수막에는 아들 케니에게 쓴 편지가 적혀 있었다.  

"오늘, 악마는 발견되었고, 잡혔고, 죽었다. 그러나 나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케니'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도중 끝내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 하다가, 딸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라운드 제로 주변 거리는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방송사 중계차량을 제외하고는 '언제 대통령이 다녀갔냐'는 듯 드문드문 보이는 관광객들로 채워지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 헌화하고 9.11 테러 희생자 가족과 면담한 가운데, 9.11 테러로 남편을 잃은 메기아 밀러씨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사인을 받은 달력을 보여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9.11 테러' 현장인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 헌화하고 9.11 테러 희생자 가족과 면담한 가운데, 9.11 테러로 남편을 잃은 메기아 밀러씨가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사인을 받은 달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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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빈 라덴, #9.11 테러, #오바마 대통령, #그라운드 제로, #오사마 빈 라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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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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