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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만화는 가장 날카로운 비평이다.
<연애대립법> 중-'A. L 헉슬리

안기태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
 안기태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
ⓒ 사단법인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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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세상에 만화가 없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버나드 쇼는 어느날 친구들과 만화에 대해서 환담을 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닮은 만화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 (...) 아니 괴짜로 생긴 얼굴이었으나 만화로선 손색이 없는 것을 보았어. 그러나 만화가 움직인단 말이야. 거울이 옆에 걸려 있으니까."

그렇다. 만화는 우리네 삶의 거울이라 하겠다. 그러나  대개들 만화에 대해 가벼운 볼거리쯤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을 떼우기 위해 혹은 가볍기 즐기기 위해 만화를 본다.

그럼 도대체 만화는 뭘까. 사전에 있는 뜻을 그대로 옮겨본다.

만화(漫畵, 문화어: 이야기그림)는 영어로는 믹스(Comics). 시각예술의 일종으로, 말풍선이나 자막 형태로 적힌 글과 그림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초기에는 캐리커쳐로서나 간단한 이야기를 통해 재미를 주기 위해 사용되었다. 

만화는 신문이나 잡지의 코믹 스트립(대체로 4컷으로 이루어 짐)인쇄만화와 만화책으로 나뉜다. 만화의 기원은 만화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는데, 15세기 유럽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이집트 상형문자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컷과 그림 안의 말풍선을 가진) 현재의 만화 형식 및 '만화'라는 단어 자체가 생겨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안기태 만화
 안기태 만화
ⓒ 사단법인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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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태(70) 화백은 인쇄만화를 30년간 그려온 시사만화가다. 그는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등을 통해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만화가이기도 하다. 날카로운 풍자와 시원한 해학을 전해줬던 그의 시사만화의 주인공, '파라미 선생(국제 신문)'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촌철살인의 네 컷 만화(시사만화)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림 실력보다는 세태 풍자와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 그런 것을 바탕으로 서민들의 애환과 답답한 심정을 효자손처럼 시원하게 긁어주어야 한다. 한국시사만화가회 회장이자 동아일보 '나대로선생'작가인 이홍우 화백은 안화백의 시사만화에 대해 아래와과 같이 평한 바 있다.

"냉면사리의 쫄깃쫄깃한 맛과 맵고 톡 쏘는 겨자 맛이 어우러질 때 시사만화는그 빛을 발한다. 안 화백의 피라미선생은 톡 쏘면서도 짜고 매운 그 맛, 촌철살인을 밑바닥에 깐 익살과 재치는 독자들에게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안기태 만화가
 안기태 만화가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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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태 만화
 안기태 만화
ⓒ 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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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기자는 인터뷰를 위해 안 화백이 자주 다니는 허름한 선술집(서면 소재)을 찾았다.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를 보다가 업그레이시킨 <안용복 장군(가제)> 전기 만화(스토리 만화) 창작과정과 '시와 카툰의 만남' 전시회 등 이것저것 얘기한 것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다.

오마이뉴스(이하: 오) : "안선생님은 언제부터 만화를 그렸는지요?"
안 : "어릴 때부터 무작정 만화가 좋았습니다. 아마 기억을 더듬어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만화를 그려 부모님을 놀라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아예 만화를 하루 한편씩 그려 친구들에 보여주곤 했습니다. 지금이야 만화에 대한 부모님들의 이해가 깊지만 그 시절은 만화를 그리면 하라는 공부는 않고 웬 만화냐고 호통을 쳤지요.

그 무렵 대개 만화를 '망가'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만화의 일본식 발음인데, 집구석 망한다고 망가(亡家)로 표현하기까지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만화가가 된 것은 아무래도 타고 난 것 같기도 합니다. 내 삶이 전부 만화를 위해 존재했으니까요.(웃음)"

오 : "선생님의 근황과 현재 창작 중인 스토리 만화(장편)의 <안용복 장군>과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의 주인공 안용복 장군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면 합니다."

안 : "어제도 만화 오늘도 만화 내일도 만화를 그리는 게 내 삶입니다. 실은 30년도 넘게 다니던 신문사를 정년퇴직하고 나니 한동안은 '이제 살았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분초를 다투는 마감이란 것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자 손이 근질거렸습니다. 여기 저기 청탁 오는대로 만화원고도 그리다가 최근 2007년도에 그린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사단법인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의 단편을 보완해서 '안용복 장군'의 장편 전기 만화를 발간할 계획입니다.

그런데 문학서적과 달리 만화책을 출간하는 일은 우선 제작비가 만만치 않습니다. 해서 중도에 그냥 포기할까 하는 마음도 숱하게 들었지만, 이 일은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꼭 해야 할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두고 싶다는 마음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안용복 장군은 영웅에 비길 만한 사람입니다. 그 분이 없었다면 지금 독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독도는 우리 땅 !
 독도는 우리 땅 !
ⓒ 안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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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용복 장군은 대중들이 알다시피 을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우리의 훌륭한 선조입니다. 안 장군은 조선의 벼슬 아치들이 당파 싸움하기 바쁠 때, 5대 쇼오군(장군) 도쿠카와 츠나요시(집권세력 수장)에게 독도가 우리 것임을 주장하고,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우리나라의 땅임으로 절대 침범하지 않겠다는 서계(문서)를 받아낸 분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안용복 장군은 부산 동래(현재 부산시 동구 좌천동 부근) 출신입니다. 부산의 수영사직 공원에 그의 동상과 제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을 기리는 '사단법인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에서 단편 만화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를 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단편으로 이 분의 생애를 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나는 만화로 독도를 지키겠다고 입술을 물었습니다. 정말 오래동안 밀고 당기는 독도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년 전에도 일본 정부 측은 독도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한다고 감히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그들의 교과서에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명기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지하에 계신 안용복 장군께서 억울하다고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전 이 작업을 위해 저의 영혼을 불태울 각오입니다. 사실 이런 제 각오에 함께 동참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글과 그림은 제가 작업을 맡지만, <안용복 장군>의 제작비는 가난한 만화가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역부족입니다."

안기태 만화가의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
 안기태 만화가의 <안용복 장군님, 고맙습니다>
ⓒ 사단법인 안용복장군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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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선생님, 절대 낙심하지 마세요. 반드시 선생님의 훌륭한 뜻에 동참할 출판사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선생님께서는 '시와 카툰의 만남'이란 제목 하에 여러번 전시회를 여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시를 카툰으로 그리시는 특별한 뜻이 있는지요?"

안: "(웃음) 카툰을 흔히 '만화의 시'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그래서 제가 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카툰은 위트와 유머, 풍자로 세상 모순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담는 만화의 한 형식(Cartoon)입니다. 시문학 역시 부조리한 세상의 모순에 대한 건강한 비판을 담아내는 장르라고 전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와 카툰은 길이도 짧고 동일한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웃음)

그간 '시와 삽화', '시와 일러스트'전시회를 간혹 열었습니다만, 시와 카툰이 어울린 '시와 카툰의 만남' 전시회는 처음으로 열었습니다. 최근에 부산시립박물관을 비롯한 여러곳에서(부산 시단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몇몇 시인들의 작품을 카툰으로 그린) '시와 카툰'의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얼마전까지 이 작품들이 부산 소재 선암사 사찰내에 전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반응이 괜찮아 현재 모 시인과 <시와 카툰>전시회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79년 신군부의 해악을 꼬집었다는 이유로 그들에 의해 강제해직되고 테러를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나의 카툰에는 아직도 이런 신랄한 비판과 날카로운 통찰 의식이 담겨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해서 독자들에 폭넓은 성찰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카툰이 되길 항상 노력 중입니다.(웃음) 아, 그리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점점 만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부산에서는 만화가에게 부산문화상을 수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여러 시·도에서 문화상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사이) 사실 네칸짜리 시사만화가 주는 희열은 신문전체가 끼치는 느낌보다 강렬할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만화뿐만 아니라, 특히 시사만화는 훌륭한 기사이고, 그림이며 예술작품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만화세상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합니다. 정말 이렇게 찾아주어서 감사합니다."

오: "네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민족의 숙원, 독도 문제를 만화로 잘 해결해 주시면 합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와 카툰의 만남-안기태
 시와 카툰의 만남-안기태
ⓒ 안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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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태 화백은 누구?
국제신문과 부산일보 편집위원으로 시사만화를 30여년간 연재하였으며, 그외 주간 큐타임, 합동신문, 대동일보, 경북일보 등에도 연재했다. 영남 언론미술기자회 회장을 거쳐, 한국 시사만화회 부회장, 부산카툰작가클럽 회장, 부산여성 신문 고문,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회 부산시지부 고문, 현재 부산예술대학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수상으로는 봉생문화상(언론출판 부문) 수상 외 다수 수상.


태그:#안기태, #만화, #안용복, #카툰,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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