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날 내린 폭설로 발목까지 눈이 쌓인 24일 오후. 서울시 노원구 화랑로에 위치한 삼육대학교의 청소노동자 10여 명은 한 건물에 모여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보라색 점퍼를 맞춰 입은 이들은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며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아니, 이거 자꾸 (기사) 나가면 우리 미화부 위태위태한데. 경쟁이 더 세지겠어."

'서울지역 대학 청소노동자 실태를 조사하러 왔다'는 기자의 말에 삼육대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는 한 노동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우리 대학은 다른 대학하고는 달라요, 서로 들어오려고 한다니까"라고 웃어 보였다. 다른 노동자 역시 "우리 대학은 모범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소노동자 100% 직접 고용..."'주인의식' 갖고 일 한다"

삼육대학교에서는 청소노동자 26명 전원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삼육대학교에서는 청소노동자 26명 전원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 홍현진

관련사진보기


삼육대 노동자들이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삼육대는 미화를 담당하는 청소노동자 26명 전원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취재결과, 서울지역 28개 대학 가운데 24개 대학 청소노동자가 '용역직'으로 고용되어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특수한' 사례다(홍익대 76만원, 삼육대 238만원 똑같이 주 40시간 노동...월급은 왜?).

게다가 이들 청소노동자 가운데 19명은 '정규직'으로 이 학교 교직원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 정규직은 또 다시 '기능직'과 '고용직'으로 나뉘는데, 근속연수가 오래 된 기능직이 더 높은 임금을 받는다.

이날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박영익 시설관리과장은 "오래 일한 분들은 최고 기능직 6급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이 분들은 연봉이 3000~4000만 원 정도 된다"고 전했다. 또한 "고용직 이상은 자녀가 삼육대학교에 입학할 경우 학비가 100% 지원된다"고 덧붙였다.

이곳에서는 기능직과 고용직뿐만 아니라 학교와 1년에 한 번씩 계약을 맺는 '계약직'도 삼육재단이 운영하는 사회교육원, 어린이집 등을 이용할 때 혜택을 받는다.

실제로 삼육대에서 일한 지 6~7년 정도 됐다는 한 정규직 청소노동자는 "저 같은 경우에는 이거(청소)하면서 공부도 한다"며 "학점은행 이용해서 사회복지학 공부하고 있는데, (삼육대) 사회교육원을 이용하면 교직원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리는 사립대학 교직원이나 마찬가지"라고 높은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고용안정'이 이루어지다보니 노동자들의 책임의식도 높았다. '홍익대 사태'를 접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처우에 새삼 감사하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경쟁률 상승'을 우려하던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는 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요. 우리는 이 학교가 '우리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학교보다 일이 많아도 많다고 생각 안 하고 '내 학교다, 내 자녀가 다닌다' 이렇게 생각을 해요."

삼육대가 이처럼 청소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는 배경에는 '교회학교'라는 특수성이 있다. 삼육대는 '제7일 안식일' 교도들이 설립한 대학이다. 삼육대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저희는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에 조경, 경비, 보안, 수송, 미화 등 다른 대학에서는 용역을 주는 일들을 모두 자체인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종교적 특수성 때문에 청소노동자들은 금요일은 3시까지 근무하고 토요일은 휴무, 일요일은 격주로 일한다. 이날 만난 청소노동자들은 서로를 '집사님'이라고 불렀다.

"'돈 없어 용역준다'는 건 거짓말...'노조' 통해 처우 개선해야"

홍익대 총학생회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은 외부세력에 의한 불법농성이라며 입장을 밝혀 청소노동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홍익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지지하는 대학생 기자회견'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처우 개선과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홍익대 총학생회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은 외부세력에 의한 불법농성이라며 입장을 밝혀 청소노동자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12일 오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열린 '홍익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 지지하는 대학생 기자회견'에서 청소노동자들이 처우 개선과 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홍익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현실은 삼육대와 다르다. '용역직'으로 고용된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매년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의식해서인지 삼육대 관계자는 취재과정에서 "우리 대학은 매우 특수한 경우"라며 "이러한 사례가 '모범사례'로 소개된다면 (우리가)다른 대학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부담스러워했다.

이 관계자는 "학생 수는 줄어들고 등록금은 동결되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도 수지타산만을 생각했다면 아마 다른 대학들처럼 용역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접 고용'의 문제가 단순히 '비용'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류남미 공공노조 미조직비정규국장은 "청소노동자들이 수백만 원의 월급을 요구하는 상황도 아니고 청소노동자들이 많으면 200~300명, 적으면 50~60명인데 돈이 없어서 직접 고용을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수백억씩 쌓여있는 재단적립금과 한 해 대학운영비를 생각하면 (직접 고용을 위한 비용은) 아주 작은 액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류 국장은 "대학들이 직접 고용을 꺼리는 첫 번째 이유는 결국 노무관리 등의 부담을 용역업체에 떠넘기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용자로서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이어 류 국장은 "궁극적으로는 직접 고용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날 대학들이 '선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직접 고용)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임금을 현실화시키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조 설립 한 달만에 '왕'이었던 관리소장을 몰아내다

한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한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 김수진

관련사진보기


지난 21일부터 5일간 <오마이뉴스>가 집중 취재한 서울지역 28개 대학가운데 노조가 결성된 대학은 모두 11개. 이들 대학은 그렇지 않은 대학과 비교했을 때 임금 등의 처우가 비교적 사정이 나았다.

대부분 월 최저임금(주 40시간 기준 2010년 86만원, 2011년 91만원) 이상인 100만 원에 가까운 임금을 받았다. 또 고려대(6만 원), 동국대(10만 원), 성신여대(4만 원), 연세대(5만 원), 이화여대(4만 원) 청소노동자들은 월급과 별도로 한달 식대를 지원받았다. 28개 대학 가운데 무려 15개 대학이 식사와 관련해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큰 성과다.

2007년 노조설립 당시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도 몰랐다는 한원순 공공노조 덕성여대 분회장 은 지난 18일, '청소노동자 근무환경 개선과 고용불안 해소를 위한 좌담회(청소노동자 좌담회)' 자리에서 "노조 설립 이후 협상을 통해 임금 개선뿐만 아니라 쉼터(휴게실) 환경도 개선했다, 주5일 근무를 보장받고 근무 외 수당은 확실히 챙기는 방식으로 복지를 개선했다"며 노조설립 이후 생긴 변화를 설명했다.

"비오는 날도 쓰레기봉투를 쓰고 풀을 뽑으라고 강요받을 정도로 인격이 없었"던 이들은 노조설립 한 달 만에 마치 왕처럼 군림하던 관리소장을 '몰아'낼 수 있었다.

물론, 노조를 만든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날 '청소노동자 좌담회'에서 이상선 공공노조 서울경인지역 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은 "기존에 설립된 분회들도 계약시기가 되면 얼마에, 누구에게 팔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라고 말했고, 한원순 분회장 역시 "조합을 만들어서 꾸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투쟁해야 최저임금 몇 백 원 인상되고 이런 분위기"라고 전했다.

노조설립이 또 다른 고용불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한양대(안산캠퍼스) 미화원 분회' 조합원 33명은 2009년 말 용역업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노조활동을 이유로 집단해고를 당했다. 이후 한 노동자가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음독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들은 복직되지 못했다.

하지만 류남미 국장은 "간접 고용상태에서 노조 설립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노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공노조는 대학교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류 국장은 "대학이 존재하는 이상 청소노동자도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직접고용을 통해) 최소한 용역업체로 가는 돈이 청소노동자에게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태그:#홍익대 , #대학 청소노동자 , #청소노동자 , #삼육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