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10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저녁 6시쯤, 기륭농성장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지난번에 농성장을 찾았을 때, '너무 자주 와서 죄송하다'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자주 오겠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해 놓은 터라 이틀 걸러 한번 꼴로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가산디지털단지' 역에서 내렸을 때, 기륭분회 노조원들이 황급히 지나쳐갔다. 농성장에 있어야 할 분들이 왜 지하철에 있을까? 의문이 나서 붙잡고 '오늘 영화제 안하나요?'라고 물었다. 이날은 레미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미례 감독의 독립영화 <노동자다 아니다> 상영이 있는 날이다.

 

"KEC 분신 관련해서 촛불문화제가 있어, 지금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으로 가요. 영화제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계속합니다."

 

그렇다. 어젯밤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인 김준일씨가 분신했다. 순간 갈등이 생겼다. 사실 한두 번 겪은 갈등은 아니다. 동희오토 노동자들,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농성 중이다.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해 늘 죄송스런 맘이었다.

 

기륭노조는 마침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전날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참가했다가 기륭노조의 '잠정합의'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륭농성장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후배들도 있고, 잠정합의안 소식이 궁금하기도 해서 농성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기륭농성장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영등포 소식이 궁금하고 마음에 걸렸다. 

 

답답한 마음에 거기 있는 분에게 '기륭이 끝나면 우리들이 어디로 가는 게 좋냐?'고 물었다. 재능교육이 가장 열악하다고 한다. 노조와 노조원에 압류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다가 교섭도 잘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 날 밤 김소연 분회장이 포클레인 위에 앉아있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빠져나왔다.

 

다행히 다음 날 김소연 분회장의 웃고 우는 모습을 신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최동렬 사장이 또 뒤집을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조인식이 잘 끝나 1865일의 기륭투쟁은 마무리가 된 것 같다. '승리'했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의 문자를 돌렸지만, 동희오토와 재능교육, KEC투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던 터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그 분들을 다시 만난 건, 2일 저녁 7시 영등포에서였다. 날씨가 엄청나게 추웠던 그 날 저녁 기륭노조 조합원들은 여전히 촛불을 들고 길바닥에 있었다. 나 역시 '너무 자주 와서 죄송하다'라는 말을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했다. 기륭에서 노래를 부르던 분, 음향을 담당했던 분, 빨간 조끼를 입었던 분들이 연대하러 한강성심병원 앞에 앉았다. 한강 성심병원은 화상전문병원이라고 한다. 이 병원에서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스러워했을까?

 

전태일 열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쟁은 계속된다. 그래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본다. 학생들도, 민주노총 소속의 노동자들도, 진보정당의 사람들도, 시민들도 있다. '투쟁은 끝나지 않으리라'는 기륭노동자들이 힘차게 불렀던 그 노래처럼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끝나지 않았다.

 

KEC의 김창기 부위원장이 나와서 현재 구미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오늘 구미 공장에 있는 조합원으로부터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초코파이 하나 먹는 게 소원인데, 그럴 수 없어 쓰러져서 농성하고 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창기 부위원장에 따르면 농성중인 조합원들의 가족들이 공장 앞에서 먹을 것을 공장 안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네 시간 동안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에서는 끝내 음식물 반입을 막았다. 현재 공장 안은 그야말로 초코파이 하나 먹는 게 소원인 상태다. 쌍용자동차 투쟁을 했던 조합원도 나와서 이야기를 했다.

 

"쌍용자동차 진압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지금의 조현오 경찰청장이다. 제2의 쌍용자동차상태는 막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조현오 경찰청장 퇴진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규탄 구호도 터져 나왔다. 생각해보면, 이명박 정권 들어 매해 경찰청장이 말썽이다. 2008년 어청수, 2009년 김석기, 2010년 조현오, 늘 우리들을 거리에 있게 만들었던 사람들이다. 사람만 바뀌었을 뿐, 생각과 철학은 똑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노동자들과 평범한 국민들이 고통 받는다. 겨울을 알리는 차가운 바람이 아프게 느껴진다.

 

그래도 촛불문화제 마지막 즈음에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협상타결소식이다. 기쁜 일이다. 이제 GM대우 비정규직, 재능교육, KEC가 남았다. 정부와 사측 입장에서도 G20을 앞두고 투쟁이 장기화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희망을 가져본다.

 

지금 당장 촛불을 들지 않는다면 나처럼 후회할지도 모른다. 진작 와서 힘을 보태 좀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드리지 못한 후회 말이다. 지금 조금이라도 촛불을 보태면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아차, 2일부터는 재능교육노동자들의 집중투쟁이 시작된다. 100시간이 넘는 경찰서 앞에서의 투쟁으로 재능교육본사 앞에서 집회와 문화제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 40주기, 거리에서 노동자들의 촛불은 계속되고 있다. 추운 겨울의 날씨도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기에 내일 또 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태그:#KEC, #김준일, #재능교육, #전태일, #기륭노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