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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논란에 휩싸인 소설 <덕혜옹주>. 왼쪽은 혼마 야스코의 <덕혜희>를 번역한 <덕혜옹주-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표절 논란에 휩싸인 소설 <덕혜옹주>. 왼쪽은 혼마 야스코의 <덕혜희>를 번역한 <덕혜옹주-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 다산책방-역사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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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계에서는 두 건의 큰 '표절 논란'이 있었다. 표절 논란에 휩싸인 작품 중 하나는 60만부 이상이 팔린 <덕혜옹주>(권비영, 2009년, 다산책방)이고, 다른 하나는 15만부 이상 팔린 <강남몽>(황석영, 2010년, 창비)이다.

이 두 건 사이에는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다큐멘터리든 평전이든, 누군가 독자적으로 취재·조사한 내용을 '소설'이라는 장르에 녹여냈다는 점이 그것이다.

<강남몽>의 저자 황석영씨는 '표절' 단정에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소설 내용에 주를 달거나 전거를 밝힐 수 없었다고 해도 출처를 밝히지 못한 것은 저의 불찰"이라고 문제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런데 소설 <덕혜옹주>의 경우 작가가 책 속 '지은이의 글'에서 "혼마 야스코가 쓴 <덕혜희-이씨 조선 최후의 왕녀>는 가장 완벽한 참고자료였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소설 <덕혜옹주>는 표절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타인의 저작을 변조해 베낀 것을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나?"

이와 관련, 소설 <덕혜옹주>의 저자 권비영씨와 평전 <덕혜희>(한국 번역서 <덕혜옹주-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2008년, 역사공간)의 저자 혼마 야스코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현재로서는 법정까지 가야 할 상황이다.

혼마 야스코는 "소설 <덕혜옹주>는 내 책의 내용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했다"고 주장한 반면, 권비영씨는 "혼마 야스코가 '덕혜옹주의 삶' 자체를 창조한 것이 아닌 이상, 그분의 삶과 황실가족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그 누구의 귀속물도 아니다"고 표절 의혹을 일축했다. 

그런 가운데 혼마 야스코는 <오마이뉴스>와 한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사실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다'는 것과 '이 소설이 나의 저작 전체를 무단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차용해서 썼다'는 사실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권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혼마 야스코는 "타인의 저작을 변조해서 베낀 것을 과연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면서 "나의 저작을 전면적으로 1차 자료로 사용하면서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라면 저작권자인 내가 한마디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 혼마 야스코는 "(권씨와 출판사측은) 표현의 자유를 착각하고 있는데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최대한 창작의 자유를 보호함으로써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있다"며 "즉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법이 존재하는 것으로, 타인의 저작을 일방적으로 이용하여 수익을 내는 것은 장려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허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혼마 야스코는 "만약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면서 역사나 역사적 인물에 대해 분석하거나 재조명을 한 창작물을 누구의 창작인지, 누구의 견해인지도 밝히지 않고 마구 가져다 쓸 수 있는 사회라면 누구라도 고생해서 역사적 사실을 해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혼마 야스코는 '역사소설가는 역사가(歷史家) 이상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이노우에 히사시의 말을 인용한 뒤, "역사소설은 역사에서 있었던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않으면 쓸 수 없다"며 "도대체 단 한 권의 책을 자료로서 참조하여 다른 책을 쓴다고 하는 것을 문학적으로 창작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꼬집었다.

권비영씨는 혼마 야스코의 <덕혜희>는 물론이고 <제국의 후예들>(정범준, 2006년),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이태진, 2005년), <문화방송> 광복 특집 드라마 <덕혜옹주>(1996년)와 <한국방송>의 <한국사-라스트 프린세스 덕혜옹주> 등을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혼마 야스코는 "권비영씨가 취재다운 취재를 하지 않았다"며 "자료를 정확하게 읽고 해명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타인의 저작을 이용해서 마치 자신이 조사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방식을 변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혼마 야스코는 "세상일이란 자기 스스로 실제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여러 가지 문제점과 의문이 생기는 법"이라며 "덕혜옹주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조사해야 할 것, 조사하면 새로 밝혀질 수 있는 부분들이 아직도 많은데 조사라는 노력 없이 타인의 저작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권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덕혜옹주 최초 평전 <덕혜희>의 작가 혼마 야스코의 문제제기. "내 책의 내용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했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덕혜옹주 최초 평전 <덕혜희>의 작가 혼마 야스코의 문제제기. "내 책의 내용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무단차용했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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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작이라고? 저작권법을 피해가려는 윤색과 왜곡"

또한 혼마 야스코는 소설 <덕혜옹주>의 표절 대목과 관련해 "사실과 사실의 관련성, 사실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고찰, 인간의 심정에 대한 추측에 이르기까지 소설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이용하였다"며 "더 나아가 소설 <덕혜옹주>는 내가 출처를 밝히고 취재한 사람들의 표현까지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혼마 야스코는 "(내가 작성한) 1차 (표절) 검토자료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잘 읽어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이 부분은 재판에서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혼마 야스코는 "타인의 책을 영리 목적으로 철저하게 이용을 해놓고서 정작 저자 본인에게는 한마디의 연락도 없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의를 벗어난 정도가 너무나도 심하다"며 "설사 허용되는 인용의 범위 안에 들더라도 어디까지가 자신의 생각이고, 자신의 표현인지, 어느 부분은 다른 사람의 생각, 다른 사람의 표현인지를 독자들이 알 수 있게 밝혀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혼마 야스코는 '<덕혜희>를 참고해 역사소설로 재창작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도 "재창작이라기보다 저작권법을 피해가려는 윤색과 왜곡"이라며 "나의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했다면 이런 소설이 나올 리 없는데 이해도 못한 채 나의 책을 송두리째 자신의 편의대로 변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끝으로 혼마 야스코는 "덕혜옹주를 주제로 (책을) 쓴다는 것은 근대 일본의 무거운 역사를 짊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며 "그런 고통이 없었다면, 다시 말해 역사의 현실을 직시하는 노력이 없었다면 이 책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침해 소송 제기와 관련해서는 "법률전문가, 한국의 우인(友人)들과 협의 중"이라고 짧게 답변했다. 

혼마 야스코는 도쿄대 문학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자신의 고향인 나가사키의 고등학교 국어과 교사로 근무하다 캇스이(活水)여자대 문학부 일본문학과 전임강사로 자리를 옮겼다. 주로 여성사를 연구해온 그는 최초의 덕혜옹주 평전인 <덕혜희>(1998년)와 <오우라 케이죠덴 노트>(1990년)를 썼다.  

다음은 혼마 야스코에게 받은 이메일 답변 전문이다. 이는 지난 9월 25일 <한겨레>를 통해 소설 <덕혜옹주>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후 국내 언론과 한 최초의 인터뷰다.

"덕혜옹주 평전 작업은 근대 일본의 무거운 역사를 짊어진 것"

- 덕혜옹주의 생애를 처음으로 복원한 평전 <덕혜희(德惠姬)>를 집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덕혜옹주에 대한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알아가는 동안, 아무래도 지금 내가 써두지 않으면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事實)이 없어져 버릴 것처럼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덕혜옹주를 위해 정확한 평전(評傳)을 집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책(<덕혜희>)의 '머리말'과 '후기'에서도 언급하였다."

- <덕혜희>를 집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며, 실마리조차도 거의 없었다. 그간 덕혜옹주에 대해서는 파편 조각 같은 이야기들이 있었을 뿐이다. 이에 이러한 이야기들의 신빙성을 검토한 후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정리를 하고 고찰해 감으로써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생애가 겨우 떠올랐다.

또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에서 커다란 줄기는 개인의 삶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한국의 자료를 직접 읽기 위해 한글 공부, 소 다케유키(宗武志)의 난해한 시(詩)에 대한 해석 등 내 자신의 능력이 닿는 데까지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노력은 덕혜옹주의 생애에 대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이 작업이 한국과 일본의 상호이해에도 기여할 것으로 믿었다.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여 있는 그대로 덕혜옹주를 묘사하기 위해 나 자신 한 사람의 자유로운 개인으로서 집필하였다. 모든 편견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다. 그래서 누구로부터도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았다. 덕혜옹주를 주제로 쓴다는 것은 근대 일본의 무거운 역사를 짊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이 없었더라면, 다시 말해 역사의 현실을 직시하는 노력이 없었다면, 거꾸로 이 책을 완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 2009년 12월 한국에서 출간된 소설 <덕혜옹주>는 언제 읽었는가?
"2010년 2월쯤에 처음으로 읽었다."

- 소설<덕혜옹주>를 읽고난 후 자신의 저서인 <덕혜희>를 표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그렇다. 저작권에는 '저작자인격권'이라는 것이 포함된다. 저작물에는 저작자의 인격이 반영되는데, 그 권리에 대한 침해는 인격을 짓밟는 행위와 같다. 그렇기 때문에 침해를 당한 쪽은 읽는 순간 직감적으로 곧바로 알 수 있다."

- 어떤 점에서 소설 <덕혜옹주>가 평전 <덕혜희>를 표절했다고 생각하는가?
"내 책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이는 사실(事實)만이 아니다. 사실과 사실의 관련성, 사실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고찰, 인간의 심정에 대한 추측에 이르기까지, 소설로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이용하였다고 느꼈다."

소설 <덕혜옹주>의 작가 권비영씨의 반박글. "역사적 사실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표절 의혹을 반박했다.
 소설 <덕혜옹주>의 작가 권비영씨의 반박글. "역사적 사실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라고 표절 의혹을 반박했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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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씨는 취재다운 취재를 하지 않았다"

- 1차 표절검토자료에서는 40여 군데를 무단 도용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왜 소설<덕혜옹주>가 출간된 지 10개월이나 지나서 표절 문제를 제기했는가?
"1차 검토자료란, 우선 내용이 비슷한 곳을 발췌했을 뿐이다. 그것은 불완전하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잘 읽어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부분은 재판에서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나는 처음 소설 <덕혜옹주>가 내 책을 무단차용(無斷借用)하고 있음을 한국의 독자들이 알아챌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소설에 대한 평가를 보면 독자들의 적확하고 엄격한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 나로서는 내가 집필한 책을 이용해서 변조한 것은 물론, 내가 그려낸 인물상(人物像)과는 아주 다른 인간상을 주장하는 소설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무엇보다 덕혜옹주를 위해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간단하게 말을 꺼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의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을까를 신중하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문제제기를 냉정하고 공정하게 판단하여 이해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 소설가 권비영씨가 독자적으로 취재·조사하지 않고 소설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권씨는 대마도 현지를 방문하는 등 수년간 취재·조사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비영씨는 취재다운 취재를 하지 않았다고 본다."

- 소설 <덕혜옹주>의 저자와 출판사는 "책 속에서 '<덕혜희>를 참고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정도로 정당화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표절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타인의 책을 영리 목적으로 철저하게 이용을 해놓고서 정작 저자 본인에게는 한마디의 연락도 없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도의를 벗어난 정도가 너무나도 심하다. 그리고 설사 허용되는 인용의 범위 안에 들더라도 어디까지가 자신의 생각이고, 자신의 표현인지, 어느 부분은 다른 사람의 생각, 다른 사람의 표현인지를 독자들이 알 수 있게 밝혀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 또 출판사와 소설가는 "<덕혜희>를 참고로 하되 역사소설로서 재창작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재창작'이라는 말은 의미가 불분명하다. 재창작이라기보다는 저작권법을 피해가려는 윤색과 왜곡이다. 나는 (<덕혜희>) 후기에 '(상호이해를 위해서는) 있었던 사실을 몇 번이고 검증한 후 공통의 인식에 다다를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썼다. 나의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했다면 이런 소설이 나올 리가 없다. 이해도 못한 채 나의 책을 송두리째 자신의 편의대로 변조한 것이다. 따라서 저들이 말하는 '재창작'이란 '표절'에 다름 아니다."

"권비영씨와 출판사측은 표현의 자유를 착각하고 있다"

- 일부에서는 "역사의 한 부분인 덕혜옹주의 생애를 재조명할 경우, 그 흐름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라고 표절 주장을 반박하고 있는데, 이런 견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료를 정확하게 읽고 해명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타인의 저작을 이용해서 마치 자신이 조사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방식을 변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의 책은 평전인데, 평전은 창작물이다. 취재와 해석을 통해서 재구성된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의 책과 소설 <덕혜옹주>는 단순한 사실의 일치를 넘어서서 사실과 사실의 관련성, 사실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고찰, 인간의 심정에 대한 추측까지 표절하였다.

더 나아가 소설 <덕혜옹주>는 내가 출처를 밝히고 취재한 사람들의 표현까지도 표절을 하였다. 양심이 있다면 아무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도 표절을 해 가면서 굳이 비슷한 책을 출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덕혜희>가 덕혜옹주의 생애를 복원한 유일한 저작이라는 점에서, 소설<덕혜옹주>가 <덕혜희>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아주 기초적인 상식이지만, 세상일이란 자기 스스로 실제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여러 가지 문제점과 의문이 생기는 법이다. 우선 덕혜옹주의 생애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역사적인 사실들이 나의 책에 씌여 있는 것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판단했을까? 덕혜옹주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더 조사해야 할 것, 조사하면 새로 밝혀질 수 있는 부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 조사라는 노력 없이 타인의 저작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출판사와 소설가 권비영씨는 <오마이뉴스>의 반박보도청구, <한겨레신문>의 기고글에서 "역사적 사실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기 때문에,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라고 반박하고 있는데, 이런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적 사실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다'는 것과 '이 소설이 나의 저작 전체를 무단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차용해서 썼다'는 사실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소설가 권비영씨와 출판사는 나의 저작인 <덕혜희>와 번역서<덕혜옹주>를 제1차 자료로서 썼다고 인정하고 있다. 타인의 저작을 변조해서 베낀 것을 과연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저작을 전면적으로 1차 자료로 사용하면서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라면 저작권자인 내가 한마디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들은 표현의 자유를 착각하고 있다. 저작권법은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한편, 최대한 창작의 자유를 보호함으로써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있다. 즉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법이 존재하는 것으로, 타인의 저작을 일방적으로 이용하여 수익을 내는 것은 장려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면서 역사나 역사적 인물에 대해 분석하거나 재조명을 한 창작물을 누구의 창작인지, 누구의 견해인지도 밝히지도 않고 마구 가져다 쓸 수 있는 사회라면, 누구라도 고생해서 역사적 사실을 해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나는 앞으로 덕혜옹주나 마사에(正惠)에 대한 새로운 자료나 사실을 일체 공표할 수 없게 된다. 우선 자료 소장자들이 결코 공표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저작권법이 법으로서 사회 전체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면, 가짜 창작물의 존재를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혼마 야스코는 지난 1996년 여름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덕혜옹주 묘소를 참배했다.
 혼마 야스코는 지난 1996년 여름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덕혜옹주 묘소를 참배했다.
ⓒ 역사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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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않으면 쓸 수 없다"

- 특히 소설 <덕혜옹주>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하는데, 어떤 부분이 그러한가?
"이 부분은 재판 과정에서 밝히겠다."

- 그렇지만 소설 <덕혜옹주> 덕분에 덕혜옹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인 덕혜옹주, 소 다케유키(宗武志), 마사에(正惠)가 모두 지리멸렬하게 그려져 있는데다 아주 왜곡되어 있다. 나는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전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평전을 썼다. 소설은 이전부터 있었던 오해에 새로운 오류가 보태졌을 뿐이다."

- '반일감정(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상업주의' 때문에 소설 <덕혜옹주>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생각하나?
"무엇을 읽을 것인가는 한국 독자의 몫이다. 단 독자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책 속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는 필수불가결하다고 본다."

-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완성시킨 <덕혜희>를 역사소설로서 재창작할 경우, 창작가가 표절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역사소설은 역사에서 있었던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않으면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역사소설가는 역사가 이상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일본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이노우에 히사시(井上 ひさし)씨가 말한 바 있다. 도대체, 단 한 권의 책을 자료로서 참조하여 다른 책을 쓴다고 하는 것을 문학적으로 창작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 저작권 침해와 관련하여 소송을 준비한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어떤 대응을 계획하고 있는가?
"법률전문가, 한국의 우인(友人)들과 협의 중이다."


덕혜옹주 (일반판)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다산책방(2015)


태그:#혼마 야스코, #덕혜희, #덕혜옹주, #권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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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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