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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핀 것처럼 색깔도 선명하다. 이 벗나무에서는 내년 봄에도 꽃이 필까?
 봄에 핀 것처럼 색깔도 선명하다. 이 벗나무에서는 내년 봄에도 꽃이 필까?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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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가 철없이 피는 것은 봤어도 벚꽃이 가을에 피는 것은 세상 처음 봤어요. 글쎄! 정말 지구에 기후 변화가 오려나 봐요."
"어머, 그래요! 그럼 얼른 사진 찍어서 언론사에 제보했어야죠. 거기가 어디에요?"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2년 동안이나 잠자고 있던 기자 정신(?)이 발동해서 벚꽃이 핀 장소를 캐묻고는 내일 반드시 사진을 찍으러 갈 참이라고 지인들 앞에서 큰 소리를 쳐댔다.

그런데, 그날 9시 뉴스에 태풍 곤파스의 여파로 태안 지방에 벚꽃이 피었다는 기사가 뜨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어렵게 발동을 건 내 기자 정신은 그 뉴스 한 컷으로 바람이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부여에서 서천 방향으로 가는 29번 국도변에 핀 철없는 벚꽃에 대해서는 내 기사 거리로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부여군 양화면에서 서천군 한산면 국도변에 핀가을  벗꽃. 제법 만개한 것이 황금 들판과 잘 어울린다고 해야할까?
 부여군 양화면에서 서천군 한산면 국도변에 핀가을 벗꽃. 제법 만개한 것이 황금 들판과 잘 어울린다고 해야할까?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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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났을까? 무심코 지나다니던 우리 집 앞길(부여군 충화면)의 가로수도 벚꽃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항상 다니는 길이라서 무심하게 속도만 더 높이고 다녔던 우리 집 앞길을 오늘은 속도를 낮춰 느리게 지나갔다. 벚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즐기는 척 유심히 벚꽃 망울이 솟아나지 않았는지 눈을 번뜩였다.

벚꽃은 당연히 봄에 피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가을에 핀 벚꽃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으리라. 수줍게 새침하게 그렇게 벚꽃이 피어있었다. 우리 집 앞 벚나무 가로수에도 가을 벚꽃이 피어 있었다.

가을 들녘을 배경으로 핀 벗꽃. 그래도 이 나무는 양심이 있는지 팝콘처럼 피어있다.
 가을 들녘을 배경으로 핀 벗꽃. 그래도 이 나무는 양심이 있는지 팝콘처럼 피어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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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녘을 배경으로 소박하게 한 떨기씩 피어있었던 것을 이제야 본 것이었다. 그래도 제철이 아닌 철에 몰래 피워내려니 벚나무도 양심은 있는지 환하게 피지도 못하고 먹다가 흘려놓은 팝콘처럼 드문드문 꽃이 피어 있었다.

내친 김에 우리 동네 벚나무로 가로수로 심어 놓은 길을 한 바퀴 돌아보니 거의 모든 벚나무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벚꽃은 봄과 가을, 두 계절에 피는 꽃으로 우리의 상식을 뒤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무더웠던 지난 여름 내내 언론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피기 힘든 토란꽃이 피었다는 기사를 자주 보았다. 누군가는 토란꽃을 100년 만에 한번 핀다는 전설의 꽃으로 둔갑시켜서 길한 징조로 과대 포장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을에 피고 있는 벚꽃들도 길한 징조로 볼 수 있을까? 굳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가을 벚꽃은 뭔가 잘 못 되어가고 있다는 징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우리들이 그런 사실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태그:#가을 벚꽃 , #흰제비꽃, #곤파스 , #토란꽃,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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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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