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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무치 가는 길, 빈센트 반 고흐와 만나는 길

우루무치행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
 우루무치행 비행기에 오르는 사람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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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무치가 가까워졌다. 다섯 시간이면 가니까. 전 같으면 베이징에서 갈아타고 가야하니까 꼬박 하루가 걸렸다. 그러나 여름 한철 직항편이 생겨 우루무치까지 정말 편하게 갈 수 있다. 저녁 7시20분에 떠난 비행기가 현지 시각으로 11시50분에 도착한다. 항로는 인천에서 톈진과 베이징을 지나 우루무치까지 거의 직선으로 이어진다.

사실 5시간 정도의 거리는 항공여행으로 적당하다. 비행기에 타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1시간, 저녁 먹는데 1시간, 책 보는데 1시간, 음악 듣는데 1시간, 내릴 준비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금년 여름은 해외여행에 장애가 없어선지 많은 사람들이 외국행 비행기를 탔다. 빈자리 하나 없이 만석이다. 최근 2-3년간 사스다, 신종 플루다 해서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조금 주저했었는데 이제 상황이 바뀐 것 같다. 금년에는 해외여행 수지가 적자일 게 틀림없다.

시간 여유가 있어 나는 항공사에서 나온 책을 펼쳐든다. 그 중 '비행을 즐겁게 하는 잡지'로 대한항공에서 나온 '비온드'(Beyond)가 눈에 들어온다. '비온드'라면 '경계를 넘어'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표지 제목이 '슬픈 자화상, 빈센트 반 고흐(Sad Self-portrait, Vincent van Gogh)'이다. 평생 고뇌와 슬픔 속에 살다 간 화가 빈센트는 늘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고흐의 슬픈 자화상 28점이 표지사진을 장식하고 있다.

자화상(1886)
 자화상(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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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도 풍부해서 편집자의 글까지 포함하면 고흐에 관한 글이 7꼭지다. 영어로 표현하면, Letter, Story, Indepth, People, View, Meet, Portrait이다. 이제는 회사에서 나오는 잡지도 수준이 높아져서 정말 볼 만하다. 이번 잡지는 사실 전문 미술잡지 못지 않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그냥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내는 잡지가 아니라, 고객의 지적 수준을 높이기 위한 잡지로 한 차원 높아진 것이다.

고흐(1853-1890)는 구두, 감자먹는 사람들, 해바라기, 보리밭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그린 39점의 자화상 역시 자신의 인생역정을 보여주는 연대기로 의미가 크다. 1886년 2월 고흐는 돈을 벌고 화가로 성공하기 위해 파리로 간다. 그러나 고흐는 모델을 살 돈이 없어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1886년 봄 파리에서 그린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이 첫 번째 자화상이다. 전체적으로 색조가 어둡다.

자화상(1887)
 자화상(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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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린 자화상은 색이 조금씩 밝아지고 인상적이 되어 간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1887년 여름에 그린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이다. 노란 밀짚모자에 노란 수염, 파란색 상의가 아주 잘 어울린다. 고흐의 자화상 중 가장 편안한 표정이다. 그러나 1889년 1월 아를에서 고갱과 함께 살면서 그린 자화상은 처절하다. '귀에 붕대를 감고 파이프를 문 자화상'이다. 귀를 자르는 일도 어려운데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다니 보통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천재일까, 아니면 미치광이일까?

고흐를 그림으로 이해하는 게 정석이지만 또 영상물로도 이해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그의 일생을 그린 전기 다큐멘터리가 있다. 전기작가 글리프 에드워즈와 예술사학자 브래들리 콜린스가 중심이 된 '천재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A Stroke of Genius)'로 44분짜리이다.

자화상(1889)
 자화상(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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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유명한 영상물이 1956년에 나온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이다. 빈센트 미넬리가 감독을 했고, 커크 더글러스와 앤서니 퀸이 고흐와 고갱으로 나온다. 고흐가 아를에서 귀를 자르는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이 작품은 122분짜리 극영화로, 앤서니 퀸이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다. 5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커크 더글러스와 앤서니 퀸은 전설의 배우들이다.

우루무치 공항 첫 인상

반 고흐와 만나다 보니 어느새 우루무치 공항에 도착한다는 멘트가 나온다. 밤 11시30분이다. 밖을 내다보니 어둠 속으로 도시의 불빛이 조금씩 비친다. 생전 처음 와보는 우루무치지만 낯설지 않다. 실크로드 때문이다. 학교 다니면서 실크로드에 대해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실크로드는 환상의 여행지이자 로망이다.

우루무치 공항
 우루무치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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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내려 밖으로 나오니 입국장에서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기다린다. 30대 초반의 이경광씨다. 말투를 들어보니 조선족이다. 고향이 하얼빈이라고 한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시원하다. 우루무치는 해발이 높아 여름에 기온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습도가 낮아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쾌적하다고 한다.

일행이 소형버스로 가 차에다 짐을 싣는다. 뒤에 짐 싣는 공간이 적어 실내의 좌석에도 몇 개의 가방을 싣는다. 전체적으로 차량이 작고 좁은 편이다. 호텔로 가기만 하면 되니 그냥 견딜만 하다. 미려화호텔(Mirage Hotel)에 도착하니 1시가 되었다. 방을 배정받아 들어가 보니 담배 냄새가 진동을 한다. 방과 침구에 온통 담배냄새가 배었다. 또 샤워시설만 있고 욕조는 없다. 이게 소위 5성급 호텔이란다.

늦은 밤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로 잠을 청한다. 내일 아침은 7시에 일어나 8시에 밥을 먹고 9시에 출발하기로 되어 있다. 원래 일정표에는 남산목장을 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천산천지를 먼저 간다고 한다. 그게 오히려 일정의 진행에 맞다는 것이다. 국내여행사들이 현지 실정을 잘 모르고 계획표를 짜서 그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현지여행사의 말이 맞았다.

천산에 있는 천지

유람선 너머로 보이는 천산 천지
 유람선 너머로 보이는 천산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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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에 출발하니 아침시간이 비교적 여유롭다. 그것은 이날 행사가 천산천지 여행과 신장위구르자치구 박물관 관람으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천산천지는 자연유산으로 오아시스 속의 아름다운 경치가 볼거리다. 우루무치 동쪽 100㎞ 지점에 있다. 이곳을 가려면 우루무치에서 216번 국도를 타고 동북쪽의 부강(阜康)시까지 간 다음,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궁하(三工河)를 따라 상류로 올라가야 한다.

부강시에서부터 천지를 향해 가면서 해발이 점점 높아지고 물가를 따라 초원이 펼쳐진다. 천지는 해발 1911m에 형성된 호수로 수심이 95m이다. 원래 이름은 요지(瑤池)였으나 청나라 건륭제 때인 1783년 천지(天池)로 바뀌었다고 한다. 여기서 요지는 고대 신화 속에 나오는 하늘나라 신선이 살던 못을 말한다. 천지는 하늘못으로 내용상 큰 변화는 없는 셈이다.

산기슭에 보이는 서왕모 사당
 산기슭에 보이는 서왕모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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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요지에 살던 선녀 서왕모(西王母)는 3,000년에 한번씩 반도(蟠桃)라는 복숭아가 열릴 때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열자(列)》'주목왕(周穆王)'전에 따르면, 목왕은 정사는 돌보지 않고 팔준마(八駿馬)가 모는 수레를 타고 천하를 두루 유람하다가 곤륜산 꼭대기의 요지(瑤池)에 가서 서왕모를 만나게 된다. 그는 서왕모의 극진한 환대에 취해 돌아갈 줄을 모르고, 이로 인해 제후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주나라는 점차 도덕이 타락하고 국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천산과 곤륜산은 엄연히 다르다. 천산은 타클라마칸 사막과 타림분지의 북쪽에 있고, 곤륜산은 남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천산의 천지를 서왕모가 내려오던 곳으로 여겨 서왕모 사당(王母廟)까지 만들어놓았다. 그렇다면 곤륜산을 천산으로 바꾸는 것이 맞다. 천지는 중국 사람들도 신성시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색도(索道)를 타고 보는 천산의 장관

색도와 도로
 색도와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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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천지 주차장에 도착하면 가까운 곳에 색도참(索道站)이 있다. 색도참이라면 로프웨이 역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2명씩 타는 로프웨이를 타고 천지 아래 주차장까지 간다. 올라가면서 천산의 일부를 볼 수 있는데 그 경치가 장관이다. 아래로 폭포처럼 흐르는 산공하도 볼 수 있고, 구불구불 산으로 오르는 도로도 볼 수 있다.

천지 색도참에서 내려 다시 1㎞쯤 걸으면 천지가 나온다. 일부 사람들은 다시 전동차를 타고 가기도 하는데, 우리는 유람삼아 걸어가기로 한다. 길옆으로는 침엽수가 울창하다. 10여분 걸어 올라가니 푸르른 천지 뒤로 천산의 만년설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시원하고 장쾌하다. 천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이 많아진다.

천지 표지석 앞의 사람들
 천지 표지석 앞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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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天池)라는 표지석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중국 사람들도 천지를 성스러운 물(聖水)로 여기는 것 같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기 위해 천지 부두로 간다. 입구에서 오륙백m쯤 안으로 들어간 곳에 있다. 그리고 부두에서 다시 물가를 따라 1,000m쯤 간 다음 산쪽으로 500m 정도 올라가면 서왕모 사당에 닿게 된다.

유람선을 타고 호수를 한 바퀴 돌다

천지 유람선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사람들은 경치를 보기 위해 1층 객실에는 가지 않고 대부분 2층으로 올라간다. 우리도 2층 의자에 앉는다. 날씨가 참 맑고 햇살이 따갑다. 이게 바로 이곳 우루무치의 전형적인 날씨다. 우리의 초가을 날씨다. 사람이 꽉 차자 배가 출발한다. 배는 먼저 호수 가운데로 들어간다.

유람선과 천산 천지
 유람선과 천산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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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천산이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가까운 산기슭에는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배는 멀리 천지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서왕모 사당 곁으로 간다. 사당으로 오르는 길에는 사람들의 행렬이 보인다. 배가 점점 서왕모 사당 부두 쪽으로 접근한다. 서왕모 사당에 오르려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내리면 된다. 사당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일행이 있으니 단체행동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배는 다시 물가를 따라 처음 출발한 부두로 향한다. 물가로는 길이 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서왕모 사당으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 후에 부두에 도착하는데 보니 물위로 부유물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 건너로는 전통 중국식 의복이 진열되어 있다. 아마 이 옷을 입고 사진촬영을 하라는 것 같다. 배를 탄 시간은 3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천지에서의 유람선 탐방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위구르 민속춤
 위구르 민속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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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린 다음 다시 천지 입구로 나오니, 광장 무대에서 위구르 전통민속춤 공연이 진행되고 있다. 위구르 전통복장을 한 처녀 총각 10여명이 짝을 이뤄 춤을 춘다. 남자는 흰색바탕에 파란 깃을 단 기마복이고, 여자는 노란 바탕에 검은색과 붉은색 깃이 달린 연회복이다. 물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水邊歌舞)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이 끝나고 간단하게 공연내용을 설명하는데 중국어를 잘 모르니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위구르족이 고려시대 개경에 살았다는 얘기

난 만들기
 난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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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보고 나서 우리는 위구르 족 전통 빵인 난의 맛을 본다. 방금 화덕에 구워낸 빵이라 그런지 아주 맛이 있다. 그리고 위구르족의 거주지인 이곳 신장지역에서 난이 특히 많이 팔린다. 그것은 이 지역이 아주 건조해서 난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난은 양고기와 함께 위구르족의 주식인 셈이다.

이 난빵은 고려시대 개경에서도 팔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고려가요인 쌍화점에서 확인된다. 물론 쌍화점에서 파는 쌍화가 난빵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다른 연구자들은 쌍화를 만두라고 한다. 그리고 가요에 나오는 휘휘아비는 회족(回族) 남자를 말한다.

난 굽기
 난 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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솽화뎜(雙花店)에 솽화(雙花) 사라가고신댄
휘휘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말슴미 이뎜(店)밧긔 나명들명
다로러거디러 죠고맛감 삿기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쌍화 가게에 쌍화 사러 갔더니만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
이 말씀이 이 가게 밖에 나며들면(소문나면)
조그만 어릿광대 네가 퍼뜨린 말이라 하리라.

덧붙이는 글 | 둔황에서 우루무치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답사는 7월21일부터 29일까지 했다.



태그:#우루무치, #천산 천지, #서왕모, #천지유람선,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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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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