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리를 빻은 것 같은 즙액을 삼켰다. 거칠게 갈려나간 젖빛의 입자가 서걱이며 미뢰(味蕾)를 마찰하고 정갈하게 냉수욕한 국숫발이 가닥가닥 휘감기며 차갑게 교성을 지른다. 젓가락이 그릇을 빠르게 휘저을 때마다 오르가슴이 풋풋하게 감겨드는 것만 같다. 콩국수를 먹을 때마다 이웃집에 살았던 고등학생 누나가 떠오른다. 새털구름처럼 하얀 세일러 스타일의 교복과 두 갈래로 땋은 머리 외에 거의 꾸밈이 없었어도 언제나 눈길을 끌었던 그 누나와 자연이 내준 것 같은 콩국수는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콩국수를 먹는 모습은 그것의 형태만큼이나 단순하고 명료하다. 콩국과 함께 국수를 우물거리다 겉절이를 한 조각 입에 넣은 다음 다시 콩국을 삼켜 순수한 즙액을 그득 흡입한다. 대부분의 경우 김치나 다른 나물 등의 반찬으로 식사를 끝내지 쉽지만 콩국수는 그렇지 않다. 약간 남겨두었던 콩국으로 마무리해야 순수하고 깔끔한 여운이 오래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콩국수가 특히 놀라운 것 가운데 하나는 간이나 양념이 거의 필요 없다는 점이다. 소금과 고춧가루와 마늘이 베이스인 우리 음식에서 콩국수처럼 담백한 음식은 찾기 어렵다. 게다가 국물을 끓이지 않은 상태로 사용하는 국수도 매우 드물다.

국수를 양분하는 잔치국수나 칼국수를 비롯한 절대다수의 국수들은 국물을 펄펄 끓여내며, 차갑게 먹는 국수를 대표하는 냉면도 육수를 끓인 다음 식혀낸다. 콩국수는 비록 콩을 삶기는 하더라도 냉면처럼 그것을 육수로 사용하지 않으며, 콩을 갈면서 물을 타고 그것에 국수를 말아먹는 것은 대단히 독창적이다. 동치미국물에 말아먹는 국수가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콩국수와는 수평대입하기 어렵다.  

콩국수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여름을 기다린 보람이 충분하다. 술과 육식을 즐기는 나에게 콩국수는 화타(華陀)가 처방한 영약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잘 가는 식당에서 내오는 콩국수는 정신까지 말끔하게 헹궈주는 효능이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좋아하는 콩국수를 알게 된 것은 스무 살이나 되어서였다. 고교를 졸업하고 처음 막노동을 시작했던 풋 익은 젊은 날의 이맘 때, 새참으로 나온 생소한 국수를 처음 대하게 되었다. 뜨거운 국물에 말거나 아릿할 정도로 맵게 비빈 국수 밖에 모르던 내게 차갑고 비릿한 냄새마저 풍기는 허연 국물에 담긴 국수는 이국의 음식만큼이나 생소했다. 사막을 오가며 생활하는 캐러번이 마신다던 낙타 젖에 국수를 말은 것 같았다. 그리 입맛이 당기지는 않았지만 워낙 덥고 허기가 졌던 데다,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굵은 소금을 약간 넣고 휘휘 저은 다음 한입 들이킨 직후 눈이 크게 흡뜨였다. 저렇게 조악해 보이는 국수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다는 말인가?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입을 통한 감동이었지만 처음에는 하도 더운 나머지 입맛이 변한 줄 알았을 정도였다. 콩국수가 원래 그런 맛이 난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부터 여름은 축복의 계절로 격상되었으며 겨울은 절해고도(絶海孤島) 유배지로 전락했다. 
          
이제 오십이 지척인 나이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마는, '대사구두부내향(大舍求豆腐來餉)'을 노래한 목은(牧隱)의 여유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늙어 이빨이 빠졌어도 두부를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목은의 노래처럼 콩국수나마 아쉽지 않게 먹으며 글을 쓸 수 있으면 한이 없겠다.


태그:#콩국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