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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가난한 이의 살림집
- 글ㆍ사진 : 노익상
- 펴낸곳 : 청어람미디어 (2010.1.20.)
- 책값 : 18000원

 (1)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

가난한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은 언제나 사진쟁이와 글쟁이와 그림쟁이 들한테 '좋은 취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가멸찬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사진감이 되거나 글감이 되거나 그림감이 된 적은 거의 못 보았습니다. 이를테면, 벌써 열 몇 해가 지난 이야기인데 예전에 대통령 뽑는 자리에 나왔던 이회창 님이 살던 서울 가회동 달삯 2000만 원짜리 빌라를 두고 사진감이나 글감이나 그림감으로 삼는 문화예술쟁이는 보지 못했습니다. 수십억 원에 이른다는 아파트 사진을 찍으러 다니거나 수십억 원까지는 아니어도 몇 억짜리 아파트를 골골샅샅 살피며 사진을 찍는다든지 하는 사람 또한 못 보았습니다. 아파트 발자취를 다룬 학술책이 더러 나오기는 했으나 겉보기로 돌아보는 논문일 뿐, 어떤 이야기를 뽑아내거나 얻어내는 곳으로 삼은 적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이름난 맛집이나 멋집이라는 틀거리로 다루기는 합니다. 서울 홍대라느니 테헤란길이라느니 명동길이라느니 하면서 도심지 사람 북적이는 길거리를 다루는 이야기는 꽤 많습니다.

ㄴ자라 할는지 ㄷ자가 살짝 바뀐 모양이라 할는지, 미관주택이라 할는지 도심형 기와집이라 할는지,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도시가스 안 들어오는 이 동네에서 일제강점기부터 달동네를 이루며 옹기종기 살아왔습니다.
 ㄴ자라 할는지 ㄷ자가 살짝 바뀐 모양이라 할는지, 미관주택이라 할는지 도심형 기와집이라 할는지, 어찌 되었든 사람들은 도시가스 안 들어오는 이 동네에서 일제강점기부터 달동네를 이루며 옹기종기 살아왔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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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이 살아가는 터전치고 'ㅅㅋ'을 달거나 'ㅋㅅ'를 놓으면서 '무인경비 시스템'을 갖추는 데란 없습니다. 까치발을 하지 않아도 집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기 일쑤요, 가난한 이들 골목동네에서는 속옷 빨래조차 골목 담벼락에 줄을 드리워 해바라기를 하기 마련입니다. 아무 아파트나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 하면 이내 지킴이 할배가 달려와 "당신 뭐 하는 사람이요?" 하고 팔뚝을 잡아끌겠지요. 중국에서 사진을 함부로 찍다가는 공안한테 붙잡힌다고 하는데, 중국이 아닌 한국땅 아파트마을에서도 사진을 함부로 찍다가는 아파트 지킴이한테 붙들려 갑니다. 그러나 골목동네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 골목사람한테 붙들려 갔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란 없습니다. 집살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요, 사진을 찍는 사람들한테 속옷 고쟁이까지 송두리째 내보이는 가난한 이들 살림집입니다.

가난한 이들은 스스로 제 살림살이를 사진으로 담기 어렵습니다. 먼저 느긋하게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비싼 사진기나 장비를 장만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뽑을 돈이 없습니다. 굳이 제 살림동네와 살림집을 사진으로 찍어야 할 까닭을 느끼지 않습니다.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나 살림집을 사진으로 찍고 글로 다루며 그림으로 그려서 보이는 사람은 언제나 '가난하지 않은 동네에서 가난하지 않은 살림을 꾸리는' 이들입니다. 똑딱이 사진기이든 값싼 캠코더이든 매한가지입니다. 이런 사진장비를 갖추면서 살아가는 골목동네 사람은 드뭅니다.

기차길을 끼고 있는 이 동네에는 제 어릴 적 동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기차소리 시끄러운 길이라 할지라도 모두 작고 곱게 살아가는 예쁜 터전입니다. '가난'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기차길을 끼고 있는 이 동네에는 제 어릴 적 동무들이 살고 있습니다. 기차소리 시끄러운 길이라 할지라도 모두 작고 곱게 살아가는 예쁜 터전입니다. '가난'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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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가난, 가난 ……이라는 말을 되풀이하자니 더없이 멋쩍습니다만, 가난이란 잘못이 아니고 허물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이 아니고 창피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끼리 딱히 가난이라는 낱말을 들먹이는 일이 없습니다. 그저 다들 똑같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꾸자꾸 가난을 들먹이면서 '가난하다는 골목동네 사람들 삶'을 일컫거나 빗대곤 합니다.

디제이디오시 노래 〈삐걱삐걱〉을 들으면 "몇 십 억이 애들 껌값인가요. 그중에 백만 원만 우리 줄 생각 없나요"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가난이 어쩌느니 저쩌느니 하기 앞서 돈이 있는 이들이 당신들 수십 수백 수천 억 원에서 백만 원을 덜어 나누어 주면 될 노릇입니다. 보증금 30만 원 달삯 6만 5천 원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고, 장기방 여인숙에서 보증금 없이 15만 원에 살아가는 이들한테는 한 해 백만 원이라는 돈만 하여도 아주 어마어마합니다. 도시미화이니 관광개발이니 하면서 도심지에서 바닥돌을 갈고 무엇무엇을 하느라 수십 수백 억 원을 아주 껌값처럼 쓰고 있는데, 가난한 사람들 달삯을 얼마쯤 보태어 준다면 도시는 저절로 깨끗해지며 도시에서 가 볼 만한 곳은 자연스레 늘어납니다.

똑같은 길이라 하고, 똑같은 길 둘레에서 살아가는 터전이라 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생각과 눈길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벌어지고 달라집니다. 저는 제 뿌리이자 오늘 삶터인 골목동네를 '가난'이란 눈으로만 바라보는 모든 이야기가 가슴으로 와 닿지 않습니다.
 똑같은 길이라 하고, 똑같은 길 둘레에서 살아가는 터전이라 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생각과 눈길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벌어지고 달라집니다. 저는 제 뿌리이자 오늘 삶터인 골목동네를 '가난'이란 눈으로만 바라보는 모든 이야기가 가슴으로 와 닿지 않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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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사람들은 도시에서 왜 아파트를 사진감으로 삼지 않는지 궁금합니다. 같은 아파트일지라도 5층짜리 옛날 아파트는 아파트로 치지 않는데다가 꾀죄죄하다고 보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아파트숲 사람들이라고 해서 '살가운 이야기'가 없을 턱이 없는데, 왜 아파트숲에서 조곤조곤 올망졸망 오순도순 살 섞고 부대끼는 이야기를 엮어내지 못하는지 궁금합니다. 왜 당신들 삶자리에서는 사진과 글과 그림을 엮어내지 못하면서, 마치 인도 순례를 하고 티벳 순례를 하듯이 '가난한 사람들 골목동네'로 출사나 취재를 나오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저마다 살고 있는 터전을 아끼고 사랑할 노릇인데, 시설 좋고 문화마당 많다는 아파트와 도심지 한복판에서 굳이 도시 변두리 골목길로 다리품을 팔면서 취재를 다니고 출사를 나오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산이 좋으면 산에서 살면 될 텐데, 산에서 안 살면서 산으로 자가용을 몰고 찾아가거나 기차나 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곳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사랑스러운 곳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연이나 전원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껴 자연이나 전원 풍경을 사진으로 담는다면, 아파트에서 살 노릇이 아니라 자연이나 전원에서 살 노릇입니다. 자연이나 전원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이나 전원을 사진으로 담을 노릇입니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사진이 태어날 테니까요. 제주 오름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김영갑 님이 스스로 제주 오름으로 녹아들면서 이곳에서 살아내는 가운데 사진을 담았듯이 말입니다.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아서 보여준다든지 골목동네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나눈다든지 골목동네 터전을 그림으로 그려 펼친다든지 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썩 반갑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골목동네 사람(정주민)이 아닌 구경꾼(관광객)처럼 어쩌다 한두 번 찾아와 한두 시간 후다닥 사진 찍고 낼름 내빼기 때문입니다. 자연 사진을 찍더라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스란히 담는 한편,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을 고루 담아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 살림동네나 살림집인 골목길을 사진으로 담자고 한다면, 이때에도 마땅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고스란히 담는 한편,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을 골고루 담아야 합니다. 맑은 날 흐린 날 비오는 날 눈오는 날 안개 낀 날을 찬찬히 담아야 합니다. 안개 서린 소나무숲만 그윽하겠습니까. 바다안개 낀 인천골목길 또한 그윽합니다.

스튜디오에서 만듦사진을 일구거나 모델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이네들 사진쟁이 살림살이하고 스튜디오 얼거리하고 한동아리입니다. 스스로 만듦사진이나 모델사진 얼거리와 같은 삶을 꾸립니다. 다큐사진을 한다고 말하려면 스스로 다큐사진 주제가 되는 터전에서 이곳 사람들하고 복닥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나오는 사진이고, 살아가기 때문에 찍는 사진이며, 살아가는 그대로 보여주거나 나누는 사진입니다.

골목 가득 꽃잔치를 벌이는 '가난한 동네'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골목동네를 보면서 '꽃동네'나 '꽃잔치집'이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가난한 동네이든 어떤 동네이든 부디 꾸밈없이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가난한 이들 살림집'을 돌아보아 주면 좋겠습니다.
 골목 가득 꽃잔치를 벌이는 '가난한 동네'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골목동네를 보면서 '꽃동네'나 '꽃잔치집'이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가난한 동네이든 어떤 동네이든 부디 꾸밈없이 바라보고 마주하면서 '가난한 이들 살림집'을 돌아보아 주면 좋겠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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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 살림집을 사진으로 담고자 한다면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어야 하고 가난한 동네에서 가난한 살림집을 얻어 가난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하게 일하면서 가난하게 나누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사진이 아니라, 땅에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면서 찍는 다큐사진입니다. 먼발치에서 망원렌즈로 훔쳐보는 사진이 아니라, 곁에서 손 마주잡으면서 담는 다큐사진입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면서 살아가는 모양새가 고스란히 스며드는 다큐사진입니다. 같이 일하고 같이 놀면서 어우러지는 결이 꾸밈없이 녹아드는 다큐사진입니다.

 (2) 노익상 님과 다큐사진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

겉그림.
 겉그림.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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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쟁이로 일하는 노익상 님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읽었습니다. 책 머리말에서 노익상 님은 "물론 이런 집들에 대한 연구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큰 회사의 도움을 받아 낸 <한국의 주거 민속지>나 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로 조사한 민가의 기초조사들이 있다. 이 책들은 편중된 연구와 발표에서 그나마 가뭄에 단비처럼 여겨지는 귀한 연구서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나 돌려 읽으며 무릎을 치고 감동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렵고 학술적이었다. 우리 이웃들에게 섞여 들어가 가난한 이들의 안타까웠던 현실을 함께 공감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게 아쉬움이었다(8쪽)."고 밝힙니다. 가난한 사람들 눈높이에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삶을 이야기 한 자락으로 길어올리는 사람들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가난한 이의 살림집>을 썼다고 합니다.

노익상 님 말마따나 가난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느 살림집을 학문으로 다룬 책은 몹시 드뭅니다. 나라나 기관이나 큰 회사에서 돈을 받아 학술논문을 내는 일은 더러 있기는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요모조모 깊이 살피고 어깨동무하며 '이웃사촌'으로서 이야기를 엮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어 가난한 살림동네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당신 삶을 알알이 담아내는 사람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 이는 밀쳐내고, 가르며, 하대를 일삼았던 오래된 상처였다. 쌀밥이 아닌 조 따위로 제사상을 차리는 '천한 것'들이 감히 흉내낼 수 없었다는 말에 이르러선, 금수강산 맑은 물이 새롭게 보이던 순간이었다. (농악은) 쌀밥 농사에서만 가능한 놀이였고 잔치였던 셈이었다. 조나 수수로 부꾸미는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백설기, 송편과 같은 떡을 만들지 못하는 물리적 한계는 이를 준엄히 증명해 주었다. 그래서 전통마을에서 치루는 세시행사는 밭농사를 중심에 두고 벌이는 게 아니라, 바로 논농사를 맘에 두고 즐기는 전통마을만의, 그 공동체에 순응하는 사람들만의 주류 행사였음을 그들을 만나 가면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  (74쪽)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책은 사진쟁이 노익상 님이 만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러나 노익상 님이 만난 사람들 살림집 이야기를 담았다기보다는 노익상 님 스스로 살아내지 못했으며 살아갈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다가 마주해 본 적이 없던 삶자락을 귀동냥으로 얻어들으면서 엮은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노익상 님은 틀림없이 가난한 살림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둘 만나고 여러 날 함께 어울리면서 바야흐로 깨닫거나 '처음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이야기를 담습니다. 그런데 이들 가난한 사람들을 가난한 살림집에서 마주하기 앞서까지는 이들이 이런 곳에서 이렇게 살아가는지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한 번 듣고 두 번 듣고 세 번 네 번 잇달아 들은 끝에 아주 조금씩 알아듣습니다. 한 해가 흐르고 두 해가 지나며 세 해 네 해가 흐른 끝에 비로소 살짝 알아차립니다.

노익상 님 사진책 하나 이쁘장하게 나왔습니다.
 노익상 님 사진책 하나 이쁘장하게 나왔습니다.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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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며 글이며 이쁘장하구나 싶은데, '가난한 살림집'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눈으로 이 책을 넘겼을 때에는 아쉬운 대목이 많습니다.
 사진이며 글이며 이쁘장하구나 싶은데, '가난한 살림집'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눈으로 이 책을 넘겼을 때에는 아쉬운 대목이 많습니다.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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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자꾸 끊깁니다. 내처 읽지 못하고 자주 덮습니다. 노익상 님은 나라안에 손꼽히는 빼어난 다큐멘터리 사진쟁이입니다만, 이 책 <가난한 이의 살림집> 하나는 덜 여물었고 덜 무르익었으며 덜 고개숙였다고 느낍니다. 스스로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만큼,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더없이 마땅한 이야기를 너무 길게 적바림하는데다가 때로는 같은 말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노익상 님 또한 어쩔 수 없는 구경하는 사진쟁이일까요. 노익상 님한테 길손이나 사진손 같은 자리가 아닌 동네이웃이나 마을이웃 같은 자리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일까요.

.. 교과서에 실린 이름 자체도 철수야! 영희야! 하고 부르며 논다는 사실이, 산간의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아이들에겐 제 스스로를 비하시키는 논리밖에는 되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이기도 했다. 더욱이 당시 외딴집이나 화전촌의 아이들에겐 '논다'는 말이 당초부터 존재하지 않을 만큼, 제 아비어미를 도와야 겨우 호구를 지탱하는 절박한 노동의 현실이었음을 감안할 때, '철수야 영희야'는 이러나저러나 아이들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아픈 바늘 끝이었던 것이다 ..  (126쪽)

구경하는 자리가 아닌 살아가는 자리에서 사진을 담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어 아쉽지만, 이만한 책이라도 하나 나온 일은 무척 반갑습니다.
 구경하는 자리가 아닌 살아가는 자리에서 사진을 담았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어 아쉽지만, 이만한 책이라도 하나 나온 일은 무척 반갑습니다.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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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학생이 되어 신문을 읽기 앞서까지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가 그토록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인 줄 몰랐습니다. 중학생 세 해를 거치고 고등학생 세 해를 거치는 동안 제 동무들 살림동네가 나라안에서 손꼽히도록 밑바닥 살림동네인 줄 몰랐습니다. 다른 도시 사람들이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을 그토록 가난뱅이 동네로 바라보는 줄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처음 알았고, 인천사람 스스로 인천 골목동네를 제대로 모를 뿐더러, 인천 바깥사람은 인천 골목동네를 가엾고 딱한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다닌 ㅅ국민학교는 이웃한 ㅅ국민학교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가난한 집 아이들이 많이 몰린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두 ㅅ국민학교이지만 학급 숫자이며 살아가는 집이며 아이들 부모 신분이며 하늘땅처럼 벌어져 있었습니다.

이곳은 만석동에서 손꼽히는 쪽방집이 몰려 있는 바깥쪽입니다. 이곳에 나무이든 풀이든 '초라하다'고 본다면 초라할 테지만, 이곳 사람들은 초라하거나 말거나 당신 삶을 아기자기하게 일구고 있습니다.
 이곳은 만석동에서 손꼽히는 쪽방집이 몰려 있는 바깥쪽입니다. 이곳에 나무이든 풀이든 '초라하다'고 본다면 초라할 테지만, 이곳 사람들은 초라하거나 말거나 당신 삶을 아기자기하게 일구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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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에는 만석부두와 화수부두 품팔이 일꾼들 살림집이 '게딱지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습니다. 노동운동 한다는 사람은 모두 아는 동일방직이라는 공장은 인천 만석동에 있습니다. 여공한테 똥물을 뒤집어씌운 자리는 골목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동네 한복판입니다. 여공들은 저한테 동네 누나이거나 이모이거나 고모인 분들이요, 제 동무한테도 동네 누나이거나 이모이거나 고모인 분들입니다. 불쌍하게 바라본다면 하염없이 불쌍할 테지만, 동네사람으로서 바라보기에는 불쌍하고 아니고가 아닌 그예 좋은 동무이고 이웃이고 누나이고 어머니이고 아주머니인 사람들입니다.

노익상 님은 '인천 만석동'에 나무다운 나무가 없다고 말했으나, 바로 그 쪽방골목 한켠 조그마한 틈에도 텃밭을 일구고 나무를 심어 키우는 분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동네를 통틀어서 들여다보는 한편, 정주민 눈길에서 살피지 않는다면, 모든 '여느 사람 살림집'을 '추억'이라느니 '가난'이라는 틀에 못을 박아 버리고 맙니다.
 노익상 님은 '인천 만석동'에 나무다운 나무가 없다고 말했으나, 바로 그 쪽방골목 한켠 조그마한 틈에도 텃밭을 일구고 나무를 심어 키우는 분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동네를 통틀어서 들여다보는 한편, 정주민 눈길에서 살피지 않는다면, 모든 '여느 사람 살림집'을 '추억'이라느니 '가난'이라는 틀에 못을 박아 버리고 맙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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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석동 막살이촌이나 여인숙 고을을 다녀 보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하나같이 그 집과 방들은 어른이나 가족이 들어가 살았다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만큼 아이들 장난감 집처럼 오밀조밀 작고, 심지어 앙증맞기까지 했다. 그래서 지금 그림을 보면서도 아이들이 저 집에 들어가 숨기도 하고 논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더구나 볕이 들지 않아 꿉꿉하기만 한 좁고 어두운 골목길은, 아이들에겐 호기심 많은 미로로 비치기에 충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당장 편을 갈라 숨바꼭질하기에 좋고, 작고 여린 몸을 숨기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아 보인다. 특히 그림에서처럼 허리를 구부려야 겨우 운신할 만큼 낮은 다락방을 보면 나는 벌써 가슴이 뛴다. 거기에 숨어 들어가 제 새가슴을 한껏 부풀리며 재미지게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막살이집들이 현실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이었으면 그이들이 처음 정착하여 일터로 나갔던 엄혹한 살림집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  (262쪽)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여러모로 반갑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습니다. 가난이라는 잣대가 무엇일까 궁금했고 걱정스러웠습니다. 가난하면 못사는 살림인가 궁금했고 걱정스러웠으며, 가난하지 않으면서 슬프고 괴로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살림집을 바라보는 눈매가 '가난인가 아닌가'이니 두려웠습니다. 그저 '여느 살림집'이요 '이웃 살림집'이며 '도시 골목 살림집'이나 '시골 고샅 살림집'으로 바라보면 넉넉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느 살림집"이라 하거나 "살림집"이라고만 해도 넉넉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골목동네 살림집이든 이웃사람 살아가는 골목동네 살림집이든 누구네가 더 가난하거나 더 가멸차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언뜻 보기에도 마당 넓고 돈 많은 집이 있고, 설핏 보아도 루핑에 차바퀴를 얹어 비가림을 하는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집에서 살아가는 동네사람이고 동네이웃이며 골목사람이고 골목이웃입니다. 한결같은 이웃이고 똑같이 고운 목숨 꾸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두 해에 뚝딱 하고 해치우듯 엮은 <가난한 이의 살림집>이 아니라 한다면 이와 같은 대목을 곰곰이 살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살림집 사진들은 거의 모두 '추운 겨울 추운 모습'인데, 가난한 이 살림집이든 가멸찬 이 살림집이든 이 땅에 찾아드는 철과 날씨에 따라 다 다른 살림새를 고이 담을 수 있어야 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더욱이 만석동 쪽방골목에 나무 한 그루 없다는 대목에서는 쓴웃음이 납니다. 만석동 쪽방골목에 참말 나무 한 그루 없는지요? 이곳 골목이웃이 가꾸는 꽃그릇에서 피어나는 꽃과 푸성귀는 그토록 초라해 보이기만 하는지요? 바깥 구경꾼 눈에는 '처연'하거나 '병약'할는지 몰라도, 이 동네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푸른나무'요 '푸른잎'입니다.

.. 또 다른 그림은 가까이에 헐벗은 나무가 서 있고 그 뒤로 막살이집들이 그려져 있다. 잎 진 앙상한 나무는 묘하게 뒤편 집들과 어울리며 그래도 살아 있음을 처연히 내세우고 있다. 만석동에 그런 나무는 없었지만 벽에 그린 꽃과 나무는 여럿 보았다. 강한 원색 페인트로 그려 넣거나, 미장으로 마감한 담벼락에 쇠못으로 긁어 그린 것이었다. 추레하고 볼품없는 바탕에 빼어난 선과 점으로 이어나간 그림은, 어느새 큰 면이 되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 인천 만석동이나 서울 거여동 막살이촌을 다닐 때만 해도 관목으로 피는 꽃나무를 보기는 어려웠다. 물론 그때는 추운 겨울이어서 꽃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 하나 겨우 지날 수 있는 골목의 병약해 보였던 화초들과는 분명 다른 것이어서 우선 반가웠다 ..  (272, 283쪽)

옆지기가 아주 어릴 때에 살던 동네 사진입니다. 제가 살던 동네도 이렇게 흙바닥에 동네 꼬마들이 서로 모여 놀던 곳이었겠지요. 저한테는 이런 어린 날 사진이 없으나 옆지기한테는 몇 장이 남아 있습니다.
 옆지기가 아주 어릴 때에 살던 동네 사진입니다. 제가 살던 동네도 이렇게 흙바닥에 동네 꼬마들이 서로 모여 놀던 곳이었겠지요. 저한테는 이런 어린 날 사진이 없으나 옆지기한테는 몇 장이 남아 있습니다.
ⓒ 전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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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물집이든 미관주택이든 막살이집이든 하고 살림집 갈래를 나누는 뜻과 값이 없지 않습니다. 학자님들이 알뜰살뜰 나누어 놓지 못하는 살림집 갈래를 차근차근 살피면서 올바로 갈무리하는 일이란 무척 반갑고 고맙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은 당신들 살림집을 이렇게 외주물집이라느니 미관주택이라느니 막살이집이라느니 하고 나눌는지요? 가난한 살림집 식구들 눈높이에서도 이렇게 나누는 살림집 갈래가 올바르다고 할 만하지요? 'my sweet room'이라는 글씨를 떠서 커텐으로 삼기도 하는 골목사람들 막살이집이라면 그저 가난한 살림집이라는 틀에 뭉뚱그리거나 때려넣어도 괜찮은지요?

.. 하지만 철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렇게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도록 이 땅에서 살며 사랑한 이들에게 그것은 정겹고 평화로운 풍경일 수 있으나, 가까운 일본이나 서구로 유학을 하거나 한 번이라도 구경을 해 본 이들에게 그것은 제법 성가신 풍경으로 비칠 수 있는 미개하고 낙후된 모습이었다 … 아이들이 자신이 처한 환경을 이기고 도심 속 문화와 생활로 섞여 드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게 비쳐진 일도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도심에 살면서도 결코 합류할 수 없는 주변부적 삶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남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시민아파트는 체념 어린 미래가 익숙하게 녹아 있는 공간에 다름 아니었다. 이 또한 시민아파트가 지닌 본질을 잘 드러내는 부분이었는데, 우리 근현대사의 적나라한 자화상이었던 체념이, 가난한 이의 살림집 곳곳에 미치지 않은 곳은 없었다 ..  (290, 356쪽)

날이면 날마다 시끄러운 기차와 전철 소리를 듣고 컸어도 우리들한테는 평화로운 터전이었고 보금자리였습니다. 공장에서 매연과 석탄가루와 쇳가루 따위가 끝없이 날려 빨래를 못 널게 할지라도 우리들한테는 좋은 삶터였고 둥지였습니다. 그 좁다는 골목길에서 공차기를 하고 공치기를 했습니다. 야구방망이 없어도 부러진 각목을 주워서 방망이로 삼고, 철길가 돌멩이로 공을 삼았습니다. 굴러다니는 우유곽에 돌 하나 넣어 공으로 여기며 공차기를 했고, 갖가지 돌치기와 돌놀이를 즐겼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아름답거나 싱그러운 지난날이거나 오늘날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날은 지난날대로 아픔이 있는 가운데 기쁨이 있고, 오늘날은 오늘날대로 웃음이 있는 가운데 울음이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집에는 빛과 그늘이 함께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삶터에는 웃음과 눈물이 나란히 있습니다.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동네에는 생채기와 주름살이 아롱져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한테는 우리 삶이고 우리 발자국이요 우리 이야기입니다. 집에 따로 뒷간이 없어 주인집 눈치를 보며 똥오줌을 누는 삯집 사람들 이야기가 있고, 주인집에조차 뒷간이 없고 동네에 공동뒷간이 있을 뿐이라 줄을 서서 아랫배를 누르며 견디어야 하는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가멸찬 이하고 같은 시간을 일해도 같은 일삯을 받지 못했을 뿐더러 가멸찬 이와 견주어 더 오래 힘겨이 일해도 훨씬 적은 일삯을 가까스로 받으며 목숨을 잇고 살림을 꾸리며 딸아들을 보듬었습니다. 이런 살림살이가 막살이집이든 외주물집이든 미관주택이든 무엇이든, 저마다 사랑스럽고 애틋하며 믿음직하고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아주 값싼 달삯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골목동네입니다. 그러나 가난하든 가멸차든 똑같이 고운 사람들 삶입니다.
 아주 값싼 달삯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골목동네입니다. 그러나 가난하든 가멸차든 똑같이 고운 사람들 삶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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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쪼록 노익상 님 다음번 다큐사진에서는 우리 둘레 여느 사람들 여느 살림살이와 여느 이야기를 여느 자리에서 좀더 여느 사람다운 목소리와 결과 높낮이로 수수하게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막살이집 식구들이 제 살림집과 살림동네에서 사진 한 장 찍으려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서 어느 때에 담을까를 한번 곰곰이 헤아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가난한 이의 살림집 - 근대 이후 서민들의 살림집 이야기

노익상, 청어람미디어(2010)


태그:#사진책, #노익상, #살림집, #골목집,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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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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