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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같은 삶을 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한 곳에 정착할 때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삶이 버거워서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정이 그리워서라고도 한다. 필자가 바이크올레꾼임을 자처하고 여러곳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삽 한 자루를 든 것은 '삶이 버겁다거나 정이 그리운 것'과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최근 필자는 순천시 낙안면과 보성군 벌교읍을 연결하고 있는 하천에 주목했었다. 물론 지난 2008년 <낙안군이야기>를 연재할 때부터 그 싹은 트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인 것은 지난 3월의 일이다.

 

낙안천과 벌교천으로 불리는 이 하천길은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인 약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벌교장을 보기 위해 주변 주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던 옛길이다. 또 하천은 분지와 같은 형태의 이 고장에서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땅에서는 작물을 키우고 갯벌을 만나서는 꼬막을 키우던 물이다. 필자도 목격한 사실이지만 주민들의 말을 덧붙이자면 주변에 있는 고라니들도 이 하천 물을 마시러 내려온다고 한다.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심판관은 손이 모라자서

 

그런 하천과 하천길이 20여 년 전부터 급격히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건축자재에서부터 폐비닐까지 온갖 쓰레기를 몰래 내다버리면서 태워, 퇴적물이 곳곳에 작은 산을 이룰 정도로 난잡해졌고 행정까지 나 몰라라 해 누군가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썩고 마는 구덩이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심각함이 들 정도였다.

 

주민들은 그런 얘기들을 한다. 다리 건너는 낙안이고 벌교이기 때문에 낙안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저쪽 벌교사람들이 몰래 와서 버린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리 건너에 가서 주민들에게 물어보면 "저쪽 낙안사람들이 몰래 와서 버린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내 집안에 있는 쓰레기를 남의 집에 버리는 형태라고 설명한다.

 

행정에서는 "밤중에 몰래 와서 버리는 것을 잡을 도리도 없고 인원과 장비가 부족해 치우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주민이거나 행정이거나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치 않다. 지금 필자의 눈앞에 펼쳐진 이런 광경들이 결과고 그저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

 

쓰레기 하천, 올레길로 거듭나보자

 

필자는 주민들도 남 핑계만 대고 행정에서도 인원과 장비 핑계만 대고 있는 20여년의 세월동안 몸살을 앓고 있는 하천을 두고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삽 한 자루를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결국 지난 3월 28일 '우리천올레길'로 명명하고 하천변에 철쭉을 심는 작은 출발이 시작됐다.

 

하지만 참여했던 회원들이 생업에 시달리고 더구나 말 많은 시골에서 푯말하나 박거나 꽃 하나 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물론, 지속적으로 쓰레기를 치운다는 것과 관리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력 가지고는 힘든 일로 여겨졌다. 그 예로, 엊그제 삽 한 자루로 작은 쓰레기 산 하나를 허무는데도 2시간 이상 걸릴 정도로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행정에 쓰레기 치우는 것이라도 도움을 받기 위해 현지 사정 얘기를 하고 지원을 부탁했지만 인원과 장비부족이라는 말의 반복이었다. 그나마 쓰레기 마대포대 100여개를 얻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 인터넷은 따뜻해

 

'지금 해도 되나요^^' 우리천 올레길을 만들면서 개설해 놓은 카페 (http://cafe.daum.net/wooriolleda)의 지역사랑철쭉 구매희망에 지난 8일 부산에 사는 임미조씨의 글이 떴다. 고향이 순천시 낙안면 이곡마을이라면서 청소봉사에는 멀어 참여하기 힘들지만 철쭉이라도 구매해서 작은 도움이 돼 드리고 싶다는 뜻이었다.

 

'지역사랑철쭉구매'란 우리천 올레길을 가꾸면서 양쪽 하천변으로 약 12킬로미터의 하천을 토사가 밀리지 않도록 뿌리로 잡아주면서 꽃도 피는 철쭉으로 시민들의 모금으로 진행해 보자는 뜻으로 시작한 운동으로 그들이 금액을 내면 철쭉을 구입해 그들의 이름표를 달아 우리가 심어주자는 취지였다.

 

그 첫 번째로 부산의 임씨가 구매희망의사를 밝히고 10,000원을 입금했던 것이다. 세상이 살 만하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밝고 따뜻할 수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이제 부탁드립니다. 삽 한 자루 가지고는 버겁습니다

 

이런 따뜻함에 용기를 내서 또 다시 오늘 아침에 삽을 들고 하천변으로 나가 쓰레기 산 하나를 허물기 위해 나섰는데 땀만 빼고 제대로 일도 못하고 한나절을 보내고 돌아오고 말았다. 인간 한 사람의 힘과 삽 한 자루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가 하는 것을 느끼면서.....

 

그래서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13,000여명에 이르는 벌교민들과 4,000여명에 이르는 낙안민들, 그리고 출향인들이라 생각돼 내키지는 않지만 자판을 두드려 '벌교와 낙안을 흐르는 하천에 관심과 협조를 구한다'는 메시지를 이렇게 띄워 보내고 있다.

 

물론, 아무런 화답이 없다고 해도 필자는 삽질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시쳇말로 그것이 삽질(?)이 된다고 해도 필자가 세상에 태어나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일이라는 생각으로...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저는 삽 한 자루가 이렇게 나약한줄 몰랐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벌교천, #낙안천,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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