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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아고라 펴냄.
▲ <말더듬이 자크>(소르주 샬랑동) 겉그림. 아고라 펴냄.
ⓒ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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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온갖 것에 신기한 얼굴빛을 내보이며 쉼 없이 재잘대는 아이를 보는 일은 썩 좋은 일일 게다. 아이마다 제각기 성격이 다르니 뭐가 더 좋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손 치더라도, 여하튼 말 없는 아이를 보는 일은 꽤나 마음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혼잣말에 익숙해 보이는 자크를 보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말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혼잣말하는 데에 최고라고 치켜세울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말더듬이 자크'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차라리 조용한 아이인 게 더 나은 건 아닌지... 아니다!

<말더듬이 자크>를 쓴 소르주 샬랑동은 자기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튀니지에서 태어난 아랍계 이민자 출신인 프랑스 언론 기자 소르주 샬랑동. 그가 우리에게 소개하는 '말더듬이 자크'가 사실은 할 말이 많은 아이라는 게 내내 머릿속을 맴돈다.

말더듬이 자크, 그건 하고픈 말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는 제 하고픈 말을 제대로 못하면서도 자크는 늘 비밀스런 곳에서 일기를 쓰고 낱말모음집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기 위해서다. 아니, 미처 다 말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그렇게라도 달래고 작은 필기구와 종이를 통해서라도 꽉 찬 말들을 쏟아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1964년 3월 11일이었다. 봉지는 자크가 뭐든 기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크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손바닥에 파란 잉크로 적어놓은 날짜를 본 다음, 침대 밑으로 들어가 볼펜으로 침대의 나무 밑판에 날짜를 적었다. 자크가 침대 밑으로 들어가 침대 밑판에 몰래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크와 봉지만 아는 또 다른 비밀이었다." (<말더듬이 자크>, 21쪽)

1964년 11월 29일. 자크의 비밀 일기 이야기 시작을 알리는 날짜다. 그 비밀 가득한 날짜는 12월 7일까지 이어진다. 자크 이야기는 그의 유일한 '진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봉지와 더불어 펼쳐진다. 어떤 면에서, 봉지가 없는 자크는 아무 이야기도 제대로 펼쳐낼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봉지는 자크 말을 들어준다. 자크가 말하고 싶을 때 들어주고 자크가 도움이 필요할 때 늘 옆에 있으며 자크의 투정이나 침묵에도 그저 그렇게 옆을 지킬 뿐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 같은 동에 사는데, 봉지... 이 아이는 누굴까. 자크만큼이나 궁금한 아이다.

"어디 갔었니? 거실에 있던 엄마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있었다. "녀석이 왔어?" 아빠의 엄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 들어왔어요." 엄마가 대답했다. 자크는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자크는 상상의 세계로 빠졌다. "우리는 덫에 갇혔습니다. 총사령관님." 봉지 장군이 말한다. "죽을 준비를 하자." 프랑스 총사령관 자크가 말한다. "죽을 수는 없습니다. 총사령관님." 봉지 장군이 말한다. "그래도 죽을 준비를 하자." 프랑스 총사령관 자크가 말한다.
사팔뜨기인 쥘리앵 메나르는 아빠에게 맞는다. 아르노 피셔도 아빠에게 맞는다. 로제르는 형 뤼시앵에게 맞는다. 꼬마들도 잘못해서 뤼시앵에게 꼬투리를 잡히면 맞는다. 마티유 레리도 아빠에게 맞는다. 아드리앵 쿠튀리에는 엄마에게 맞는다. 모두가 두들겨 맞는다." (같은 책, 28~29쪽)

책은 말더듬이 자크의 속내를 그러니까 자크의 일기를 그대로 다시 펼쳐놓는 것 같다. 말을 더듬는 모습만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다 적어 내려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말을 더듬을수록 제 주변을 감싸는 모든 것에 더욱 집착하는 것 같은 자크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쭉 늘어세우며 하나하나 일일이 다 기억하려는 집착은 때로 한 사람을 반복해서 묘사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선생님 자크가 울어요." 쿠튀리에는 손가락을 치켜든 채 자크와 선생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딸랑딸랑' 쿠튀리에는 입을 벌린 채 침착하게 자크와 선생님을 쳐다봤다. '딸랑딸랑' 쿠튀리에는 무려 한 시간을 기다렸다. 자크가 우는 건지 아닌지 확실하지 않아서였다. 괜히 잘못 말했다가는 교실이 소란스러워질 것 같아 겁이 났기 때문이다. '딸랑딸랑' 쿠튀리에는 결코 수업 시간에 손을 드는 법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딸랑딸랑' 쿠튀리에는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았다. '딸랑딸랑' 쿠튀리에에 대해 할 이야기는 딱히 없다. '딸랑딸랑' 쿠튀리에는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며, ..." (같은 책, 117~118쪽)

자크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어느 순간 내 이야기가 궁금해져

말하고 싶은 게 많지만 동시에 늘 가능한 한 감추어야 한다는 은근한 압박을 스스로 느끼는 자크는 상상과 현실 사이를 '혼자서' 두서없이 오간다. 혼자서? 물론, 봉지가 있긴 하지만 봉지는 늘 자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자크는 봉지, 봉지는 자크. 그런 셈... 아니, 바로 그거다!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세상과 이야기하기 위해 자크는 말더듬는 것을 고치게 해줄 것 같은 각종 풀도 먹어보고 낱말모음집도 만들어 외우고 또 외워보기도 한다. 늘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크는 그 때문에 생각해야 할 문제와 해야 할 일이 더 많기도 하다. 봉지와는 어쩜 그리 말을 많이 주고받는지...

책에는 사실 봉지보다 더 중요한 한 인물이 등장한다. 아이들에게 마뉘라고 불리는 망드리유 선생님이 바로 그 사람. 마뉘 선생님은 자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또 한 명의 '친구'로 등장한다. 자크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려 애쓰며 '말더듬이 자크'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마뉘 선생님뿐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봉지? 말하지 않았나? 봉지는... 자크!)

무슨 큰 사건을 저지르는 건 아니지만 현실에서 다 하지 못하는 마음 속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상상력이 엉뚱한 거짓말과 겹쳐 엉뚱한 사건들을 만들어낼 때 끝까지 자크를 지켜주는 이가 바로 마뉘 선생님이다. (자크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제대로 못할 때에도 그 마음을 헤아려 변호해준 분이 바로 마뉘 선생님이다.) 마뉘 선생님은 변함없이 자크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끝까지 자크를 변호한다. 학교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 이를 때까지.

마뉘 선생님이 학교를 떠나신 이후, '말더듬이 자크'는 어떻게 되었을까? 맘껏 제 할 말을 하며 세상으로 한 발짝 더 내딛었을까? 궁금하지만 더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욱 '말더듬이 자크'에게 새삼스레 다시 귀를 기울여본다. 마치 봉지가 그러했듯이 자크에게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건 마치 미처 다 감싸 안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놔두어버린 수많은 내 어릴 적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말더듬이 자크> 소르주 샬랑동 지음. 이주영 옮김. 아고라, 2007.
Le Petit Bonzi by Sorj Chalandon



말더듬이 자크

소르주 샬랑동 지음, 이주영 옮김, 아고라(2007)


태그:#말더듬이 자크, #소르주 샬랑동, #외국소설, #프랑스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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