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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눈다는 것은 역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좋은 일인가 봅니다.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선물을 포장하기위해 바쁘게 일손을 움직이고 있는 할머니, 팔순은 넘었을 것 같은 할머니 보살님의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수가 없습니다.

 

내 새끼들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따금 쑤시는 삭신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시겠지만 아무런 바람 없이 일을 하며, 이 추운 겨울날 이 선물을 받아 든 누군가가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떠올리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은가 봅니다. 

 

선재의 선물을 포장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살아오신 세월 탓에 움직이는 손길이 약빠르진 않았지만 지극한 정성과 행복한 표정이 뚝뚝 떨어지는 일손입니다. '아이고~ 이 선물 받는 애기들 올겨울 정말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연발하며 꾸부정한 허리를 곧추세우며 열심히 챙기십니다.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추운 겨울 아침임에도 노구를 끌고 오신 할머니보살님도 계시고, 집안일은 잠시 내려놓고 부부가 함께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빠엄마와 함께 생활하지 못하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생활하고 있는 조손가정의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줄 '선재의 선물'을 포장해야 한다고 하루 전날 기별을 넣었더니 내일처럼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연말을 맞아 펼치고 있는 아름다운 동행, 선재의 선물하기 운동이 진천에 있는 보탑사에서도 이렇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선재란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나오는 젊은 구도자의 이름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53명의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나 진리의 세계에 들어갔다고 하는 선인의 이름입니다.

 

선재의 선물은 그 이름만큼이나 내용물도 암팡지게 꾸려져 있었습니다. 한참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꼭 필요한 영양제가 들어 있고, 마음을 살찌워 줄 책, '행복 바이러스'나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제목의 책도 들어가게 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손이 시리다고 하면 호호 불어주며 챙겨줄 엄마아빠와 떨어져 살아가는 아이들이기에 자칫 마음까지도 시리게 할 수 있는 겨울 삭풍을 막아줄 목도리와 모자도 내용물로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모자와 목도리가 정말 따뜻해 보입니다. 대충대충 만들어낸 싸구려제품이 아니라 어른인 입장에서도 하나쯤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포근하면서도 귀티가 느껴지는 제품입니다. 흰색 털실로 짠 목도리는 흰색 앙고라의 포근함과 따뜻함이 느껴지고, 팥죽색 털실로 짠 목도리와 모자에서는 황토벽 방안의 아랫목 같은 따끈함이 느껴집니다.

 

선물을 받아든 아이들이 지을 다양한 웃음이나 표정만큼이나 무늬와 문양도 다양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하트 문양으로 들어가 있고, 선물하는 마음은 박스에 풍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두서너 가지 색실을 함께 사용해 단조롭지 않게 고급스럽게 들어가 있습니다.  

 

진천 보탑사에서도 150명의 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줄 선재의 선물을 준비하였고, 꾸러미로 배달 되어온 선물을 아이들 개개인에게 나눠주기 위해 개별포장을 해야 한다고 몇 사람에게 기별을 넣었더니 기꺼운 마음으로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이 열 명이 넘었습니다.

 

택배로 배달되어온 선재의 선물을 비교적 공간이 넓은 지장전에 펼쳐 놓았습니다. 재단만 되어 납작하게 접혀있는 박스종이를 펼치고 접어서 박스로 만들고, 끈을 넣어 손잡이까지 만드니 선물을 넣을 수 있는 박스가 완성됩니다. 완성된 빈 박스에 봉사자들이 어린이들의 마음에 난로가 되어 희망과 꿈을 줄 수 있는 책을 제일 먼저 한권씩 넣고, 그 옆으로 영양제를 한 병씩 눕혀 넣으니 바닥이 채워집니다. 

 

허전하기만 했던 박스 바닥이 책과 영양제로 채워지듯이 조금은 허전할 수도 있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도 이 선물로 채워지기를 기원하듯 정성껏 담는 모습에서 봉사자들의 자애함이 느껴집니다.  

 

바닥을 메운 책과 영양제 위로 차곡차곡 접은 목도리를 넣고, 목도리 위로 가지런하게 접은 모자까지 넣으니 텅 비어있던 박스가 그득하게 찹니다. 내용물로 가득 채워진 박스의 위쪽을 접어서 맞추니 손잡이가 달린 선물 박스가 됩니다.

 

'선재의 선물'은 시린 마음에 주머니 난로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한 시간 가까이 일손들을 놀리니 150개의 선물박스가 준비됩니다. 수북하게 쌓인 박스를 보며 사람들이 합장을 합니다.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어린 마음에 고드름처럼 열렸을지도 모를 마음의 추위까지도 녹여 주는 따뜻한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나눕니다.

 

보탑사 주지 스님께 '이 많은 선물을 준비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보탑사를 찾아주셨던 많은 분들이 이렇게 저렇게 모아준 정성과 자비심을 대신 전달할 뿐'이라며 풍경소리 같은 웃음만 보이십니다.

 

한겨울 아침이 따뜻하게 느껴질 만큼 보기 좋은 표정으로 준비한 선재의 선물은 크리스마스 전날인 오늘 중으로 진천군청에서 조손가정 150명 개개인에게 전달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선물을 준비한 보탑사 주지스님도, 선물을 포장하고 있던 어떤 보살님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모든 분들의 마음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마음이며, 모든 분들의 기꺼운 발걸음과 일손이야 말로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발걸음 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선재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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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윤수

여러 사람들이 내놓은 보시와 정성은 시린 마음에 온기를 가져다주는 주머니 난로가 되고, 여러 사람들이 모아주는 정성과 보시를 선재의 선물로 포장하여 전달하는 산승의 자비는 야박한 세월에 부는 삭풍을 막아주는 덕석처럼 느껴집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 저녁, 선재의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어린이들의 표정을 떠올리니 저절로 행복해지는 시간입니다.

덧붙이는 글 | 선물포장 봉사는 12월 24일 오전에 있었습니다.


태그:#선재의 선물, #아름다운 동행, #보탑사, #조손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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