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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1시 12분, 종로 옥인아파트 대표로부터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김순이(가명)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가림막을 치고 있대요, 어떻게 하죠?" 순간 생각했다. 정말 서울시가 갈 데까지 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주민이 다치면 안 되니 집 밖으로 나와 있으라고 한 후, 이 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시 주택공급과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어 주택공급과 책임자인 팀장에게 전화했다.

"최소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철거를 하면 안 되죠."
"그건 종로구청에서 알아서 하는 거다."
"사업시행자가 서울시 아닌가, 그러면 사업시행자답게 구청에 철거중단을 요구하라."
"그건 못한다."
"서울시장에게 공식적으로 항의공문을 보내겠다."
"마음대로 해라."

바로 이것이 1년 전에 동절기 철거를 금지시키겠다며 언론으로부터 환호를 받았던 서울시의 현 주소다.

동절기 철거 없다더니, 아파트에 가림막 치고 철거

서울시는 2008년 11월 26일 창의행정추진회의를 열어 '세입자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단기대책과 중기대책으로 구분하여 10여개 대책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중 동절기 철거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금지시키겠다고 했다.

서울시는 2008년 11월 26일 창의행정추진회의를 열어 동절기 철거 금지 등 세입자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동절기 철거 금지는 공염불이 되었다.
▲ 서울시의 동절기 철거금지 방침이 담긴 문서 부분 서울시는 2008년 11월 26일 창의행정추진회의를 열어 동절기 철거 금지 등 세입자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동절기 철거 금지는 공염불이 되었다.
ⓒ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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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약속이 불과 1달 만인 2008년 12월 왕십리 뉴타운지역 철거 개시로 빛을 바랬다. 당시 서울시는 '민간사업자가 하는 철거는 합법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니 서울시가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일어난 일이 바로, 용산참사다. 당시 철거를 지시한 계약서에는 2009년 2월까지 철거를 마무리하도록 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은행 빚을 얻어 시행하는 재개발 사업의 경우에는 얼마나 공기를 단축시키느냐가 건설사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시금석이 된다. 그래서 철거는 가급적 동절기에 끝내고 바로 3월부터 건설공사를 시작하는 것이 재개발 사업의 정석인 된 지 오래되었다.

동절기 철거 금지를 시청앞에서 요구하고 있을 때,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있었다. 이 아파트 맞은 편 동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 12월 10일 진행된 옥인아파트 철거 모습 동절기 철거 금지를 시청앞에서 요구하고 있을 때,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옥인아파트를 철거하고 있었다. 이 아파트 맞은 편 동에는 사람이 살고 있다.
ⓒ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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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서울시의 동절기 철거금지 지침이 과연, 민간사업자에게만 적용할 수 없는가라는 부분이다. 서두에 언급한 종로 옥인아파트 도시계획시설사업이나 일전에 소개한 마포 용강아파트 도시계획시설사업은 모두 서울시에서 아파트를 허물고 공원을 짓겠다는 공익사업이다. 그리고 철거업체 선정 등 실무책임은 종로구청과 마포구청이 지고 있다.

이미 한 분의 세입자가 사망한 마포용강아파트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그보다 남아 있는 주민수가 더욱 적어 열악한 종로 옥인아파트의 경우에는 이미 건물 자체를 허무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서울시는 지난 8일 용강 세입자 사망문제와 동절기 철거 문제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보낸 면담요청서는 가볍게 거부했다. 분명 서울시장 앞으로 보내고, 참조로 정무부시장을 명기했는데 담당공무원이 전화를 했다.

그리곤 이런 저런 질문을 했더니, 대답의 태반이 "그것은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 그래놓고 한다는 말이 "면담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라는 말이었다.

공원 조성이 상식과 원칙보다 중한가

이 공무원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울시 공무원규정을 보면 서울시 공무원의 업무 중 가장 맨 위에 있는 것이 민원인의 민원처리 업무다. 서울시장도 정무부시장도, 그리고 '아무것도 답할 수 없는' 그 담당자도 모두 공무원일진데, 시급을 다투는 문제에 대해서는 도통 만나뵐 수가 없었다.

서울시는 지난 8일 위의 내용을 담은 해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해명자료에 담긴 사실 중 대다수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시 해명자료 부분 서울시는 지난 8일 위의 내용을 담은 해명자료를 냈다. 하지만 해명자료에 담긴 사실 중 대다수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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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뒤로는 여론을 달래기에 여념없었다. 그것이 바로 지난 8일 서울시가 발표한 '해명자료'다. 이 자료는 사실에 대한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다. 몇 가지 부분을 보자.

"사망한 세입자가 거주한 5동은 가림막 설치공사도 하지 아니하였음."
"현재 세입자 등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철거행위는 일체 시행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음."

사망한 세입자는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동을 철거하는 철거반원과 다툰 것이었다. 목격자도 유족도 이를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세입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대한 철거행위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서울시는 사람이 사는 동은 철거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위의 사진처럼 사람이 사는 집의 윗집, 아랫집, 옆집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철거가 아니라고 한다.
▲ 사람이 사는 집의 윗집모습 서울시는 사람이 사는 동은 철거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위의 사진처럼 사람이 사는 집의 윗집, 아랫집, 옆집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철거가 아니라고 한다.
ⓒ 김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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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서울시가 이런 내용을 마포구청으로부터만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포구청은 철거업체에 확인했다고 한다. 현장에 직접 와서 보면 육안으로도 철거 유무를 확인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해자인 철거업체의 말을 앵무새처럼 옮기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11일 오늘 종로 옥인아파트에서는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가림막을 치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사람이 있는 집을 제외한 윗집, 아랫집, 옆집의 집기들과 구들장은 철거가 된 지 오래다. 가림막을 치는 행위는 철거업무지침상 본격적인 외벽철거로 포함되어 있다. 다시 말해 명백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의 철거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서울시당은 방금 서울시장 앞으로 항의 공문을 보냈다. 그냥 내버려두면 또 다시 사람이 다치는 일이 생길 것 같아, 지금이라도 나서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원을 만드는 일이 상식과 원칙보다 우선한 것이지 묻고 싶다. 이러다간 우리는 또다시 가슴 속 피멍이 들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진보신당 서울시당 정책기획국장으로 일한다. 지난 1월부터 마포용강아파트/종로옥인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태그:#도시계획시설사업, #동절기철거, #옥인아파트, #용강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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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정책을 고민하는 시민운동단체인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 커먼즈 운동을 중심으로 도시 문제를 다루는 시시한연구소 공동소장, 재정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참여예산 문제를 살펴보는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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