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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청산의 첫 걸음이라 할 수 있는 친일인명사전이 오는 8일 반민특위 해체 60년, 편찬위원회 출범 8년만에 발간된다. 쉽지 않은 길이었다. 최근 만주군 중위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전 게재를 막기 위해 유족이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에 대해 온·오프라인에서 벌어진 격렬한 논쟁은 60년 전에 풀지 못한 '친일 청산'의 숙제를 다시 확인시켜주었다. <오마이뉴스>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앞두고 갖은 굴곡을 겪어야 했던 지난 8년의 편찬사와 우리 시대에 사전이 갖는 의미를 3회에 걸쳐 재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2004년 1월 19일 저녁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독립군가 '압록강행진곡'을 다같이 부르고 있다.
 2004년 1월 19일 저녁 <친일인명사전> 편찬 성금 5억 달성 기념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독립군가 '압록강행진곡'을 다같이 부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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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대한민국의 국회에서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사업의 예산전액을 삭감했다는 뉴스를 듣고, 분개하다 못해 너무 슬펐습니다. (…) 국가기관인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몰역사적인 부끄러운 상황이라면 남은 것은 살아 있는 국민의 힘밖에 없지 않을까 합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올곧은 역사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나서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마치 촛불 하나 하나가 모여 광화문을 뒤덮었듯이."

2004년 1월 7일 정운현 당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의 칼럼 '다 떨어진 헌 고무신짝을 부여잡고'에 달린 누리꾼 '참세상(kimhr)'의 댓글은 '친일인명사전'이 국민 모두의 사전으로 거듭나는 기적을 일구었다.

그의 제안을 받아 만 하루만에 시작된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의 성금모금 공동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는 나흘만에 1억 원을 돌파하더니, 불과 11일만에 목표 금액인 5억 원을 모금하는 기염을 토했다.

목표 금액 달성 뒤에도 계속 해외동포를 포함한 시민들의 성금은 계속됐다.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이 지난 2005년 7월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서 밝힌 바에 따르면, 3만 명에 가까운 참여자들이 모두 7억5천만 원의 성금을 보낸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국민모금운동은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적 화두가 국민적 염원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고 몇 년 간 표류하고 있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도록 하는 동력이 됐다.

다시 보는 '제2의 독립군'의 기적... "사랑하는 두 딸 이름으로 동참합니다"

2004년 초 벌어진 국민모금운동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삭감된 5억 원의 예산을 넘어서는 7억 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당시 <오마이뉴스>에서는 모금운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사진은 당시 <오마이뉴스> 기사들.
 2004년 초 벌어진 국민모금운동에서 한나라당에 의해 삭감된 5억 원의 예산을 넘어서는 7억 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당시 <오마이뉴스>에서는 모금운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사진은 당시 <오마이뉴스> 기사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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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2의 독립군'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군자금'인 모금액수가 많고 적음도 상관 없었다.

누리꾼 '가죽잠바(abcde9586)'는 "나이 50에 어린아이처럼 은행 문 열기를 기다리다 10만 원 초라한 금액이지만 기분 좋게 보낸다"며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꼭 극복하고 국민의 뜻을 이뤄달라"고 소감을 밝혔고, "이태백의 길에 들어서는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누리꾼 '풍아야(vnddldi)'는 "만원밖에 내지 못했는데 미안하다"며 "나의 푼돈 만원이 친일사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힘이 날 것 같다"고 댓글을 남겼다.

국내의 시민들만이 아니라 해외 동포들도 모금운동에 참여했다. 미국 뉴저지의 '백두(bdmts)'라고 자신을 밝힌 누리꾼은 "여유 있는 사람의 수백만 원보다도 성실하게 생활하시는 분들의 일이만 원이 더 무겁고 값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금 명단 공개시에는 회사나 저의 실명이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2천 달러를 송금하기도 했다.

태어날 아이의 이름 혹은 가족의 이름을 걸고 모금운동에 참여한 사람도 많았다.

누리꾼 '정직(hiyoung1224)'은 "오늘은 우리 사랑하는 우리 두 딸 이름으로 동참합니다"라고 밝혔고, 누리꾼 '심정보(guard587)'는 "친일역사를 바로잡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정의를 논할 수 있겠냐"며 8개월 된 딸의 이름으로 모금에 동참했다.

가족의 이름으로 모금에 동참한 누리꾼 '지상이아빠(tsqaure)'는 "2003년 12월에 태어난 우리 아들 지상이가 훗날 국사를 배우는데 친일파 얘기를 듣고 더 이상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며 "친일인명사전이 우리나라를 바로 잡는 초석이자 첫걸음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기적의 도화선' 김호룡씨 "친일사전, 부끄러운 역사 다시 안 만드는 계기로"

5억 돌파! 바위를 뚫은 물방울들.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는 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이 2004년 1월 19일 오전 목표액 5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5억 돌파! 바위를 뚫은 물방울들. <오마이뉴스>와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 있는 캠페인 <친일인명사전 발간, 네티즌의 힘으로!>이 2004년 1월 19일 오전 목표액 5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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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모금운동을 최초 제안했던 '참세상' 김호룡(48)씨는 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에서 "나만이 아니라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그동안 꿋꿋이 계속 사전 발간을 위해 노력했던 연구소와 많은 분들에게 고맙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가 게재금지 가처분신청을 낸 것을 두고 "여전히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것 같다"며 "친일인명사전 발간이 과거사 청산을 위한 각성한 시민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 동인고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김씨는 "금성출판사 교과서 파동 사건에서도 보듯 다시 역사 왜곡의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기존에도 민족사관, 민족정기가 제대로 정립 안 된 근·현대사가 뉴라이트 세력에 의해 다시 위축되고 왜곡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어 "모금운동 당시나 지금이나 국민들 가슴 속에는 일제시대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동안 반민특위 실패와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등으로 인해 이러한 국민적 열망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없었다"며 "오히려 오늘날 어떤 의미에서 '반동의 시대'가 되돌아 온 것 같다"고 탄식했다.

하지만 김씨는 "늦었다는 것은 없다"며 "모금운동 때처럼 각성한 힘들을 다시 모아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친일인명사전은 어찌 본다면 근·현대사 100년만에 친일 문제를 다룬 공식적인 문건인 셈이다. 그동안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을 못한 것처럼 역사가 끊임없이 되풀이될 수 있고 오히려 악순환될 수도 있다. 하지만 늦었다는 것은 없다. 부끄러운 역사를 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친일인명사전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민족문제연구소, 국민모금 참여자 등 5만여 명 이름 담은 책자도 발간 예정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 발간의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제2의 독립군'들을 기리기 위해 사전 발간과 함께 별도의 책자를 낼 예정이다.

'금단의 역사를 쓰다, 8년간의 대장정'이라는 제목의 150여 페이지 소책자에는 지난 1999년 전국 교수 1만인 선언에 동참한 교수들의 이름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1만여 명, 또 2004년 국민모금운동에 참여했던 3만여 명 등 총 5만여 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모금에 동참하면서 가족의 이름을 올려주길 부탁했던 이들도 '+' 표시로 함께 책자에 이름을 올렸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태명이나 가족의 이름으로 모금에 참여한 시민들도 많지만 '친일청산'과 같은 구호라든가, '조금밖에 못 내서 미안하다'와 같은 명의로 모금에 참여한 분도 많다"며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어 이 같이 '이름'은 아니지만 편찬기금이 모금된 은행계좌 명의 모두를 수록했다"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명단에 수록된 사람들 중 요청하는 이에게 해당 책자를 제공할 계획이다.


태그:#친일인명사전, #국민모금운동, #김호룡,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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