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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푸광장의 국기게양대와 마오쩌둥상. 톈푸는 하늘이 곳간을 내려준 풍요로운 땅인 쓰촨을 가리킨다.
▲ 톈광장-마오쩌둥동상 톈푸광장의 국기게양대와 마오쩌둥상. 톈푸는 하늘이 곳간을 내려준 풍요로운 땅인 쓰촨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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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푸광장을 내려 보고 있는 거대한 마오쩌둥상. 중국 대도시의 중앙광장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 톈부광장-마오쩌둥동상 톈푸광장을 내려 보고 있는 거대한 마오쩌둥상. 중국 대도시의 중앙광장에 유일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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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한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시민들의 쉼터다. 중국 대도시에는 런민(人民)이라 칭하는 중앙광장이 있다. 쓰촨(四川)성 수도 청두(成都)의 중앙광장은 좀 색다르다. 이름하여 '톈푸(天府)광장'.

톈푸는 하늘(天)이 곳간(府)을 내려준 풍요로운 땅이라는 '천부지국'(天府之國)에서 따왔다. 이 말은 2천여 년 전 전한시대 역사가 유상이 <전국책>에서 쓰촨을 '양식이 많이 생산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풍족한 옥야천리(沃野千里)의 땅'으로 묘사하면서 유래됐다.

쓰촨을 상징하는 명칭으로 부를 만큼 톈푸광장은 청두의 한복판에 있다. 톈푸광장은 2006년 새 단장을 하여 언제나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다. 광장에서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원형 디자인은 쓰촨의 대표적인 음식 훠궈(火鍋)를 형상화했다.

톈푸광장은 면적이 8만8368㎡에 달하는데, 오랜 역사적 유래를 지니고 있다. 본래 톈푸광장은 13세기 말 명나라 주원장의 아들 주춘(朱椿)의 촉왕부(蜀王府)가 있던 자리다. 주춘은 청두의 정중앙에 베이징 자금성을 모방하여 작은 황궁을 지었다.

1644년 장헌충의 반란 시 촉왕부는 불타 사라졌지만, 명을 이은 청나라는 그 자리에 공원(貢院)을 세웠다. 쓰촨 전역의 인재들이 모여 과거를 보는 장소였기에 현지 주민들은 계속 황궁이라 불렀다. 1949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원은 조금씩 훼손되다가 문화대혁명 시기 철저히 파괴됐다.

1970년 공원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마오쩌둥(毛澤東) 석상과 마오쩌둥사상전람관이 들어섰고 그 앞은 정치집회 장소로 바뀌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대도시 광장에서 마오쩌둥상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톈푸광장만은 예외였다. 전람관도 과학기술관으로 이름만 바뀐 채 지금도 남아 있다.

런민공원 내의 한 노래 부르기 모임. 매일 오후 런민공원 곳곳에서는 청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여가 활동을 벌인다.
▲ 런민공원노래부르기모임 런민공원 내의 한 노래 부르기 모임. 매일 오후 런민공원 곳곳에서는 청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다양한 여가 활동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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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차관에서 차를 마시며 귀를 파는 한 여성. 타오얼둬라 불리는 귀 파는 사람들은 쓰촨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인 중 하나다.
▲ 런민공원 귀를 파는 타오얼둬 허밍차관에서 차를 마시며 귀를 파는 한 여성. 타오얼둬라 불리는 귀 파는 사람들은 쓰촨에서만 볼 수 있는 직업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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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푸광장에서 서쪽으로 걸어가면 쓰촨에서 가장 큰 쓰촨성미술관이 있다. 좀 더 걸음을 옮기다 보면 녹음이 우거진 공원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청두 시민들이 가장 즐겨 찾는 휴식처인 런민공원이다.

런민공원은 전체 부지 11만2639㎡에 달하는 청두에서 가장 큰 원림(園林)식 공원이다. 1928년에 문을 연 이래 날마다 수만 명의 시민들이 찾아 도시의 번잡함을 달랜다.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런민공원은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기러 나온 중년인들로 시끌벅적하다. 이들은 사교춤, 노래, 체조 등을 즐기러 이웃과 함께 나온다. 모든 모임은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것으로, 약간의 회비를 거둬 운영된다. 그 중에는 재혼을 목적으로 한 맞선 모임도 있다. 보통 한 주에 서너 차례 열리는데 언제나 참여자가 적지 않다.

공원 내 호수 변에는 허밍(鶴鳴)차관이 있다. 허밍차관은 런민공원과 운명을 함께 해온 유서 깊은 노천 차관이다. 1930년대 초반 문을 연 뒤 주인이 수차례 바뀌었지만, 명맥이 끊이지 않은 채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허밍차관에서는 어메이산(峨眉山)과 칭청산(靑城山)에서 생산된 녹차를 마실 수 있다. 쓰촨은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이 많고 습도가 높아 녹차 재배에 적합한 기후 조건을 지녔다. 예부터 쓰촨은 중국 최대의 녹차 생산지이자 소비지로 유명했다. 청두에는 크고 작은 차관이 중국 대도시에서 가장 많다.

허밍차관에는 흥미로운 직업인이 있는데, 차 마시는 손님 사이를 오가면서 안마를 하고 귀를 파주는 타오얼둬(掏耳朵)다. 타오얼둬는 고도로 숙련된 기술인으로 여러 연장을 가지고 귀 안의 이물질을 깨끗이 청소한다. 간단한 안마도 하는데, 가격은 10~20위안(한화 약 1800~3600원)으로 저렴하다.

청두의 한 주택가 공원에서 열리는 천극 공원. 본래 천극과 변검은 민중이 즐겨 찾는 차관에서 공연이 열렸다.
▲ 쌍림공원노천공연단 청두의 한 주택가 공원에서 열리는 천극 공원. 본래 천극과 변검은 민중이 즐겨 찾는 차관에서 공연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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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극대희대천극. 현란한 기예로 보는 이의 넋을 빼게 하는 천극. 천극은 경극, 곤극과는 달리 서민적이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천극대희대천극. 현란한 기예로 보는 이의 넋을 빼게 하는 천극. 천극은 경극, 곤극과는 달리 서민적이고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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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에 오면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할 공연이 있다. 바로 중국 4대 전통극 중 하나인 천극(川劇)이다.

쓰촨은 주변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지역이다. 당대 시성 이백은 시 '촉도난'(蜀道難)에서 "아, 아찔하게 높고 험하구나. 촉 가는 길은 험하고 하늘 오르기만큼 힘들다"(噫吁戱 危乎高哉, 蜀道之難 難于上靑天)라고 읊을 정도였다. 중국 주류 문화와 교류가 적다 보니 쓰촨은 자신만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다.

천극은 이런 쓰촨의 지역적 토양 위에 태동하고 발전해 온 전통연희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극(京劇), 곤극(崑劇)과 달리 노래와 연기뿐만 아니라 기예, 묘기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내용도 지역의 전설과 설화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이해하기도 쉽다. 이처럼 천극은 서민적이고 고정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천극이 중국 전역에서 유명하게 된 것은 1952년 중국희곡예술제에 출품된 <백사전>(白蛇傳)이 큰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백사전>은 뱀과 인간의 사랑을 매개로 신분과 계급의 대립, 구습과 신문명의 충돌을 그린 작품이다.

<백사전>은 극중 내내 현란하고 유쾌한 기예를 선보여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도마단(刀馬旦), 수축(水袖), 왜자공(矮子功) 등 전통적인 천극의 예술 형식에다 손 그림자극(手影戱), 만담과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곤등(滾燈)까지 온갖 기예는 보는 이의 넋을 빼게 했다. 이 덕분에 민간 기예도 단순한 쇼가 아닌 예술을 될 수 있다는 평가를 얻게 됐다.

당시 <백사전> 극중에 등장한 한 기예는 관객들을 흥분시켰다. 두 명의 배우가 얼굴에 쓴 탈을 순식간에 3장이나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쓰촨을 대표하는 절기 변검이 중앙 무대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쓰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민간 연희인 곤등. 생활 속의 세상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민극이다.
▲ 순흥차관곤등 쓰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민간 연희인 곤등. 생활 속의 세상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서민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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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등은 만담 형식에 서커스의 기예로 극을 진행한다. 배우들은 사투리인 쓰촨어로 구사하여 대화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지만, 보기만 해도 즐겁고 유쾌하다.
▲ 순흥차관곤등 곤등은 만담 형식에 서커스의 기예로 극을 진행한다. 배우들은 사투리인 쓰촨어로 구사하여 대화 내용을 알아듣기 힘들지만, 보기만 해도 즐겁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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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검은 한국에서는 1997년 개봉된 영화 <변검>(The King Of Masks)을 통해 잘 알려졌다. 영화처럼 변검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변검은 19세기 말 저명한 천극 예술인 캉쯔린(康子林)이 천극 <귀정루>(歸正樓)에서 탈 3장을 바꾸는 삼변화신(三變化身)을 선보이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캉은 변검의 기술을 창조하고 탈을 직접 연구해 쓰촨 전역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뒤이어 수많은 변검사들이 명멸했지만, 반세기 넘게 삼변화신의 형식만 연연한 채 예술화 된 공연 양식은 갖추지 못했다. 현대 변검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왕다오정(王道正)도 마찬가지였다.

1959년 유럽 4개국 공연에 나선 쓰촨성 청년천극단의 일원이었던 왕은 동료 자오수친, 양룽화와 함께 탈 3장을 바꾸는 기예를 선보였다. 변검이 서방세계에 첫 선을 보인 무대였다. 왕다오정은 "변검을 처음 접한 유럽 관중은 탄성을 지르면서 열띤 박수로 극장을 진동시켰다"고 회고했다.

변검의 기술은 1980년대 초 획기적으로 진보했다. 쓰촨성천극단을 대표하는 예술인인 류중이가 홍콩 공연 중 4장의 탈을 바꾸면서 삼변화신의 틀을 처음으로 깨뜨린 것.

류의 사제였던 왕다오정이 1985년 독일 공연에서 탈을 5장 바꾸고, 1987년 일본 공연에서는 탈을 10장까지 변환하면서 신기원을 이룩했다. 왕은 1996년 홍콩 공연에서 자신이 개발한 변검의 독자적인 공연 양식과 다양한 공연 기구를 더해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3분 안에 8장의 탈을 연속 바꾸고, 한 공연에 탈 24장을 바꾸는 절기를 선보인 것이었다. 공연 후 홍콩 <대공보>는 왕을 중국 최고의 '변검왕'이라고 칭했다.

왕은 "변검이 천극의 일부분에서 독자적인 공연 양식으로 발돋움한 것은 수많은 쓰촨 예술인의 노력 덕분"이라며 "변검이 천극을 뛰어넘어 쓰촨의 대표적인 전통연희가 된 것은 변검사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쓰촨에서 발상한 또 다른 민간 절기 차 기예. 쓰촨의 차관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어, 종업원이 긴 주전자 꼭지로 손님에게 차를 따라야만 했다.
▲ 천극대희대차기예 쓰촨에서 발상한 또 다른 민간 절기 차 기예. 쓰촨의 차관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어, 종업원이 긴 주전자 꼭지로 손님에게 차를 따라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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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싱노차관에서는 변검 공연이 벌어지기 전 미녀들이 등에 탈이 그려진 웃옷을 들고 나와 분위기를 돋운다.
▲ 순흥차관변검 순싱노차관에서는 변검 공연이 벌어지기 전 미녀들이 등에 탈이 그려진 웃옷을 들고 나와 분위기를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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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에서 천극과 변검을 보려면 도심 곳곳에 있는 천극장에 가야 한다. 청두 시민과 여행객은 정통극을 공연하는 쓰촨성천극원보다 날마다 공연이 열리고 현대화된 레퍼토리를 갖춘 대중 극장을 찾는다.

무후사 옆 진리(錦里) 뒤편에 있는 다시타이(大戱臺)는 청두의 대표적인 대중 천극장이다. 겨울철을 제외하고 매일 밤 8시에 천극 공연이 열린다. 1시간 반 동안 펼쳐지는 공연 레퍼토리는 보통 8~10개다. 정통 천극부터 민속 춤, 손 그림자극, 차기예(茶藝), 곤등 등이 연이어 펼쳐진다.

분위기가 점차 달아올라 마지막에 무대를 장식하는 것은 변검이다. 다시타이의 공연은 보통 한 명의 여성 변검사와 세 명의 남성 변검사가 한 팀을 이룬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시무시한 탈과 화려한 의상을 갖춘 남성 변검사가 불쇼를 벌인다. 난데없는 토화(吐火)로 관객의 열기는 달아오른다.

토화에 뒤이어 본격적으로 변검 공연이 펼쳐진다. 먼저 여성 변검사가 나서 쿵후를 연상시키는 호쾌한 춤사위 속에 탈을 벗어나간다. 한 장, 두 장, 세 장…. 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고 1분도 안 되어 변검사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

본래 변검은 여성에게는 기예를 전수하지 않았다. 영화 <변검>에서는 주인공 계집아이가 떠돌이 변검왕과 함께 지내기 위해 남자아이인 양 행동하면서 변검을 배우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에게 전수하지 않고 외지인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변검의 전승 철칙은 이미 깨진 셈이다.

량천(梁震) 쓰촨성 천극예술센터 주임은 "한 천극단에 단 한 명의 여성 변검사 양성을 전제로 여성에게도 변검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량 주임은 "처음에는 연로한 천극 예술인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지금은 변화하는 공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모두 이해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불쇼인 토화는 변검 공연의 흥을 돋우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파트너다. 불쇼로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변검의 마술로 얼을 빼놓는다.
▲ 순흥차관변검 불쇼인 토화는 변검 공연의 흥을 돋우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파트너다. 불쇼로 관중의 이목을 집중시킨 뒤 변검의 마술로 얼을 빼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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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쾌한 춤사위 속에 탈을 벗어나가는 여성 변검사. 1990년대 말부터 시대와 상업적 요구에 따라 변검도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 순흥차관변검 호쾌한 춤사위 속에 탈을 벗어나가는 여성 변검사. 1990년대 말부터 시대와 상업적 요구에 따라 변검도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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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변검사와 달리 남성 변검사들은 동작이 크고 화려한 춤사위로 무대를 더욱 달군다. 관객들이 숨 쉴 새도 없이 탈을 벗겨나간다.

유명 변검사의 경우 한 번 공연에 탈 16장 이상을 바꾸고 3초 내에 5장 이상의 탈을 연속으로 벗긴다. 10여 장의 탈이 순식간에 떨어져나가고 마침내 변검사의 맨 얼굴 나타난다. 최근에는 벗긴 탈을 다시 쓰는 기술까지 개발됐다.

변검의 기예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것은 공연의 상업화 때문이다. 쓰촨에서 정식 공연무대에 오르는 변검사만 1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정통 천극원뿐만 아니라 대중 극장, 차관, 연회장, 식당, 상가(喪家) 등 각계에서 쏟아지는 요청 속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양한 공연 장소와 눈높이가 높아진 관객을 만족시키려면 신기술의 개발과 연마가 필요하다.

일부 뜻 있는 천극 예술인들은 변검의 지나친 상업화를 깊이 우려하고 있다. 본래 변검사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오직 쓰촨에서만 교육을 받아야 했고 천극의 기초 수업을 오랫동안 견뎌내야 했다.

지난 1953년 충칭(重慶)에서 개교하여 1950년대 말 청두로 자리를 옮긴 옛 쓰촨성천극학교는 천극인 양성의 요람이다. 쓰촨성천극학교는 1980년 교육과정을 확대하면서 쓰촨성예술학교로 명칭을 바뀌었지만, 지금도 중국에서는 유일한 정규 천극인 양성학교다.

쓰촨성예술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교와 전문대를 합친 5년의 혹독한 정규교육을 이겨내야 한다. 이 기간 동안 학생은 천극의 기본 기예와 예술인으로써의 정신자세를 가다듬는다. 입학생도 2,3년에 한 번만 선발하고 정원도 5명 이내로 정하고 있다. 오직 쓰촨과 충칭 출신 학생만 뽑는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호쾌한 춤사위를 춤추는 변검사.
▲ 천극대희대변검 화려한 전통 의상을 입고 호쾌한 춤사위를 춤추는 변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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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탈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변검사. 부채는 탈을 벗기는 동작에서 비밀을 감춰주는 중요한 도구다.
▲ 천극대희대변검 순식간에 탈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변검사. 부채는 탈을 벗기는 동작에서 비밀을 감춰주는 중요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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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예술학교를 졸업하면 학생들은 성적에 따라 각지의 천극단에 취업한다. 천극단에 입단 뒤에도 다시 3~5년 동안 천극의 각종 공연 기술을 깊이 있게 연마한다. 천극 예술인 중 재능과 표현력이 특출한 극소수만이 극단에 의해 선발되어 변검사가 될 수 있다.

2000년 홍콩 최고의 영화배우인 류더화(劉德華)가 변검을 배우고자 청두의 왕다오정을 찾아 거액의 수업료를 내밀었지만 단박에 거절당했다. 당시만 해도 변검은 자식이나 한두 명의 제자만을 받아 2년 이상의 도제식 교육을 통해 전수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변검사가 돈 잘 버는 예능인으로 각광 받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조잡한 변검 기술을 배우고 무대에 데뷔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는 1000위안(한화 18만 원)에 변검을 가르친다는 광고가 나돌 정도다.

현대 변검을 창시하고 발전시킨 왕다오정은 이런 세태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왕은 "지금은 쓰촨에서조차 천극이나 변검 공연이 정식 극장보다는 식당, 술집 등 오락장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통탄해 했다.

왕은 "변검이 예술 가치를 잃고 길거리 공연으로 변질된다면 더 이상 쓰촨을 대표하는 민중연희가 되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많은 천극 예술인들이 백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발전시킨 변검이 아마추어들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전락한 데 대한 노 예술인의 안타까움은 크다.

현 세태를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수년간 천극과 변검을 전작으로 한 사진집을 내온 사진가 라이우(賴武)는 "쓰촨의 민간연희는 민중 속에서, 길거리에서 탄생하고 발전해왔다"고 지적했다. 라우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는 변검이 현대인의 취향에 발맞추는 것은 어쩌면 민중과 호흡하는 변검의 참모습일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변검이 마술처럼 통속화된 기예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변검은 천극을 기초로 둔 전통연희다. 상업화의 논란은 계속되더라도 변검의 정신과 가치를 잃지 않는 예술인이 있어 변검은 질긴 생명력을 잃지 않고 발전할 것이다.

청두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톈푸광장의 야간 분수쇼. 마오쩌둥상을 배경으로 오묘한 광경을 연출한다.
▲ 톈부광장 분수야경 청두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톈푸광장의 야간 분수쇼. 마오쩌둥상을 배경으로 오묘한 광경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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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스 코지 가든 호스텔의 한국어 홈페이지. 이용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여행지의 자세한 소개가 돋보인다.
▲ 심스코지게스트하우스 심스 코지 가든 호스텔의 한국어 홈페이지. 이용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여행지의 자세한 소개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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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Tip 1

다시타이는 청두(成都)시 우허우다제(武侯大街) 무후사 옆 전통거리인 진리 안쪽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공연은 겨울철을 제외하면 날마다 열린다. 공연 시작은 밤 8시부터로, 1시간 반 동안 벌어진다.

입장료는 위치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일반석의 경우 간단한 먹을거리와 차를 포함해 120위안(약 2만1600원)이다. 버스로 다시타이로 가려면 우허우츠 정거장에서 내려 진리로 들어가면 된다. 택시로 갈 경우 도심에서는 10위안(1800원), 청두기차역에서는 20위안이 소요된다. 예약전화는 (028)8981-3767, 6644-8299이다.

청두시 서북쪽 국제전시센터(國際展覽中心) 3층의 순싱(順興)노차관도 대중적인 천극장으로 명성이 높다. 순싱노차관은 건물 내 3층에 있는데, 초현대식 건물 외관과 달리 쓰촨 각지에서 수입한 명·청대의 벽조 장식, 목각, 가구 등으로 내부를 꾸몄다. 공연은 연중 밤마다 8시부터 1시간 동안 열린다. 공연 관람료는 위치에 따라 다른데, 중간석부터는 80위안(약 1만4500원)이다. 예약전화는 (028)8769-3202, 8764-9999이다.

# 여행Tip 2

톈푸광장은 야경이 더욱 아름답다. 청두를 대표하는 중앙광장답게 시정부가 세심하게 광장과 그 주변에 야간 조명을 설치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야간 분수쇼는 톈푸광장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매일 밤 8시 반부터 30분간 동안 벌어지는데, 레이저 조명쇼와 더불어 장관을 연출한다. 오묘한 조명을 받으며 서있는 마오쩌둥의 모습은 급속한 개혁개방 속에서도 권력을 잃지 않은 중국공산당을 상징하는 듯하다.

청두에서 묶을만한 저렴한 숙소는 심스 코지 가든 호스텔(Sim's Cozy Garden Hostel)을 추천한다. 청두에는 조선족 동포가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가 몇 곳 있긴 하다. 하지만 도심에서의 접근성, 지역 여행지에 대한 정보 제공, 세심한 운영 노하우 등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다. 과거 한국인이 운영하는 독보적 지위의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지만, 작년 티베트 퍼밋 문제로 문을 닫아야만 했다.

심스 코지 가든 호스텔은 일본과 싱가포르 국적의 부부가 운영하지만, 한국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친절한 접대가 돋보인다. 심스 코지 가든 호스텔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어로 된 홈페이지(http://www.gogosc.com/kr.asp)를 통해 살펴 보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쓰촨, #사천, #천극, #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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