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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대통령 49재가 열린 뉴욕 원불교 교당.
 고 노무현 전대통령 49재가 열린 뉴욕 원불교 교당.
ⓒ 권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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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열릴 즈음 뉴욕 플러싱의 원불교 뉴욕교당에서도 49재가 치러졌다.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좋은 생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축원하는 원불교 의식과 전 평민당 부총재이자 고 문익환 목사의 동생인 문동환 목사의 추도사가 합쳐진 독특한 형식의 행사였다. 49재가 열리는 동안 뉴욕 노사모에서 제작한 노 전 대통령 동영상도 상영됐다.

49재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 지내는 불교 의식이다. 불교에 의하면 죽은 지 49일 동안 죽은 이는 이승과 미래생의 중간인 중유 또는 중음에 머무는데, 그 기간에 다음 생에 받을 인연이 정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7일마다 불경을 읽고 음식을 바치며 재를 지내는데 7회째인 49일을 미래 생에 다시 태어나는 바로 그날이라 믿어 이날 더 성대하고 정성스런 재를 올리는 것이다.

49재가 치러진 9일(현지시간), 뉴욕 날씨는 여름답지 않게 청명하고 선선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원불교 교당 안. 노 전 대통령이 영원한 진리를 상징하는 커다란 금빛 동그라미(금가락지처럼 보인다) 아래 사진으로 모셔져 있다.

진리를 의미하는 금색 동그라미 아래 노 전 대통령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진리를 의미하는 금색 동그라미 아래 노 전 대통령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 권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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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재식(49재를 다르게 표현한 말)이 시작되는 장면.
 종재식(49재를 다르게 표현한 말)이 시작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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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의식과 목사의 추도사 합쳐진 뉴욕 49재

오후 7시가 조금 넘자 40명 정도가 자리를 채웠다. 원불교식 한복과 의례복을 갖춰 입은 사회자가 나와 개식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입정(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 절차)을 위해 단 위에 놓인 종을 두드렸다. 딩딩딩딩. 종소리는 놀랄 만큼 맑고 아름다웠다.

사회자는 향을 하나 뽑아 불을 붙였다. 그 향으로 허공에 커다란 원을 한 번 그린 후 향로에 꽂았다. 이어 접은 부채 모양의 나무봉 같은 것을 한 손에 쥐고는 식이 진행되는 사이사이 마다 나무봉을 다른 손바닥에 치면서 절도 있는 소리를 냈다.

식은 노 전 대통령의 간단한 약력 보고, 심고(마음속의 자기 느낌을 고백하며 뜻과 같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것), 성주(천도재 때 많이 외우는 영혼천도를 위한 주문), 천도법문(영혼이 마음의 헛된 애착에서 벗어나 바른 길을 찾아가도록 인도하는 글), 반야심경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정연석 원불교 미주동부 교구장님이 추도문을 읽고 있다.
 정연석 원불교 미주동부 교구장님이 추도문을 읽고 있다.
ⓒ 권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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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영가여 잘 들으소서."
"노무현 영가시여, 부처님의 법문을 잘 들으소서."
"노무현 영가여, 이제 이 성품자리를 확연히 깨달으셨나이까!"

주문과 독경의 내용은 돌아가신 분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없고 생과 사의 구분도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마음의 헛된 애착에서 벗어나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혼을 위로하고 기원하는 것이었다.

뒤를 이어 원불교 미주 동부 교구장인 정연석 님이 법문(추도사)을 낭독했다.

"오호통재 열반 소식이여, 천지도 암울하여 슬픈 빛을 띄네. 그 동안 국가발전에 지친 심신을 잠시 쉬게 하신 후 다시 오시어 못다 한 평등세상 건설하는 선도자가 되시어 우리를 다시 이끌어주십시오!"

"노 전 대통령 육신은 가셨으나 우리 마음으로 이어받았다"

추도사를 해주신 문동환 목사님.
 추도사를 해주신 문동환 목사님.
ⓒ 권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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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문동환 목사가 연단에 섰다.

"이런 자리에 처음 서본다. 둥그런 원을 보며 느낀 것이 많다. 그 나라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달라 영원한 진리를 나타내는 모습은 여러 가지로 달랐으나 진리 자체는 저 원 하나로 똑같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불교의 49재 행사는 기독교의 부활식과 같다. 노 전 대통령이 가시기는 했으나 다시 오셔서 우리 삶을 완전하게 하는 큰일을 다시 해달라고 하는 49재에 담긴 사람들의 기원이 예수의 재림을 간절히 원하는 기독교와도 통한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그리고 평화와 정의가 가득 찬, 모두가 형제처럼 신나게 사는 삶을 이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도 인간이라 약점은 있었고 진흙세상을 살기에 진흙이 튀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다른 이도 아닌) 군사독재로 특권을 누렸던 (더러운) 이들이 트집을 잡아 그를 못살게 굴어 돌아가시게 한 것이다. (중략)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자신을 버린 노 전 대통령의 보석 같은 마음은 그의 육신은 가셨으나 우리 마음으로 이어받았다. 그는 그렇게 우리 마음에 재림하신 것이다."     

49재에 참석한 한 시민은 "뉴욕이라는 살기 힘든 각박한 사회에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며 "전두환이나 이명박이 죽은들 누가 이렇게 모이겠는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노 전 대통령을 청문회에서 처음 보고 '저런 촌스런 관상을 가지고 어떻게 국회의원이 되었을까' 생각했는데 노 전 대통령의 등장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로운 지도자의 탄생이었다"고 말하며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행사를 공동주관한 노사모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생각난다"며 "농부는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우리 곁을 떠났다, 이제는 뿌려진 씨앗들이 열매로 화답할 때이다, 우리가 농부의 마음을 열매로 맺자"고 격려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조가와 고인이 즐겨 부르셨던 상록수를 다 같이 부른 것을 끝으로 2시간여의 뉴욕 49재는 막을 내렸다. 같은 뉴욕 하늘아래 살았지만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인연으로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종교와 나이, 성별을 뛰어넘어 모인 사람 모두가 간절히 바란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영가'가 도솔천에서 편히 쉬다가 이 세상으로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오시는 것이었다.

분향하는 시민.
 분향하는 시민.
ⓒ 권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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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고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뉴욕 49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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